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5. 15;00
새벽부터 추적추적 내리던 '는개'가 갑자기 강해져 창문으로
들이친다.
옛 선조들은 봄비가 이렇게 많이 내리면 할 일이 많다해서
'일비'라 했고,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은 이틀 후면 그믐이니
'그믐치'라 했겠다.
Tv를 트니 트롯가수 박민수가 나훈아 원곡인 '명자야'를
구성지게 부른다.
나훈아가 불렀던 명자야,
이찬원이 불렀던 명자야,
박지현이 불렀던 명자야,
또 다른 감성으로 부르는 박민수의 '명자야'라를 듣는다.
풍부한 감정, 절제된 슬픔, 시원하게 내지르는 가창력,
구성진 가사와 가락으로 박민수가 부르는 '명자야'라는
노래는 내 어린 시절의 덧칠하지 않은 수채화가 되어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 명자나무 꽃봉오리 >
뜰안에 명자나무가 며칠 전부터 꽃을 피웠다.
이 노래에 나오는 '명자'는 어머니 이름인데,
이 명자나무와 관련이 있을까,
예전 여성들의 이름 끝 자는 자(子), 순(順), 숙(淑), 희(姬),
정(貞)을 많이 썼는데 그중에서도 자(子) 자가 제일 많았던
걸로 기억이 난다.
주어진 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
빈약하고 풍족하지 않아도 그대로를 받아들이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공부보다는 놀기 좋아하던 꼬마시절,
저녁 무렵이면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오르고,
해거름 녘까지 플라나타스 우거진 골목에서 자치기, 구슬
치기, 딱지치기를 하며 뛰어놀고,
밥 먹으러 들어오라는 엄마의 말씀에 집으로 들어가
저녁밥을 먹으면 하루의 고단함이 풀어지고 신나게 잠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한(恨)과 흥(興)이 공존하는 노래, 감성이
따뜻한 노래인 트롯을 늘그막에 내가 좋아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뉴스를 멀리하니 내 곁으로 다가온 트로트,
임영웅, 손태진, 양지은, 정서주, 박민수가 어느새 내 삶의
한복판으로 불쑥 들어와 나를 이끈다.
< 명자나무 꽃 >
♬나 어릴 적에 짓궂었지만 픽하면 울고 꿈도 많았지.
~~ 자야자야 명자야, 불러 샀던 아버지,
중략
자야자야 명자야 가슴 아픈 어머니
세월을 흘러 모두 세상 떠나시고~~
저녁별 되어 반짝반짝 거리네,
눈물 너머로 반짝반짝 거리네. ~~♪♬
인생의 노을 길에 선 나,
'명자야'라는 노래 한곡과 명자나무 붉은 꽃송이를 보며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된다.
2024. 5. 5.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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