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25. 04;00
아버님 전상서
"아버님 왜 이리 춥지요?
최전방부대에 배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간 식사를 못하셨다면서요?
저는 몸 성히 잘 있는데요, 과수원에 있는 케리도 잘 있지요?"라고 쓰고 나서 아버님에
대한 편지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데, 케리는 과수원을 지키는 세퍼드 종류의 개이다.
전방에서 졸병생활을 하며 딱히 쓸 내용도 없고 더 이상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냥 하루하루 국방부 시계만 흘러가길 기다릴 뿐 희망도 즐거움도 없다.
'아버님 전상서'를 쓰다가 꿈에서 깨어난다.
잠에서 깨어나니 딱딱한 침상에 매트리스를 깐 내무반이 아니고, 안락한 내 침대 위이다.
다시 찾아온 늦더위에 찬바람이 났는데도 답답하여 창문을 조금 열어놓은 채 잠들었다가
추워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잤는지 목덜미가 서늘하다.
이미 여름이 가고 찬바람이 났는가 싶더니 연일 30도가 넘는 가을 무더위에 사람도
길가의 풀잎도 시달리며 파삭파삭 마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가을의 하늘은 높아지고, 높아진 만큼 공간이 넓어져도 마음은 허전해지니 왜 그럴까?
가을은 아무리 더워도 어느새 내 턱밑까지 다가왔다.
조용히 눈을 감고 군 생활을 하던 대암산 산행을 생각하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며 설렌다.
21살 내 청춘의 일기장 속으로 들어가는 날, 창문을 두드리던 가을비는 멎었다.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때때로 군대 꿈을 꾸지.
어느 꿈에선 제대특명이 내려오지 않아 안달하기도 하고, 선임병에게 얼차려를 받으며
괴로워하기도 한다.
언젠가는 행군 도중 가을꽃의 처연함에 끌려 눈길을 주다 뒤로 처지는 바람에 얼차려를 받는
악몽을 꾸다가 깨기도 한다.
어쩌다 군에 또 입대하는 꿈을 꾸기도 하는데,
군대에 관한 꿈에서는 즐거웠던 꿈은 없고, 대부분 안 좋고 힘들었던 꿈을 꾸기가 일수다.
06;00
춘천 고속도로엔 안개가 스멀스멀 몰려오더니 세상을 삼켜버린다.
조금 전 새벽빛에 빛나던 산봉우리도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이내 사라진다.
설렁설렁 내리던 가을비가 차창을 한바탕 두드리며 내 가슴을 촉촉하게 적신다.
세찬 빗줄기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예측불허의 대자연.
변덕을 부리던 하늘이 잠시 파래지다가 다시 어두워진다.
오늘은 나의 내면을 버리고 추억 속에 빠질까?
양구읍내 당구장 창밖으로 무시로 뿌려대던 빗줄기가 끝나간다.
동면으로 들어서며 비도 그치고, 뭉게구름이 산을 휘감더니 조그만 여백으로 파란
하늘을 남긴다.
누런 들판을 스치는 풍경은 내 가슴을 일렁이게 하고, 소슬바람이 아스라이 현기증을
일으키게 한다.
10;20
사람의 길과 구불구불 이어지는 고갯길은 비슷하다.
안개 속으로 내 추억이 살아나고, 군 차량이 선도를 하며 안내자와 우리 차량을 호위한다.
정확히 40년 전 1983년 12월 영하 28도 되는 어느 날.
동면~대암산~홍천~춘천으로 이어지는 200km 산악행군이 시작되며,
나는 당시 새로 보급된 신형배낭에 모포까지 매단 완전군장을 하고, 옆구리총 자세로
주임상사, 선임병과 함께 첨병을 서며 이 길을 오른다.
군가를 부르며,
♬♪ 동이 트는 새벽꿈에 고향을 본 후 외투 입고 투구 쓰면 맘이 새로워
거뜬히 총을 메고 나서는 아침. 눈 들어 눈을 들어 앞을 보면서
물도 많고 산도 고운 이 강산 위에 서광을 비추고자 행군이라네. ♪♬
21살 육군 이등병 김흥만은 63kg의 날렵한 몸으로 연대 직할대병력의 첨병으로 선두에
섰는데, 40년이 흐른 오늘은 초로(初老)의 나이가 되어 카빈총 대신 등산용 스틱을 잡고
카메라를 둘러맨 모습으로 이 길을 오른다.
대암산의 산신(山神) 앞에서 경건한 하루를 시작 할까.
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
안내자의 지시에 따라 병력 하차지점에서 잠시 대기를 한다.
밑에서는 구름이었는데,
여러 사람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은 순수함과 원시림이 그대로 남은 대암산의 품 안은
해발 1,000m 가 넘으며 짙은 안개가 앞을 가린다.
은밀하고 신비로움을 간직한 대암산은 지금까지는 험상궂은 바위도 없이 짙은 수풀과
가을꽃을 보여주고, 거침없이 내려 쏟는 계곡물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안개 속에 꽁꽁 감춰놓은 또 다른 비경은 무엇일까,
설마 '참취꽃'만 보여줄까?
연분홍색 '고려엉겅퀴'의 꽃잎에 서린 물방울은 떨어지는데, 푸른 잎사귀에 고인 물방울은
흐트러짐이 없다.
