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625 오월이 가면

김흥만 2021. 5. 29. 19:46

2021.  5.  29.  15;00

우당탕!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소낙비가 내린다.

창문을 열고 작달비 내리는 앞산을 내다본다.

 

쏴아~!

장대 빗줄기에 스며든 빗소리가 파도소리 되어 내 고막을 휘젓는다.

늘씬한 각선미로 내 시선을 강탈하는 저 여인은 검정우산 쓰고 어디로 가는 걸까.

 

비 내리는 길거리 풍경 보며 한참을 침묵으로 묵언수행(默言修行) 하였더니

손에 든 커피는 싸늘하게 식어가고,

커피향 내 시든 가슴 채워주지 않아 하릴없이 먹구름 두꺼운 하늘만 바라본다.

 

아까부터 구슬프게 울던 산비둘기도 비를 피해 숲속으로 사라지고,

창밑에서 비를 맞던 검은 고양이도 슬그머니 사라졌다.

텅 빈 숲속 마른 가지에서 여린 잎사귀들이 움 트기 시작한 게 엊그제였는데

어느새 숲이 꽉 찼다.

 

봄이 계속 머무를 줄 알았다.

녹음이 짙어지는 숲을 바라보며 봄이 계속 눌러앉을 줄 알았다.

5월이 계속 남아있을 줄만 알았다.

                                     <  인동초  >

 

오랜만에 달력을 보니 5월도 어느새 막바지구나.

그래서 비 오기 전 태양빛이 그렇게 따가웠나보다.

 

시인들은 5월이 찬란하고, 밝고, 맑고, 순결한 달이라 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나는 5월이 오는 것도 가는 것도 너무 아쉽기만 하다.

5월이 가면 종심(從心)인데 가슴이 아려와 어떻게 저 달력을 넘겨야 할까.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또한 나이를 센들 어떠하리,

5월은 녹음을 만들어 6월을 향해 질주하는데 내가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구나.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이순(耳順)의 막바지에서

내 생애 가장 젊었던 5월을 보내며 수없이 쌓인 추억을 하나하나씩 기억 속에서

지워야 하나.

                       < 개양귀비  >

 

빗줄기가 점점 강해지다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내가 늘 건너는 망월천(望月川) 여울가에 핀 '양귀비'가 무사할까,

아니면 무섭게 밀려오는 노도(怒濤)에 휩쓸려 떠내려갔을까.

 

느닷없이 조바심이 생겨 코로나 백신 접종으로 뻐근해진 팔을 휘두르며 길을

나선다.

 

                                 2021.  5.  29.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