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332 화성 봉화산<163m>에서 허둥지둥 대다.

김흥만 2017. 7. 26. 20:44


2017.  7.  20.  06;20

평소보다 20분 늦게 집을 나선다.

십년이 되도록 걸은 골목길은 매일 같은 길이 아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하게 골목을 장식했던 장미꽃은 하고현상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오늘 보니 태양빛이 꽉 차도, 비가 내려도,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골목길에 재잘거리며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이 바로 꽃이로구나.


07;00

사무실에 들어서니 난의 은은한 암향(暗香)이 코로 스멀스멀 스며든다.

못난이 난(蘭)과 이제는 작별하려고 삼주일 동안이나 물을 주지 않았는데,

며칠 사무실을 비운 사이에 혼자 슬그머니 꽃을 피웠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에 꽃이 피었으니 하란(夏蘭)인가.


내가 아는 상식으론 한란(寒蘭)과 춘란(春蘭) 중 소심 종류와 풍란, 금기 등

몇 종류에 불과한데 몇 년 동안 물을 주고 길렀어도 정작 내 사무실 식구인 이 난(蘭)의

종류와 이름도 몰랐으니 많이 섭섭했겠다.


극심한 가뭄으로 모내기도 제대로 못한 채 전 국토가 타들어가다가 며칠 사이에 장마비가

내리며, 급기야는 호우(豪雨)로 발달이 되어 물 폭탄을 맞은 국민들이 근심으로 밤을 새운다.


이 판국에 유럽으로 관광을 떠났던 충북 도의원들이 매스컴과 거센 여론에 밀려 중도에

귀국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대통령 말 한 마디에 몇 조원씩이나 투입된 원자력 발전소 공사가 중단되는 사태가 생기더니

성주 사드배치 기지에선 일부 선동가들이 전자파 안전성 검사를 반대해 국방부가 철수하는 

우스꽝스런 사태도 발생한다.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도,

의정부에선 미 2사단 창설 100주년기념 콘서트도,

천안에선 미군 관련 축제를 반미(反美) 단체들이 반발하자 취소를 했고,

성주 사드 기지 앞에서는 공권력이 일부 반미단체에 검문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젠 협박하고 시비를 걸면 다 되는 나라가 돼가니 나라꼴이 엉망이다.


10;00

휴 덥다,

더워도 너무 더워 등판이 벌써 젖었으니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제대로 산행을 즐길지

모르겠다.


소나기가 온다는 비 예보를 무시하고 태양이 지글거리며 나를 태운다.

몸이 젖더라도 비를 맞고 싶은 내 마음을 하늘은 철저히 무시하는구나.


산길은 과수원 길이다.

사과밭과 포도밭은 고라니와 까치 떼의 피해를 방지하려고 그믈망을 쳤고,

종이봉지를 씌운 과수원은 공중에도 그믈망을 쳐서 육공(陸空)으로 방어막을 만들었다.


짐승과 미물(微物)들이 농부들의 고충을 어찌 알랴,

겨우 가뭄을 극복했더니 폭우로 많은 농민들의 가슴이 타들어 가는데 이곳엔 다행히

비 피해가 보이지 않아 유산(遊山)을 해도 미안하지가 않다.


천년고찰은 아니라도 이 지방에선 제법 큰 규모로 명망이 있는 신흥사에 들어선다.

스님은커녕 신도 한 명 보이지 않고 우리만 텅 빈 절간을 지나 봉화산으로 향한다.


열기가 가득한 산길엔 후끈한 지열(地熱)이 올라와 숨을 막히게 한다.

식당에서부터 이미 더위에 지쳐 허덕였는데 오늘 제대로 산행을 할 수 있으려나.


어느 절간이던 묵언(默言)은 기본 예의이다.

그러나 예의를 갖추기도 전에 더위에 지친 입은 말하기도 싫다.


현재기온 33도로 매우 덥다.

