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10. 05;00
예봉산 자락이 붉게 물들더니 금세 사라진다.
새벽노을이 저렇게 붉으니 오늘은 비가 얼마나 많이 쏟아지려나.
오늘따라 '찌르레기'가 유난히 부산을 떨고, 늙은 까마귀의 능청스런 목소리와
함께 새벽의 숲은 점점 활기를 찾아간다.
숲속에서 새와 자연의 소리를 들을 때 보법은 미음완보(微吟緩步)가 제격이다.
오른손은 마비의 후유증으로 얼음을 든 거 같이 시리기에 장갑을 끼고,
뒷짐을 진채 밝아오는 여명의 하늘을 바라보다가 다시 느릿느릿 걷는다.
새들도 비 소식을 아는지 오늘따라 부산떠는 소리가 숲속의 나무에서 쏟아져
내려온다.
이제부터 숲속의 시간은 온전히 새들과 나무와 풀의 시간이다.
연두색을 벗어나 초록의 바다가 되어가는 숲속을 조용히 바라보다 정상을 향한다.
텅 빈 숲속의 주인이었던 나목(裸木)들은 어느새 나뭇잎을 치렁치렁 달고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마구 흔들린다.
이틀간 미세먼지 지수가 1,000을 넘나드는 고약한 황사에 몸이 잔뜩 움추러들고,
강풍에 가로수 여러 그루가 쓰러지기까지 했는데,
청량해진 공기를 마음껏 마시려고 마스크를 코밑으로 슬그머니 내린다.
세상이 밝아오며 숲속에 하얗게 빛나는 '백선(白鮮)'을 발견한다.
작년 누군가에 의해 뽑혀진 곳에서 불과 5m 위에 '백선'이 신비한 모습을 드러냈다.
< 백선 >
평소보다 30여분 일찍 나왔더니 봉삼(鳳蔘) 또는 봉황삼(鳳凰蔘)으로 불리는 '백선'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얻은 거다.
작년 누군가 백선을 뽑았을 때 느꼈던 참담함을 상쇄하는 즐거움은 상쾌한 아침을
만든다.
06;00
한동안 글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엊그제 저녁 친구의 전화를 받는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몇 명이서 영정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말한다.
헉!
영정사진(影幀寫眞)이라~~
벌써 영정사진을 신경을 써야 하는 나이가 되었나.
통화를 하며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잠시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랫동안 산(山)에서 임서기(林棲期)의 삶을 즐기며 찍은 사진 중에서 영정사진을
고르면 되지 않을까.
스마트 폰 갤러리에 저장된 개인사진과 컴퓨터 사진 보관함에 들어가 영정사진이
될 만한 사진을 골라보니 사진은 많아도 마땅한 사진이 없다.
<샤스타 데이지>
내 사진은 대부분 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다.
막상 한장 한장 관심을 갖고 다시 보니 거의 다 힘들게 올라온 표정의 사진으로 부드럽게
웃으며 찍은 사진이 없는 거다.
영정사진은 조금이라도 젊을 때 찍는 게 좋을까?
아니면 나이에 걸맞게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찍어야 할까.
물론 정답이 없겠지.
6.25 전쟁 개전 초 경찰로 전사하신 이모부 영정사진이 20대 사진이라 제사 때마다
늘 어색했던 기억도 나고,
50대에 찍은 부모님의 영정사진도 생각난다.
수년 전부터 사진작가이자 사진작가협회 하남지부장인 아내가 나이 많은 수백 명의
지역주민에게 '장수사진'이라는 명분으로 영정사진을 찍어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나는 그 활동을 지켜보며 그냥 지나쳤는데, 어느 날 그 대상이 바로 내가 되었다.
사실 그동안 영정사진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지도 않았고,
아들이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2005년 머리 수술이 잘못되어 사망하면 검단산 정상
동쪽 바로 아래에 있는 소나무 밑에 재를 뿌렸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은 있다.
장기 및 사체기증과, 사전 연명치료 거부 의향서 정도면 나의 삶을 완성시키는
마무리로 웰 다잉(well dying)이 되는 게 아닐까라고 했던 생각은 짧은 생각에
불과했다는 걸 친구의 전화를 받으며 비로소 깨달았다.
맞다.
내가 가도 가족과 또 누군가는 나를 기억할 것이기에
입은 웃고 있어도 눈이 울고 있는 사진도 싫고 근엄한 표정의 사진도 싫다.
언젠가 때가 되면 서두르지 않고,
산 정상이건, 들판이든 대자연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찍어 내 가족과 지인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나의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다.
< 수레국화 >
검은 비구름이 검단산과 내 머리 위를 뒤덮는다.
나는 지금 어느 정도에 서있는 걸까.
어디로 가는지 어디쯤 갔는지 정답을 모르는 게 황혼인생이다.
행복한 삶이란 조금 부족해도 마음먹기 달려있다.
사진 한 장 남기는 거 없이 그냥 가는 거도 좋겠지만,
웰 다잉(well dying)을 향해 하나씩 조금씩 미리 준비하는 것도 좋으리라.
2021. 5. 10.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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