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321 충주 계명산(755m)의 화이트 홀이 나를 빨아들이다.

김흥만 2017. 3. 27. 12:28


2017.  2.  22.

내가 날을 잘못 선택하는 건지,

이상하게도 작년 11월은 지리산에서 강풍(强風)으로 고전을 했고,


12월엔 태백산에서 비를 흠뻑 맞더니, 1월 무장산에 이어 토함산 산행이

잡힌 날도 새벽부터 눈이 많이 내려 급히 귀경을 했는데,

오늘도 오전 눈 소식, 오후엔 비 소식이라 고된 산행이 예상된다.



09;20

이 땅에 계명산이 몇 곳이나 될까.

우선 안동의 계명산(530m)이 생각나는데 이번 산행이 끝나면 확인을 해야겠다.


나중에 자료를 확인하니 파주에도 비슷한 전설을 가진 계명산(560m)이 있고,

이밖에도 전북 고창, 부산 금정구, 경남 합천, 강원 춘천에도 있다.


차에서 내리니 등판이 썰렁하다.

세상이 차가울수록 산은 가까이 오고, 바람이 불수록 봄은 지척까지 오는 법인데

아직도 영하 6도니 봄이 먼 모양이다.


옛날 경상도와 강원도 지방의 사형수들이 이 고개를 넘어와 숲거리에서 처형되었다는

'마즈막재'.

사형수가 하늘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던 '마즈막재'의 고개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오전엔 눈이 내리고 오후엔 비가 내린다는 기상예보지만 한 달을 벼르고 온 산이라

그냥 오르기로 한다.


충주호 하늘에서 거대한 먹구름이 밀려든다.

닭이 우는 계명산에 얼마나 많은 눈을 뿌려댈까.


서둘러 아이젠과 스틱을 챙기고 보온에 필요한 옷과 행동 간식을 배낭에 수납 한다.


3분 후 대몽항쟁전승탑 앞에 선다.

검(劍)으로 하늘을 찌르는 장수는 '김윤후'이구나.


충주에는 총 9건의 항전기록이 있다.

몽고군의 침입은 1차 침입부터 6차 침입까지 지속되었다는데,

그중 1253년 몽고군은 다섯 번째로 고려를 침략하여 충주산성을 공격한다.


산성(山城)에 피해 있던 이 지역의 민관군(民官軍)이 석달째 장기전으로 공방전(攻防戰)이

계속되자 식량조차 바닥이 난다.


이에 방호별감 김윤후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힘을 다해 적을 막는다면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벼슬을 내리겠소."라고 외친다.

사람들은 사력(死力)을 다해 몽고군을 물리치고, 몽고군은 포위를 뚫고 고려 땅에서

철수한다.


이후 그들에겐 약속대로 신분에 관계없이 관직이 내려지고,

충주 땅은 국원경(國原京)으로 승격되는데, 이는 목숨을 던져 나라를 구한 충주사람들에

대한 감사 표시다.


지금 우리나라는 여인들의 국정농단에 의해 대통령 탄핵이라는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했다.

여당의 무능과 야당의 오만은 국민을 외면한지 오래고, 시민단체의 촛불시위로 나라는

두동강이 나고 있다.


김윤후 장군이 전승탑의 예리한 검(劍)으로 이 나라의 부정부패와 사리사욕, 국정농단과

사회혼란을 일삼는 사람들을 일도양단(一刀兩斷) 주기를 빌며 산행을 시작한다.


한줄기 드센 바람이 목덜미를 후려친다.

아침과 낮 사이에 겨울과 봄 두 계절이 오가는 걸 기대를 하지만 햇살은 꽁꽁 숨었고

매서운 바람결은 아직 깊은 겨울이다.

영하 6도의 기온에 눈과 비소식이 있어서인지 오늘은 내 몸을 파고드는 햇살이 그립다.


계명산 들머리에서 문득 어머니 생각에 목이 멘다.

아버지가 공직에 계셔서 비교적 잘 사는 형편이었지만 이런 날씨면 어머니는 봉화산에

땔감을 구하러 다녀오셨지.


올망졸망한 새끼들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기르고, 생활비를 절약하려고 가냘픈 여인네의 

몸으로 삭정이를 묶어 머리에 이고 오시는 거다. 

숲으로 스며들며 진천 '봉화산'과 비슷한 풍경에 옛날 추억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

만나면 헤어지고 얻으면 잃는 것이 세상사의 법칙이다.


