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8.
방인화 원장,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인터넷에서 금년 1월 6일 별세하였다는 부고가 검색된다.
내가 그동안 너무 무심했던 모양이다.
삼십년 넘게 내 가정의 주치의로 마음속에 깊게 각인되었던 분이라 뒤늦게
부고를 읽으며 괜한 회한(悔恨)에 몸서리를 친다.
그분과의 인연은 1990년대 초 명일동 인화외과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하며
이어진다.
아들 동창의 아버지로 환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는 인격에 끌려 동네
단골병원이 된 거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군의관 출신으로 풍부한 임상경험을 가지고 동네에서
흔하지 않은 외과를 경영하며 줄어든 환자로 어려운 경영을 탓하기 보다는
병원을 폐원하면 직원들의 생계가 곤란해질 것을 우려하여 최대한 버텨
보겠다는 그의 의지를 뇌출혈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였다.
1년 전 병원을 찾았다가 의사학회에 참석 세미나 도중 뇌출혈로 쓰러져
진료를 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안타까웠는데, 그리고 한동안
잊었다가 오늘에서야 불현듯 생각이 난다.
종합병원에 가면 근엄한 표정의 의사로부터 3분 이상 진료 받기 힘들다.
그러나 그의 진료실에 들어가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동네 아저씨같이
환자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고 처방을 내리기에 대기실은 항상 만원이었다.
나는 그 분에 대한 믿음과 인격을 추모하며 '답다'라는 말을 음미한다.
우리나라 말에 일부 명사나 어근의 뒤에 '답다'라는 말을 붙여 쓰는 경우가
많다.
'그것의 긍정적인 속성을 충분히 지니다' 또는 '그것이 지니는 성질이나
특성이 있다'의 뜻을 더하여 만드는 형용사인데,
따라서 '답다'라는 말은 '남자답다' '선생님답다' 등 매우 긍정적인 말로 그
원장에게도 늘 '의사답다'라는 생각을 가졌는데 별세소식을 늦게나마 알게
되니 마음이 매우 무겁다.
세상을 살아가며 '답다'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을 얼마나 만날까.
매일 아침 08;45분경 신장초등학교 근처에서 딸을 업고 학교에 오는 젊은
아버지를 만난다.
흔한 휠체어나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고 장애를 가진 딸을 업고 학교에
오는데 마스크 사이로 아비의 당당한 모습을 볼 수 있기에 스쳐 지나가도
한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사무실로 향하곤 한다.
20살을 넘기 힘들다는 희귀병의 아들을 먼저 보낸 친구,
학교생활을 마칠 때까지 업어서 등교를 시킨 또 다른 친구,
아기 때 심장판막증 수술로 평생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딸을 가진 친구,
예기치 못한 사고로 먼저 딸을 보낸 친구,
검사로 재직 중인 딸이 뇌출혈로 사망한 동창 등 아픈 사연을 가진 친구들이
주변에 많다.
그 친구들은 슬픔을 가슴에 묻고 한결같이 '아비'로서 아비의 역할을 다
했으니 '애비답다'라는 말을 쓸 수 있겠다.
<께묵>
지금은 희대의 역수(逆豎)와 요기(妖氣), 간신들이 세상을 좀 먹는 세상이요,
지도자는 지도자답지 않고,
탐득무염(貪得無饜)으로 세상을 훔치는 탐신(貪臣)이 우글거리고,
'답다'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권력을 움켜쥔 세상이다.
때이른 더위로 봄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어제는 컴컴해진 대낮에 천둥번개와 함께 쏟아진 폭우와 우박이 세상을
때렸다.
중국에서 급습한 미세먼지 지수가 900까지 올라가 새벽산행을 포기하고
컴퓨터 앞에 한가로이 앉아 졸필을 끄적거리는 아침이 된다.
2021. 5. 8.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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