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 16. 06;00 청송 휴양림
꾀꼬리 노래 소리를 들으며 창문을 여니 뜻밖에도 청초한 흰 꽃이 숲에서 환하게
빛난다.
초롱꽃의 고개를 숙인 모습은 소박한 새색시의 모습이다.
다른 꽃은 이미 하고현상이 진행되어 스스로 꽃잎을 지우고 봄을 지우는데,
새벽이슬에 젖은 초롱꽃의 솜털이 파르르 떤다.
이슬 젖은 초롱꽃의 솜털을 보며 나는 꽃과 꽃의 몸통을 관찰한다.
몸에서 몸을 관찰하고,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고,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고,
현상을 현상에서 관찰을 하면 불교에서 말하는 사염처(四念處)인가.
네 가지의 알아차리기 즉 몸(身), 느낌(受), 마음(心), 현상(法)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서
자연의 끊임없이 생멸(生滅)하는 현상을 바라본다.
내가 비록 수행자(修行者)는 아니더라도 작은 꽃 한 송이는 탐욕(貪慾), 진에(瞋恚),
우치(愚痴)가 마음에 들지 못하도록 하니, 점점 집착도 희미해지고 속박에서 벗어난다.
07;00
주산지로 오르며 뻐꾸기 소리로 알고 귀를 기울이니 뜻밖에도 소쩍새가 우는 거다.
솥 적다~소쩌꿍~♬♭
1km를 걸어 조선 경종(1720년) 때 만들었다는 인공 저수지인 주산지에 도착한다.
밤새 수많은 별을 담았던 주산지의 박무(薄霧)가 사라진다.
길이 200m, 너비 100m, 수심 8m로 만여 평에 이르는 주산지는 아무리 가물어도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다는데 금년의 매우 심한 가뭄은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게 한다.
바닥은 뜨거운 화산재가 엉겨 붙어 만들어진 용결응회암이라는 단단한 암석으로 큰 그릇과
같은 지형을 이룬 주산지는 비가 오면 이 용결응회암과 퇴적암층이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고
있다가 조금씩 뱉어낸다는데 물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보니 걱정이 된다.
주산지 축조에 공이 큰 이진표(李震杓)를 기리는 송덕비도 가뭄을 걱정한다.
월성 이씨들과 조세만이 1771년 세운 송덕비를 줌으로 당기는데, 웬일인지 야행성인
솔부엉이가 후~후~하며 반복적으로 운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바위 뒤쪽에 족제비과 수달이 숨은 모양이다.
극심한 가뭄은 주산지도 예외가 아니다.
100년이 넘도록 수장(水葬)을 당했던 왕버들의 몸체가 육지로 나왔다.
물에 잠긴 왕버드나무를 보러왔던 나는 반대로 안도의 숨을 크게 쉰다.
나무도 계속 물에 잠겨있으면 오래 살 수가 없다.
이렇게 가끔이라도 가뭄이 들 때 몸통을 밖으로 내놓아야 살 수가 있기에 버드나무에게는
생존의 기회가 됐다.
엷은 안개 속에 왕버드나무가 물에 담길 듯 늘어지면 수많은 사진가들이 겹을 이뤄
카메라 셔터를 누를 텐데 물이 빠졌음을 아는지 오늘은 우리뿐이다.
나이가 150년이나 된 버드나무에 햇살이 도착하자 나무는 부르르 몸을 떨고, 천천히 유영을
하던 원앙 한 쌍이 물을 박차고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울창한 수림으로 둘러싸인 주산지 한가운데에 살던 능수버들과 왕버들이 신비한 풍광을
그리다가 몸체를 드러냈으니,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모습은 허공(虛空)으로 사라졌다.
비록 가물었어도 구름과 바위, 바람소리와 새소리의 오케스트라는 주산지를 별유천지
(別有天地)로 만들었다.
현실세계에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주산지,
물이 더 빠지기 전의 모습을 눈과 가슴에 담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을 한다.
08;45
나는 좌파들이 흔히 말하는 보수골통이다.
연평해전, 천안함, 연평도 포격 등 도발을 일으킨 북한이 싫지만,
저들을 옹호하고, 남북교류사업이라는 미명(美名)으로 북한을 도와주지 못해 안달을 떠는
남한의 종북좌파들이 더 밉고 싫다.
정권이 바뀌자 9년을 숨죽여 지내던 귀두남면(鬼頭藍面)의 무리들이 우르르 나타나 요직을
꿰차며 완장을 두르더니 9년 전보다 더 설친다.
