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癌)
중학교 동창회에 참석 중 죽마고우인 친구가 폐암 3기를 선고받았다는 소식을
들으며 큰 충격을 받아 한잔 술에 올라오던 취기가 싹 가신다.
'KBS 아침마당' 프로에 산부인과 명의 '홍영재' 박사가 나온다.
30대의 준수했던 얼굴엔 늙음이 왔고, 그는 의사이면서 39년 만에 처음 받은
건강진단에서 신장암과 대장암을 선고받는다.
일반병은 '진단'이지만 "암은 진단 받는 것이 아니라 선고를 받는 것이다."
즉 '암'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환자는 이미 정신적으로 절반은 죽게 된다.
그만큼 큰 공포를 주기 때문에 선고라 한다.
판사가 법정에서 준엄한 목소리로 죄인에게 선고를 내리듯이 의사들도 암환자에게
통보할 때에는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홍영재 박사는 긴 투병의 세월 동안 청국장 전도사가 되었다.
건대 민중병원 의사로 있을 때 내 아들 '승욱'이를 제왕절개수술로 탄생시켜준
인연으로 항상 그에게 관심이 있었다.
나 역시 머리 수술 후 식사를 일체하지 못한다.
김치 등 냄새나는 음식만 보면 토하고 심지어는 식당 아주머니 유니폼만 보여도 토해
제과점에서 사온 카스테라를 물에 녹여 하루 세끼를 해결한다.
퇴원 후 한동안은 밥종류나 김치 등 냄새 나는 음식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주치의는 보신탕이나 고기종류는 좋고, 생선회나 청국장 등 발효식품은 먹지 말라 한다.
청국장(淸麴醬)
헌데 이게 웬일인가?
어느 날 창문으로 구수한 냄새가 들어온다.
바로 옆집에서 흘러 들어오는 콤콤한 청국장 냄새이다.
입에서 군침이 돌고 아내가 끓여준 청국장에 밥 두 그릇을 다 비운다.
20여 일 만에 식사다운 식사를 하니 눈물이 핑 돈다.
이후 급격히 체력이 회복된다.
제대로 걷지도 못해 부축을 받아야 했던 몸이,
일주일 만에 혼자 걷고, 자전거도 타고, 울렁증을 참아가며 뛰기도 하는 단계에 이르니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다.
청국장 덕분에 체력은 완전히 회복되고 평범한 일상생활로 돌아가며 새 인생의 행복을
찾는다.
요즘도 일주일에 1~2회 정도는 사무실 근처 '누리마루'라는 청국장집엘 들린다.
청국장은 콩을 발효시켜 만든 한국 전통음식이다.
혹자는 중국 청나라에서 유래된 청국장이라 하나 이는 잘못된 지식이다.
청국장은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에 '시'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서기 683년 신라의 제31대 신문왕이 김흥운의 딸을 왕비로 맞을 때 폐백품목에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조선 숙종(1715년) 때 실학자 홍만선이 쓴 '산림경제'에는 '전국장(戰國醬)'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청국장은 삶은 콩을 뜨거운 곳에서 발효시켜 누룩곰팡이가 생기도록 만든 속성 장류이다.
된장은 발효시켜 먹기까지 몇 달이 걸리지만, 청국장은 담가서 2~3일이면 먹을 수 있어,
발효식품류 중 가장 짧은 기일에 만들 수 있는 장이 청국장이다.
대체로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만들어 먹는데, 냄새가 특이하고, 영양가가 높아 소화가
잘되어 콩 단백질을 가장 효과적으로 섭취할 수 있는 식품으로 '암'에도 좋다고 한다.
자연발효에 의한 청국장은 메주콩을 10~20시간 더운 물에 불렸다가 물을 붓고 푹 끓여
물씬하게 익힌 다음 보온만으로 띄우는데,
그릇에 짚을 몇 가닥씩 깔면서 퍼 담아 담요나 이불을 씌워 45℃로 보온하면 '고초균'이
번식하여 발효물질로 변한다.
어렸을 적 시골집 아랫목엔 이불을 덮은 청국장시루가 차지하고, 윗목엔 검은 보자기를
씌운 콩나물시루가 차지했다.
충청도에선 <단복장, 단북장>이라고도 한다.
문성이 지인은 암 선고를 받자 수술과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어차피 수술과 고통 속에서 수명만 잠시 연장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생각하고
생의 마지막을 유럽 등 여행으로 택하고 깨끗하게 세상을 하직한다.
요즘 막내 제수의 '유방암'이 7년 만에 재발하여
체력과 면역력이 약해 겨우 항암치료를 겨우 받고 있을 정도로 악전고투를 하고 있다.
산(山)
암환자이자 암전문의로 유명한 '전 일산암쎈터 박재갑 원장'은 병원은 일시적으로
연장만 할 뿐이라며 '산'에서 답을 구하라 한다.
나는 김창흡의 "(誠一好友也 , 亦一良醫也 -성일호우야 , 혁일양의야) "
"산천은 나에게 진실로 좋은 벗이며 또한 훌륭한 의원이다.
즉 등산이야말로 병을 치료해 주는 의사"라는 말이 오늘따라 마음에 와 닿는다.
암(癌)은 산(山)위에 입(口)이 세 개가 있으나, 다 병들어 (기댈 역) 막혔으니
오히려 '웃음'을 안고, 산이라는 대자연에 몸을 던지고 기대면 어떨까?
위암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고향친구가 등산 팀에 합류하였다는 좋은 소식도 들려온다.
청국장에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며 잠시 상념에 젖어든다.
2012. 4. 9. 오후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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