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31
너 나 할 것 없이 바쁘게 설쳐대던 12월.
세상살이를 하며 바쁨을 구하지 않아도 12월은 바쁨이 절로 생긴다.
연일 이어지던 송년회가 끝나고 텅 빈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으려니
왠지 공허하기도 하지만,
정신없이 바쁘지도 않은데, 하는 일 없이 마음만 부산하다.
별로 오지도 않는 휴대폰만 열심히 들여다보다가
이제야 내 자신과 대면하는 조용한 시간을 가져본다.
2010년의 시작을 알린 게 엊그제인데 어느덧 한해가 또 저물어 가고,
천천히 세월의 그리움을 느끼며 가슴을 들춰보니, 수많은 사연들이
가슴을 저민다.
해놓은 것 없이 일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지천명을 지나 이순, 그리고 회갑이라는 나이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구나.
유리창 넘어 창밖에 서 있는 나무는 세찬 북풍에 흔들리고,
창문 틈 사이로 바람소리 들려오니,
내 가슴은 세월의 슬픔으로 서러워만 간다.
흐르는 세월 속에 하나씩 잃어가고, 귀한 인연을 얻기도 하지만
홀로 앉은 외로운 시간에는 어김없이 지난 추억들이 찾아든다.
가슴 저려 아프면서도 아름답게만 보이니,아직도 나 자신을 사랑하는가 보다.
내년, 아니 내일부터는 '용띠'다.
천룡지호(天龍地虎)라, 하늘의 최고는 용(龍)이고 지상의 최고는 호랑이이다.
용호상박(龍虎相搏) 즉 용은 대적할 동물이 호랑이밖에 없을 정도로 강인하고 용맹한
상상 속의 동물이다.
상서로운 동물인 용의 생김새는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주먹은 호랑이로 아홉 동물의
특징과 비슷하다.
용은 백룡, 황룡, 청룡, 흑룡 등 여러 종류인데 왜 임진년(壬辰年)을 '흑룡'이라 할까?
육십갑자 시간법에 따르면 올해는 임진년(壬辰年)으로 지지인 진(辰)은 십이지에서
유일하게 상상 속의 동물인 용을 일컫는다.
천간인 임(壬)은 오행사상에서 물(水)에 해당되고 색으로는 '흑색'을 상징한다나?
이 둘이 합쳐져 2012년은 '흑룡띠' 해로서 물을 만난 형국이라 하여 매우 길한 해라
믿어져 왔으며 60년마다 온다.
호국의 상징이기도 한 용은 불교에서도 매우 상서로운 존재이다.
부처님께서 처음 탄생하실 때 연못에 있던 용 아홉 마리가 물을 뿜어서 태자의 몸을 씻어
목욕을 시켰다는데 이것을 구룡토수(九龍吐水)라 하지만,
서양에서는 동양의 용과는 달리 위협적이고 부정적인 '악의 화신'으로 묘사된다.
해(日)가 진다.
달(月)이 가고,
해(年)가 간다.
한해의 끝을 물들이며 장엄하게 노을이 진다.
한해의 끄트머리에 서면,
항상 낙조 앞에 서면 살아온 날에 대한 회한과 저물어가는 인생의 쓸쓸함에
마음이 상했었는데,
오늘 밤엔 용꿈을 꾸어 보자.
무언가 기쁘고 행복한 일이 있을 것이다.
2012. 1. 1
해(日)가 뜬다.
해(年)가 시작된다.
송년회로 분주했던 연말을 보내고 또 새해를 맞는다.
해(太陽)야 매일 또 돋고 또 지는 것이지만 여민 옷깃을 스며드는 찬바람은
뱃속까지 파고든다.
헉!
내가 임진년생이니 오늘부터 회갑의 해인가?
부모님과 어른들 앞에서 춤을 추며 귀염 받던 해제(孩提),
공부 잘한다고 칭찬을 받던 지학(志學),
약관(弱冠)을 지나, 서른 살도 안 된 나이에 결혼한 이립(易立),
불혹(不惑), 지천명(知天命), 이순(耳順)을 거쳐 어느새 환갑(還甲)이구나.
8단계까지 왔는데 그래도 아직 10단계가 남았구나.
2~3세 해제(孩提) 어린아이
15세 지학(志學) 15세가 되어야 학문에 뜻을 두고,
20세 약관(弱冠) 남자는 20살에 관례를 가져 성인이 되며,
30세 이립(易立) 서른 살쯤에 가정과 사회에 기반을 닦고,
40세 불혹(不惑) 사십 살이 되어야 세상일에 미혹하지 않고,
50세 지천명(知天命) 쉰 살에 드디어 하늘의 명을 알게 된다.
60세 이순(耳順) 육순이라고도 하며 논어에서 나온 말로 나이 예순이면 생각하는
모든 것이 원만하여 무슨 일이든 들으면 곧 이해가 되며,
고집이 셀 나이이니 귀를 순하게 하여 많이 듣고,
말은 가급적 아끼라는 나이.
61세 환갑(還甲) 回甲으로 예순하나가 되는 해의 생일.
62세 진갑(進甲) 회갑 이듬해 즉 62세가 되는 해의 생일.