[ 물방울
인생의 짧은 날같이
짧은 가을을 맛본 절정의 꽃에
물방울이 맺혀있다.
꽃잎에 맺혀있던 물방울이 흔들거리더니
한 알 두 알 다이아몬드처럼
영롱한 물방울이 떨어진다.
겨우 나온 햇빛에
반사된 물방울이 떨어지는 걸 보니
내 마음 속에 맺혀있던 물방울도 떨어진다.
시작을 했기에
40년이 흘러 여기까지 달려온 길.
발끝에 채이는 돌은 예전의 돌인데
나만 황혼으로 물들었구나.
숨 죽이던 바람이 벼랑 끝에 매달리는 걸 보니
바람이 잠시 숨쉬기를 멈췄는가 보다. 석천 ]
목까지 올라온 숨을 멈추며,
나는 40년의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훌쩍 뛰어 넘어 이곳을 밟고 있다.
더 이상 터질 곳 없는 천상의 가을꽃인 '고려엉겅퀴'
너무나도 짧은 완벽한 순간을 기다려왔는지 연분홍색의 꽃망울을 터뜨린다.
11;00
안개 자욱한 산마루에서 검문소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당시에는 Rg(Road gate)라고 했는데, 지금도 Rg라 할까?
여기는 벌써 난방이 시작되었겠지.
초병(哨兵)은 추워서 동내의를 입었다고 한다.
이 병사들은 얼마나 어려울까.
아픔을 같이 하려 하니 마음이 짠해진다.
초병 두 명이 신분 확인절차를 거쳐 출입을 허가한다.
아무나 올 수 없는 곳.
국방부, 건교부, 환경부, 산림청 등 네 곳의 사전허가를 받아야만 올 수 있는 곳.
소초장으로 보이는 소위 계급장을 단 장교가 주의사항을 간단히 전달하고,
특별한 산인 '대암산' 입산을 승인한다.
항상 궁금했던 곳.
일상을 박차고 나와 40년 만에 오르는 곳.
오늘은 느릿한 걸음으로 세상의 속도를 내려놓아야겠다.
느리고 오래된 것이 대접을 받지 못하는 세상.
나의 느리던 세월은 40년을 훌쩍 뛰어 넘어, 소슬바람이 뒷덜미를 서늘하게 하는 천상의 언덕에
올라선다.
이곳은 겨울철이면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는데 이미 추위는 시작이 되었다.
동해의 겨울바람을 대암산 능선이 막아주며 '푄(fohn)'현상이 발생하기에 바람과 구름이
지나가다 나뭇가지를 얼게 하며, 전깃줄의 얼음은 팔뚝만큼이나 굵어져 강풍이 불면 출렁이는
장력을 이기지 못한 콘크리트 전신주가 한꺼번에 여러 개가 부러지고, 강풍에 초병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의 악천후이다.
여름에는 안개, 겨울에는 눈과 강풍을 동반한 혹한의 추위라는 악조건을 극복하며 근무를 하는
장병들의 자세가 의연하다.
길이 얼어붙으면 주부식 추진과 작전활동에 매우 제약을 받는다.
따라서 눈이 오면 밤새워 제설작업을 하여 작전도로를 다 치워야 하기에 이곳에 내리는 눈은
병사들의 공포이다.
인간세상에서 가장 가까우면서 외국보다도 먼 곳.
민통선(民統線) 안인 여기에서는 사진촬영도 마음대로 하질 못한다.
현재 해발고도 1,250m.
안개에 파묻혀 사물을 분간하기 힘들다.
바람이 몰아치는 서늘한 가을추위에 서둘러 방풍의를 입는다.
다른 팀의 통행허가 절차가 진행 중이라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산림청
소속 안내자는 말한다.
오늘 다른 팀 입산자 40명과 같이 행동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나.
하늘과 더 가까운 곳.
어떤 요정이 기다릴까, 비로용담이 기다리겠지.
안개 속에 가을의 요정인 '솔체'를 만난다.
안내인이 사진통제구역이니 사진촬영을 하지 말라고 이야길 하지만, '솔체'를 만나니
너무 반가워 꽃을 가린 덤불을 치울 새도 없이 우선 찍고 본다.
'솔체'는 고요한 발자국도 남기지 말고 추억만 가져가라고 한다.
내 시선이 가는 얕은 둔덕에 가을국화의 대표꽃인 '구절초'가 바람에 오들오들 떨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똑같은 곳.
이곳엔 미래의 시간도 현재와 같을까?
통일이 되지 않는 한 당분간은 미래의 시간도 같겠지.
자연의 시간표는 한치의 오차도 없다.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는 게 자연의 이치련만, 산 아래는 가을의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데, 여기는 겨울이 시작이라 추위에 관해선 다른 지역보다 한 계절이 앞선다.
저 안쪽은 얼음도 얼었겠지.
주목나무, 피나무 바둑판의 추억도 있는 곳.
이곳에서 자른 주목나무로 만든 괴목과 바둑판, 피나무 바둑판에 관련된 연대장이 나중에
처벌을 받고 이등병 제대를 하였다는 소식도 만들었던 대암산에 구절초가 무리를 지어 피며
하늘거리기에 '매직 프레임'에 담아본다.
