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803 천일야화(天日野花)

김흥만 2024. 5. 1. 11:13

2024.  5.  1.

박무(薄霧)가 사라진 하늘빛 참 곱고 푸르다.

찬란하게 빛나는 하늘 아래 나는 한 점의 창해일속(蒼海一粟)

이구나.

 

춘분, 청명, 곡우가 지났고 벚꽃 향연도 사라지고 5월로

접어들었다.

며칠 후면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入夏)라,

하지를 향해 낮의 길이는 점점 길어지고 밤은 점점

짧아진다.

 

100여 km 정도밖에 안 되는 진천 추모공원에 내려가

'엄니, 아부지'를 보고 왔는데 몸에 적당한 피로가 왔는지

새벽 5시까지 늘어지게 잤다.

                                   <   산목련   >

 

05;40

늦게 나선 산책길,

익숙한 향기가 콧구멍으로 솔솔 들어오기 시작한다.

엊그제도 피지 않았던 아카시꽃이 만개하여 이 작은 야산에

향기를 마구 뿌려댄다.

 

자연의 생체시계에 의하면 아카시는 6월 초 개화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아카시는 그새를 못 참고 만개를 했다.

 

비단 아카시뿐만 아니다.

5월 중하순에 피는 이팝나무도 충청도말로 홀라당 피었으니

전문가가 말하던 자연의 생태시계는 무의미하게 되었고,

조만간 밤나무도 꽃이 피어 이상야릇한 냄새를 풍기겠다.

 

사실 본래 예정보다 일찍 핀 식물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4월 중, 하순에 섭씨 30도에 가까운 여름날씨가 여러 날

지속되었으니 사람은 물론 식물도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숲 속은 연두색을 지나 서서히 녹색으로 변해간다.

새로 나온 나뭇잎이 가진 연한 초록빛,

신록(新綠)이 숲 속을 메꿔가고 이렇게 싱그러운 숲의

냄새를 혼자 독차지하고 있으니 내가 욕심이 너무 많은 게

아닌가.

                            <   애기똥풀   >

 

낮의 길이가 길어질 때 꽃을 피우는 장일식물(長日植物)인

개나리, 진달래가 사라졌다.

지금은 일정시간 이상만 햇빛을 받을 수 있는 중일식물(中日

植物)인 민들레, 고들빼기꽃이 한창이다.

 

한여름이 지나고 낮이 짧아지면 단일식물(短日植物)인

코스모스와 쑥부쟁이 등 국화가 본격적으로 피겠지.

 

낮이 점점 뜨거워진다.

개불알꽃과 봄맞이꽃은 하고현상(夏枯現象)을 핑계 대고

일제히 땅속으로 사라졌다.

 

무엇이든지 어렵게 만들고 세분화 시키기를 좋아하는

학자와 전문가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피고 지는 아기똥풀과

으아리를 어떻게 분류할까.

 

한겨울을 빼고 거의 9~10개월 피는 꽃을 내가 식물학자

라면 천일야화(天日野花)라는 항목을 만들어 분류하겠다.

 

장일, 중일, 단일식물 등 한정된 식물 말고 수개월 동안

종일 햇볕을 먹고 산과 들판에서 자라는 꽃이 또 무엇이

있을까 기억을 더듬다가 엉뚱하게도 천일야화(千日夜話)

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   으아리   >

 

불과 30~40년 전만 하더라도 누구든지 주변에 생계용으로

월부책을 파는 지인이 몇 명쯤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장식용 또는 독서용으로 한국문학

전집, 세계문학전집 등을 샀고, 나는 100권짜리 한국문학

전집, 일본의 도꾸까와 이에야스가 주인공인 26권짜리 대망,

정비석의 삼국지에 이어 '천일야화'라는 전집을 샀다.

 

당시 활판 기준으로 8포인트 정도의 작은 글자를 다시 읽을

수가 없어 여러 번 이사를 하는 동안 아깝지만 자연스럽게

정리를 했다.

 

아라비안 나이트로 알려진 '천일야화 (千日夜話)'의 배경은

중앙아시아와 인도, 중국 등인데,

 

왕비가 된 샤흐라자드(셰헤라자데 Sheherazade)가

여성들의 부정을 혐오하는 왕(王)에게 결혼 첫날부터

매일밤 주요 이야기 180편과 짧은 이야기 108편을 들려

준다는 내용이다.

 

왕비의 부정을 알자 왕은 매일 새 신부를 맞이하였다가

다음날 죽이는 일을 반복한다,

 

한 대신의 딸인 샤흐라자드는 꾀를 내어 자신과 다른

처녀를 구하고자 결혼 첫날부터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는데 매일 이야기의 끝을 내지 않고 다음 날 밤에

마치겠다며 여운을 남긴다.

 

이야기는 몹시 흥미로웠고 이야기의 끝이 궁금해진 왕은

하루하루 그녀의 처형을 연기하고 1,001일이 지나자 왕은

여성에 대한 잔인한 보복을 단념한다는 이야기인데 전집

으로 12권 정도가 되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근로자의 날, 

오늘 근무가 없으니 천야일야의 내용을 배경으로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가 4악장으로 작곡하고 

'빈 필 하모닉'이 연주하는  '세헤라자데'나 들어야겠다.

 

                          2024.  5.  1.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