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26. 10;00
광화문 집회에 다녀온 후 외출을 자제했더니 역마살이 낀 팔자라 온몸이
근질거려 '동구릉' 트래킹에 나선다.
집권여당에선 광화문 집회가 코로나 재 확산에 기폭제가 되었다고 난리를
치며 외출을 억제하라고 한다.
임시휴무일을 지정하고, 소모임을 해제하고, 외식쿠폰을 지급하는 등
자기네들이 방역지침을 느슨하게 한 거는 탓하지 않고, 오로지 남 탓으로
일관하며 적반하장(賊半荷杖)으로 거대한 사회악을 조장하는 이 사람들이
죽으면 어디로 갈까.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된 은일의 숲 동구릉 입구에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멋진 시비가 서있다.
그냥 단순한 무장(武將)으로만 알았는데 뜻밖에 '등백운봉'이라는 호탕한
태조의 한시를 읽으며 감탄을 한다.
등백운봉(登白雲峯)
인수반라상백봉(引手攀蘿上碧峯)
일암고와백운종(一庵高臥白雲中)
약장안계위오토(若將眼界爲吾土)
초월강남기불용(楚越江南豈不容)
손 내밀어 담쟁이 넝쿨 휘어 잡고 푸른 봉우리에 올라서니
암자가 흰 구름 가운데 놓여 있네,
눈앞에 보이는 곳이 모두 내 땅이 된다면
초나라와 월나라가 있는 강남인들 어찌 받아들이지 않을까.
시야가 조선반도에 머무르지 않고 멀리 광활한 대륙을 바라보는 그의 웅혼한
기상(氣像)이 밴 시를 음미하며 안으로 들어선다.
솔향기가 온몸을 감싸주는 은밀한 곳,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곳은 죽은 자의 공간임과 동시에 산 자가 즐기는
별유천지(別有天地)로구나.
동구릉엔 조선 1대 태조의 건원릉을 중심으로 9기의 왕릉이 있다.
아름다운 자연의 명당자리에 조성된 조선왕릉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인정
받아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이 되었다.
정종대왕 후손 종친회의 수장(首長)으로 있는 친구의 초대로 임금에 대한
제향을 처음 보며 묘한 흥분을 느꼈었지.
국가문화에 대해 견식이 없는 나는 오늘 국가이념인 충(忠)과 효(孝)의
성리학을 구현한 무덤의 양식과 600년이 넘는 세월동안 계속 제사를
지내왔다는 릉(陵)의 역사를 담아야겠다.
2018년 8월 11일 이곳에 들렸는데 어느새 2년이란 세월이 흘렀구나.
오늘밤부터 태풍이 몰아친다는 재난문자가 스마트워치에 뜬다.
숲속은 태풍을 맞은 준비를 하는지 조용하다.
요요적적(寥寥寂寂)인가.
다들 코로나가 무섭긴 무서웠나 보다.
인적이 끊겨 고요하고 쓸쓸한 은일(隱逸)의 숲을 걷는다.
조선의 역사가 담긴 곳,
이곳에서 영면(永眠)을 하는 왕과 왕비의 이야기가 한쪽의 안내문에 함축된
기록을 읽으며 잠시 힐링의 시간을 갖는다.
죽음에는 명칭이 다 다르다.
황제나 황후가 죽으면 붕어(鵬御)라 했고, 왕과 왕비가 죽으면 훙서(薨逝),
군주가 죽으면 승하(昇遐)요, 자신보다 높은 사람이 죽으면 서거(逝去)라 했다.
성직자나 종교인이 죽으면 천주교에선 선종(善終), 불교에선 입적(入寂),
열반(涅槃), 개신교에선 소천(召天)이라 한다.
이밖에 일반인이라도 순교(殉敎), 순직(殉職), 임종(臨終), 작고(作故), 타계
(他界), 사망(死亡), 졸(卒), 몰(歿), 폐(廢), 전사(戰死), 산화(散化), 요절(夭折)
등 죽음에 대한 표현이 무수한데,
이곳 능에 묻힌 사자(死者)들은 최소한 훙서와 승하라는 말로 대접받는 왕과
왕비이다.
'개금버섯'이 숲의 한공간을 차지했다.
솔바람이 흐르기 시작한다.
막강한 권력으로 백성의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가졌던 왕도 죽어
음택에 한줌의 뼈 조각만 겨우 남겼으니 인생무상(人生無常)인가.
생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권력이란 세월 지나면 다 부질없는 욕심일진데,
온갖 간신들이 들끓는 현세를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진다.
은밀한 숲속에서 처음 만나는 '벌개미취'가 반갑다.
벌개미취가 먼 곳에 머물렀던 가을이 가까이 다가온다고 기쁜 소식을
알려준다.
다소 잠잠해지던 '코로나'가 재창궐하고,
50일 이상 지루하게 쏟아지던 장맛비가 그치자마자 태풍이 몰려오고 있다.