문명과 동떨어진 이곳은 시간이 넘치지만,
높고도 낯선 세상이라 분위기도 썰렁하고 정지된 풍경이다.
내 기억 속에 있던 과거의 풍경과 현재의 풍경이 오버랩 되며 시간이 정지되었다.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21세 청년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해 73년 9월 증평훈련소 입소하는 날.
"아버지 저 군대에 가요" "그래 벌서 갈 때가 되었나?"
충청도 사람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으시던 모습과 달리 아버지는 속 깊은
모습을 보여주셨지.
난 이렇게 안개가 자욱하고 억새가 춤추는 날이면 아버지 당신을 그리워한다.
가끔은 초평 저수지를 지나며, 진천 담배 밭을 지나며, 과수원 길을 지나며,
큰 키로 뒷짐을 지고 우두커니 농작물을 들여다보시던 아버지 당신 모습이 오늘따라
더 그리워진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의 아들인 내가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어느새 두 아들의 애비가 되었다.
다 커서도 속깊은 당신의 마음을 위로하지 못한 죄스러움 속에 아버지 세상 떠날 때의 나이가
되어서야 달그림자에 한숨을 쉬던 아버지,
당신의 그림자는 몹시도 그리운 가을의 그림자였음을 알게 된다.
아버님 전상서에 그리움을, 애틋한 마음을 왜 쓸 수가 없었을까,
한 두 줄이면 쓸 수 있었는데 왜 표현을 못했을까,
나이가 어려서일까?
빽 없는 추가인생이 되어 최전방인 이곳까지 와서 군 생활을 한다고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던
내가 초로(初老)의 나이가 되어 군복이 아닌 등산복으로 그때 이 자리에 서니 세월의 아쉬움에
가슴이 저민다.
시간이 흐르면 환희의 시간도 좌절의 시간도 흘러가버린 과거가 된다.
제대를 하고 이곳을 홀연히 떠난 후 설레는 마음을 가진 건 참 오래되었지.
지금 내 앞에 있는 곳.
내 젊음의 땀방울을 흘리던 곳을 밟고 있는 나는 행복하다.
[ 그리움
모진 바람 속 차가운 추억이지만
못 잊어서 찾아 왔네,
그리움 때문에.
울며 오고, 웃으며 떠난 내가
가버린 세월 속에 행여 반겨줄까 찾아 왔네.
벗이랑 손을 잡고 걸어가는 이 순간
힘만 들었던 이 세상이 아름답게만 보이는 건
비록 안개 속이라도 이 길이
아름다운 길로 보여서일까. 석천 ]
수십 년 추억이 밀려와 쌓이는 시간.
이제 발길을 돌리면 언제 올까?
군 생활의 추억도 오늘로서 이별이고, 내 젊은 청춘도 이별이다.
이 가을에 난 눈물을 흘리며 이 추억에서 벗어나야 하겠지.
세월의 무게만큼 작아진 어깨는 세월의 비바람을 맞았다.
속도가 빠르지 않은 곳.
묵묵히 가다보면 목적지에 도착하겠지.
난 '인생은 미완성'이란 노래를 좋아한다.
이 노래를 콧노래로 부르다 보면 공허하던 내 마음은 어느새 편안해진다.
이 안개 속으로 스며들면 나도 사라지는 걸까?
11;40
태곳적 생물들이 살고 있는 곳.
용늪으로 내려가는 길은 안개와 함께 굳게 잠겼다.
오늘 나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을 모양이다.
'용담'의 보라 꽃이 큼직하게 벌어지면, 둘러싼 '금마타리'와 함께 나에게 꽃다발을
안겨준다.
곰의 쓸개인 웅담(熊膽)보다 뛰어나다는 용의 쓸개인 '용담(龍膽)'이라고?
독초가 아니면서도 매우 쓰고 성질이 차 이 꽃의 뿌리가 곰의 쓸개를 능가하는 용담으로
불린다.
착한 농부가 숲 속에서 토끼가 용담의 뿌리를 파먹는 것을 보고, 자기도 입에 대자마자
그 쓴맛에 놀란다.
꿈에 용이 나타나 "낮에 보았던 토끼가 바로 나인데, 그 뿌리는 나의 쓸개이니 너의
어머니에게 잘 달여 드리도록 해라"라는 계시를 받아 어머니의 병도 고치고,
마을 사람도 고치게 하여 용담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는데 아직 때가 되지
않았는지 꽃봉오리를 열지 않는다.
12;00
나는 안개 속에 유령(幽靈)을 본다.
한 치 앞을 가리기 힘들 정도의 안개 속에 사람들은 허우적대며 유영(流泳)을 한다.
누가 우리 팀인지 분간하기가 힘이 든다.
아!
이 안개는 언제 걷힐 것인가,
계속 숨어 나를 조롱할 것인가,
대암산은 40년 후 변한 나의 모습이 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NX카메라 조리개를 어느 것으로 조작했지?
나도 모르게 이런 작품이 나왔는데 다시는 재현을 못하겠다.
가려졌던 산의 속살이 조금씩 벗겨지고, 둘러보니 짙었던 녹음은 위에서부터 두터운 갈색으로
서서히 변하며 인간세상에서 다친 나의 마음을 치유해준다.
나무의 초록 잎들이 단풍으로 바뀌는 빛깔은 내 마음의 빛깔이지.
