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5. 20;00
며칠 전 고향친구 단톡방에 올라온 두 장의 사진 속
동창의 모습을 보며 참 많이 놀랐다.
투병생활이 30년 넘는 걸로 기억되고, 그동안 보지는
못했어도 꿋꿋하게 잘 사는 줄 알았는데 뜻밖에 늙고
병든 모습을 대하니 가슴이 짠하다.
친구의 부친이신 '고 이상일 선생님' 장례식에서
건강이 좋지 않은 모습을 본 이후 수십 년 세월 만나지
못했는데 찾아온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회생(回生)의
희망이 사라진 친구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1998년 주택은행 영등포역 지점장으로 근무할 때
혈액투석에 필요한 치료비가 필요하다며 친구의
아내가 찾아왔고, 금액을 밝힐 수는 없지만 무보증
신용으로 대출을 해줬다.
군에 입대하기 두 달 전인 1973년 7월 그 친구와
둘이서 장난을 치다가 왼쪽 무릎에 골절상을 입어
읍내 박기수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집에서 혼날까 봐 지나가는 시외버스에 부딪쳤다고
거짓말을 한 게 진천경찰서 교통사고 담당 유재록
형사에게 들통이 나기도 했다.
1974년 일등병 시절 정기휴가를 나와 큰 형님의
명을 받고, 진천읍(邑)으로 승격되기 직전인 진천면
(面) 사무소에서 방위 신분으로 호적계에 근무하던
그 친구를 찾아가 조카의 출생신고를 했다.
출생신고서에 <아름다울 소韶, 눈썹 미眉>
'소미'로 정확히 써서 제출을 했고, 조카가 국민학교
입학 전까지 '소미'로 알고 있었는데 입학과정에서
호적에 '미미'로 등재된 사실이 확인되었고 집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당사자인 조카가 '미미'도 이름이 예쁘다고 수용을
해서 소동은 진정이 되었고 해프닝(happening)으로
끝났다.
생각은 생각을 낳는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들,
아련한 추억들이 머릿속의 스크린(screen)에 투사
(透射)되어 나타났다 사라지고 또 나타난다.
생각이란 무엇인가,
생각은 바로 마음의 종속이 아닌가.
생각의 종류는 의(意), 지(志), 사(思), 려(慮), 염(念)
으로 나뉜다.
우리는 툭하면 마음을 비운다고 한다.
마음을 비운다?
비운다고 했는데 이제와서 보니 비워진 게 아무것도
없으니 나 스스로를 탓하여야 할까.
그렇다면 비운 마음을 무엇으로, 어떤 것으로 채운 게
아니라 그냥 허송세월(虛送歲月)을 보냈나 보다.
하루에도 수백 번 바뀌는 게 사람의 마음(心)이다.
친구라도 보기 싫은 사진으로 판단되었는지 단톡에
올라온 후 몇 친구의 Complain이 있었고, 나 역시
사진을 본 후 지금까지 Trauma에 시달린다.
눈을 감아도 끔찍한 모습이 떠오르고, 심지어는
꿈에서도 떠올랐다.
잊으려 하면 할수록 사진의 처참한 모습이 떠오르니
참 난감한 노릇이다.
나는 지금 '심리학과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심적,
정신적 외상(Psychological Trauma)에 지독하게
걸린 모양이다.
< 물싸리 >
종심(從心)의 나이는 무엇을 얻고자 하는 세대도
아니고,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는 세대도 아닌 상실
(喪失)의 세대다.
매일 당구장에 나오는 한 친구는 약과 안경을 수시로
찾고, 어느 날은 지갑을 찾고, 또 어느 날은 모자를
찾고, 휴대폰을 수시로 찾는 일이 반복된다.
무엇인가를 잃고, 잃어버리고 산다는 것, 당사자 입장
에선 참 괴롭고 힘든 일이다.
불치병인 파킨슨병으로 잃어버릴 때가 많지만 꾸준한
운동과 활동으로 병의 진행속도를 늦추고 유지관리를
하는 모습을 보며 진한 감동을 느낀다.
21;00
최근 두 달에 걸쳐 동창과 친구, 친구의 배우자 등
90여 명에 대해 장수사진을 촬영하고 사진을 담은
장식용 액자를 배부하였다.
한 친구는 4월 20일을 넘기지 못할 거 같다며 자신의
영정사진으로 썼으면 좋겠다고 서둘러 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장수사진을 촬영한 후 포기했던
항암치료를 순조롭게 받고 있으니 장수사진의 기
(氣)를 제대로 받은 모양이다.
장수사진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고,
서글퍼하는 친구도 있고, 표현은 각양각색이지만
나의 할 일을 한 거 같아 마음은 가뿐하다.
나이가 들면 몸 구석구석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따라서 늙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최악이다.
젊다는 것이 무조건 좋은 일만은 아니다.
때로는 망각(忘却)도 좋다.
나이가 들어서야만 느낄 수 있는 망각이라는 행복도
있기 때문이다.
니체는 "망각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라고 했으니 이 또한 지나가겠지.
예전 머리 수술 후 아끼던 낚싯대와 낚시도구를
제일 먼저 버렸다.
물고기도 살아있는 생물이기에 살생을 하지 않으려
작은 일부터 실천을 시작했고,
들판이나 산길에 무수히 자라는 바랭이와, 쇠비름,
질경이 등 잡초도 밟지 않으려 발걸음도 조심한다.
요즘엔 스트레스를 받을만한 영상이나 영화, 사진은
보지 않으려 하고, 국회의원 선거 후 TV에서 뉴스도
보지 않는다.
때로는 여러 친구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지 않게끔
가급적 좋은 소식과 좋은 사진을 올려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한다.
어쩌면 본격적으로 다가온 상실과 망각의 시간에
발버둥 치며 저항하는 나만의 이기심인지도 모르겠다.
2024. 7. 5.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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