여름이라 아침에는 해가 일찍 뜨고 저녁에는 늦게까지 밝다.

작년 여름과 별반 달라진 게 없이 되풀이 되는 더위에 나는 지칠 대로 지쳐간다.


아무리 더워도 산엔 올라야하기에 땀을 흘리며 정상을 향한다.

여름이면 다한증(多汗症)으로 고생을 하는 나를 위로라도 하려는 듯 쑥부쟁이가 피어 반긴다.


10;17

고즈넉한 신흥사가 땡볕아래 침묵을 지킨다.


며칠 전 느닷없이 폰에 황당한 문자 메시지가 떴다.

모빌리언스에서 안마기 의자 대금 416천 원이 결제완료 되었으며 합산 청구액이

926천 원이라고 문자 창에 뜨는 거다.


안마기를 산 일이 없는데,

보이스 피싱이나 스미싱으로 의심이 되기에 일단 카드사와 은행계좌를 확인해보니 아직

피해는 입지 않았다.


문자 창에 뜬 번호로 전화를 하니 모빌리언스라며 그런 피해 사례가 많으니 자기네가

대신 사고접수를 해주겠다고 친절히 설명을 한다.

아니나 다를까 서너 시간 후에 검찰청 사이버수사관 김지수를 사칭하는 전화가 온다.


농협에 내 이름을 도용한 통장이 발급되었으며 피해사항을 접수해야 하니 인적사항을

알려달라고 하기에 내가 직접 검찰청에 가서 신고를 하겠다고 하니 전화를 끊는다.



욕이 목구멍을 차고 나오는 걸 억제하고 꼬투리를 잡으려 살살 유도신문을 하니 전화를 끊고

더 이상 받지를 않는다.


짜증이 나서 사기범들을 잡으려고 강동경찰서 담당 여수사관을 만나 진정서를 접수하는데

경찰관의 태도가 옛날과 천지차이다.

예전의 고압적인 태도는 사라졌고 민원인의 입장에 서서 사기꾼들에게 전화로 확인도 하고

통신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피해사실 여부를 확인해준다.


여수사관의 말 한마디가 매우 인상적이고 기분을 좋게 한다.

내가 "어르신 소리를 들어야 하는 나이인데도 젊고 씩씩하다."고 말을 하는데 얼굴을 자세히

보니 상당한 미인이다.

그 말을 듣고 아침부터 났던 짜증이 한순간 사라진다.


내가 벌써 어르신 호칭을 들어야 할 나이가 되었구나.

거울을 보니 아직 주름도 별로 없으며 염색머리라 흰 머리칼도 감췄고,

해발 1,000m 이상 고산도 수시로 종주를 하는 체력인데 나이라는 숫자가 나를 힘들게 한다.


우리나라 노인의 기준은 65세이다.

65세가 되면 지하철 무료승차를 할 수 있는 교통카드도 나오고, 소득이 없으면

노령연금도 준다.


식사와 운동도 잘하고 건강하게 잘 노는데 65세 노인기준에 들어서니 기분이 묘하다.

60이든 70세가 넘어도 인생은 살만한데 노인이라는 기준에 묶이자 갑자기 입맛이 떨어진다.


그동안 좋은 것을 좋은 줄 모르고 철 없이 산 거도 아니고, 비록 내일엔 무엇이 될 거라는

기대도 없지만 막상 노인의 기준에 들어서니 가슴이 허전해지는 거다.


어느 병원의 의사는 트리거 증후군을 치료하러 갔더니 "그 병은 고칠 수 없고

또 나이도 있으니 죽을 때까지 그냥 사세요."라고 해 낙담을 했는데

친구의 소개로 우연히 찾은 통증의료원에서 딱 두 번 주사를 맞고 손가락 굴절운동이

95%이상 좋아졌고 밤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심하던 통증도 사라졌다.


