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 397 나만의 작은 숲(little forest) 2018. 12. 16. 06;00 가랑비 내리듯 조금씩 잘게 가랑눈이 날린다. 가랑눈이 점점 굵어지며 내가 걷는 산길에 쌓이기 시작한다. 녹지 않은 얼룩무늬 잔설이 군데군데 숲속에 남아있었는데 내리는 눈은 얼룩무늬를 무심히 지워나간다. 이 시간 인적(人跡) 없는 작은 숲(little forest)은 오로지 나만.. 나의 이야기 2018.12.16
느림의 미학 396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지다. 2018. 12. 12. 06;00 숲속에 가로등이 켜진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불이 켜져 밝은 숲속을 무심히 걷다가 화들짝 놀란다. 처음 가로등 공사를 할 때는 예산낭비라고 투덜댔고, 청설모가 고양이한테 물려죽는 걸 보며 화도 났는데, 며칠 지나자 아무 일도 없었던 거처럼 무심히 숲속을 걷는 내.. 나의 이야기 2018.12.12
느림의 미학 395 처음 2018. 12. 9. 사라진 버드나무편의 교정을 끝내고 12월의 메모장을 들춘다. 정기모임, 산행 예정일, 참석해야 할 송년회 등이 빼곡하게 메모가 되었다. 일정이 전혀 없는 날이 며칠이나 되는지 세어보니 5손가락 이내이다. 백수가 이렇게 바삐 살아도 될까, 다시 금년 초인 1월 메모장으로 거.. 나의 이야기 2018.12.09
느림의 미학 394 사라진 버드나무 2018. 12. 8. 06;00 영하 13도 방한모와 마스크를 쓰고 산에 오르기 위해 실개천을 건넌다. 어라! 가로등 불빛에 비친 실개천의 바뀐 모습을 보며 망연자실((茫然自失)한다. 실개천 양쪽 언덕이 휑해진 거다. 수십 년간 밭과 화훼단지 중간을 흐르던 실개천변에 쌓였던 연탄재가 사라지고 정비.. 나의 이야기 2018.12.08
느림의 미학 393 청설모의 주검 2018. 12. 6. 06;00 눈발이 날리는 세상은 아직 어둠속이다. 숲속으로 스며들며 오늘따라 이상하게 긴장이 된다. 한밤중 달빛을 벗 삼아 오르던 검단산, 핸드랜턴 하나에 의지하고 설악산 마등령을 넘을 때도 긴장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묘한 떨림이 오는 거다. 매일 새벽 오르는 산에 전기공사.. 나의 이야기 2018.12.06
느림의 미학 391 담배연기 2018. 11. 25 일요일 아침은 창문을 열고 대청소를 하는 날이다. 창문을 열면 창을 통해 담배냄새가 들어왔는데 아래층 골초 영감이 이사를 갔는지 오늘은 찬바람과 함께 신선한 공기가 들어온다. 내가 쓰는 서재가 북향인데, 골초 영감도 바로 아래층 똑같은 방을 쓰는 모양이다. 그가 자신.. 나의 이야기 2018.11.25
느림의 미학 389 인공조명 2018. 11. 21. 05;00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제법 요란하다. 전날 점심에 먹은 꼬막 알레르기 덕분인지 모처럼 숙변이 쏟아진다. 사람의 몸은 참 신기하다. 꼬막의 독소를 어떻게 감지하였는지 아랫배가 살살 아프다가 급기야는 끊어질듯 아파 참기가 힘들.. 나의 이야기 2018.11.21
느림의 미학 388 인연(因緣) 2018. 11. 19. 06;00 숲속으로 들어가기엔 어둡고 이른 시간이라 가로등불이 켜진 황산 봉우리로 올라간다. 아직 여명(黎明)이 시작되지 않았기에 동쪽 검단산 위로 개밥바라기별이 유난히 반짝 거리고, 북쪽 천마산 상공의 국자모양 북두칠성이 한가롭다. 맨 앞에 있는 추성(樞星)을 기준으로.. 나의 이야기 2018.11.19
느림의 미학 387 빼빼로 데이 유감 2018. 11. 11. 오전 산행과 대청소를 하였더니 잠이 스르르 온다. 소파에 누워 오수(午睡)를 즐기려 눈을 감는데 아기들이 왔다. 사내들이라 집안의 정적(靜寂)은 순식간에 도망가고 이리저리 뛰어노는 두 놈들 분위기에 사방은 어질러지고 정신이 없다. '빼빼로 데이'라고 빼빼로 과자를 사.. 나의 이야기 2018.11.11
느림의 미학 382 비(雨) 2018. 10. 6. 빗소리와 함께 창문이 들썩인다. 남쪽지방엔 태풍 '콩레이'가 다가와 잔뜩 긴장을 하고 있을 텐데, 서둘러 TV를 켜니 충무 앞바다에 집채만 한 파도가 방파제를 때리는 장면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길 가던 사람이 태풍에 밀려 넘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창문의 열린 틈으로 비가 .. 나의 이야기 2018.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