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623 속았다, 그리고 유쾌한 반전

김흥만 2021. 5. 16. 12:14

2021.  5.  16.

속았다. 

그것도 완벽하게 속았다가 극적인 반전(反轉)이 일어나며 기분 좋은 하루가 시작된다.

 

매일 아침 08;45분경 신장초등학교 앞을 지날 때면 4학년 정도의 딸아이를 업고

학교에 오는 건장한 젊은이를 만난다.

 

오늘도 어김없이 내가 가는 방향의 맞은편에서 딸을 업은 젊은이가 나타난다.

아이의 어디가 아플까, 고칠 수는 없는 걸까,

휠체어나 유모차에 태우면 힘이 덜 들 텐데,

아이가 수업을 제대로 받을 수는 있을까,

 

아이의 해맑은 얼굴을 보며 아이의 식사는, 화장실 사용은, 교실이 위층에 있다면

엘리베이터가 있을까, 없으면 어떻게 할까,

온갖 걱정 속에 나오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감출 수가 없다.

 

스쳐 지나가는 부녀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는데 뜻밖의 반전이 일어난다.

아빠의 등에서 내린 아이가 손을 흔들며 교정으로 뛰어 들어가는 거다.

 

아이의 건강이 좋아진 걸까,

속았다는 마음은 사라지고 뜻밖의 반전(反轉)을 보는 나의 마음이 가벼워진다.                            

                                              <  외대 의아리  >

 

05;10

호우경보에 걸맞지 않게 부슬비가 내린다.

숲속에 들어서자 산비둘기 구슬프게 울고 개개비도 '개개개'하며 특유의 새소리를 낸다.

 

백선과 붓꽃은 시들어 꽃잎이 늘어져가고,

'어치'가 사라진 나무에서 '뻐꾸기'가 뻐꾹 대기 시작한다.

 

근처에 '개개비'와 '뻐꾸기'가 공존한다면 저 뻐꾸기가 혹시 개개비 둥지에 탁란(托卵)을

하지 않았을까.

우산을 잠시 접고 참나무 위를 올려다본다.

 

뻐꾸기는 자기가 직접 둥지를 만들지 않고 개개비나 휘파람새, 붉은머리오목눈이 등이

둥지를 잠시 비우면 그 둥지에 알을 낳는다.

뻐꾸기 알들은 개개비나 다른 새들보다 며칠 일찍 부화하여 다른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고, 계모인 새들은 뻐꾸기를 자기자식으로 간주하고 열심히 키운다는 거다.

 

이렇게 숲속에서는 전형적인 얌체전략으로 '육아기생' '부화기생'을 하는 뻐꾸기가

있는가 하면, 40% 이상의 까치는 자기의 둥지에서 뻐꾸기의 알을 알고 없앤다고 하니

숲속에서 반전이 거듭되는 생존전략이 참 이채롭다.

                                                     <  뱀딸기  >

 

08;40

인간사회에서도 반전은 계속된다.

선한 모습이라 하여 찍었던 대통령이 오기(傲氣)와 오만(傲慢)으로 실정을 거듭하고,

쓰레기만도 못한 사람들을 장관으로 기용하니 민심이 점점 사나워진다.

 

내로남불의 간신들이 들끓어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국제적으로 유명해지고,

고액 출연료를 받고 정권에 살랑거리며 아첨이나 해 영행(佞倖)이나 폐행(嬖幸)의

무리에 해당되는 방송인에게 권력을 가진 탐신(貪臣)들이 머리를 조아리는 세상이

되었다.

 

어느 현인은 '세상이 지옥으로 변해가는 이유는 그것을 천국으로 만들려는 인간의

욕심 때문'이라고 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욕심으로

우리나라는 점점 "한 번도 경험해보고 싶지 않은 세상"이 되어간다.

 

정의, 평등, 공정은 허공에 사라졌고 위선과 불의, 불평등, 불공정이 세상을 뒤덮었다.

개돼지만도 못한, 쓰레기만도 못한 사람들이 세상의 권력을 휘두르는 세상에서

권력의 반전을 기대하는 것 또한 나의 쓸데없는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반전에 대한 기대가 몽상(夢想)으로 끝나면 얼마나 허무할까.

폭우 쏟아지는 창밖은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없이 평화롭기만 하다.

 

                               2021.  5.  16.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