70세 고희(古稀) 두보의 곡강시에 나오는 <人生七十 古來稀>에서 유래된 말이며,
71세 망팔(望八) 팔십 세를 바라본다는 뜻이다.
77세 희수(喜壽) 오래 살아 기쁘다는 뜻이며,
80세 산수(傘壽) 우산 산(傘)자가 八十을 의미하고,
88세 미수(米壽) 여든여덟 살의 생일, 쌀 미(米)자는 八十八의 합성어이다.
90세 졸수(卒壽) 졸(卒)자는 구와 십의 파자로 해석되며,
91세 망백(望百) 91세가 되면 100살까지 살 것을 바라본다 하여 망백이고,
99세 백수(白壽) 百(100)에서 ㅡ을 빼면 99 즉 白자가 된다.
100세 기이지수(期이之壽) 사람의 수명은 100년을 1기(期)로 함으로 기(期)라 하고 이는
양(養)과 같다는 뜻으로 곧 몸이 늙어 기거를 마음대로 할 수 없어
다른 사람에게 위탁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한테 해당되는 回甲은 환갑(還甲), 화갑(華甲), 주갑(周甲)이라고도 하는데,
화갑의 화(華)자를 파자 하면 '육십일'이 되며 태어난 干支의 해가 다시 돌아왔음을 뜻한다.
환갑날 아침 사당에 들어가 조상의 신위에 환갑을 고하고, 상을 성대하게 차리는데,
하객이 볼 수 있는 앞쪽에 여러 음식을 진설하고, 여유있는 집은 교자상 2개를 쓰기도 한다.
상 앞에 주인공이 앉으면 맏아들, 둘째 아들, 맏딸, 둘째 딸, 순서로 부부가 나란히 서서
잔을 올리고, 남자는 재배(2번), 여자는 사배(4번)하여 헌수(獻壽)하는게 원칙이지만
오늘날은 다 같이 재배 또는 일배 한다.
그 다음은 차례로 잔을 올리는데 어머니의 환갑이라 하더라도 아버지에게 먼저 잔을 올리며
한 분만 살아 계시면 한잔만 올린다.
옛날에는 악공과 기생을 불러 권주가를 부르는 등 성대하게 치뤘으며, 형편이 되는 사람은
선물을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일을 도와주는 것으로 부조하기도 했다.
환갑잔치는 수연(壽宴)이라고도 하며, 주인공이 아프거나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생략하거나
날을 가려 앞당기기도 하지만,
평균 기대수명이 높아지며, 환갑의 의미가 점차 축소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끔 아기들 돌잔치에 참석하면 아기들은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왕자와 공주요,
아기 엄마, 아빠들은 왕과 왕비 같은 대접을 받을 때,
나이 먹은 어른들은 한구석에 초라하게 앉아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
나이가 먹을수록, 세월이 흐를수록 세상살이가 쉽지 않음은 왜 그럴까?
옛날 옛적 대부분의 꿈은 대통령, 장관, 장군, 돈 많은 재벌 등 거창하게 꾸지만,
나이가 점점 들수록 현실에 안주하여 꿈은 작아지다가 잃게 된다.
꿈을 잃은 자리엔 후회와 회한이 남고,
늙어간다는 건 얼굴과 피부에 주름살이 늘어가는 거뿐만 아니라
꿈을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
길을 걷다가 맑은 미소를 지닌 노인을 만나 인사를 나눈다.
편안한 얼굴과 맑은 눈동자를 지닌 노인의 모습은 지나온 세월에 대해 후회 없이
사는 모양이다.
그의 여유로운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사무실에 들어와 거울을 보니 나와 똑같이 닮은 사람이 얼굴을 가까이 댄다.
눈꼬리는 쳐졌고 얼굴엔 검은 저승반점이 생기기 시작한다.
얼굴이 가지고 있는 깊은 뜻은 '얼'은 영혼, '굴'은 통로라고 하며
멍한 사람들에게 '얼 빠졌다'라고 하기도 한다.
기분이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산 사람, 죽은 사람, 승자의 얼굴, 패자의 얼굴 등
마음의 상태에 따라 같은 얼굴도 변화무쌍하게 달라지며,
사람은 얼굴의 근육 80개로 7,000가지의 표정을 지을 수 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는데, 첫인상은 6초 이내로 결정된다고 한다.
일 년 후의 내 얼굴은 어떻게 보일까?
기쁨, 생명, 감사, 희망의 얼굴일까.
아님 욕심과 절망, 불안 등이 겹친 추한 얼굴일까.
난 하루하루를 살아 있다는 감사의 얼굴, 영혼이 살아 있는 부드러운 얼굴이 되었으면
좋겠다.
살다 보면 산다는 게 별게 아닌데 매사에 집착해 몸과 마음을 고단하게 한다.
이젠 위안과 희망을 갖자.
사랑이라는 희망을 꺼내어 살자.
살며 살아가며 사랑하면 건너는 세월의 길도 보이겠지.
이젠 세상 일이 시끄러워도 덤덤하게 살자.
그러면 한가로움을 찾지 않아도 한가로움이 오겠지.
2012. 1. 1. 임진년 첫날 창밖을 내다보며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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