때가 되면 사랑하는 사람, 일가친척, 명예와 부귀영화 등 영원히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이

하나 둘 모두 내 곁을 떠난다.

쉼 없는 인생살이에 무위(無爲)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매달리고 집착함이 괴로움의 원인이라 마음을 새털같이 가볍게 하여야 하는데,

권력을 쥔 자들의 국정농단과 끝없는 욕심에 나도 지쳐간다.


살면서 가끔은 삶이 두려울 때가 있다.

무엇이 두려울까,

줄어드는 것인가, 아니면 잃어버리는 것인가.


많은 산을 다니면서도 덜어내거나 버리지 못한 삶의 찌꺼기가 쌓이는 것을 무서워해야

하는데, 우습게도 잊어지는 게 가장 두려울 때가 있다.


그러나 두려움은 금세 사라진다.

그보다 더 힘든 것은 버림이다.


쓸데없는 욕망은 버리는 게 맞지만 혹시 주변에서 버림받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은

기우(杞憂)가 아닐 수도 있다.

가끔 혼자 텅 빈 사무실에 앉아 명상에 젖을 때나 회한(悔恨)에 몸부림 칠 때 버림과

버리는 연습을 충분히 하지 못한 자신을 발견한다.


이젠 물건도 물건이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도 정리해야 할 나이다.

인연이 끊어질까 걱정하고 노심초사하며 인사를 건네는 것도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버려야할 것, 버리지 말아야 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저절로 되기만을 바라는

어리석은 마음은 언제나 버릴까.


여러 가지 모양의 돌들이 적당히 어우러져 탑이 되었다.

서로 맞대고, 이어지고, 받치고, 위로, 아래로, 옆으로 교묘히 맞물렸어도 소리치지 않는다.


지금 내가 사는 인간세상은 서로 권력을 잡으려 이전투구(泥田鬪狗)를 하는데,

여기 아무렇게나 널 부려져있는 돌들은 조금씩 양보하며 나누고 공유하라고 교훈을 준다.


정치인이 권력을 가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권력 그 자체를 목표로 하면

탈이 난다.

권력은 오로지 국민을 위해 써야만 뒤탈이 나지 않는 법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르는 모양이다.


09;44

계명산 오름길은 처음부터 된비알이다.

급한 경사는 숨을 몰아쉬게 하고 허리를 펴지 못하게 한다.


출발한 지 20분이 넘었어도 졸참나무 숲 오름길은 여전히 급하고 산안개가 위에서 내려온다.

눈구름은 서서히 산과 우리를 삼키기 시작한다. 


눈송이가 떨어진다.

목덜미에 내려앉은 눈은 금세 녹아 속으로 파고든다.


산은 성(聖)의 세계다.

성(聖)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門)이 고갯마루에 열렸다.

그 문을 천천히 걸어 들어가며 나는 속(俗)을 탈출한다.


편안함이 1분도 채 되지 않고 된비알은 계속 이어지며 눈송이는 점점 커진다.

계명산은 원래 계족산(鷄足山)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계명산은 닭의 발 형상을 하고 있는 계족산 때문에 충주에 부자가 나지 않는다는 속설로

계명산(鷄鳴山)으로 개칭하였다는데,

대전에도 계족산이 있는데 부자가 나지 않는다?

고을에 새 광명이 찾아들라는 뜻의 기복문화(祈福文化)가 현대에서도 존재하는구나.


자료를 찾아보니 삼국시대엔 심항산(心項山)으로 불렀다며,

닭은 모이를 먹을 때 모이를 흩뜨려 먹는 습성이 있어 충주 고을의 재산이 밖으로 나가기에

'닭의 울음이 여명을 알린다.'라는 뜻으로 바뀐 계명산은 들머리부터 된비알로 아직 풀리지

않은 몸을 고단하게 한다. 


백제 때 마고성 성주가 외성과 내성을 오고가던 중 길바닥에 지네(百足蟲)가 와글거려

피해가 많기에 관내에 지네 퇴치명령을 내려 잡았어도 성주의 딸이 물려죽는 등 피해가 날로

더해진다.