자연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무위(無爲)의 법칙에 따라 순환이 되는데,
국가의 정권도 권력자도 자연과 같이 순환이 되는가 보다.
사회를 바꾸려는 모습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거의 똑같이 되풀이된다.
먼저 정권 사람들도 그랬고 지금 권력을 잡은 사람들도 탐진치(貪瞋痴)를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의 욕망과 스스로의 합리화에서 벗어나기 힘들기에 다른 사람들을 질타하지만
자기 자신의 심연(深淵)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다.
저들은 자기만이 옳다는 절대 진리에 집착을 하며 중대한 오류의 늪에 빠지고,
다시 5년 후에 권력이 바뀌면 감옥에 가는 운명에 처하겠지.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상대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며, 윤회의 세월에 대해 사유(思惟)를
하면 시기, 질투, 혐오, 탐욕, 분노를 억제하고 바른 길로 갈 수 있는데 말이다.
유무중도(有無中道)라,
'있다'와 '없다', '나는 그렇다'와 '너는 아니다'는 모두 극단적이고 절대적인 생각이다.
사드배치가 잠잠해지더니 보고누락으로 또 시끄러워진다.
당장 하늘에선 북한의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물속에선 잠수함이 SLBM으로 우리를 위협하는데
청와대와 민주당은 절차상의 정당성만 걸고 넘어져 배치를 미룬다.
얼마 전 '징비록'이라는 드라마를 보며 임진왜란 때 영의정으로 국란(國亂)을 극복한
서애 류성룡 대감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이순신을 천거하는 혜안(慧眼)으로 임진왜란을 극복한 서애 류성룡,
그가 태어나고 자란 안동의 하회마을에 도착한다.
풍산 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同性)마을 입구에는
아직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아 썰렁하다.
10;00
2010년 7월 브라질에서 개최된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경주의 양동마을과 함께
우리나라의 10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기념비 앞에 선다.
오늘은 세속의 잡념을 떨치고 과거의 주거 건축물과 정자(亭子), 정사(精舍), 서원(書院) 등을
보며 전통적 주거문화와 유교적 양반문화를 보려고 한다.
마을 입구의 '가선대부 공조전서 풍산류공 기적비'가 외롭다.
류종혜가 풍산을 떠나 하회마을에 들어와 살면서 후손과 가문이 번성해지자 그 후손들이
1977년 세웠다는데,
여기서 가선대부라 함은 종이품(從二品) 하계(下階) 문관의 품계에 해당되며,
지금의 문관으로는 차관보, 군인으로는 중장(中將)정도의 계급이다.
아직 꽃이 피지 않은 연(蓮)을 보며 문득 처염상정(處染常淨)이 생각난다.
연꽃은 진흙탕 속에서 피지만 결코 더러운 흙탕물이 묻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세상은 아무리 고고(孤高)해도 흙탕물이 묻는다.
사드 문제는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살고 죽는 생사(生死)의 문제다.
요즘 심정으로는 북한이 여의도 국회나 청와대에 미사일을 날려도 미워하지 않을 거 같은
마음이 드니 참 큰일이다.
청와대가 사드 관련 보고를 누락시켰다고 국방부 정책실장인 위승호 중장을 보직해임하고
육군 정책연구관으로 좌천시켜 전역하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사드 발사대 6기가 한 세트라는 것을 나도 알고 전 국민이 아는 사실인데,
국방부 장관과 정책실장이 새 대통령에게 항명을 하고 마치 거짓 보고한 것처럼 발표를
하고 민주당에서는 청문회를 개최하자고 한다.
참 피곤한 나라다.
북한은 2006년 첫 핵실험을 한데 이어 작년에는 두 차례나 핵실험을 강행했다.
또한 단거리, 중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급기야는 잠수함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총 24차례 탄도미사일을 쏘아댔다.
북은 계속 도발을 할 텐데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곳은 우리 군(軍)밖에 없다.
보고 누락을 이유로 침소봉대(針小棒對)하여 장군을 죄인으로 만들고, 군 전체의 사기를
땅바닥으로 떨어뜨리며 관계자들만 알고 있어야할 군사기밀이 만천하에 공개가 된다.
군은 사기를 먹고 사는 집단인데 관련자들을 징벌하니 이젠 누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충성할 것인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을 국가 간의 협약이라는 형식에 의해 처신을 했으면 정당한 게 아닌가.