치료도 되지 않는 거 참으라 하고, 더 살아 봤자 그저 생존하는 것일 뿐이라며

비타민이나 열심히 먹으라던 그 의사는 세미나 중 뇌출혈로 지금은 사경(死境)을 헤맨다.


대기업 임원으로 퇴임을 하고 귀농을 한 친구에게서 넉넉한 여유로움을 찾는다.


늙음이라,

늙으면 상실과 고독, 질병과 고통이 쌓이며 점점 노추(老醜)가 되고,

또한 노추가 심해지면 죽음과 가까워지는 시기가 다가오는 거다.


삶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연민으로 바뀌는 두려운 시기가 다가오고, 두려운 나이가 되면

누구든지 자신의 인생을 더 사랑하게 된다.

아직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이 아니기에 삶의 소중함을 더 절실하게 깨닫고 그 의미를

사랑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인생의 내리막길에도 미래는 있을까라는 의문으로 한동안 깊이 생각도 해보고

나름대로 노력도 했지만 그 자체가 욕심이라는 걸 깨닫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젠 늙어간다는 생각도 버렸고, 아이들같이 서로 부닥치며 때로는 성질도 부려보고,

아픔이 있으면 서로 포용을 하며,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한 시간임도 알고,

이 땅에서 어른으로 산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는 거도 안다.


10;21

숲에서 나를 끄는 눈부심이 있다.

가까이 다가가니 바로 요 녀석이구나.


둥글거나 모나게 피어도 꽃의 빛들은 모가 나지 않는 법,

카메라 뷰파인더에 대고 응시를 하다가 셔터를 누른다.

산 길가에 요염하게 핀 패랭이 두 송이는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엎드려 작은 패랭이꽃에 코를 댄다.

원예종인 꽃들은 대부분 향이 없으나 야생의 꽃들은 냄새와 향기를 갖고 있다.

향기는 자기 자손을 퍼뜨리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냄새는 자신을 해코지 하지 못하게 자기 자신을 지키게 해달라는 메시지다.


자연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을 땐 산에서 만나는 꽃도 그냥 무덤덤한 꽃이고

나무들도 그저 무관심한 나무일뿐이었지.


그러나 이런 작은 꽃에도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산에서 만나는 나무와 꽃들은

근원이 다르지 않음을 가르쳐주는 나의 스승이 된다.


고독사(孤獨死)라!

갑자기 최근 고독사를 한 친구가 생각이 난다.

고독사는 신문과 Tv에서만 떠드는 이야기로, 나하고는 먼 이야기인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내 주변에서 고독사가 생겼기에 며칠간 회한(悔恨)에 떨며 마음고생을 한다.

나는 백수지만 나름대로 안락한 생활을 누렸기에 충격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에는 홀로 문화가 라이프스타일로 대세가 되었다.

혼밥, 혼술, 혼영 등이 유행하며 편의점에도 혼자 먹는 도시락이 진열대를 채우고

옆에는 전자레인지가 놓여있다.


언제부터인지 나 홀로 문화를 즐겨도 사회 부적응자가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하지만,

아무리 나 홀로 문화가 유행을 타더라도 홀로 외롭게 죽는 고독사는 영 아니다.


살다보면 때때로 누군가와 있는 거보다 혼자 있는 게 좋을 때도 있다.

은퇴나 사별이 아니더라도 혼자 있을 때 편하다고 생각이 들면 제대로 고독을 즐길 수

있는 거다.


고독도 좋은 친구처럼 다가와 내 곁에 오래 머물 수도 있겠지만 정적(靜的)인 것보다

동적(動的)인 것을 즐기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10;45

극심한 가뭄으로 타들어가던 산천초목이 장맛비로 생기를 되찾았다.

본시 자연이란 바람과 물과 온도가 적당하게 맛 물려야 생기가 돋는 법이지.


농작물이 타죽던 논밭에서,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졌던 저수지의 물그릇에도

물이 서서히 차오르고,

물을 놓고 심각할 정도로 커졌던 갈등도 슬그머니 사라졌다.


