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762 아! 돌발성 난청이~답은 골든 타임(Golden time)이다.

김흥만 2023. 8. 19. 17:27

2023.  8.  2.  10;00~ 8.  14. 24;00

12일간의 병상기록

 

그날이 8월 2일이었던가.

오전 10시쯤 나는 세상의 소리를 잃었다.

 

새벽 앞산에 올라 속옷까지 다 젖을 정도로 땀을 많이 흘렸고,

알바 센터에서 에어컨을 켰는데도 온몸이 다 젖었다.

 

조금 힘에 버겁다는 생각이 들어 자리에 앉는 순간 오른쪽

귀에서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바람소리만 들리고

세상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게 뭔 일이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일부로 코를 풀어도 해결되지 않고,

혼돈(混沌)과 고통의 세상으로 빠져들었다.

 

그날 14;00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아 당구장옆 이비인후과에 진료를

신청하고, 청력검사 데이터를 본 원장은 큰 병원으로 빨리

가야 된다며 소견서를 써준다.

 

늘 다니는 성심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결과 급성으로 온 '돌발성

난청'이라며 골든 타임을 잘 지켰고,

병원에 입원하여 '스테로이드' 집중치료를 받아야 하며 결과를

미리 예단할 수는 없지만 드물게 30% 정도는 호전될 수 있다고

한다.

 

스테로이드 처방약을 받으면서 당황한다.

40년 전 1983년 스테로이드 치료로 체중이 20kg 넘게 찐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악몽이 생각나며 온몸이 또 젖기 시작한다.

 

<8월 3일> 이비인후과 병동에 입원을 했다.

스테로이드 처방약이 어제 외래보다 두 배가 늘었다.

 

첫날 스테로이드가 8과 6알 등 14알이 처방되었고,

밤 24시에 머리 MRI 촬영을 했다.

 

드물게 뇌종양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 다한증(多汗症)과

노인성 난청일 수도 있다며 수시로 검사를 한다.

 

둘째 날은 16알이 처방되었고 수시로 혈당 체크와 혈액검사가

이루어진다.

 

부실한 저염식(低鹽食) 식사로 힘이 빠졌는지 기운이 없고,

스테로이드 복용 부작용으로 혈당 수치가 300이 넘었다.

 

평생 꾸준한 운동으로 혈압과 혈당수치는 정상치였는데,

일시적이라 하지만 300이라는 혈당수치는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한다.

 

머리 MRI 촬영결과 늘 지니고 살던 뇌종양은 당초 24mm에서

18mm로 줄었기에 귀(耳)랑 상관관계는 없는 것으로 판단되며,

뇌하수체에 미세한 종양이 보여 호르몬 분비에 대하여 다시

검사를 한다고 한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라 이제부터 내 몸은 나의 영역이 아니다.

오롯이 의료진의 몫이라 실험실의 피물체(被物體)가 되어도

그냥 복종할 수밖에 없다.

 

청력검사결과 입원 첫날 57 데시벨(Decibel)에서 둘째 날

44 데시벨, 셋째 날 40 데시벨로 약 30% 정도 좋아진 셈이다.

 

난 그동안 눈(眼)은 안 좋지만 귀(耳)의 건강만은 자신했다.

기준이 25 데시벨인데 늘 17 데시벨까지 들려 멀리 떨어진

사람들의 귓속말까지 들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가끔 친구들과 농담이지만,

예전 인기드라마였던 '소머즈'의 귀와  최근 방영됐던 드라마

'보이스'의 주인공인 '이하나' 역할을 해도 된다고 자신만만

했었으니 입방정을 떨어 벌을 받은 모양이다.

 

잠수함을 소재로 한 소설 <바라쿠다, 동해, 남해>를 읽으며

한때 잠수함 소나(sonar) 담당 승조원이 되는 상상도 했었다.

 

퇴원 후 1주일인 8월 14일까지 스테로이드 복용을 했으니

꼬박 12일 동안 집중치료를  받은 셈인가.

 

8.  15.  06;00

내손엔 등산용 스틱 한 자루가 들렸다.

매일 가볍게 뛰어오르기도 했던 앞산에 오르는 게 버거워져

보조용으로 등산용 스틱을 휴대한 거다.

 

지금 매미소리, 직박구리 소리는 잘 들린다.

그러나 싸아~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매미 우는 소리가 걸러지지

않고 메아리가 되어 들리는 이명현상은 여전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노인성 난청이 온 걸까, 바이러스 감염일까, 유전적 요인일까,

혈관 장애일까, 골전도 이어폰을 자주 사용하였는데 그게

원인일까.

 

땀을 많이 흘리는 다한증(多汗症)이 원인일까,

암튼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치료를 시작했는데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나이에 세상의 소리를 잃다니, 

고쳐지지 않는다면 이대로 살아야 하나.

그래도 한쪽 귀는 청력 손상이 없으니 다행이랄까.

 

암튼 그날은 더위로 힘들었고 힘에 부쳤다.

상처를 남기지 않고 슬그머니 사라지는 태풍과 질병은 없기에

후유증은 각오를 해야겠다.

 

어찌보면 늙는다는 것은 최악이다.

약 보름 정도의 병치레에 체력이 바닥났고,

멀쩡했던 몸 구석구석 아프지 않은 곳이 없으니 말이다.

 

8. 17. 08;00

<epilogue>

아침 8시 채혈, 내분비센터에서 뇌하수체 검사결과 확인,

뇌종양은 15mm로 최종 확인을 하고, 혈당수치, 간기능 수치

다 정상이라며 큰 문제가 없다고는 하지만,

이어서 청력검사까지 하다 보니 몸은 녹초가 되어 한껏 늘어진다.

 

11;00

청력검사결과가 나왔다는데 주치의는 무슨 말을 할까.

잔뜩 긴장을 하고 이비인후과 주치의 앞에 앉는다.

 

"치료가 필요한 골든타임을 다행히 놓치지 않았고,

오늘 검사결과 28 데시벨로 나왔으며 기준치인 25 데시벨엔

미치지 못하지만 상당히 호전되었다"는 주치의 말 한마디에

긴장이 사르르 풀린다.

 

귀에서 들리는 바람소리, 에코현상은 대표적인 이명증상으로

시간이 걸리겠지만 치료 효과를 기대해도 좋다고 한다.

 

늙으면 질병과 아픔을 달고 살아야 하는 건가.

지금 악몽(惡夢)을 꾸고 있는 건지 차라리 악몽으로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삶에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

아무리 조심하고 대비를 해도 그 영역은 분명히 존재하기에 

대처하는 방법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답은 골든타임이 아닐까?

희망을 가지고 살다 보면 언젠가는 상처가 치유되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공허(空虛)하게 들리니 기력이

많이 쇠잔(衰殘)해진 모양이다.

 

                      2023.  8.  17.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