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24 선자령<1,157m>에서 선인이 되다

김흥만 2017. 3. 21. 20:03


2009.  1.  7. 03;40

강추위 속에 나의 애마는 선자령을 향해 달린다. 

 

06;30 현재온도 영하 14도.

희미한 휴게소 불빛을 의지해 스패츠와 마스크를 착용하는데 손이 엄청 시리다.

다들 미쳤지, 따뜻한 집 놔두고 왜 개고생을 할까.


선자란 신선 또는 용모가 아주 아름다운 여인을 뜻하는데 그 유래를 모르겠다.

산행 중 느낀 것은 부드러운 능선과 정상에서 온통 근육질의 고산준봉이 조망되는데

仙子라는 이름이 붙었으니 특이하다.

 

순환등산로 5.8km를 선택하고, 헤드랜턴의 희미한 불빛을 의지하며 왼쪽으로 접어드니 

많은 눈에 등산로가 매우 미끄럽다.

 

차에 볼 일이 있어 문성, 봉길이 도로 하산하고, 나는 천천히 올라간다.

이 조용한 숲속엔 나 혼자고 눈이 많이 쌓여 양떼목장의 울타리는 눈에 묻혔다.

 

앞서 올라간 친구를 아무리 불러 봐도 메아리만 돌아온다.

20여 분 혼자 터덜터덜 오르막길을 올라가니 전나무 숲이다. 

 

산 위로 서서히 여명이 밝아온다.

 

전나무는 소나무 과로 늘 푸른 큰키나무이다.

높이는 20~40m정도 자라고, 지름 1.5m짜리도 있으며 주로 고산지대에서 잘 자란다.

펄프원료, 건축자재로도 많이 쓰이며, 솔방울이 위로 자라는 특성이 있어 구상나무와

혼동하기 쉽다.

잎 끝이 하나면 우리 토종이고 두 개로 갈라지면 일본계라고 한다.

 

 

07;40

벌써 1.6km를 왔다.

부드러운 능선 길에 눈이 쌓여있어도 별로 힘들지 않다.

 

등산용 스틱을 두 개씩 쓴다.

 

항상 스틱 1개만 사용하던 친구도 2개를 사용하여 노르딕 워킹을 한다..

 

'노르딕 워킹'이란 1930년 대 핀란드 크로스컨트리 선수들이 여름 시즌에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훈련하던 방식으로 1990년대부터 대중화 되었다.

두 개의 스틱으로 자기 체력에 맞춰 운동 강도의 조절이 가능하며, 특히 심장과 무릎, 신체의

각 관절부분이 30~50%정도 줄어 네 발로 걷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아울러 각 신체부위의 움직임에 집중하면서 빠르지 않는 속도로 걷기 때문에 무료하지 않아

사색을 즐기며 스트레스 해소에 큰 효과가  있다. 

등산 시엔 보통으로, 하산 시엔 조금 길게 해서 사용하면 더 좋다.

우리 나이엔 맨손등산 보다는 두 개 스틱을 이용하는 것이 체력부담도 적어 적극 권장하고 싶다.

 

계속 올라가니  자작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원래 자작나무는 북방계 나무라 백두산 등 북쪽에 많은데 여기 선자령에도 엄청 군락을 이룬다.

껍질이 하얀 자작나무 과로서 수액은 고로쇠와 같이 아토피, 혈액정화, 이뇨작용에 좋다고 하며,

껍질을 달여서 마시면 간염, 기관지, 고혈압, 방광염  설사 등에 좋다고 하며, 깊은 산 양지 바른

곳에서 잘 자란다.

 

꽃은 4월에 피며 암꽃은 위로, 수꽃은 아래로 늘어지는 특징이 있는데 은행나무와 반대다. 

은행나무의 수컷은 가지가 위로 솟고, 암컷은 아래로 늘어지며 돌연변이 암수 한 몸은 제멋대로다.

자작나무는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그향이 좋아 유럽에선 일품으로 친다.

또한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재료로 쓰일 정도로 아주 좋은 나무이기도 하다.

 

이곳은 계속 영하 15도를 오르내리는데 이상하게도 계곡물은 얼지 않았다.

고도계를 보니 830m이고 온천수도 아닌데 참으로 신기하다.

난 궁금하면 반드시 궁금증을 풀어야 하는데 답을 어디에서 구할까.

 

계속 올라가니 상수리나무 위에 겨우살이가 여러 개 보인다. 

 


겨우살이란 상수리나무나 고목나무에 여러 개 붙어 살면서 한겨울에만 푸르게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한방에선 줄기와 뿌리를 '상기생'이라고 하며, 면역력, 허약, 당뇨, 고혈압,

동맥경화에 좋다고 한다.

또한 열매는 고아서 종기에 고약처럼 붙이기도 한다는데 난 싸리나무 진으로 만든 건 발라 봤지.