아무런 울림이 없던 내 마음에 메아리가 깃든다.
물소리, 바람소리, 풀벌레 울음소리가 세속에서 오염된 마음을 씻어주는 덕분이다.
임도를 벗어나 숲을 뚫고 오솔길로 들어선다.
길은 가파르지 않고 하늘을 향해 서서히 솟구친다.
기억이란 무엇이고 추억이란 무엇일까?
기억이 영원히 남을 수는 없겠지만,
추억은 좋은 추억과 괴롭던 추억도 있고 가슴이 저려오는 추억도 있지.
한편의 영화 같았던 인생길.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에서 머문다.
내가 언제나 또 올 것인가.
번뇌도 욕심도 어느 날 함께 녹아내리면 오겠지.
도시의 소음은 없어졌다.
그리움이 저 산 넘어 숲 속을 가른다.
한가로움은 일상을 내려 놓은 지금부터 시작된다.
대암산 '솔봉'에서 이곳을 바라본 게 꼭 일년 전으로만 기억을 했는데,
기록을 찾아보니 2009.11.20일이다.
4년이란 세월이 어디로 사라진 걸까?
'투구꽃'의 뒤 꽃잎이 고깔처럼 덮은 모습이 영락없이 투구를 쓴 모습이다.
2012. 9. 19일 '두타산'에서 지천으로 핀 투구꽃을 찍은 후 이년 만인가?
까마귀 주둥아리 같이 생겼다 해서 초오(初烏)라고도 하는데, 독이 매우 강해 사약(死藥)
재료로 쓰기도 하고, 이 꽃을 소재로 얼마 전에 '각시투구꽃의 비밀'이란 영화가 상영되기도
했다.
숨 가쁘게 올라온 길.
붙잡고 있던 시간을 내려놓고 싶다.
하루만큼의 추억이 생각나고 또 쌓이는 곳에서의 하루.
이 아름다운 꽃들을 내버려두고 지나쳐야 하는가.
정상은 한층 가까워지는데 안개는 계속 심술을 부린다.
순식간에 계절을 넘나드는 추위에 친구들이 떤다.
기억 속 곱던 추억은 없지만, 청춘의 추억이 어린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곳.
느리게도 변하지 않은 곳.
어디를 따라 걸어야 할까?
이 산은 자유가 없는 산이다.
폭유(爆有)의 산이라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길이 없다.
사방이 지뢰지대이다.
예전에는 지뢰(地雷)밭이라고 하기에는 끔직해 '인삼밭'이라는 은어(隱語)로 통하기도 했는데,
사람과 지뢰에 의해 통제받는 길,
그냥 산 길가에 있는 지뢰경계 줄을 따라 몸을 맡긴다.
친구가 수리취를 벌레를 잡아먹는 식충식물(食蟲植物)인 '끈끈이주걱'이라 하는데,
나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도꼬마리를 닮은 '수리취'인데 왜 고집을 피울까.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은 짧은 길인지 사뭇 급해진다.
십여 분을 낑낑대며 오르니 갑자기 눈앞에 평지가 나타난다.
잠시 숨을 고르며 능선을 따른다.
정상이 가까워지며 오른쪽으로 비탈길을 따라 방향을 튼다.
순식간에 고도계가 1,280m를 가리킨다.
솜씨 좋은 장인(匠人)이 나무에 귀걸이를 만들어 붙인 모양의 '팥배나무' 열매들이
새빨갛게 주렁주렁 열렸다.
어디선가 새 울음소리인지 "억억"하는 소리가 들린다.
삵의 소리일까, 황조롱이의 울음소리일까.
자기네들 먹이를 우리가 손댈까 경계를 하며 허공을 맴돈다.
나이 든 바위와 오래된 참나무가 지키는 이곳을 향한 나의 그리움은 이곳이 제3의
고향이어서 일까?
남들은 제대 후 근무지역을 향해 오줌도 안 눈다며 진저리를 치는데 내가 좀 엉뚱한 모양이다.
끝없는 비탈길이 버거운가.
안개가 조용히 따라오다 몽환의 길을 만들고 싶은지 계속 숲을 지워 나간다.
안개가 얄미운 풍경을 숨겨버리고, 가까운 풍경은 다가오게 하니 이게 바로 꿈속의 길이다.
숨어 함께 나누지 못하는 풍경은 언젠가 나를 또 오라 하겠지.
12;45
깊은 협곡을 안개를 타고 빨려 내려가다 다시 급한 오름길로 오른다.
세상사 쏜살같이 흐르거나 말거나 여기에서는 관심이 없다.
그저 자연이 내준 길을 자연과 한 몸이 되어 걷는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을 거고, 어차피 정상에선 오래 머물 수 없으니,
산은 인생의 축소판인 모양이다.
손톱보다 작은 '자주조회풀'이 내리막 비탈길에서 안개에 젖어 조용히 피었기에,
몸을 숙이지 못하고 엉거주춤하며 겨우 카메라를 들이댄다.
습한 계곡을 벗어나자 성질 급한 비탈길이 기다린다.
앞에서 모습을 잠시 보여주던 정상이 안개 속으로 모습을 또 숨겼다.
이제부터는 거친 바위길이다.
한 발자국씩 오를 수 없어 두 손 두 발을 이용해 기어서 올라간다.
