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514 긴장(緊張)

김흥만 2020. 1. 22. 18:16


2020.  1.  20.  06;00

내가 새벽마다 오르는 해발 98m짜리 작은 산에 가려면 횡단보도가 없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육교를 통해 8차선길을 건너야 한다.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순간 소리 없이 내 뒤를 따르던 젊은이가 바로 올라타고

내 몸엔 무언가 느끼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생기며 동시에 경계경보가 울린다.

유리창으로 비치는 젊은이의 모습에 신경을 쓰며 양손에 잡았던 등산용 스틱을

한손으로 옮겨 쥔다.


등 뒤에서 "지갑을 안 가져와서 곤란하니 버스비 좀 도와주세요."라고 하기에

돌아보니 젊은이가 술을 마신 거 같지는 않은데 나도 모르게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거다.


친구들에게 군대삼단이라고 농담을 하지만 내 나이에 젊은이가 공격을 하면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다.

"운동을 나와서 나도 지갑이 없으니 버스기사에게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계좌번호를 알아내 입금시키는 방법도 있으니 그렇게 해보라"고 말을 하며

E/L의 구석에 있는 폐쇄회로를 의식해 스틱을 공격형으로 쥔다.


참 분위기 묘하다.

오해를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나이가 되면 상대편에서 뿜는 나쁜 기운 정도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다.

육교 위까지 따라온 젊은이가 앞서가도록 템포를 늦추니 그는 마지못해 앞으로

가고, 나는 공격형으로 쥐었던 스틱을 다시 편안한 자세로 바꾼다.


야간산행을 하면서 양손에 스틱이 있으면 야생동물도 무섭지 않았는데,

이렇게 사람들이 별로 통행하지 않는 시간에 으슥한 곳이나 외딴곳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면 섬뜩할 때가 있다.


옛 어르신들은 낯선 사람이 제일 무섭다했다.

하물며 까치들도 새벽에 낯선 사람을 보면 경계의 목소리를 내는데 묘한 기분을

떨치지 못하고 산허리 둘레 길을 걷는다.


된서리 내린 길은 오늘도 여전히 미끄럽고 건너편에서 오는 사람에게 큰소리로

인사를 한다.

사는 게 별 게 아니라지만 매스컴의 사건·사고가 새삼 생각나게 하는 새벽이다.


                                                                2020.  1.  20.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