자연과 물을 잘못 사용한 대가로 혹독한 시험을 치룬 사람들 마음에도 훈풍이 돌기

시작한다.

차창밖으로 논두렁에서 물꼬를 내는 농민의 등판이 넓고 믿음직스러웠지.


하늘이 장마라는 형식을 갇춰 비로 대지를 흠뻑 적셨으니 나도 나무아래서

쉼을 통하여 나 자신을 적셔야겠다.


하늘은 점점 맑아지고 발걸음이 점점 느려진다.

문득 주저앉고 싶은 유혹이 들지만 하루하루 같은 날이 아니기에,

언제나 같은 길이 아니기에 숨을 크게 몰아쉬고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조금 더 쉬운 길을 찾을 이유도 없고,

조금 더 즐기며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해도 나는 이 길로 올라가련다.


나는 나 자신을 스스로 생각해봐도 영리한 사람은 아니고, 어떻게 보면 우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제 같은 오늘이 아니고 오늘 같은 내일이 아니니 오늘 살아있음을 감사해 하는

마음은 늘 가진다.


정상까지 1km가 남았고 10분이 걸린다는 이정표가 나온다.


나이 탓인가,

더위에 지쳐 속이 답답하고 현기증이 난다.

이럴 때는 잠시 쉬며 찬 냉수를 한 모금 마시면 몸이 살아난다.


아!

나도 모르는 사이 황혼이 찾아왔구나.

황혼은 무엇을 얻기보다는 상실(喪失)의 시대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지.

서서히 내가 소유했던 것에서 멀어지고,

주변의 사람들도 사망이나 여러 가지 사유로 사라진다.


인연이 무엇인가,

인(因)은 바로 나요 연(緣)은 남이라,

사람과 사람이 맺은 인연도, 생명을 다한 수목(樹木)도 때가 되면 사라진다.


상실이 위기(crisis)가 되면 안 되는데, 허전한 마음으로 허공(虛空)을 바라본다.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삶의 나침반을 맞추려고 하지만,

가까운 친구들의 죽음을 보면서 서서히 집단적 상실감을 겪기 시작한다.


휴! 힘들다.

높이가 고작 163m에 불과한 봉화산을 오르며 몇 번째 주저앉는다.

마음을 편히 가지려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어려운 길도 아니지만 급하게 올라야할 길도 아니기에 더워도 천천히 정상까지

가보는 것이다.

너덜도 없는 산길의 풍경은 평화롭다.


숲 사이로 맑고 투명한 햇살이 비쳐든다.

초록이 묻어나는 가장 아름다운 길을 나는 걷는 거다.


긴긴 세월 생명을 이어온 숲은 조용하다.

아무 생각 없이 걸으려 해도 저절로 생각하게 하는 숲,

산에 오를 때는 높이보다도 어떻게 오르는지도 중요하기에 사유(思惟)에 빠지게 하는 숲을

걸으며 일상과 무관심 속에 뒹굴던 나 자신을 찾는다.


11;05

봉화산 정상(163m)에 도착한다.

봉화산이라면 봉수대가 있어야 제격인데 봉수대는커녕 정상석만 덩그러니 서있다.



동화같은 숲길을 올라 도착한 정상은 초록으로 꽉 차고, 우람한 나무들로 둘러싸여 조망이

전혀 되지를 않는다.


전국에 봉화산이 몇 개나 될까.

2006년 산림청이 국토지리정보원의 자연지명 자료를 기초로 조사하였더니 우리나라 산의

수는 총 4,440개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또한 전국의 산 이름 중 가장 많이 쓰이는 이름은 봉화산이 47개로 가장 많았고,

다음엔 국사봉, 옥녀봉, 매봉산 순이라 하며 어느 지역마다 다 있는 남산보다도 많다.


