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328 내 생애 가장 젊은 날 백두대간 태백산 금대봉~비단봉~매봉산을 종주하다.

김흥만 2017. 5. 29. 11:01


2017.  5.  25.  06;00

그렇게도 시끄러웠던 인간세계의 추잡함도 5월 9일 대통령 선거가 지나니 조금씩

잠잠해진다.

골목길의 텅 비었던 공간을 장미꽃이 채웠다.

담장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바로 이 아이들이 꽃봉우리를 여느라 소란스러웠던

모양이다.


원래 자연이란 다툼이 없으면 성장도 없는 법인데 여기 담장의 장미꽃은 예외다.

사람이 손질을 해주지 않아도, 먹을 거름을 주지 않았는데도 5월이 되니 자기들 스스로

피며 서로가 대견해 한다.


인간들은 서로가 대립하고 반목과 불화를 지속하지만, 여기 장미들은 인간과 달라 공멸을

피하고 공존의 지혜로 순서를 지켜 예쁜 꽃을 피우는 거다.

와글거리는 장미꽃들의 배웅을 받으며 태백으로 향한다.



차들은 굉음을 지르며 어디론가 질주를 하고,

잠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작년 여름 올랐던 천등산이 나를 보고 손을 흔든다.

어느새 1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났고, 잠시 천등산에서 쌓였던 추억이 튀어나온다.


이번 봄은 사람 사는 사회와 닮았는지 그야말로 속도전이다.

봄날은 순식간에 겨울을 몰아내더니 봄옷을 입을 사이도 없이 여름옷을 꺼내게 한다.


매화꽃이 암향(暗香)을 흘릴 사이도 없이 폭풍처럼 피었던 벚꽃이 와르르 사라지고

진달래, 철쭉이 떨어진 사이를 뚫고 아카시 흰 꽃이 온 산을 도배하였다.

며칠 후면 밤꽃으로 뒤덮일 산을 차창밖으로 바라보며 잠시 상념에 빠진다.


11;03

망한 고려 유신들이 두문불출이라는 처절한 애환을 남긴 두문동재에 올랐다.

삼년 만에 오른 두문동재를 스치는 바람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입산신고를 하며 4년 전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려 왔다고 금대봉을 향해 인사를 한다.

작년 12월 이곳을 찾았다가 거센 비바람에 두문동재에 오르지 못하고 태백산으로

산행지를 바꿔야만 했던 아쉬움이 못내 커 두문동재~금대봉~비단봉~매봉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하늘 길을 다시 찾았지.


비밀의 정원은 사람이 만든 것과 자연이 만든 것이 있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곳은 자연뿐만 아니라 하늘까지 동원되어 만들어진 비밀의 정원이다.


2013년 6월 4일 천상의 정원인 이곳에 올랐으니 벌써 4년이 다돼간다.

세월이 참 빠르다는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4년이란 세월이 내 인생에서 후딱 지워진 거다.


신록(新綠)이 마음을 안아주는 곳,

산속의 우주란 무시무종(無始無終)의 공간이라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겨울잠에서 깬 숲은 끝없이 생성소멸(生盛消滅)의 과정에서 생(生)과 성(盛)의 단계에 있다.


철쭉 꽃비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봄볕에 몸을 말리던 다람쥐가 어디서 찾았는지 도토리 한 알을 물고 숲 속으로 사라진다.


꽃들이 아우성치던 봄이 가니 숲 속이 고요해졌다.

봄날은 이렇게 가고 다시 새로운 빛깔의 여름이 코앞에 다가오는구나.


올해는 원도 없이 매화, 벚꽃, 진달래, 철쭉을 만났다.

이제부터는 숲 속에 숨은 작은 야생화와 만날 차례이다.

몇 년 전에 만났던 앵초와 해후(邂逅)를 할 수 있으려나, 아님 어느 놈과 조우(遭遇)를

할지 마음이 설렌다.


벌깨덩굴이 내 그림자에 갇혀서 제빛을 발하지 못한다.


붉은병꽃나무에도 꽃이 활짝 피었고,


쥐오줌풀도 나를 반긴다.

내가 찾는 앵초는 어디에 숨었을까.


한계령풀, 섬기린초, 터리풀, 노랑갈퀴, 도라지모싯대를 만날 수 있을까.