갑자기 국기 문란의 죄인이 돼버린 위 실장의 사진을 신문과 Tv에서 보는 심정이 참담하다.
완전 희극이다.
하늘에선 북한의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한국형 킬 체인을 아직 완비하지 못한 나라에서
미사일을 방어한다는데 절차상의 정당성이나 따지는 한가로움이 지금의 정권 모습이다.
10;00
하회마을을 멀리서 바라본다.
와가(瓦家)와 초가(草家)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된 하회마을은 강아지 짓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고요하다.
동쪽으로 태백산에서 뻗어 나왔다는 화산(327m) 줄기가 낮은 구릉지(丘陵地)를 형성하여
마을의 서쪽 끝까지 뻗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내포(內浦)에서 초능력자인 상놈이자 기인(奇人)인 김복선과 토정 이지함, 율곡 이이 선생
셋이 모여 산 중턱에서 나랏일을 걱정한다.
김복선은 전쟁이 날터인데 "청양 사는 천민(賤民) 하나가 전쟁을 지휘하면 사흘이면 끝난다.
자신 즉 김복선이 나서면 석 달이 걸리고, 김덕령이라는 자가 나서면 삼년 걸리는데 셋 다
천민이라 나라에서 쓰지 않을테니 대신에 아산골에서 이순신이라는아이를 찾으면 7년내
전쟁을 끝낼 수 있다."라고 말한다.
나라가 위급하면 이렇게 천민 계급의 상놈도 나와서 나라걱정을 하며 대안을 제시하는데
오직 이념과 형식에만 얽매여 당대 최고의 국방정책 책임자인 현역 중장을 한직으로 몰고
전역시키려고만 하는데 당사자에게 모멸감은 주지 말았으면 좋겠다.
돌고 도는 게 세상의 법칙이다.
자기네가 그렇게 욕하던 전(前) 정권보다 더하다는 말을 듣지 않아야겠지.
이번에 모멸감을 당한 군인은 또 정권이 바뀌면 국방부 장관이 될 수도 있다.
정유재란 초기에 일본 '요시라'의 반간계 계책에 넘어간 선조는 이순신이 부산 왜영의
일본 전선을 불태워 없애는 대승첩을 거두고 가덕도 앞바다에서 왜적을 소탕하고 있을 때,
원균에게 통제사직을 내놓게 하고 이순신을 전쟁 중에 서울로 압송을 하는 암군(暗君)인
선조와 무엇이 다른가.
군(軍)을 죄인으로 만들면 누가 득(得)을 보나.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국방 분야 지식과 이해는 국가의 존립과 국민의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다.
사드는 국민 살상용이 아니고 국토 방어용이라는 것을 초등학교 학생들도 안다.
촛불 시위단체가 반대한다고 해서 이 핑계 저 핑계로 사드 배치를 지연시키려함이
이적행위(利敵行爲)인지, 아니면 사드 반입이 이적행위인가 정식으로 묻고 싶다.
청문회에 나온 장관 후보자들의 표정이 재미있다.
논어에서는 사민여승대제(使民如承大祭)라,
백성을 부릴 때에는 큰 제사를 받드는 듯 신중히 하라고 했다.
임기가 벌써 한 달이 지나갔으니 남은 임기도 후딱 지나갈 것이다.
문 대통령의 임기 후 안위를 위해서라도 제발 민초들의 여망을 존중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싶다.
장관과 헌법재판소장으로 지명되어 청문회에 나와 추궁을 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관이다.
해당 분야에서는 최고로 자타가 인정하지만 과거의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세금 탈세,
병역비리 등으로 까보면 더 심한 짓을 했을지도 모를 국회의원들에게 난도질을 당한다.
10;10
마을 골목은 지나는 사람 없이 조용하다.
나는 골목을 걸으며 잠시 침잠(沈潛)에 빠진다.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라 나는 타임머신을 탔다.
과거, 현재, 미래를 가로 질러야 제대로 된 시간여행을 하는데 오늘은 과거로 600년의
시간여행을 한다.
다시 속세에 대한 잡념이 떠오른다.
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은 벼슬 못해서 상처받거나 한이 맺힌 사람들처럼 물고 늘어지며
온갖 사생활이 다 까발려진다.
더 웃기는 것은 전 정권 청문회 때 아귀같이 물고 늘어지던 사람들이 거꾸로 방어를
해주는 모습이다.
