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13. 10;00
기(氣)란 세상에 정말로 존재하는 걸까.
황톳길을 걸은 지 3시간이 지났는데도 발바닥이
화끈거리다가 개운하고 좋은 기분을 느끼니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느끼는 묘한 기운은 천기(天氣)를
받아서일까,
아님 지기(地氣)를 흡수해서일까.
요즘 우리나라 곳곳마다 출렁다리와 케이블카가 많이
생긴다는데 실제로 제일 많이 생기는 건 황톳길이다.
전국적으로 맨발걷기 열풍이 불었고 그중 황톳길은
단연 압권(壓券)이다.
시류(時流)가 황톳길 조성이라,
내가 매일 새벽 산책을 즐기는 황산숲길 근처에도
280m짜리 황톳길이 최근 새로 생겼다.
하필이면 장마철인 최근에 오픈이 되었고,
매일 내리는 오란비에 견디지 못한 황톳길은 진창이
되어 많이 미끄럽다.
수년 전 걸었던 계족산 황톳길을 그리워하며 자빠지지
않을 속도로 천천히 느리게 걷는다.
맨발로 한 발 한 발 발걸음을 옮기며 발바닥과 발가락에
와닿는 느낌을 음미한다.
발 뒤꿈치부터 발 아치, 발가락 끝까지 황토에 닿는
느낌이 참 부드럽고 포근하다.
미끄러질까 종종걸음을 걸어도 이 시간만큼은 온전한
내 시간이라,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살펴본다.
황톳길 바로 옆 '꼬리 조팝나무에' 신비스러운 꽃이
피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은은하게 코끝을 간질이는
꽃향기를 마셔본다.
< 꼬리 조팝나무 >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결에 조팝나무 꽃잎이 춤을
추고, 꿀을 빨던 나비 한 마리가 날개를 나풀거리며
허공으로 날아간다.
사람에겐 외부의 지극을 받아들이는 오감이 있다.
즉,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으로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져서 느끼는 오감(五感)을
말한다.
이론상으로는 감각 기관의 핵심이 외부의 자극을
신경신호로 변환시키면 신경세포인 뉴런(neuron)을
통해서 뇌로 전달되는 일종의 전기신호로 설명된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발바닥에서 느끼는 개운한 감각은
오감 중에서 촉각에 해당하는 걸까.
촉각으로 말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설명이 조금 부족
하지 않은가.
접촉(touch)에 대한 감각,
빗물로 냉각이 된 황토의 온도(temperatrue),
발바닥에 살짝 오는 묘한 통증(pain)의 삼박자를
전문가가 아닌 내가 졸필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피부에 와닿는 전정감각, 평형감각, 신체운동감각
등은 내가 설명할 수 없는 전문영역이고,
그렇다고 감각기관으로 받아들인 정보 이외의 것을
직관적으로 느끼는 육감(六感)도 아니다.
예전 고향에 내려가면 기(氣) 치료를 해 주신다며
어머니께서 내 아픈 어깨에 손바닥을 대고 땀을 뻘뻘
흘리며 기를 넣어주시곤 했다.
그때 어깨에서 느끼던 기분이 지금 발바닥에도 전달
되어 매일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맨발로 걸으면
족저근막염과 당뇨병 환자에게는 좋지 않다고 하지만,
지압효과, 면역력 증가, 자세 개선, 혈액순환 개선,
스트레스 해소, 활성산소를 중화시키고 호르몬 정상화,
만성염증 완화, 전자파 차단 등 어싱(earthing) 효과가
크고 다리 근육강화 등 여러 부분에 효과가 좋다고 한다.
며칠만에 나도 황톳길에 서서히 중독이 되어간다.
오감, 육감을 뛰어넘어 칠감(七感)을 느끼니 말이다.
20여분을 걷자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발걸음이 날아갈 듯 경쾌해지고, 황톳길 주변 작은
나무의 잔잔한 잎들이 한들한들 나부끼며 칠감(七感)
이라는 나의 말에 동의를 한다.
빠른 걸음이 아닌 가벼운 걸음으로 걸으며,
주변을 눈에 담고, 코로 조팝꽃과 황토의 향기를
마시고, 빰에 스치는 바람에 잠시 우화등선(羽化登仙)이
된 나,
긴 시간은 아니지만 내 시선과 몸이 머무른
이 황톳길에서 호흡이 편해지고 마음도 가벼워졌다.
발 딱는 장소에서 수도꼭지를 틀고 발을 식히며
숨이 발뒤꿈치까지 내려가게 크게 들이마신다.
이럴 때는 탁족종식(濁足踵息)이다.
세족(洗足), 탁족(濯足)을 하며 숨이 발뒤꿈치까지
내려가 종식(踵息)을 느끼니 이게 바로 일상의 평화가
아닌가.
물로 씻은 후 페이퍼 타올로 황톳물이 물든 발바닥과
발가락을 꾹꾹 눌러가며 닦는다.
참 여유롭다.
이런 여유를 내가 언제 느껴보았을까.
오랜만에 여유를 갖고 지금 느끼는 감정은 오감도 아닌,
육감도 아닌 바로 칠감(七感)이다.
물론 칠감이라는 말은 내가 지어낸 말이지만 오늘
이 분위기에 가장 적절한 말이 아닌지 모르겠다.
2024. 7. 13.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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