무릎이 아프다.
바지는 앞뒤 모두 흙투성이가 된다.
장엄한 바위를 잠시 바라보다 힘들여 올라간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안전로프는 제쳐놓고 그냥 운에 맡긴 채 바위에 붙어 오른다.
한쪽은 수백수천 길 낭떠러지라 구름 속에서 그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이 바위벽 위를 기어오르면 어떤 비경이 나를 기다릴까,
미처 상상하지 못한 아름다움이 있을까?
신(神)이 돌로 쌓은 바위성을 오르며 끊임없이 솟구치는 욕심뿐이니 몸의 고단함보다는
설렘이 앞선다.
선등하는 친구의 멋진 역동적인 장면이 내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압도한다.
옆의 천길만길 낭떠러지를 보니 머리가 어지럽다가 현기증까지 난다.
고산증이 왔다고 잠시 엄살을 부려본다.
우리나라 산은 대부분 해발 2,000m 이하라 살아있는 산이라 한다.
높이 3,000m 가 넘으면 죽음의 산이라 하지.
해발 1,300m를 넘자 큰 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큰 나무들은 바람과 추위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이런 환경에서는 주목나무나
피나무 외에는 자연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
슬픔도 고통도 세월이 지나면 흘러가 버리는 건데 아픔의 옛 추억이 머리를 두드린다.
왜 이럴까.
백수 몇 년에 벌써 아웃사이더가 된 모양이다.
대암산 정상바위를 스치는 바람소리에서 피아노의 감미로운 소리가 들린다.
억겁의 세월, 모진 비바람도 헝클지 못한 풍경에서 들리는 장엄한 자연의 음악은
세레나데이자 심포니이다.
안갯속에 묻힌 추억이 나를 부를 때 슬픈 노래를 들으면 이 나이에도 슬픈 감정이 살아난다.
비가 오는 날, 눈이 오는 날도 그렇더니
안개와 바람이 자연과 하모니를 이루는 오늘 같은 날은 더 그렇다.
젊은이는 미래를 먹고 살지만, 추억을 먹고 사는 우리의 나이에는 지난날을 더 생각하게 된다.
내 마음이 나그네 되어 잃어 버린 시간들이 슬퍼서일까?
어느 때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을까, 주저앉아 울고 싶은 적도 있었지.
그럴 때면 내 마음을 따라 흐르는 눈물을 감추고 싶어 고개를 푹 숙였지.
인간사 아무 거도 아닌데,
때로는 그늘이 드리우더라도 아픔의 계절이 지나면 이슬처럼 영롱하게 반짝이겠지.
안개 속에 간절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저민다.
저 바위틈에 내 청춘이 숨었을까, 내 군화발자국은 어디로 사라졌지?
내 마음에 간절한 그리움이 이 '산부추'가 되었다.
잊자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또 그리워질 텐데 차가운 현실에서 벗어나자.
이 꽃도 바람이 계속 몰아치면 고개를 숙이겠지.
점점 하늘이 가까워지고 세월의 모진 풍상을 겪은 풍경이 눈앞에 나타난다.
오랜 세월 제 몸을 깎아 만든 형상의 바위들.
바람을 보고 느끼고 들을 수 있는 곳.
수억 년의 세월 동안 비바람을 겪은 바위 밑에서 나는 물소리를 듣는다.
누가 이런 멋진 만물상을 만들었을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게 여기에 있다.
정상의 대암(大岩)은 하늘과 땅을 향해 몸을 열고 억겁의 세월을 버티어 냈으니
또 한세월을 내 세월과 함께 할 것이다.
[ 침묵
위엄있게 생긴 바위가
나를 내려다본다
산에 붙어 있는 내가 얼마나
작아 보일까.
여기를 넘어서야
자기가 있는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재촉을 한다.
내 작은 산걸음이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아드레날린을 발산해주는데도
나는 엉거주춤한다.
나의 도전은 장엄한 걸까?
힘든 만큼
내 침묵의 시간도 길어진다. 석천 ]
13;20
신(神)이 세워놓은 돌멩이가 낯선 곳으로 나타난다.
오지 중의 오지인 대암산의 높은 능선과 깊은 골짜기는 문명과 관계없다.
휴대폰, 인터넷도 터지지 않는다.
간혹 문자 메시지만 될 뿐 통화도 간간히 터지다가 끊긴다.
거대한 돌덩어리가 세상을 상자 안에 가두어서인가 보다.
오랜 세월 비밀스럽게 감춰놓은 대암산은 유명한 산도 아니라서 무장공비의 발길만
닿았을까?
안개 속 협곡으로 빨려들어 얼마나 올라왔을까.
높은 데서부터 산행을 시작해 고도를 많이 올리지는 않았지만 난이도가 만만치 않다.
거친 바위를 지나 부드러운 바위가 교대로 나오고, 무엇 하나 보탤 거도 뺄 거도 없이
빼곡 찬 풍경이 가슴을 뛰게 만든다.
세월의 더께가 묻은 바위와 세월의 옷을 입은 나무들이 하늘 밑을 지키고 있다.
순한 덩치에 걸맞지 않게 거친 바위가 정상을 이룬다.
