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794 욕(辱)

김흥만 2024. 3. 18. 21:20

2024.  3.  18.

야당대표가 선거운동 중 "설마 '2찍' 아니겠지?"라고 말한다.

말투가 그런가 보다고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알고 보니

'2찍'이란 지난 대통령선거 때 기호 2번 윤대통령을 찍은

보수 지지층을 폄하하는 욕이라는 거다.

 

세상의 욕(辱)은 한 시대의 시류(時流)에 따라 변한다.

나 어렸을 때는 주로 생식기와 성행위에서 비롯한 욕이

많았다.

 

인간은 누구나 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잉태되어 자라다가

때가 되면 질(膣)을 통해 세상밖으로 나온다.

 

'씹'이라,

생명이 잉태하려면 여성의 질에 정자가 투입되어 자궁을

지나 나팔관에서 기다리는 난자를 만나야 한다.

 

따라서 '씹'이라는 말은 '씨의 입'이 준말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는데 성교의 시작이자 성교자체를 말하는 '씹'을

비속어로 쓰는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 또 있을까.

 

나의 집은 덕풍중학교와 같은 골목을 쓴다.

중학생들이 지나다니며 나누는 대화를 귀동냥해 보면

'씨팔'이라는 단어가 빠지질 않는데,

이 녀석들은 아예 '씨발, 씨팔'이라는 욕을 달고 산다.

 

여기에서 '씨발'은 씨(정자)를 받음이요,

'씨팔'은 씨(정자)를 타인에게 파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씨팔은 남성, 씨발은 여성에 해당하는 성적상황이고,

조선시대 양반가 며느리가 불임일 때 자손을 얻기 위해

'씨받이'를 들이기도 했는데 그 대상이 되는 여성을

'씨받이년'이라고 비하를 했지.

 

씨팔, 씨발이라는 욕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릴 때 욕을 하다가 어른한테 걸리면 야단을 맞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어른들은 어린이들이 욕을 하면서 말을

배우고, 쌈박질을 하면서 정이 붙는다고 웃어 넘기기도 했다.

                          <   노루귀  >

 

가장 심한 욕으로는 '염병 걸려 뒈질 xx', 부모를 욕하는

'니기미 xx', '육시(戮屍)럴 연놈' '오살(五殺)할 놈' 등이

심한 축(軸)에 속했다.

 

예전 주택은행 인사부에 근무할 때 옆자리 동료는 개새끼를

'개사꾸'라고 변형시켜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으며,

 

지하철에 와이파이가 없어 휴대폰이 잘 터지지 않았을 때,

전철역 입구에서 공짜로 주던 무가지(無價紙)의 만화

주인공인 '무 대리'와 '박 과장'은 '닝기리 조또', '쓰파'라는

욕을 남발하여 전철 승객들을 즐겁게 해줬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에는 한국 남자를 벌레로 비하하는 한남충, 한치남,

씹치남, 일베충,

노인을 비하하는 틀딱충,

여성을 비하하는 된장녀, 페미충, 김치녀, 한녀, 피싸개,

나이가 어리면 급식충, 도덕심이 많으면 도덕충,

 

말이 많으면 설명충, 배려를 많이 하면 배려충, 유머가

없으면 진지충, 조국(曺國)을 지지하면 조국충,

학교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등교를 하여 개근상을 타면

'개근거지',

월세로 살면 월거지, 전세로 살면 전거지,

월수입이 200만 원 대면 이백충(二百蟲)이라 했다.

 

영남출신은 보리 문둥이, 호남출신은 홍어, 충청도는

핫바지, 좌파는 빨갱이, 보수는 수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개구리, 놈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쥐박,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닭그네, 문재인 전 대통령을 문재앙, 곰이라고 했다.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은 윤도리도리, 쩍벌,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겐 형수에게 심한 욕을 했다 해서

'찢재명', 또는 '찢'이라고 한다.

 

이젠 병신, 바보, 머저리, 똥, 곰, 개새끼, 짱깨, 똥남아, 개슬람

(이슬람), 개딸(개혁의 딸), 흑형(흑인), 감자, 멍청도, 과메기,

홍어, 확찐자, 개잡놈 등은 축에도 끼지 못하는 평범한 욕이

되었다.

 

욕은 그 나라의 당시 시대상황을 대변한다.

오염된 언어로 사회와 정치를 타락시키는 욕(辱), 

상대를 낙인찍고 경멸하는 멸칭(蔑稱)이 점점 심각해진다.

 

상대를 비하하면 자기도 격(格)이 떨어진다.

혐오와 적대감을 부추기고 국민을 분열시키는 낙인찍기

욕은 바로 하늘 보고 침을 뱉는 앙천이타(仰天而唾)가

아니겠는가.

 

욕은 욕일뿐이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가 지나면 조금은 익살스럽고 우스꽝

스러운 성질을 지닌 해학적(諧謔的)인 욕이 생기려나.

 

                             2024.  3.  18.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