죽어라고 공부해서 출세를 하고 좀더 높은 장관자리에 앉으려니 점점 험한 꼴을 당한다.
위장전입이나 세금 한 푼도 떼 먹지 못한 나를 시켜줄리도 없지만 더러워서 하기도 싫다.
겨우 청문회를 통과하면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으로 매일 회의, 연설, 접대 술을
마셔야 하고,
특히 요즘 같으면 촛불단체에서 밀려드는 민원 사항으로 더 힘들 텐데 그래도 징관을
하려고 국회의원에게 사과하고 고개를 숙인다.
학연, 혈연, 지연이 지배하는 사회에선 노조의 압박이 말없이 침묵을 지키는 사람들보다
더 무서워 한다.
저들은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말을 모르는 모양이다.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라,
즉 임금은 백성에 의해 옹립되지만 임금이 백성을 소홀히 할 때는 백성이 임금을
권좌에서 끌어 내린다고 위징은 당 태종에게 간언을 했다.
물이 배를 띄우지만 물은 언제든지 배를 엎을 수 있다.
따라서 위정자는 국정뿐만 아니라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공명정대하게 처리하여야 한다.
나는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경물중생(輕物重生)이 좋다.
이 나이가 되어 벼슬과 명예가 뭐 그리 중요한가.
어느 날은 산속에서 헤매고, 또 어느 날은 명산대천을 유람하며 한잔 술에 고단함을
푸는 인생이 얼마나 즐거운지 벼슬에 욕심을 내는 사람들은 모르지.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높은 자리에 올라 주변 사람들에게 으시대고, 베풀고 싶은
욕망이 강하지만 권불십년(權不十年)이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다.
전 정권에서도 이런 욕망을 억눌렀어야 하는데 빙공영사(憑公營私)가 되어,
즉 공(公)을 빙자해서 사익(私益)을 추구하다가 대통령, 장관들이 우르르 감옥으로 들어가고
재판을 받는다.
그들은 감옥에서 계속 권력을 누리지 못한 아쉬움을 느낄까,
아님 무관유한(無官有閑)의 인생을 누리는 나를 부러워할지 궁금해진다.
이제는 누구든지 벼슬을 원할 때에는 젊었을 때부터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도덕성을
길러야 한다.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호한 관념이 여전히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장애물로 작동하는 우리나라니 이 글로 인해 나도 악플로 시달릴지 모르겠다.
이젠 세속의 잡념과 어리석음을 잊고 고택들을 보며 과거의 교훈을 생각하련다.
하동고택, 지산고택, 염행당을 거쳐 화경당을 보고 부용대 방향으로 나간다.
10;20
부용대 앞에 낙동강이 소리 없이 흐른다.
깎아지른 기암절벽과 그 앞을 흐르는 낙동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하회(河回)라는 마을 이름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데서
유래되었다는데, 안내서에는 풍수지리적으로 태극형, 연화부수형, 행주형에 해당되며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이었다고 자랑을 하는데,
일단 물 걱정이 없으니 내가 봐도 명당자리임엔 틀림없다.
부용대 좌우에 있는 겸암정사와 옥연정사가 외롭다.
하회마을 선비들은 음력 7월 초순~중순에 부용대 일대에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시회(詩會)를 열고, 뱃놀이, 줄불놀이, 계란불놀이를 하였다는데
그것이 바로 유명한 '선유줄불놀이'이다.
천연기념물 제473호 만송정 솔숲을 걷는다.
겸암 류운룡 선생이 젊은 시절에 조성한 만송정 솔숲,
풍수지리적으로 마을 서쪽의 지기(地氣)가 약해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심은 비보림
(裨補林)에서 솔 향이 묻어 나온다.
하늘을 향해 용트림을 하는 소나무 앞에서 심호흡을 한다.
10;30
수령이 600년이나 된 삼신당 느티나무 앞에 선다.
이 지역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중심부에 해당된다며, 하회마을의 집들은 삼신당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낙동강을 향해 배치되었기에 좌향(座向)이 일정하지 않다고 한다.
또한 큰 기와집을 중심으로 주변의 초가들이 원형을 이루며 배치되었으니,
양반이 사는 집과 상민이 사는 집은 금세 구별이 된다.
삼신당 느티나무는 신목(神木)이다.
신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능력이 있기에 수많은 민초들이 염원을 적어
느티나무의 새끼줄에 소원을 걸었다.