성주가 산신에게 기도 했더니 꿈에 용두백발(龍頭白髮)의 노인이 나타나 '닭을 기르면

지네가 없어진다.'라고 해서 닭을 많이 방사해 지네가 없어지고, 다시는 못나오도록

심항산(心項山)을 계족산으로 고쳤다가 다시 계명산으로 고쳤으니 산의 이름도 사람의

욕망에 따라 바뀐다.


또 다른 전설로는 후삼국시대 후백제의 견훤이 포악하다는 소문에 견훤의 군사들이

충주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이름을 계족산이라 했다고도 한다.


이밖에 오동산(梧桐山), 동악산(東岳山), 객망산(客望山)으로도 불렀다는데

여기까지 오르면서 오동나무는 한 그루도 보지 못했고, 또한 바위가 하나도 없는데

동악산으로 불렀으니 다른 곳에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간벌을 한 건지 아니면 스스로 솎아 낸 건지 드믄드믄 서있는 겨울나무들은 119구급함과

함께 고독이 배었다.


나도 일행도 숲도 모두가 수묵화가 되어 떨어지는 눈송이를 보며 가는 겨울의 아쉬움을

달랜다.

숲의 모든 것들이 서서히 흰 눈을 뒤집어쓰니 빽빽하게 들어선 숲의 품이 오히려 넓어

보인다.


1분 후 다시 숲길을 걷는다.

어디선가 흐이유!~하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내귓가에 들린다.


걸음걸이가 예전처럼 씩씩하지는 못하지만 마음은 아직 청년이다.

산을 닮은 여인이 나를 유혹하지 않아도,

천년 묵은 여우가 여인으로 둔갑하여 나를 기다렸으면 좋겠다. 


나는 이런 산길을 걸을 때면 가끔 환상에 젖는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존재만 있는 게 아니다.

만져지지 않고 보이지 않는 존재도 있다.

그런 존재를 설명할 수 없을 때는 답답한 게 아니고 좀 묘한 감정을 느낀다.


자연의 시간 앞에 인간의 욕망이란 참 우습다.

권력자가 어느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인생이 되니 세상엔 정말 알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


하룻밤 사이에 막강했던 권력이 사라지고 감옥에 가는 뉴스가 매일 방영 된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권력은 사상누각(砂上樓閣)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재물도 벼슬과 권력도 죽은 후에는 모든 것이 업(業)으로 남을 텐데 그들의 묘비를 상상만

해도 불쾌하지만, 반면에 그들을 보며 아직 추첨되지 않은 지갑속의 복권으로 

나에게도 언젠가 행운의 도깨비가 찾아오지 않을까 묘한 상상을 하는 즐거움도 있다.



10;12

당구를 치다 후배 지점장이 갑자기 '제행무상"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세상일이란 게 마음먹은 대로 되고 보인다. 라는 뜻이 아닌가?"라고 말을 하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뜻을 잘못 이야기 한 거다.


벌써 치매가 시작되었나.

늘 생각하고 알고 있었던 말을 엉뚱하게 말을 했으니 금방 정정을 해서 이야기를 하지만

씁쓸해진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란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고, 형태 있는 것은 반드시 소멸한다.'라는 뜻이다.


지금 내 눈앞에 쌓이는 눈도 시간이 지나면 녹고, 저 앞에 도도히 서있는 사물도 때가 되면

사라지고 나도 세월이 흐르면 이승에서 사라진다.

그러기에 인생무상(人生無常) 아니겠는가.


선각자(先覺者)들은 하루하루 촌음(寸陰)을 아끼고 후회없는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이라고 했다.



산속은 나에게 낯선 환경이 아니다.

번화(繁華)한 곳에서 멀어질수록 마음이 편해지니 제대로 방랑기(放浪氣)에 접어든 모양이다.


이렇게 세상이 하얗게 지워지는 날 눈보라 속에서 방황을 하면 세상을 제대로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慧眼)을 가지려나?

문득 태백산에서 맞은 비바람이 그리워진다. 


능선의 흘러내림이 사라졌다.

조금 전 나무 사이로 보이던 각이 진 완고한 봉우리도, 곡선의 부드러움으로 묘한 조화를 

만들었던 봉우리도 눈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산위에서 내려오는 구름 속으로 스며드니 계명산은 슬그머니 나의 넋을 가져갔구나.


10;40

그냥 눈을 맞으며 땅을 보고 걷는다.

산 첩첩 골 첩첩한 곳에서 소박한 하루를 허투로 보내고 싶지 않다.