예전 국가의 주요 통신망이었던 봉화산에 오르니 내 고향 진천의 봉화산(413.4m)이 생각난다.

내가 졸업한 상산초등학교 교가에도

'♬봉화산 맑은 정기 가슴에 안고 나날이 자라는~~♪' 봉화산이 첫머리에 들어가지.


호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봐도 카메라 렌즈 캡이 없다.


높지 않은 봉화산에서 오늘 허둥지둥 댄다.

혹서(酷暑)의 날씨에 몸과 마음이 많이 피로해진 모양이다.


바람과 비가 만든 여름의 산,

하산 길에 잠시 멈춰 서서 박무(薄霧)에 쌓인 인간세상을 내려다본다.


높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풍광(風光)이 펼쳐진다.

내 눈에 들어오는 풍은 경(景)이 되고, 광은 정(情)이 되며 나는 스스로 그 속으로 빠져들었다.

천지만물이 싱싱한 숲에서 나는 산과 나무와 꽃이 되니 오늘 하루 또 아름답게 흘러가는구나.


더위에 잔뜩 힘들었던 몸이 편안해진다.

가슴이 답답할 때 시원하게 틔워주는 조망은 자연이 언제나 옳다며 모든 것을 내어준다.


바다는 어디에 있을까,

바다는 박무(薄霧)속으로 사라졌고, 편안한 산길은 오랫동안 마음에 새기는 길이 된다.


삼거리가 나온다.

구봉산 당성까지 1km에 약 15분이 걸린다는데 나는 포기를 하고 신흥사 숲길로 스며든다.


설악산, 지리산, 태백산, 소백산, 오대산, 주왕산에서도 결코 중도 포기를 하지 않았는데

오늘 해발 200m도 되지 않는 구봉산(159m)에 오르기를 포기한다.


당성은 사적 제217호로 둘레 1.2km 정도로 테뫼형과 포곡형으로 결합된 복합식 산성이라고

하는데 진천 김유신장군의 태실이 있는 태령산성은 테뫼형으로 기억이 되고, 하남의

이성산성은 전형적인 포곡형이다.


고구려의 영토로 당성군이었다가 백제와 신라를 거치며 포곡식 산성만 뚜렷이 남아있다는

당성을 보지 못하고 하산을 한다.


11;50

살짝 동풍이 분다.

얼굴에 와 닿는 동풍은 비를 몰고 오려는지 제법 시원하다.


진달래가 꽃을 피우더니 어느 날 꽃을 다 떨어뜨리고 그 사이로 선학초로 불리는 짚신나물이

핀다.


숲의 어느 날은 꽃을 피우고,

또 어느 날은 잎을 틔우고,

그 무성한 나뭇잎에 바람이 달리더니 빗물도 담았다.


그렇게 봄은 슬쩍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여름이 차지했다.

그래도 계절을 보내고, 빛이 바랜 나뭇잎을 떨어뜨리고 자꾸 비워가는 빈 가지보다는

왕성한 초록 잎이 달린 숲이 좋다.



12;06

한줄기 비를 기다리다가 잠시 숲이 건네는 이야기를 듣는다.


비가 오면 그칠 때까지 이 숲속에 머무를 텐데,

산이라는 수직의 세계와 부처님의 수평의 세계가 공존하는 숲에 머무르며 배낭 위로 

기어오르는 개미가 다칠세라 조심하며 털어내다 세월의 풍상이 내려앉은 친구의 얼굴을

무심히 바라본다.


세월은 물같이 흘러가고 정을 준 사람들도 사라진다.

21일이 공휴일이면 봉급이 20일 나오고 안 그런 달은 21일 나온다.

오늘이 20일이니 봉급전날이구나.


희미한 기억을 더듬는다.

직장이라는 거대한 우산과 울타리 속에 있을 때는 몰랐지.

가끔은 나를 구속하는 철조망으로 생각이 들 때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시간은

직장의 고마움으로 30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다.


