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577 폭우 속 스패츠를 착용하는 고집과 아집

김흥만 2020. 8. 12. 11:30

2020. 8. 11. 06;00

하늘이 뻥 뚫려 쏟아지는 비로 앞을 바로 볼 수가 없다.

고어텍스 기능이 있는 등산화가 방수 된다고 하지만 이런 달구빗물엔

금세 젖는다.

 

허리를 구부려 '스패츠(spats)'가 제대로 착용하였는지 점검을 하고

길을 나선다.

지난겨울 눈이 오질 않아 눈 산행에 필요한 스패츠를 한 번도 착용하지

않았는데, 이번 장맛비 오는 날엔 거의 매일 스패츠를 착용하고 산으로

향하는 거다.

 

스패츠는 일종의 각반으로 방한용이나 진흙받이용이다.

눈이나 비, 흙 같은 이물질로부터 다리와 발을 보호하기 위한 물건인데

방수나 방습의 용도와 뱀이나 독충으로부터 하체를 보호하기도 한다.

 

내 스패츠는 우중 산행을 위한 제품이 아니라 겨울철 눈 산행 시 신발

안으로 눈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제품인데도 우중산행이나 산책 시

이렇게 요긴하게 쓰는 건 금년이 처음이다.

 

늘 건너는 '망월천'의 징검다리가 누런 급물살에 사라졌다.

개울의 본류는 사라지고 제방 아래가 모두 본류가 되어 분노(忿怒)의

흙탕물을 강으로 흘려보낸다.

 

저쪽 개여울의 속도가 느려진 쪽에 '왜가리' 한 마리가 외롭게 서있다.

이런 흙탕 물속에서도 먹이 사냥이 가능하려나,

가던 길 멈추고 도하청장((淘河靑莊)을 연출하는 왜가리를 망연(茫然)히

바라본다.

 

왜가리는 이런 빗속에서도 먹이 사냥을 하지 않으면 굶을 수밖에 없는데

반해, 나는 굳이 비를 피해 나올 수 있음에도 폭우 속에 우산을 쓴 채 걸으며

묘한 생각이 든다.

 

우주의 진여계(眞如界)에서는 모는 것이 공(空)이어서 성(聖)과 범(凡)의

차별이 없다던 확연무성(廓然無聲)이라는 공안(公案)은 허언(虛言)이 되고

자연의 미물(微物)과 인간의 차이가 확연해지는 새벽이다.

 

친구와 지인들에게서 오늘도 위험하니 이런 비엔 진득하게 집에 있으라는

전화와 메시지가 오고,

나는 수십 년 된 습관이라 조심하겠다고 답을 하면서도,

오래된 습관이라도 조금 변경하면 될 텐 데 쉽게 변경을 하지 못하는

나야말로 신노인지반(新老人之反)의 고집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이럴 때 나의 습관은 아집일까 아님 고집인가.

아집(我執)이란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나 좁은 소견에 사로잡힌 고집을 말하며,

고집(固執)이란 자기의 생각을 고치지 않고 굳게 버티는 것을 말한다.

 

또한 독선(獨善)이란 자기 혼자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함을 이르는 말이며,

편견(偏見)은 한쪽으로 치우친 공정하지 못한 생각이나 견해를 뜻하고,

위선(僞善)이란 겉으로만 착한 체를 하거나 거짓으로 꾸밈을 말하는데,

암튼 아집, 고집, 독선, 편견, 위선이라는 말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더불어 부정적인 용어임에 틀림없다.

 

이밖에도 부정적인 용어로는 말이나 행동 따위를 거짓으로 꾸미는 가식

(假飾)이 있는가 하면,

괘씸하고 얄밉다는 가증(可憎), 일부러 악한 체를 하는 위악(僞惡),

남을 그럴듯하게 속인다는 기만(欺瞞) 등도 다 좋지 않은 용어이다.

 

등판은 땀으로, 얼굴은 빗물로 젖어들어도 왜가리 외로운 망월천변 또한

내 사유(思惟)의 보물창고라 속도를 내지 않고 타박타박 걷는 새벽이다.

 

                                       2020. 8. 11.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