 

09;00

갈림길이 나온다.

 

 800m만 더 가면 되는데 이제부턴 좀 가파르다.

 

여기가 우리나라일까?

 

풍력발전기가 이국적이다.

 

정상이 300m 남았고 10여 분 올라가니 나무가 잘 자라지 않는 전형적인 고산지대의 모습이다.

 

10;00

선자령 정상(1157m)에서 선인(仙人)이 되었다.

사람 '人'이 '山'에 들어왔으니 당연히 선인이며, 또한 선자령이라는 선계(仙界)에 들어왔으니 

확실한 선인 아니겠는가?


선인이 되기란 쉽지 않다. 

산꾼이 되어야 선인이 되니 그 과정이 고생스럽다.

허지만 그래도 좋으니 어쩌랴!


특별히 가문 겨울이 아니면, 선자령 능선은 파도 머리처럼 끝이 휘감긴 긴 설릉이 형성된다.

이름은 고개를 뜻하는 령(嶺)이지만 엄연한 산봉우리이다.

북서풍이 쉴새 없이 불면서 만들어진 이 곳 나무들은 한결 같이 동쪽으로 비스듬히 몸이

기울었다.

 

능선 왼쪽은 높낮이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평탄한 구릉지의 연속인데 오른쪽은 급경사이다.

이는 꽤 오래 전 지표면이 침식작용을 받아 평탄해진 뒤 급속히 융기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 선자령과 대관령은 개마고원과 함께 한국의 대표 '고위평탄면'지형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눈과 바람이 엄청 많은 게 선자령의 진면목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하늘이 너무 파랗다 못해 시리다.

 

멀리 '계방산'과 '오대산'이 조망된다.

 

 

북쪽으로 설악산 대청봉, 귀때기청봉, 남쪽으로 발왕산과 스키장이 선명하게 조망되어

산악지도를 스케일 했더니

계방산과 오대산은 23km, 대청봉은 직선거리 60km, 두타산은 63km가 나온다.

이렇게 엄청난 가시거리는 서울근교에선 감히 볼 수 없는 맑은 하늘이라 가능하다. 

 

멀리 두타산도 조망되며,

 

동해바다 강릉 경포호가 구름 아래로 조망된다.

구름바다 위로 산 같은 형상이 보여 '히말라야 산군'을 보는 것 같다고 하니

다른 친구는 비행기에서 구름바다를 보는 거 같다고 한다.


똑같은 사물을 가지고도 이렇게  표현이 다르니 정말 멋지지 않은가? 

  

 

11;10

'새봉 전망대'에서 잠시 쉰다.

담배 피우는 놈이 한 명 있어서 심하게 나무라자 인상을 구기며 다른 데로 이동한다.

종승, 봉길이  내가 싸울까봐 불안했던 모양이다.


너무 심하게 말했다고 하는데 그런 싸가지 없는 놈들은 산에 올 자격이 없다.

난 산에 다니는 한 원칙대로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산불방지엔 한 몫을 해야지.

 

저게 뭘까?

UFO인가?

 

외계인이 나타나는 곳인 모양이다.

 

이쪽 등산로는 사람이 매우 많다

아까 우리가 택했던 등산로가 사람도 없고 훨씬 좋다. 

여자등산객 중 한 명에게 오늘 선자령에서 제일 예쁜 분이라고 했더니 너무나 좋아한다.

애들이나 늙은이나 예쁘다고 하면 다 좋아하니 그게 사람인 모양이다.

 

산불감시 초소를 지나 포장도로를 내려오다 징소리가 나는 '국사성황당'으로 내려간다.

이곳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인 '강릉단오제'의 주신인 '서낭신'을 모시는 곳으로서  인왕산

국사당처럼 산중 굿이 공인된 곳 중 하나이다.


음력 4월초 우선 이곳 성황사에서 '산신제'와 '국사서낭제'를 올리고 서낭신을 시내

국사여성황사에 봉안한다.

그 후 음력 5월3일 합사했던 두 신을 위한 '영신제'를 올린 뒤 '강릉단오제'로 모신 뒤 단오제를

시작한다고 한다.

 

터덜터덜 내려오는 길 양 옆에 구상나무를 많이 식재했다.

'구상나무'란 우리나라에서 만 자라는 특별수종으로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나무이다.

10~20m 정도 자라며 외국에선 크리스마스트리로 유명하다.

가문비나무나 분비나무와 비슷하며, 전나무와도 구분하기  힘들다.

솔방울이 가지 위로 솟아서 달리는 것이 특징이다.  

 

12;00

주차장에 들어서니 12시라 네 시간 정도 산행을 했구나.

서울 암사동 할매 집에서 홍어 요리로 막걸리 한잔을 더하고 헤어진다.

 

                             2009.  1.   7.     선자령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