바위는 하늘의 권위에 도전할 모양인지 자리를 쉽게 내주지 않고,
안간 힘을 써 매달리며 오르려는 우리를 단번에 제압하려는 듯 거친 힘이 배어있다.
구름이 정상 바위를 휘감아 돌고, 안간 힘을 쓰며 오른 나는 구름과 바위와 하나로
혼연일체가 된다.
근사한 소나무가 가부좌를 튼 채 바위 옆에 앉아 나를 바라본다.
잠시 숨을 고른다.
현역일 땐 뛰어 올랐는데 왜 이리 힘이 들지.
세월이 힘들게 하는지 네 발로 기어 산 정상(頂上)에 올라 안개 속 인간세상을 바라보지만,
하늘이 안개 에 갇혀 열리길 거부한다.
바위가 드러난 정상(1,304m).
정상석도 없는데 이 바위 덕에 대암(大岩)이란 이름을 얻었을까.
정상 바위에 올라서니 뾰족한 정상부는 특급의 조망처지만 사방이 숨었다.
세상이 다 보이고 막힘없이 펼쳐지는 조망에 가슴이 뻥 뚫릴 줄 알았는데,
가칠봉, 대우산, 도솔산, 백석산,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다 숨었고, 끝내 하늘은
열리지 않는다.
하늘로 솟구친 바위 자체가 웅장한 조각품인 큰 바위(大岩).
몸에 탄력이 없어서인지 현역 때는 쉽게 뛰어 오르던 곳을 네 발로 기어 흙투성이가 되어
40년 만에 오른 정상.
누군가가 코팅지로 만든 정상표지판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으려 바위 밑에서 안간 힘을
쓰는 것도 풍경이다.
정상의 바위를 눈에 담고 가슴에 담으며 행복을 담는다.
이 꽃은 몰아치는 세찬바람을 맞으며 처절한 투쟁을 하는 중이다.
이름이 뭘까.
흙도 별로 없는 정상의 바위틈에서 자라는 꽃이 경이롭다.
산이 아름다운 이유는 뭘까?
이렇게 스스로 피어나는 꽃이 있기 때문이겠지.
바람에 흔들리며 조용히 피어있는 나도송이 꽃을 바라보다 무거운 고요를 느끼니
차라리 적요(寂寥)다.
문득 79년 어느 공수대대장의 작전수기를 본 기억이 난다.
79. 10. 6일 두밀령 까치봉과 펀치볼 지역의 철책선을 뚫고 무장공비 세네 명이 침투하여
이곳 대암산으로 스며들었다.
저 앞이 죽음의 계곡이다.
21, 2사단 병력이 투입되었고, 아군끼리 오인 사격으로 희생자도 생기고,
심지어는 매복 중 이탈하여 소변을 보다 아군에게 희생당하기도 하였던 곳.
오늘 우리가 휴식할 광치령쪽 7~8부 능선에서 한 명을 사살하고, 나머지 두세 명은 놓쳐버려
월북한 것으로 추정된다는데, 10.26일 작전이 종료되었으니 장장 20여 일이나 작전이 이어졌다.
그후 11년이 지나 1990년 3월 제4 땅굴이 발견되었고, 당시 미군들은 전 전선에 걸쳐 17개의
땅굴이 있을 것으로 분석하였다.
무장공비들은 땅굴의 출구지역을 사전정찰하고, 목표물의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침투였을
가능성이 컸다고 한다.
나는 75년인가 방산 백석산쪽으로 무장공비 네 명이 침투하였을 때, 투입된 작전병력의
주부식을 추진한 적이 있지.
네 명 중 두 명은 사살하였고, 나머지 두 명은 월북하였는지 잡지 못하였지만,
당시 획득한 무장공비의 배낭에서 전방부대의 간판을 찍은 사진이 발견되어 전 부대가 발칵
뒤집혀지며 부대명이 바뀌게 되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고도는 지금도 1,300m로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산마루는 높이와 관계없이 이 지역의 지붕이다.
산은 축축한 물기를 먹어 힘을 얻었는지 잠시 잠잠했던 바람이 숲 속을 마구 뒤흔든다.
뒤돌아보니 정상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다.
안개가 걷히면 어디에서 어디까지 보일까.
저곳에서 내가 보일까?
몇 십 년 만에 만났으니 변한 내 모습을 정상이 알까.
오랜만에 만난 풍경들은 바로 대암의 진경(眞景)이다.
나는 구름을 헤쳐 수묵화 속 풍경의 한 점이 되었다가 발길을 돌린다.
다시 볼 수 없는 풍경이라 생각했던 곳.
안개 속에 내 추억이 다시 사라지려 한다.
세월이 지나고 지워버린 추억.
내게 남겨진 시간은 얼마나 될까?
지금 발길 돌리면 언제 또 오게 될까.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정상을 몇 번이고 뒤돌아본다.
[ 추억
다시 올 줄 알았을까
그리움은 쉴 수가 없어
며칠 몇 날을 꼽았지
가슴속에 남아있던 군화 발자국이
세월 지났으니 내일이면 사라질까.
계절이 바뀌면 사라질까.
나만의 세상에서 허우적대다가
단 한 번의 청춘 추억을 찾아와서
초로의 추억을 만들지만,
왜 갑자기 눈물이 날까.
모자란 인생을 살아서일까?