다 그리운 금대봉의 식구인데 어디론지 꽁꽁 숨었다. 


나무 잎사귀를 뚫고 햇볕이 스며든다.

너덜지대도 없는 편안한 금대봉 숲길은 하늘을 따르고 백두대간(白頭大幹)의 흐름을 따른다.


풀과 꽃, 나무가 어우러진 숲이 되느라 많은 인고(忍苦)의 세월이 필요하였겠지.

나무가 자라고 풀이 돋아나며 그 생명을 의지해 또 다른 생명들이 잉태하여 이어지는

숲길을 호젓하게 걷는다.


11;17

금대봉의 둥그런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시간이 많이도 흘렀다.

숲의 변화를 알지 못하면 끝도 알지 못하는 법.

나는 이것만은 알지 초록이 뚝뚝 떨어지다 지치면 단풍이 든다는 평범한 숲의 진리를

말이다.


이 신록이 검푸른 빛으로 변하고 붉게 단풍드는 날 또 오르고 싶은 천상의 화원을

내가 지금 걷는 거다.

자연의 신비가 몽환의 길을 만든 금대봉의 겸손에 잠시 고개를 숙인다.


금대봉~ 분주령~대덕산~검룡소 코스는 4년 전 걸었으니,

오늘은 금대봉~비단봉~매봉산 바람의 언덕으로 백두대간 코스인 약 9km를 선택한다.


금대봉은 오늘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고 입을 벌리지 않고 있는 선종덩굴로도 불리는 검은 요강나물을 만난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산식물로 희귀멸종 단계에 있는 보호식물인 '요강나물',

금대봉과 대덕산에서도 만났고, 설악산 끝청봉에서 중청봉으로 오르는 길에서 만났던

요강나물을 찍으려 무릎을 꿇는다.


사람들은 화려한 붉은 꽃, 노란 꽃, 흰 꽃 등에는 열광을 하지만 이렇게 검게 핀 꽃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지.

나는 묘하게도 검게 핀 요강나물과 속이 소름끼칠 정도로 묘한 색깔로 치장한 할미꽃에

매력을 느낀다.


11;36

두문동재에서 30분 만에 해발 1,418m인 금대봉에 올랐다.

사방은 나무로 둘러싸여 조망이 되질 않는다.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은 시원하게 갈증을 풀어주기에 두리번거리며 찾는다.


금대봉 정상 한구석에 양강발원봉(兩江發原峰)이라는 팻말이 쓰러져간다.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봉이라는 금대봉,

대덕산 가는 길목에 있는 고목나무샘에도 한강 발원지라는 표시가 있다.


검룡소도 한강발원지라 하고, 오늘 우리가 내려갈 삼수령도 삼강의 발원지라고 주장을 하며

나에게 혼란을 주는데 진정한 발원지는 어디일까.


금대봉 기슭에 있는 제당굼샘, 고목나무샘, 물골의 물구녕 석간수와 예터굼에서 솟아나는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검룡소에서 다시 솟아나기에 1987년 국립지리원이 검룡소를

514km의 한강 발원지로 공식 인정하고, 2010년 8월 18일 대한민국 명승 제 3호로

지정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택리지, 대동여지도에서는 오대산의 우통수가 한강의 발원지라고

기록되었지만, 인공위성 측량결과 검룡소의 물줄기가 32km가 더 길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1,418m의 금대봉 정상을 지키는 이정표를 바라본다.

이정표는 헐거운 말도 없이 침묵을 지킨다.


지나가던 고승이 묵언(默言)을 하라고 부탁을 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잠잠하다.

부박한 행동도 없고, 척박한 환경을 탓하지도 않고 묵묵히 서서 사람들을 인도한다.


나뭇잎들이 소리 없이 펴진다.

소리가 없어도 메아리처럼 울려 펴지는 소리를 듣는다.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지만 나는 소생하는 만물을 통해 현현(顯現)하는 자연을 보며

한시도 정체되지 않고 움직이는 대자연에 경탄을 한다.


갈매나무도 거대한 숲 속의 주인공이 되었다.

구부정한 솔, 허리를 곧추 세운 신갈나무, 휘면서 춤을 추는 졸참나무 숲에서

자연의 향기를 듬뿍 마신다.


빽빽한 나무의 틈을 비집고 햇살이 겨우 내 몸에 도착한다.