봄이 실종되더니 지긋지긋하던 여름도 서서히 힘을 잃어간다.
자연은 제행무상의 원칙에서 단 한치도 어긋나지 않고 제 할일을 하는구나.
건원릉(健元陵)은 다썩은 고려왕조를 없애고 역성혁명으로 500년 조선의
개국을 연 태조의 묘로 죽어서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의 뜻을 받들어 고향의
흙과 억새로 봉분을 덮었다.
29년간 왕세자를 하고 2년3개월이란 짧은 왕 노릇을 한 제5대 문종과
현덕왕후의 능인 현릉(顯陵),
당쟁과 임진왜란이라는 참혹한 전쟁을 겪은 제14대 선조와 의인왕후,
인목왕후의 능인 목릉(穆陵),
4대에 걸친 왕실 역사의 증인이라는 인조와 왕비인 장렬왕후의 휘릉(徽陵),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효종의 맏아들로 예송논쟁에 시달렸던
제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숭릉(崇陵),
33세의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제20대 경종과 당의왕후의
혜릉(惠陵),
66세에 15세 정순왕후에 새장가를 든 제21대 영조와 정순왕후의 능인 원릉
(元陵),
문예군주를 꿈꾸었던 추존 문조와 신정왕후의 수릉(綏陵),
조선 최연소인 8세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제24대 헌종과, 효현왕후,
효정왕후의 삼연릉인 경릉(景陵)을 보며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500년의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흘러간다.
태풍이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무더운 공기를 몰고오는지 후덥지근한 날씨에
매미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가끔 이름 모를 풀벌레소리가 들리고 그 흔한 까마귀 소리도, 꿩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2년 전 저쪽에서 고라니가 뛰어다녔는데 다들 생존본능으로 태풍을 피해
숨은 모양이다.
11;00
조선 21대 영조의 능인 원릉(元陵)에 도착한다.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이고, 온갖 잔혹한 형벌을 총동원해 정적을
다 처리한 영조는 앞으로 일체의 잔혹 형벌과 고문을 금한다는 하명을
내린다.
그 가운데 역률(逆律) 추시(追施) 금지령도 있는데,추시란 법을 소급적용
하는 조치다.
따라서 죽은 사람에게 적용하는 법적조치가 바로 추시(追施)다.
영조는 본인이 죽고 나서 반역죄를 소급 적용한 처벌을 금지하며, 이를
따르면 나라가 흥하고, 따르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며 준엄한 경고를 했다.
이후 135년 뒤 청나라에서 암살된 김옥균의 시신이 돌아왔다.
역적시신은 강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빙 둘러싸고 바라본다는 중인환시리
(衆人環視裡)에 역률추시 되었는데,
갑신정변 주역 김옥균의 시체는 관에서 꺼내 목을 베고 온몸에 칼집을 내고
사지를 절단하는 부관참시와 능지처사형을 당한다.
무능한 임금인 고종에 의해 실패한 혁명가인 김옥균은 암살을 당한 거도
부족해 능지처사를 당하고, 영조의 예언대로 조선은 망했다.
이를 기억하는 국민이 별로 없는지 '김홍걸'은 6·25 전쟁영웅인 백선엽
장군을 국립묘지에서 파묘하자는 법률을 냈다.
현대판 부관참시를 해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려는 간신들이 저자거리도
아니고 정부와 국회· 법원에 득시글거린다.
임금이 용렬하고 어두울수록 간신들이 노골적으로 군자나 현자를 밀어내는
현제(顯擠),
교묘하게 지위는 높으나 실권이 없는 자리에 군자나 현자를 추천하는 음배
(陰排)가 횡행(橫行)하는 나라니 이 간신들은 검찰총장을 향해 "개가 주인을
무는 꼴"이라고 하며 나라가 망하게끔 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임금이 명군(明君)이라면 간신을 제대로 가려내어 어떻게 처벌을 할까.
지금이야 벌금, 금고, 징역, 사형제도가 있지만
예전에는 태장도유사(苔杖徒流死)라는 오형(五刑)이 있었다.
태형(苔刑)이란 경범죄로 범죄자의 엉덩이나 등을 회초리와 같은 도구로
때리는 형벌이고,
태형보다는 무거운 죄를 범한 중범죄 죄인에겐 엉덩이나 등을 곤장 등의
큰 도구로 때리는 장형(杖刑)이 있으며,
중범죄자를 일정기간 감옥에 가두어 놓는 도형(徒刑),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산간벽지로 유배를 보내는 유형(流刑),
3번의 재판을 받고 최종적으로 왕이 승인하는 사형(死刑)이 있었다.
김대중의 아들이자 민주당 국회의원인 김홍걸이 다주택자로 아들에게
재빨리 증여를 하고, 본인은 전세 값을 60%나 넘게 올려 받자마자 바로
전월세 5% 제한법을 처리하더니 이번엔 친일파 파묘법을 서두른다.