오늘은 느리게 걸으며 자기성찰(自己省察)을 해야겠기에 시계나 폰을 볼 이유가 없다.


은은한 솔향기가 콧구멍으로 스며들고 안개는 풍경의 흔적을 지워 나간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여기에서 세한삼우(歲寒三友)를 그린다면 안개를 뺐을까?


미끄러질까 조심하며 걷고 또 걷는다.

한참을 걷다보니 시공간(時空間)이 엉켜버렸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계명산에서 여백(餘白)의 미를 느끼지 못한다.

허공(虛空)을 산안개가 가득 메워 시야 확보가 되지 않으니 눈(雪)과 산안개는 넘치도록

가득 채워야 직성이 풀리는가 보다.


그래도 잠시 서서 머무르니 아쉬운 여백(餘白)에 이정표가 숨통을 틔워준다.


한 걸음 물러나 시계를 본다.

10;51분이니 한 시간을 넘게 올랐는데도 800m 가 남았다.


눈보라는 심해지고 발자국마저 사라진다.


산안개가 세상을 지웠다.

멋진 풍경을 봐야 하는데 보지를 못한다.

세상은 있다고 다 보이는 것이 아니고, 내가 보고 싶은 대로만 있는 것도 아니지.


어느 순간이 되면 세상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

또한 내가 느끼는 것만이 보이고 또 보이는 것만이 존재한다.


살면서 너무 많은 것들을 그냥 지나쳤지.

느끼지 못했기에 보지 못한 것이지만 느끼게 되면 보이는 게 세상의 이치라는 걸

이제야 깨닫다니.


뒤돌아보니 내가 만든 발자국이 어느새 쌓인 눈에 사라졌다.

세월 속에 사라진 인생은 지금 사라진 발자국과 닮았다.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고, 명예를 얻고자 노력을 하며, 출세를 하고자 앞만 보며 내달리고,

성공과 행복하고자 했어도 만만치 않은 게 세상살이지.


세상일이 내가 마음먹은 대로 다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고통 없는 즐거움으로 가득 차겠지.


사람의 삶은 기간이 정해진 유한적(有限的)인데 욕심은 하늘끝까지 무한대(無限大)라,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니 구부득고(求不得苦)이다.


거친 산길에서 욕심덩이 마음을 비우고자 인고(忍苦)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비우려는 마음조차도 욕심인 것을 몰랐기에,

한꺼번에 비우지 못하는 마음을 다스려 가며 서서히 조금씩 덜고 가볍게 할뿐이다.


11;21

눈보라치는 산속 정상까지 500m 가 남았다.

산안개는 산의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친구와 나도 삼키더니 조금 전까지 딱딱 거리던 딱따구리마저 삼켰다.



                    <          울음


                        바람이 운다.

                        산이 울고 나무도 운다.

                        겨울바람은 부드럽게 우는 법을 모른다지.


                        나무가 우니 산도 펑펑 운다.

                        가끔은 거짓으로도 울어야 하는데

                        거짓으로 우는 법을 몰라

                        나도 바람 따라 펑펑 운다.                       석천   >


11;46

거친 눈길을 뚫고 계명산 정상(755m)에 선다.

안내판에서는 1시간 반이면 오른다고 했다.


중간에 쉼도 없이 올랐는데 눈보라 속에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세상을 지운 안개가 충주호는커녕 월악산과 지난여름에 올랐던 천등산(807m)도

다 삼켜버렸다.


두 개의 정상석 표시가 서로 다르다.

하나는 774m고 또 다른 하나는 775m로 고작 두 개의 정상석마저도 통일 시키질 못하니

요즘 태극기와 촛불시위로 양분이 된 인간사회와 같다.


돌로 쌓은 옛 성터의 흔적과 조선시대 봉수대도 흔적만 남기고 다 사라졌다.


절벽으로 가지가 부드럽게 늘어진 소나무가 앞을 가린다.

내가 그림을 그릴 줄 안다면  이 소나무를 대상으로 세한삼우(歲寒三友)를 그리고 싶다.


구름 속에 우뚝 선 소나무니 운중창송(雲中蒼松)이라 부를까.

서산 팔봉산에서 만난 소나무보다 큰 소나무가 구름 속 허공에 걸렸다.