여기서 나무들은 그 자체가 빛을 발하는 하나의 광체요 명품이다.


초록이 난무하는 숲에서 간혹 보이는 분홍빛, 흰빛은 다채로운 색의 공간을 만들고,

간간이 비쳐드는 햇살로 숨겨졌던 숲 속의 모습이 드러나는 모습은 신비하고

현묘(玄妙)하다.


연분홍 철쭉꽃이 미소를 흘리며 나의 배낭 뒤를 잡는다.

나는 목적된 나의 길이 있기에 오늘의 인연을  아쉬워하며 꽃에 감사를 드리고

돌아선다.


머리를 숙였더니 참나무들도 함께 허리를 숙인다.

고개를 들고 돌아서는데 늙은 소나무는 아직도 허리를 펴지 않고 있다.


철쭉꽃이 우수수 떨어진다.

철쭉나무는 꽃이 떨어짐을 아파할까.


아프지 않고 어찌 봄이 가리오.

꽃이 지는 건 여름을 맞기 위한 통증 아니겠는가.

떨어진 꽃잎 위로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휘이요~푸이요~♬♪

누구의 혼(魂)을 부르는지 호랑지빠귀가 한바탕 울고 지나간다.

어느새 아득한 인연들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생각난다.

블로그가 깨져 새로 옮기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나하고 숱하게 산에 올랐던 사진속 친구들을

만난다.

그들 중 여럿이 칠성신(七星神)에게 돌아갔다.


그 친구들과 어느새 아득하고 까마득한 인연이 되었구나.

산 정상에서 환하게 웃는 사진이 빛바래지도 않았는데, 문득 떠오르는 그리움에

몸을 떨었지.

내가 소복을 입지는 않았지만 멀리 북망산천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편지를 쓴다.


작년에 피었다가 잔해(殘骸)만 남은 작은 '수리취'를 바라본다.

꽃은 필 때도 좋지만 지는 꽃이 더 예쁘고 향기로울 때도 있다.

많은 꽃잎들이 모체인 나무에서 떨어져 허공(虛空)으로 날리다가 땅의 경계로 밀려온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는 게 점점 무덤덤해진다.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눈가에는 피곤이 머물고,

삶이 어깨를 짓누르는지 슬그머니 쑤시기도 한다.


엊그제 TV에서 본 영화의 제목이 뭐였지.

제대로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 영화를 보며 슬그머니 눈물이 났지.


며칠 전 직장후배 모친 문상을 하고 돌아와 후배가 많이 울더라고 아내에게

말을 하니 대뜸 내가 어머니 돌아 가셨을 때 한 번도 울지 않았다고 지적을 한다.

사실은 남에게 눈물을 보이기 싫어 병원 뒤 모퉁이 숨어서 울었는데 말이다.


산에 묻고 내려오다 뒤돌아보며 울고, 생각날 때마다 울었는데,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보이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숲과 나무와 봉우리들이 환상적 조화를 이룬다.

옛날 천지를 만든 조화옹(造化翁)이 이곳엔 더 심혈을 기울여 만든 모양이다.


조화는 소통이고, 소통은 어울림이며, 어울림은 사랑이라고 했다.

전임 대통령과 달리 새로 대통령이 된 사람의 낮은 행보와 소통을 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아직까지는 보기가 좋다.

그 사람도 산을 좋아해 고산 트래킹과 산행을 하며 산에게 소통과 조화를 배운 모양이다.

그 마음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징비록(懲毖錄)에서 귀인 김씨는 선조임금에게

"민심은 강물과 같다. 강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가라앉히기도 한다.

왜란보다 더 무서운 것이 민심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마음이 보여주기 위한 이중성이라고 판단이 되는 순간 국민들은 정권이라는 배를

물에서 가라앉히는데, 보름이 지나면서 장차관 등의 인사(人事)를 하며 서서히 빨간색깔을

드러낸다.


풀솜대의 흰 꽃이 초록이 난무하는 숲 속에서 조용히 색(色)의 반란을 일으키고,


졸참나무가 자기의 그늘에 핀 작은 꽃인 미나리냉이를 보호한다.


금대봉에서 비단봉에 가는 길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아주 좁은 오솔길이 열렸다.