국민들은 이렇게 염치(廉恥)가 없는 사람을 파렴치한(破廉恥漢)이라 부른다.
만약에 이 사실을 영조임금이 안다면 어떤 처벌을 내릴까.
최근 진인(塵人) 조은산 필명으로 청와대에 올린 '시무 7조'라는 상소문이
대단한 화제로 등장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자도 빼지않고 읽었다.
'시무 7조'는 광화문 집회에서도 풀지 못한 마음속 응어리를 한방에 풀어준다.
부동산, 인사, 외교, 소주방, 탈원전 등 문재인 정부의 실정(失政)을 날카롭게
꼬집고, 간신(奸臣)이 쥐떼처럼 창궐하여 역병과도 같다는 예리한 대목에선
소름이 끼친다.
<독활나무 열매>
시무(時務)란 당대에 중요하게 다뤄야 할 시급한 일을 뜻하는데
율곡 이이가 선조에게 '십만양병설'을 담은 상소인 시무 6조,
신라시대 최치원이 진성여왕에게 올린 시무 10조,
최승로가 고려 초 불교계를 비판해 올린 시무 28조가 유명하다.
조은산의 시무 7조에선,
지금 정권의 무능과 부패, 내로남불, 혹세무민(惑世巫民)을 문학적이면서도
해학과 논리적으로 질타를 하였는데 가히 당대의 최고 명문(名文)이로다.
그는 상소문에서 수많은 우책과 폭정으로 백성의 원성을 자아낸 삼인의
역적인 노영민, 추미애, 김현미를 파직하라고 했다.
정치 논리에 맞춰 수사 지휘권을 남용하는 바람에 나라꼴이 개판 되었으니
법무장관에 추미애 대신 차라리 '개'를 쓰자고 했다.
김현미 장관에 대해선 22번이나 정책을 실패하고, 또다시 우책으로 백성들을
우롱하니 파직하고, 3초 이상 기억을 하지 못하는 '붕어'를 쓰라는 이 상소문을
문 대통령은 무시하겠지만 영조임금께서 읽었더라면 어떻게 처리를 할까
자못 궁금하다.
<백당나무 열매>
김홍걸의 아버지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에 불법으로 약 5천억원을
지원해준 게 사실로 드러나 지금의 박지원 국정원장이 구속되기도 하였고,
그 돈으로 북한이 핵개발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게 대다수 국민들의 생각이니
이들이야말로 이적죄(利敵罪)와 여적죄(與敵罪)를 저지른 중죄인 아닌가.
김원웅과 김홍걸이 백선엽 장군을 국립묘지에서 파묘하자고 주창(主唱)하는데,
나는 친북, 종북주의자들 또한 국립묘지에서 영면하는 게 과연 옳은 건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하자 목숨을 초개같이 던진 다른 전사자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은가.
저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뻔뻔함과 남 탓에 나도 지쳐간다.
나의 선조는 무엇을 했을까.
고조부는 조선말기 지금으로 치면 서울 경찰청장급 벼슬을 하다가 고향인
진천으로 낙향을 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5년제 보통학교를 두번이나 월반하여 3년만에 졸업하셨고,
당대의 명필로 전일본 서예대회에서 장원을 하였다는 사실을 큰형님이
들려주셨다.
그렇다면 해방 후 정미소와 과자공장, 공직생활을 하며 7형제를 길러냈어도
전일본 서예대회에 작품을 출품한 내 아버지도 친일파인가?
광복회장 본인은 독재정권에 몸을 담은 건 생계형이라고 우긴다.
왕과 대신들이 무능해 일본에 국권(國權)을 빼앗겨 백성들이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해 살고자 발버둥친 거를 친일파로 몰아치는 그는 정작 중국
충칭에서 태어났으니 이 나라에서 6·25 전쟁 등의 어려움을 겪었는지 그의
행적을 묻고 싶다.
자연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순환법칙을 따른다.
인간세상의 권력은 유시유종(有始有終)이라,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지금의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시작은 있되 끝도 없다'는 유시무종
(有始無終)의 정신으로 모든 걸 밀어붙이는 오만으로 똘똘 뭉쳐 스스로 무서운
덫에 걸리기 시작한다.
민주사회에서 두려움과 부끄러움은 모든 질서의 시작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항상 남 탓으로만 돌리는 사람들이 죽어 국립묘지로
간다면 국민들은 억울해서 어떻게 사나.
11;30
긴 장마 끝에 처서가 지나고 간밤에 비가 내렸다.
왕릉의 한쪽 공간에서 졸졸 흐르는 개울 물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고요해진다.
더위에 지친 물과 찬바람을 맞은 물은 소리가 다르다.
지금 내 귀에 들리는 물소리가 뭉근하지 않고 경쾌하니 가을은 저만치에서
오고 있구나.
2020. 8. 26. 동구릉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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