은행에 들어가 1년 까지는 겉으로 열심히 일을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했지.

그러나 1년이 지나고 2~3년 연륜이 쌓일수록 현실에 안주하게 되고,

월급은 닭장의 모이처럼 날자가 되면 꼬박꼬박 통장에 입금이 된다.


어느새 동료와 조직이 있는 거대한 직장의 울타리 안에서 익숙해지며 월급쟁이가 된다.

세월이 흘러 정년이라는 명분으로 직장 밖으로 나오니 세상일에 익숙하지 않은 몸이라

처음 몇 달은 신나게 놀다가 세상에 버려졌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엄청 불안해진다.


이 세상에 나 혼자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 아찔해진다.

아는 것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인맥을 제대로 쌓은 것도 아니고 머리 수술 후 모든 걸

내려놓는다며 실력을 갖추지도 못했으니 난감하다.


직장이라는 조직이 우산과 방패라고 생각할 때는 낙관적이었으나,

그 울타리를 벗어나니 자유로운 영혼은커녕 하루하루 노심초사하는 신세가 되었다.


직장이란 조직에서

10년 정도만 있었으면 그 경험이 장점으로 작용을 하고,

20년이 넘으면 사고방식이 굳어져 다른 일을 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30년이 넘으면 주는 월급에 너무나 익숙해져 새 출발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은퇴 후 여러 곳을 두드려봤지만 마땅한 일자리를 잡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은 재주가 있는지 용케 재취업을 하는데 나는 9년이 넘도록 제2의 명함을

만들지 못했다.



친구랑 나이를 이야기하다가 언제 내 나이가 이렇게 되었나 소스라진다.

그러고 보니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더 가지고 싶은 것에 대해서 욕심을 가질 나이도 아니구나.


어느새 황혼이라 날갯짓을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삶을 마감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암담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어느 선인은 한 가지를 더 가지려 하면 다른 한 가지를 손에서 놓아야하는 나이라고 한다.

나의 의지와는상관없이 흘러가는 삶의 세계에서 아쉬워할 거도, 슬퍼할 일도 없는데 말이다.


세상은 가속과 변혁의 시대라 정신없이 내달리고 있다.

아무리 숨 가쁜 세상이라도 세상일 잠시 잊고 쉬고 싶다.

산에서 쉼은 휴식이며 잠시라도 사색에 잠기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충전이 된다.


여기서의 쉼이란 아무런 생각 없이 의식의 작동이 멈춤을 말한다.

그냥 텅 빈 마음으로 하늘과 나무를 바라보며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거다.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산속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되면

비로소 나를 내려놓게 되는 거겠지.


12;17

신흥사 앞 마당에는 능소화가 활짝 피었고 작은 연못에는 연꽃이 피기 시작한다.

여기야말로 바로 무량한 존재가 함께 어우러져 사는 화엄(華嚴)의 세계로구나.


모든 존재는 변화하고 그것을 불가(佛家)에서는 무상(無常)이라고 하지.

또한 모든 존재는 서로 관계해 있고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기에 무아(無我)라고 한다. 


서로 다른 존재들 끼리 조화를 이룬 고즈넉한 화엄의 세계에서 봉화산 산행을 마친다.


12;50

제부도로 들어가는 바닷길은 14시 51분에 열린다고 안내를 한다.


예정시간보다 10분 빨리 제부도에 들어가는 길이 열린다.

모세의 기적은 이집트의 홍해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있다.


진도 고군 회동리 앞바다, 보령 무창포 해수욕장 앞바다, 전남 여천 화정면 사도,

부안 변산 하도와 더불어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는 바닷길이 화성 서신과 제부도 사이에서

열리는데 1~3m 깊이의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이렇게 6.5m의 단단한 포장길이 나오는 거다.


하루 두 번씩 썰물 때면 2.3km의 섬 길에 1~3m의 바닷물이 빠지며 6시간 정도 열린다.