숲이 주는 신선한 향기는 은은하고, 바람에 낙엽 썩은 냄새도 실려 오니

풍성하고 기승(氣勝)한 냄새가 길을 메꾼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백두대간 길은 남한강과 낙동강의 분수령(分水嶺)이다.

화전민이 불을 내서 만들었던 불바라기재의 정점인 금대봉은 한강 발원봉이고,

두문동재를 기준으로 금대봉의 반대쪽에 솟은 은대봉(1,442.3m)은 낙동강 발원봉이다.


창죽령을 향해 걸으며 머릿속에 양강의 발원에 대해 정리를 한다.

금대봉 정상에 양강 발원봉이라는 푯말이 서있지만 은대봉에서 시작한 용수골 물이

삼수령에서 흘러내린 물과 황지천을 이루어 낙동강의 원류가 되는데, 실제로 용수골

지류 중에서 은대봉 쪽 물길이 더 길다고 한다.


갈수록 숲은 더 깊어지고 거대한 나무들이 나를 사열한다.

기도하는 자세로 서있는 나무 곁에 부부나무인 연리목도 있다.


죽어가는 나무도 있고 그 옆엔 싱싱하게 살아가는 나무도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자연의 참모습이다.


방 한구석에 놓여있던 오디오도 고장이 자주 나서 처분을 하였더니 덩그러니

남은 그 자리가 외롭다.


이상하다.

이젠 슬픈 영화를 봐도, 감미롭고 애잔한 음악이 나와도 눈가가 촉촉해진다.

나도 모르게 입으로 흥얼거리기도 하고, 창문을 열고 파란하늘이 나오면 파란 마음으로,

흰 구름이 떠돌아다니면 하얀 마음으로, 먹구름이 끼면 어두운 마음으로 글을 쓰기도 하고

노래도 부른다.


내가 남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남을 사랑하는 것이 부족할지라도 내 마음이 움직이면

살아 있음을 느낀다.

스스로라도 내 삶의 감동을 위해서라도 계속 움직여야겠지.

문득 최근 폐암선고를 받은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4년 전 검룡소에서 만났던 한국 15종의 특산식물로 분류되는 노랑갈퀴를 여기서도 만난다.


12;55

지도를 확인하니 쑤아밭령(水禾田嶺)이다.

창죽령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에서 비단봉까지 900m 는 제법 된비알이다.


바로 1.4km를 내려가면 검룡소인데, 당초 예정한대로 비단봉을 거쳐 바람의 언덕인

매봉산을 향해 다시 걷는다.


거대한 서어나무가 뱀처럼 똬리를 틀었다.

비단봉은 오를수록 높아지고, 정상은 가까이 갈수록 더 멀어진다.


나는 이 산에서 점점 더 작아지는 사람이 된 거다.

자연의 시간 앞에 인간의 욕망이란 티끌에 불과하기에 고개를 숙이고 한 걸음씩 오른다.


13;27

비단봉(1,281m)에 바람이 분다.

바닥에 이미 떨어진 꽃잎들이 다시 솟구치며 꽃 회오리를 치고 내 얼굴에도 꽃잎이 떨어진다.


마구 흔들어대는 바람은 모자를 날리고 몸까지 휘청거리게 하고 나무들이 춤을 춘다.

놀랍게도 수목한계선을 어기고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와 생명을 이어가는 수양버드나무도

거센 바람에 리듬을 타지 않고 마구 막춤을 춘다.


나뭇잎 없이 피었던 꽃들이 사라지기 무섭게 나뭇잎 나오고 함박나무, 백당나무의

흰 꽃이 숲속에서 반짝인다.


비단봉 벼랑 위에 선다.

한쪽에는 천길 벼랑이요, 강한 바람에 정상석을 잡아야만 몸에 균형을 맞출 수가 있다.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일렁이는 백두대간을 바라본다.

저렇게 기운차기에 백두대간은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일렁이는가 보다.


비단봉은 원래 이름이 없는 무명봉(無名峰)이었는데, 한 폭의 비단을 걸친 듯 파노라마가

되어 산과 봉우리들이 펼쳐지는 풍경은 가히 선계(仙界)로다.


                  <    비단봉


                     광풍(狂風)이 나를 괴롭히며

                     밀어내도

                     비단봉에 올라서니 풍경은 선계로다.


