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566 나대다, 설친다, 언행불일치라는 말의 무게

김흥만 2020. 7. 10. 10:55

2020. 7. 10. 05;00

매미소리가 귀청을 울린다.

사람들은 매미의 노래 소리가 본격적으로 들리면 여름이 절정이라 했고,

잠자리 낮게 뜨고, 귀뚜라미 울면 가을이 다가왔다고 했으니,

지금은 여름의 절정기에 있는 거다.

 

후드득 소리를 내며 빗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하고,

빗소리에 놀란 '하얀 나비'가 서둘러 숲 속으로 사라진다.

 

수풀 속에 숨었던 고양이가 내 인기척을 느끼고 슬그머니 나타나기에

"<나비>야 잘 잤니? 이리 와"하며 아침인사를 나눈다.

야생들개와 집나온 고양이에게 먹이 주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 몰래

찬밥 덩어리를 몇 번 준적이 있어 이 고양이와는 안면이 있는 편이다.

 

사람들은 진짜 나비에게도 '나비'라 하고 이름 모르는 고양이에게도

'나비'라 한다.

그만큼 '나비'라는 말은 우리에게 친숙하기도 하지만

'나비'라는 말이 온갖 회로애락이 다 담긴 말 같아 나는 참 좋다.

 

우리나라 말에는 유독 정감이 가는 말이 많다.

'어머니, 엄마, 엄니'라는 말과 함께 어머니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르면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사랑'이라는 말이 생각나면 나도 모르게 얼굴에 홍조(紅潮)가 생기고,

'고향'이라는 글자를 보면 마냥 옛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날아가는 진짜 나비와 나비로 불리는 고양이가 유연한 몸동작을 남기며

숲으로 사라지고,

나는 단 두 음절인 '나비' '엄마' '사랑' '고향'이라는 말뜻을 음미하며 산길을

터덜터덜 걷는다.

 

06;00

나는 컴맹이었다.

현직에 있을 때 컴퓨터에 관한 거는 일일이 직원들 손을 빌려야 했는데,

은퇴 후 물어볼 사람도 없어 컴퓨터를 켜 이것저것 만지다 보니 조금씩

익숙해지고 재미가 붙는다.

 

따라서 친구들과 즐기는 카페에 들어가 활동을 하다 보니

어느새 카페 활동에 대해 주도하는 위치가 되었다.

 

어느 날 술좌석에서 동창 한 명이 얼굴을 붉히며 "너는 언제부터 이렇게

나대고 왜 설치느냐"라며 면전(面前)에서 심한 말을 퍼붇는다.

 

"나대고 설친다?"

'나대다'라는 말은 얌전히 있지 못하고 경망스럽게 행동하며 철없이

촐랑거린다는 뜻이며,

 

'설치다'라는 말은 행동을 거칠게 하면서 나서서 함부로 행동한다'는

뜻으로 두말 다 부정적인 언어이며 이런 말을 쓰면 상대 당사자는 상처를

입게 된다.

 

그때 생긴 트라우마로 그 동창의 얼굴만 보면 지금도 스트레스를 받는데,

최근 친구들이 즐기는 단톡에서 '나댄다·설친다'라는 표현이 나와 심한

충격을 받는다.

 

06;30

최근 당구 모임 뒤풀이 중 '언행불일치'라는 말을 들어 또 충격을 받는다.

옛 현인(賢人)은 취중진담(醉中眞談), 언중유골(言重有骨)이라며 말(言)에

대해 스스로 자중하고 경계를 하라했다.

 

현직이든 전직(前職)이든 은행원은 말 한마디도 구두계약(口頭契約)으로

간주해 약속을 철저히 지키려 애쓴다.

 

다중(多衆)이 모이면 실없는 농담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노력에

대해 언행불일치라는 말을 들으니 자괴감(自傀感)이 생긴다.

친구들이 모여 농지거리 없이 말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하게 해야 한다면 더

서먹서먹해져 만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얇은 지갑을 마음 놓고 열지 못하는 백수의 애환(哀患)으로만 생각하기엔

너무 슬프기도 하고, 이 모임 회장으로 조직을 계속 끌고 가야 하는지

판단하기가 참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다.

 

                           2020. 7. 10. 장맛비 쏟아지는 아침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