결코 모자르진 않았는데. 석천 ]
13;50
가을이라 가을바람 불어와 단풍잎을 물들게 하는구나.
서서히 물드는 단풍은 겸손한 자세로 나를 일깨운다.
이 가을에 풀벌레소리, 사각거리는 억새꽃은 왠지 나를 외롭게 한다.
왠지 쓸쓸하게 터져 나오는 그리움이 가슴속에서 고개를 들기에 한 뼘밖에 보이지 않는
하늘을 바라본다.
며칠 전에 꿈자리가 좋아 복권을 산다.
부질없는 욕심을 버려야 하는데, 욕심을 이기려고 하는 건 더 큰 욕심이다.
돈을 벌려면 땀을 흘리는 게 아니라 남의 땀을 훔쳐야 하는 법인데 그러질 못했으니,
산행을 하며 다시 나오는 오름길에 몸은 자연히 숙여지고, 땅만 보고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갑자기 로또복권이 생각나니 철이 들려면 아직 멀었나 보다.
[ 유혹
가을 산봉우리 붉어지는 속에
물소리 졸졸거리고
숲 끝에서 보라색 꽃이 나를 유혹하는데
지뢰 때문에 들어갈 수가 없구나.
나는 가을 숲에서 무엇을 거두고 싶었던 걸까
봄엔 이 꽃 저 꽃 두리번거리며
들뜬 마음을 다스렸지만
지금은 이질풀에 몰입을 하다
나를 잊을까봐 정신을 바짝 차린다. 석천 ]
자신의 때깔로 서서히 물드는 숲 속에 '둥근이질풀' 한 송이가 나를 빤히 바라본다.
생(生)의 가을을 맞는 나의 모습이 궁금했나?
나의 가을은 예전과 다른데, 산길을 걸으며 지뢰지대에 피어 있는 '이질풀'에 자꾸 눈이 간다.
자세히 보니 포천 '국망봉'정상에서 만났던 이질풀은 연보라색이었는데, 이 꽃은 분홍색이
더 강하다.
이질풀은 '금낭화'와 같이 토양의 성질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데, 예전엔 물에서 오는 질병으로
설사가 심해 이질병을 얻으면 살균작용이 강해 설사에 대단히 잘 듣는 특효약인 이질풀로
다스리기도 하고, 설사가 나면 잘 죽는 일본사람들에게 한 때 많이 수출되기도 했다.
바람도 쉬어가는 곳.
바람과 자연을 품은 곳.
바람소리가 흐느끼는 파도소리가 되어 내면을 치유해주는 곳이기에 배고픔도 치유해주겠지.
느리게 걸을수록 더 많이 만나는 자연의 풍경.
풍경은 존재 그 자체로도 우리에게 주는 귀한 보물이다.
투구꽃, 참당귀, 구절초 핀 화원에서 한잔을 할까?
정해진 길 밖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는 지뢰지대인 이곳을 왜 늘 그리워했을까.
속도와 변화가 없으니 시간을 잃은 곳인데, 왜 그렇게 그리워했을까.
가끔은 나를 내려놓고 멍하게 하늘을 볼 수 있던 곳이라서 일까?
잠시 안개가 걷히며 양구 동면이 아스라이 보인다.
[ 구절초
안개 속 그늘에서 세수를 한
구절초의 흰빛깔이 순결한 색임을
뒤흔들며 스치는 바람이 알까.
아님 스쳐 지나는 초병이 알까.
안개가 세숫물 되어 얼굴 곱게 단장하고
지나는 인간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흔들리는 가시덤불 속에서
나를 조용히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석천 ]
휴! 배고프다.
40년 전 그날 건빵은 꺼내기 힘들고, 수통은 꽁꽁 얼어 붙었다.
본대(本隊)는 따라오지 않고 무전기도 잘 터지지 않아 혹한의 악천후를 뚫고 대암산 정상을
향한다.
저기 '용늪'이었지.
모진 바람에 자라지 못한 나무들이 12월 눈보라치는 혹한 속에 빨간 사과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저거 하나만 따먹으면 살 거 같은데',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 탈진을 하며 서서히 잠이 오다가 환상을 본다.
잠시 후 얼굴이 얼얼하며 머릿속에 번개가 친다.
선임병이 정신 차리라며 얼굴을 갈긴 거다.
혹한에 사고가 날까 작전은 취소되고, 본대는 샛길로 이미 철수를 했다고 무전이 온다.
귀대 후 군기가 빠졌다며 호된 얼차려와 구타를 당한다.
또한 온몸이 동상초기가 되어 근질거리는 바람에 잠을 잘 수가 없다.
이후에도 선임병들의 괴롭힘이 계속되는 걸 눈치 챈 선임하사가 나를 자기 직속계원으로
데려가 보호를 해준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고층습원지대라는데, 남쪽은 큰 용늪인 대용포(大龍浦),
북쪽은 작은 용늪인 소용포(小龍浦)로 구분된다.
6.25 전쟁이후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수천 년의 생태계 변화를 가지고 있다.
조름나물, 비로용담, 칼잎용담, 끈끈이 주걱, 물이끼, 통발, 금강초롱, 제비동자꽃, 기생꽃 등
190종의 희귀식물과 벼메뚜기, 참밀드리메뚜기, 애기소금쟁이, 홍도리침노린재 등 희귀곤충들이
서식하고 있다고 안내판에서 설명한다.