                     백두대간 숲을 가로질러

                     우뚝 솟은 봉우리에 겨우 올랐더니

                     광명(光明)한 세상은 광활하여

                     말문을 닫게 한다.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고

                     눈과 가슴으로만 세상을 내려다 보며,

                     향(香)과 색(色)과 음(音)을 조화시키려 했더니

                     심술궂은 바람이 자기의 영역이라며

                     나를 서둘러 쫓아낸다.                                             석천   >


산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역사의 순간들이 켜켜이 새겨진 곳, 작년 12월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에 다시 찾은 금대봉은

어디로 숨지 않고 내 앞에서 당당히 꿈틀거린다.


수천 년 수만 년 세월 동안 이 자리에 오래 있었기에 나는 또다시 찾아왔고,

금대봉은 나를 품에 안고 그리움과 깨달음을 주는 거다.

나도 세상과 등진 고독을 품고 이곳에 머무르고 싶지만 인간사가 어디 자기 마음대로

되기나 하는 건가.


단종이 산신이 되어 머무르는 태백산~함백산~은대봉~금대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거대한 능선은 한 폭의 파노라마이다.


신라는 통일 후 전국의 명산을 삼산오악(三山五嶽)으로 나누고 그 이하에 대사, 중사, 소사로

나누었는데,

여기서 삼산은 경주의 남산, 금강산, 청도의 오리산을 지정하였지만 삼신산(三神山) 개념과는

다르다.


그 후 조선시대 이중환이 택리지를 쓰며 금강산을 봉래산, 지리산을 방장산, 한라산을

영주산이라 하여 비로소 삼신산(三神山)의 개념이 정리되었다. 


지리산에는 태을(太乙)이 살아 신선(神仙)이 모이는 곳이라 하지만,

여기 백두대간의 태백의 거대한 능선은 비록 삼신산에 끼지는 못했지만 내가 신선이 되어

걷고 있으니 사신산(四神山)으로 바꾸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하며 묘한 웃음을 흘린다.


신선이 아니면 어떤가,

그냥 무위(無爲)의 자연에서 정상주를 한잔하며 하루해를 즐기면 바로 신선이 아닌가. 

주봉의 말대로 오늘은 내 생애에서 가장 젊은 날이다.


족두리풀이 떨어져 슬픔의 꽃이 되면 봄은 순식간에 지고 만다.

슬픔에 떨어지는 소리를 내면 그 소리엔 화음이 입혀 무늬를 만들겠지.

눈에서 멀어져가도 마음에 그려지는 은은한 향기의 무늬를 내가 잊을 수 있을까. 


다시 찾아 오겠노라고 한 약속을 나는 지킨다.

족두리풀의 무늬를 기억하고, 그 기억의 뿌리에서 나는 벗어나지 못하고 숲 속에서

족두리풀을 찾아낸다.


봄과 여름의 경계가 선명하지 않은 산자락에 지난겨울 완전히 바스라지지 않은 낙엽을

밀치고 '감자란'이 올라온다.


잎이 먼저 피었는지 꽃이 먼저 피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금빛 찬란한 꽃은 나에게 무슨 말을 할까.


꽃은 나에게 눈으로만 보지 말고 귀로도 들으라며 청산(聽山)의 세계를 말한다.

이근원통(耳根圓通)이라,

소리를 통하여 세상의 이치를 보려 했는데 갑자기 달려드는 바람이 방해를 하니

천상 마음으로나 들어야겠다.


14;13

바람이 지나가니 산은 다시 깊은 적막이다.

이제부턴 투명한 고요 속에서 산이라는 세상을 보고 천지의 소리를 들어야겠다.


하늘에선 구름이 흐르는 소리가 내려오고, 나는 어느새 비단봉을 넘어와 산행도

끝나간다.


매봉산 고냉지 채소밭으로 내려서니 거센 바람이 나를 거부하며 모자를 저 멀리 내동댕이친다.

바람에 묻어오는 소리는 종소리인지 휘파람소리인지 모르겠다.

귀를 통해 들려온 종소리는 어느새 내 가슴속에서 맥놀이를 친다.


종이란 스스로 울지 못하고 남이 때려줘야만 우는데,

그래도 소리를 내면서 슬픔을 보내고 그 슬픔에 섞인 소리는 가늘고 떨린다.