아기를 점지해주고 출산과 성장을 돕는 신목이라 하여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에
이곳에서 마을의 평안을 비는 동제를 지낸다고 한다.
삼신당 신목을 거쳐 원지정사, 작천고택, 빈연정사, 충효당을 본다.
보물 제 306호 양진당의 비석앞에 선다.
하회마을의 문화재로는
국보로 하회탈과 병산탈(제12호 12종 13점), 그리고 제132호인 징비록이 있고,
보물로는 양진당, 충효당과 류성룡 종손가 유물과 문적이 있다.
사적으론 병산서원이 있고, 중요무형문화재로는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있으며
중요민속자료로는 화경당, 원지정사, 빈연정사, 양오당, 옥연정사, 겸암정사, 염행당,
작천고택, 하동고택이 있고,
천연기념물로는 만송정 솔숲과 도(道) 지정문화재로 화천서원, 상봉정, 지산고택이
있으니 마을 전체가 국보요, 보물덩어리로 소중한 문화재다.
서애 류성룡은 1592~1598년 임진왜란에서 정유재란에 이르기까지 조선 선조 때에 있었던
전쟁에 대해서
시경(詩經)의 '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모기징이비후환 矛其徵而毖後患)'라는
생각으로 징비록(懲毖錄)을 썼다.
당시의 위정자들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반성하고, 붕당정치의 폐해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붕당의 변질은 국가의 이익이 아닌 자기가 속한 붕당의 이익만을 추구하였기에 미래의 위기를
예측하지 못하고 임금의 눈을 가렸다.
일본의 침략에 쓰러져가는 조선의 모습을 통한의 심정으로 징비록을 저술하며 그는 얼마니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류성룡은 좌우정과 병조판서를 겸하고 있다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도체찰사에 임명되어
군무를 총괄한다,
선조의 피난길에 왕을 보좌하고,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훈련도감을 만들어 군비를
강화한다.
임진왜란이 터진지 20일 만에 한양을 점령당하자 선조임금은 백성을 버리고 몽진을
하지만 실질적으로 도망을 친 거다.
왜적의 침략으로 농토의 2/3가 폐허가 되고, 백성의 80~90%는 굶어죽거나 전쟁터에서
죽었다고 하는데 징비록에선 왜적에게 유린당하는 조선의 처절한 모습을 보여준다.
류성룡은 지난날의 과오들을 반복해서 적고 적으며 이 잘못들이 반복되는 것을 경계했다.
우리는 살면서 종종 과거의 잘못들을 잊거나 반복한다.
이젠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 징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드배치로 국론이
분열되고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되니 한심한 노릇이다.
건물은 대개 전(殿), 당(堂), 합(閤), 각(閣), 재(齋), 헌(軒),루(樓), 정(亭)으로
격(格)을 따지는데, 여기 고택(古宅)들은 건물의 격에 대하여 나에게 새로운 지식을
가르쳐 준다.
반송(盤松) 중 만지송(萬枝松)을 뒤로 하고 하회마을을 벗어난다.
12;03
비룡산을 올라 회룡포를 내려다본다.
거대한 물줄기를 자랑하던 내성천(乃城川)은 극심한 가뭄으로 실개천이 되었다.
강물이 닿아 찰랑거려야 할 섭다리는 건너는 사람 하나 없이 외롭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용(龍)이 비상(飛翔)하듯 물을 휘감아 돌아간다 하여
붙여진 회룡포(回龍浦),
높이 190m의 비룡산(飛龍山)을 다시 350도로 되돌아서 흘러나가는 육지속의 섬마을은
국가명승 제16호로 지정되었다.
들판을 지나다보니 아직도 모내기를 하지 못한 논들이 사방에 널렸고, 밭작물들은 붉게
타들어가기에 극심한 가뭄의 현장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태종우(太宗雨)와 광해우(光海雨)는 과연 내릴 것인가.
태종우는 음력으로 5월 10일이니 내 생일보다 하루 빠른 양력 6월 5일였는데 빗방울이
떨어지다 말았지.
다행히 금년은 5월이 윤달이라 7월 3일도 태종우에 해당되는 날이고,
또한 7월 초하룻날은 광해우가 내린다니 기대를 해본다.
현대판 군주란 무슨 존재일까,
백성 위에 군림만 하는 존재인가.
머리를 풀어 헤치고 하늘에 석고대죄를 하며 비(雨)를 비는 군주를 보고 싶다.
2017. 6. 16.
하회마을과 회룡포를 바라 보며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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