내일 지날 대우산과 함께 천연기념물 제264호 '대암산-대우산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며, 국내에서는 1997년 처음으로 람사(Ramsar)국제협약 제1호로 지정되었다.
용늪은 길이가 동서 275m, 남북 210m로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몇 개 안되는
매우 큰 습지이다.
식물이 죽으면 박테리아에 의해 분해되어 땅속에 묻히지만, 기온이 낮고 습기가 많은 곳에서는
썩지 않고 쌓이며 짙은 갈색의 '이탄층'을 만든다.
약 4천 2백 년 전에 만들어진 용늪의 이탄층은 깊은 곳은 180cm에 달하며, 평균 1m에 달하는
이탄층 속에 남아 있는 꽃가루 등을 분석한 결과 맨 아래에서는 포자, 그 위에는 신갈나무,
다시 그 위에는 소나무 꽃가루가 나왔다 한다.
오늘 벌써 9월 하순이니 작은 벌레를 먹고 사는 식충식물(食蟲植物)인 '끈끈이주걱'을 볼 수
있을까,
함백산에서 만났던 개불알꽃, 금원~기백산에서 만났던 '비로용담'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을까,
중함백산 정상에서 만났던 '기생꽃'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안개 속에 조용히 휴식을 취하는 용늪이 나의 발길을 끝내 거부하기에 줌으로 당겨보니
사람 손을 탔는지, 아님 점점 아열대 기후로 바뀌는 자연환경 탓인지 접근할 수 없는 용늪가에는
철쭉, 신갈나무가 보이기 시작한다.
아래쪽 오늘 기온은 약 22도라는데 이곳은 서늘한 바람이 몸을 휘감으며 여전히 춥다.
아마도 산꼭대기 분지라서 10도 이하로 떨어진 모양이다.
일 년 중 170일 이상이 안개에 휩싸이고,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5개월 이상 영하에 머무는
환경은 독특한 자연을 만들었다.
오늘도 초병은 동내의를 입고 근무를 하며, 내가 근무할 당시에는 5월 말까지 계곡에 얼음이
남아 있을 정도로 추웠고, 영하 20도 아래는 예사였다.
비가 오지 않아도 안개가 물을 공급해서인지 1.06㎢(약 32만평) 넓이의 습지에는 항상 물기가
있다.
내가 제대할 무렵인 1976년 용늪에 전투스케이트장을 만든다고 야단법석을 떨더니 이듬해인
1977년에 스케이트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철없이 환경에 무지한 당시의 오점으로 용늪은 곳곳에 원형을 잃고 훼손되었다고 하며,
여러 개의 물길이 나 바닥이 침식되며 물이 빠져 나가면서 늪의 특징을 잃고 육화(陸化)되고
있다고 걱정을 한다.
봄에는 처녀치마, 동의나물, 나도냉이가 곳곳에 핀다는데 내년 봄에 또 오를 수 있을까?
새들 소리가 많이 나길래 아래를 내려다 보니 '딱총나무'에 붙어 열심히 열매를 쪼고 있다.
계속 피어나는 안개는 산을 집어 삼킬 듯 달려온다.
안개가 짙게 깔려도 먼저 지나간 이들이 만든 길이 있어 잃어버리지 않는다.
뜬 인생 황혼 되어 살도록 올라오지 못했으니 세상일에 바빴던 걸까?
세상일이 바쁘더라도 찾았어야지 하며 대암이 질책을 한다.
활엽수들이 하나 둘 낙엽을 내려놓고 나신(裸身)으로 돌아간다.
온갖 돌 뿌리에 채이고 땀으로 범벅이 된 여정을 끝내며 구름바다로 내 마음을 떠나보내고,
쑥부쟁이, 하얀 구절초와 참당귀의 붉은 꽃을 바라보며 집합장소로 걸음을 옮긴다.
15;20
여정을 갈무리할 시간이다.
능선이 한줄기의 선을 긋고 돌아서면 또 그리워지겠지.
태양은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나 또한 끌리는 내 그림자를 바라본다.
오늘도 어김없이 노을이 찾아와 타들어 가는 석양의 꼬리를 잡는다.
해가 저물며 찾아온 노을을 미소와 함께 가슴으로 품는다.
19;30
산등성을 타고 내리던 태양빛은 완전히 사라지고, 어스름이 서서히 세상을 지배한다.
산도 저물고 날도 저무니 하늘의 별을 셀까?
어둠이 차오르고,
내 카메라로는 감히 담을 수 없는 칠흑의 밤하늘에서 별이 쏟아진다.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 낯선 그리움 한조각.
그것이 무엇일까.
누구나 살면서 가끔은 가슴이 베일 정도로 아픈 통증을 느낀다.
그게 설혹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는 건지, 지난 세월이 아쉬워서인지,
가까운 사람의 배신인지 세월이 흐른 뒤 먼 훗날 알게 되겠지.
우수수 쏟아질 듯 하늘 가득히 떠 있던 별들을 누가 걷어 들였는지
갑자기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 하현달이 뜨면 애잔한 달빛아래 갈대는 흐느끼고 억새는 사각대겠지.
나 또한 한잔 술을 마시며 하루를 갈무리 하련다.
2013. 9. 25. 대암산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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