소리는 금세 환청(幻聽)으로 끝나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진한 여운을 남긴다.


나는 백수건달이다.

시간은 많은데 돈이 없으면 건달이요, 시간도 없고 돈도 없으면 노예의 삶이라고 했다.


나는 시간이 많으니 건달이고 건달 중에서도 백수건달이다.

정년퇴직을 하고 처음으로 건달의 세계에 들어왔을 때 많이 당황했지.


말로는 건달이라 표현을 하지만 사실상 실업자가 된 거다.

그동안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하고, 해 놓은 것도 없기에 난감해진 건 사실이다.


원래부터 나돌아 다니기 좋아하는 탓에 한시라도 집안에 있으면 답답해 살 수가 없고,

밖에라도 나가면 주위의 시선이 불편하기도 했는데 이젠 만성이 되어 얼굴이 두꺼워졌다.


건달이나 백수의 생활도 철학이 있어야 견딘다.

풍수를 제대로 공부를 했으면 8년 세월을 좀 더 멋지게 백수생활을 했을 텐데,

그냥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고 주마간산(走馬看山)을 했으니 제대로 공부했을리가 없지.

그래도 산에 들어가면 어느 정도 기(氣)는 느낀다.


바위가 솟았으면 솟은 대로, 절이 있으면 절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 절의 제일 높은 위치에

무슨 전각이며 탱화에 무당(巫堂)은 있는지 대충은 두드려 잡는다.

계곡으로 물이 휘돌아 치면 음중양(陰中陽)의 터인지, 아니면 금계포란형인지 눈에 들어온다.


산에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눈치를 챘는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사진을 찍으며 뒤떨어져

갈 때는 산천수목과 많은 대화를 한다.

산과 나무, 꽃과 대화를 할 때 특히 작은 야생화와 대화를 하면 나도 모르게 산천의 기운이

몸속으로 들어온다.


방금 다녀온 비단봉의  큰 둔덕이 눈에 들어오고 복식호흡을 하며 비단봉의 기운을

온몸으로 끌어들인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거센 바람이다.


모자를 쓰면 금방 벗겨져 날아가고,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불어대는 강풍은 오늘 산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바람의 언덕을 힘들게 넘으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산에 빠지며 주색(酒色)보다는 자연이 들어온다.

원래부터 잡기(雜技)엔 취미도 없고, 잘하지도 못하는 대신에 항상 책을

가까이 하지만 그것도 눈에 황반변성이라는 치명적인 병이 와 오랫동안 읽지를 못한다.


나는 특히 역사책과 전쟁서적을 많이 읽는다.

나름대로 지루하지 않고 배우는 게 많아 재미가 있다.

아마도 내가 소장한 책 천여 권을 분류하면 역사와 전쟁에 관한 책이 약 40%가 되고

산에 관한 책이 약 30% 나머지는 수필이나 문학 서적이다.


우리나라 고냉지 여름채소의 최초 산지로 매봉산 정상 부근의 채소밭은 약 45만 평이며,

1965년 한미재단에서 화전민정착촌 사업으로 30만 평을 개간하여 1가구당 4,500평씩

무상으로 나눠주며 41가구를 이주 정착시켰다고 기록이 되었다. 


거센 바람을 맞는 이정표는 흔들리며 덜컹거리고, 뽑힌다면 금세 하늘을 향해 날아갈 것만 같다.


14;52

백두대간 매봉산(1,303.1m)에 올랐다.

바람은 점점 거세져 태풍급이다.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휘몰아친다.


흔하디 흔한 이름인 매봉산,


우리나라의 산 4,440개 중 매봉산이 178개나 되며, 그냥 매봉이 210여 개, 매봉재가

470여 곳, 매봉과 같은 의미의 응봉(鷹峰)이나 응봉산(鷹峰山)까지 합치면 더 많다고

하는 매봉산의 바람은 내가 그동안 경험했던 바람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는 바람이 불어도 바람의 언덕을 걸으며 세상을 품은 호연지기(浩然之氣)나 길러야겠다.

지난 몇 달간 우리가 사는 세상은 혼란의 극치까지 이르렀다가 겨우 진정이 되었지만

혼란의 불씨는 여전히 잠재한다.

그래도 세상이 일단 조용해졌으니 살만하다.