허공(虛空)과 한 몸이 된 이 소나무를 허공창송(虛空蒼松)이라 부르고 싶지만

안개 속에 이리저리 틀고 서있으니 무중청송(霧中靑松)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소나무는 강함으로 바위를 뚫고 뿌리를 박은 게 아니라 부드러움으로 바위에 스며들었다.

정상에서 만난 소나무한테 고절미를 느끼니 나도 산꾼이 되어가는가 보다.



아주 작은 정상석은 외로운 풍경이다.

계명산의 주인은 기교를 부리지 않은 정상석과 소나무와 바람이다.


골바람이 세차게 몰아친다.

오늘은 내일을 위해 거쳐 가는 시간일 뿐,

충성(忠誠)의 천년세월을 간직한 정상에서 말이 없는 정상석과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하며

발걸음을 돌린다.


아이젠을 흘렸던 친구가 한참 고전을 하다가 겨우 찾아 다시 착용을 한다,

오늘 같은 눈길에서 아이젠이 없으면 매우 위험한데 다행히 찾았다.


눈이 비로 바뀌었다.

겨울비치고 빗줄기가 제법 거세다.

조금 전까지 내리던 눈을 다 녹이려는지, 모자를 뚫은 빗방울이 얼굴에 흘러내린다.


제행무상이라 어느덧 겨울은 처참한 잔해를 남기고 서서히 물러나려 한다.

빗줄기를 뚫고 봄이 저만큼에서 아지랑이를 타고 오는 모양이다.


그래 봄은 슬그머니 오고, 눌러 앉았던 겨울은 그렇게 왔다가 가는 게 자연의 법칙이지.

겨우내 숨을 죽였던 자연이 기지개를 펴고 나도 그 속의 풍경이 되었다.



14;00

눈(雪)을 이고 비에 젖어 마신 한잔 술에 취기가 오르며 청량산에서 만났던 퇴계 선생의

시비(詩碑)가 생각난다.


퇴계 선생이 독서여유산(讀書如遊山)이라 했던가?

아니 유산여독서(遊山如讀書)라고 했지.


모르겠다.

산행하고 술에 취하니 인생여유산(人生如遊山)일 수도, 유산여인생(遊山如人生)도

아니고 오늘만은 취생여유산(醉生如遊山)이로구나.


18;00

호수와 산봉우리에 홀려서 빨려 들어가면 내가 빠져 나올 수 있을까.

안개 속에 잠긴 호수가 나를 빨아들이니 호수는 화이트 홀(white hole)인가?

아님 블랙 홀(black hole)인지 정신없이 빨려 들어간다.

 

블랙홀이 지평선을 지나는 그 어떠한 것이라도 진공청소기처럼 다 빨아들인다면,

화이트홀은 블랙홀의 시간적 반전을 말하며, 자신의 사상의 지평선으로부터 물체를

뱉어내는 원천적인 행동을 한다.


물론 화이트 홀과 블랙 홀 모두 물체를 끌어당기지만 이 시간 여기에서 나는

화이트홀에 빠져 잠시 넋을 잃은 거다.

얼굴에 찬 느낌이 와 하늘을 올려다보니 눈송이가 얼굴 위로 떨어진다.



18;00

오늘은 저녁노을도 보고 별도 봐야 하는데,

별이 자리를 잡으면 별자리라 하는데 오늘은 무슨 별자리를 볼 수 있을까.

학창시절 공부했던 별자리를 기억하려 애쓰지만 녹슨 기억이 살아나질 않는다.


호숫가엔 별빛이 찬란하게 쏟아져야 제격이라,

찬란히 빛나는 별빛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바라봐야 하는데,

눈구름에서 바뀐 비구름은 내가 보고 싶은 모든 것을 감췄다.


그동안 너무 지저분하고 슬픈 것과 얹잖은 것들만 보고 살았지.

희망도 없이 싸움질과 부패상만 보고 살았으니 내속은 어지간히도 상하고 좌절했지.


사실 세상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닌데 어렵게 보기 때문에 어려운 걸까.

내가 보는 것만이 존재하고 보는 대로만 있다는 사실만을 고집하면 편협한 생각일까,

잠시 골돌히 생각을 해본다.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닌 자연,

그래도 때가 되면 봄은 무위(無爲)의 시간을 타고 분명히 오며,

혼돈(混沌)의 세상도 때가 되면 희망을 가진 밝은 세상으로 바뀌겠지.


                                            2017.  2.  22.  충주 계명산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