썰물을 따라 미쳐 빠져 나가지 못한 물고기가 많은 모양이다.

대백로 두 마리가 물속을 응시하며 도하청장(淘河靑莊)을 연출한다.


길 양쪽으로 펼쳐지는 광경이 서로 다르다.

양쪽으로 펼쳐지는 개펄의 폭이 500m 는 넘을 거 같은데 특이하게도 왼쪽은 진흙 밭이고

오른쪽은 모래와 자갈이 섞여있다. 


차에서 내리니 후끈 달아오른 바닷바람이 숨을 막히게 한다.

촛대바위 앞에서 섬 일주 트래킹을 포기하며 다시 육지로 되돌아 나간다. 



허리띠가 망가졌다.

바지를 잡고 다닐 수도 없어 해양경찰 근무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니 공구가 없다고 한다.


인근에 있는 해병전우회 근무자에게 부탁을 하니 공구박스를 내와서 꼼꼼하게 고쳐준다.

역시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라는 말이 맞다.

나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예비역 해병에게 감사의 예를 표하며 제부도를 떠난다.


18;50

친구가 몇 살 때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묻는다.

어느 친구는 20대 청춘을 원하고, 또 다른 친구는 안정된 50대를 원한다.


나는 지금이 딱 좋다.

20대 때는 세상을 너무 모른 채 지나갔고, 30~40대에는 일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50대 지천명에 이르러서 겨우 인생에 대한 맛을 알기 시작하다가 후딱 지나갔지.

이제 이순이 되어 인생의 참맛을 알기 때문에 나는 지금이 좋은 거다.


     <        석양


          해당화 지는 석양의 바닷가 언덕에

          화사한 자태도 감미로운 향기도

          저녁노을에 스러진다.


          생명줄 이어가던 바다에

          물 빠지니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갯숭어도

          쫄쫄 거리며 파득 떠는 망둥어도

          모두 한 가닥 삶에 매달리는데,


          노을빛 내린 바닷가에

          한참을 서성이던 사람들도

          갈 길 서둘러 떠나고,

          갈 길 멈춘 내 그림자는

          길게 끌리다 저편으로 사라지는구나.                 석천   >


20;02

저녁 8시가 되었어도 날이 훤하다.

해가 서산에 긴꼬리를 남기며 사라진지 한참인데 날은 여전히 밝다.

여름의 긴 날을 보낼 길이 없어 낮잠을 자지 않고도 봉화산이라는 훌륭한 자연에서 땀을

바가지로 쏟은 하루였지.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본다.

오늘 내가 한 일이 무엇인가,

땀 흘리고, 술을 마시고, 배불리 먹고 괜한 잡념에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렸구나.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종일 부지런히 애를 써도 부족한 게 인생인데, 오히려 시간을 못 보내

안달을 떤 건 아닌가.


난 소일(消日)이라는 말이 싫다.

소일은 지금보다 더 늙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어떤 일에 마음을 붙여 심심하지 않게

세월을 보내는 것인데,

벌써부터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무위도식(無爲徒食)하니 나에겐 형벌이다.


바다는 황혼과 어둠까지 껴안는구나.

그믐달도 사라진 별빛이 너무 좋으니 지금부터 별 사냥을 해볼까.


에필로그)

참 허둥지둥 대던 하루 해였다.

더위에 지쳐 예정된 산행 코스 중 일부를 포기하고,


산 정상 부근에다 흘린 줄 알았던 렌즈덮개는 사무실 책상 위에 얌전히 있고,

아무리 찾아도 없던 손수건은 반바지 주머니에서 나온다.

없어진 장갑도 차의 바닥에서 찾아내는 해프닝을 연출하였으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허둥지둥 대며 하루해를 보냈구나.


나이 탓일까?

아님 더위 탓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나 자신을 모르겠다.


                                    2017.  7.  20.  화성 봉화산과 제부도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