옛 시인은 불언인시비(不言人是非) 단간화개락(但看花開落)이라고 읊었다.

인간사 옳고 그름을 따져 말하지 않고, 그저 꽃이 피고 지는 것이나 바라볼 뿐이라며

먼 옛날 어떻게 알았는지 요즘의 내 심사를 잘 표현했다.


내가 비록 산속에서 피고 지고 떨어지는 낙화(落花)를 보고 있지만 내 마음이

평온하기만 할까.

택시를 기다리면서도 스마트 폰으로 세상의 소식은 들어오니 잠시나마 고독을 즐기고

외로움에 몸을 떠는 일은 없겠다.


인도의 인생 4단계에 있는 은둔(隱遁)이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세상 살만큼 살았고 이미 버릴 것은 다 버렸다 해도 군더더기가 남을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라 쉽게 은둔거사(隱遁居士)도 되지 못한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더 산중에 머물며 자연과 교류하며 유유자적하는 백수건달이나 되자. 

은둔이란 세속의 질서 속에서 탈주하는 게 아니라 완전한 해방이 되는 거니 바로

해탈(解脫)이다.


바람의 언덕 끝(1,272m)에 서니 금대봉, 은대봉 산줄기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고

두문동재가 길게 갈지 자((之)를 그린다.


높이 50m의 풍력발전기(52v/850kw) 날개(반경 26m)가 돈다.

옆을 지나며 들리는 저음과 고음이 섞인 소리는 악마가 처절하게 내는 소리다.


          <         바람의 언덕


                 산은 높아서 아름답다.

                 산이 높기에 아무 죄 없는 짐승과

                 어여쁜 꽃들이 모여 살아 더 아름답다.


                 바람은 세고 차다.

                 바람이 위쪽으로 불더니

                 다시 아래쪽으로 분다.


                 누가 올라온다.

                 나를 데리러 누가 올라온다.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내 마음을

                 무시하고 나를 태우려 든다.


                 바람 끝이 창날같이 날카롭기에

                 웅크린 몸을 폈더니 바람의 언덕이

                 내 어깨를 짚고 다독인다.


                 땀도 다 마른 등줄기에 모진 바람이

                 송곳 되어 허리가 휘어지게 하더니

                 흙 섞인 바람 우수수 쏟아진다.


                 언제나

                 나도 산이 될까 목을 길게 늘이고 서서

                 산, 산, 산을 보지만

                 무심한 바람개비가 나를 마구 쫓아낸다.                                석천    >


바람개비와 아직 채소의 싹이 나지 않아 황폐한 매봉산,

매봉산엔 높이만큼 슬픔이 쌓였다.


명색이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이건만 배추밭이 붉은 황토를 가르고 시멘트로 만든

거대한 풍차 기둥들이 매봉산의 심장을 뚫어 세워졌다.


매봉산은 얼마나 더 추락하려나,

산 하나를 통째로 배추밭과 날선 바람개비가 삼켰는데 저 능선을 넘어 조만간 나머지 숲을

베어 삼킬지도 모르겠다.

백두대간 길을 걸었다는 기쁨 한 자락보다는 추락의 날 끝에 선 매봉산에서 허전함이 앞선다.


15;56

택시로 낙동정맥을 분기하고 남한강, 낙동강, 오십천을 발원한다는 삼수령(피재 935m)을 거쳐

두문동재로 원점회귀하여 산행을 마무리 한다.


두문동재 돌무덤 하늘의 흰 구름이 무심하다.


날이 저물며 하늘이 벗겨진다.

달빛 교교하려나 달력을 보니 오늘이 그믐이라 달은커녕 그믐달도 보지 못하겠다.


별들이 마중을 나온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환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귀야 알랴만은

다정도 병(病)인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누구의 시(詩)더라?

고려 말기의 성리학자 이조년의 시가 떠오른다.


이제 봄을 배웅한다.

며칠 후면 화려한 여름이 와 더위에 약한 나를 얼마나 괴롭히려나.


21;00

숙소에서 거울을 본다.

산행을 마치고 거울에 비치는 나의 마음은 어떤 것인가.


내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묻고 대답을 원하지만 공허(空虛)한 얼굴에는 휑한 눈동자만

보이니 내게는 아무런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


                           2017.  5.  25. 백두대간 태백산 금대~매봉산을 종주하고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