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335 설악산 신선대<645m>에 불이 났어요.

김흥만 2017. 10. 27. 22:09


2017.  10.  19.

세상이 시끄럽다.

세계에서 환경과 가장 안전하다는 대한민국의 신규 원자력발전소를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3개월씩이나 공사 중지를 시키고 공론화위원회라는 걸 만들더니 토의결과를 내일 발표

한다고 한다.


정치가라는 멍청이들은 모르겠지만 우리 국민들은 매우 현명하기에 공사재개라는

멋진 결과를 만들어내겠지만 그래도 불안하다.


나도 공론화위원회에 참여의사를 묻는 전화를 받고 망설임 없이 참여하겠다고 했다.

공사재개 쪽이라는 의견을 줬더니 탈락이 되어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았지.

차라리 유보라고 했으면 참여가 되었을 텐데 순간 선택이 잘못된 모양이다.


사재개라면 삼 개월 동안 든 1천억 원이 넘는 비용을 누가 책임질 것인지,

영구정지라면 이미 들어간 돈과 매몰비용이 3조 원이 넘는다는데 이 또한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막강한 경쟁력을 포기하고 주저앉는다면 600조가 넘는 국제시장에서 중국, 러시아만

좋은 일 시키는 결과가 나온다는데 국가의 백년대계를 고작 5년짜리 정권이 길게 보지

못하고, 대통령이 재난영화 한 편을 보며 눈물을 흘린 대가로는 너무 가혹한 손실이

아닌가.


요즘 환경단체와 시민단체의 납득하지 못할 활동으로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이 점점

사라지는 거 같아 안타깝다.

탈원전이 선거공약이라도 이미 30% 가까이 공사가 진행되었으면 훼방을 놓지 말고 놔두면

잘 진행이 될 거고, 사드도 전정권이 집행한 그대로 놔두면 현 정권에 부담이 되지

않았을 텐데 사사건건 개입을 하다 보니 국가안보와 경제가 심히 걱정이 된다. 


대통령과 국가는 안보와 에너지에 걱정없이 평화를 누려야 하는 국민들을 끊임없이 불안에

떨게 한다.

5년 후 정권이 바뀌면 저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또한 심각한 저출산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노인은 사회구성비에서 점점 높아지고, 결혼이나 출산을 기피하는 풍조가 만연하여 길에서

어린이나 아기 보기가 힘들다.


젊은 부부들은 아기를 낳지 않고 강아지나 안고 다닌다.

양수리에서 아기들과 산책을 하며 문득 나도 인구증가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자각하게 된다.

나의 아버지가 2대에 걸쳐 21명을 증가 시켰는데 나는 고작 3명에 불과하니 할 말이 없지만 

금계국이 활짝 핀 강가의 아기들은 그 어떤 꽃보다도 아름답다.


강물에 작은 조약돌을 던지니 물에 작은 파문이 일며 산 그림자가 깨진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잠시 강산무진(江山無盡)에 빠졌던 모양이다.


비가 오더니 찬바람이 강해졌다.

쌀쌀한 기운을 안겨주는 가을바람을 맞은 가로수 잎과 은행이 발밑으로 우수수 떨어진다.


설악산은 단풍이 절정이라는데 검단산과 예봉산은 초록의 기세만 꺾이고 나뭇잎은 누렇게

말라가며 단풍 색깔을 내지 못한다.


2017.  10.  19.  07;00

경찰차가 요란하게 선도를 하고 그 뒤에 갑자기 자전거 부대가 나타난다.

갈색과 회색 톤으로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 거리의 풍경은 순식간에 오색으로 변한다.



07;20

산들 사이 낮은 들판에는 황금물결이 출렁이고 누런 들판을 바라보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초록이 뚝뚝 떨어지던 들판이 누렇게 물들어가고 어느 한편엔 벌써 허허(虛虛)롭게 텅 비어간다.


벌판의 비어진 자리를 안개가 메우고, 시원한 바람을 맞고자 차창 문을 여니 찬바람이 들어온다.


10;30

운악산을 다녀온 후 한동안 악산에 대한 트라우마(trauma)에 빠졌다.


쉽게 오르내렸던 운악산 바위절벽에 질려 운악산을 지리산에 이어 두 번째로

나의 산행 버킷리스트에서 지우자고 생각을 하지만 그 산이 그리우면 언제든 또 찾겠지.


악산(岳山)인 운악산과 악산(嶽山)인 지리산에 질리고도 오늘 또 설악산의 바위덩어리인 

신선대를 찾으니 인생이란 모순덩어리인 모양이다.


오늘은 고즈넉한 화암사를 거쳐 신선대에 오르는 약 4.1km의 일정이다.


화암사 하늘에 기러기 떼가 편대비행을 하더니 순식간에 구름 속으로 사라지고

먹구름이 산 위에서 아래로 밀려 내려온다.


비소식이 없었는데 소나기를 뿌리려나.


금강산 화암사에 도착하자 수바위가 나를 반긴다.

화암사 창건을 한 진표율사는 물론 이 절의 역대스님들이 수도장으로 사용하였다는 수바위.


계란모양의 바탕 위에 왕관 모양의 또 다른 바위가 있는데 윗면에는 길이 1m, 둘레가

5m의 웅덩이에 물이 항상 고여 있어 가뭄이 들면 웅덩이 물을 떠서 주위에 뿌리고 기우제를

올리면 비가 왔다고 전해져 수바위(穗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바위의 생김이

뛰어나 빼어날 수(秀)자로 보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로는 화암사는 민가에서 멀어 시주를 구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어느 날 두 스님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수바위에 조그만 구멍이 있으니 그곳을 찾아

끼니때마다 지팡이로 세 번 흔들면 두 사람분의 쌀이 나온다고 말한다.


그 후 두 스님은 식량 걱정 없이 편안하게 불도에 열중하였으나 몇 년 후 객승(客僧)이

여섯 번 흔들며 네 사람분의 쌀이 나올 것으로 욕심을 부리자 쌀이 나오지 않고 피가 나왔다고

한다.


객승의 욕심으로 산신의 노여움을 사 그 후부터 수바위에서는 쌀이 나오지 않았다는

전설은 영남 알프스의 가지산 쌀바위 전설을 기억나게 한다.


신라 36대 혜공왕 5년 진표율사가 769년에 창건한 화암사는 무려 1,248년이 넘는 세월이 쌓인

천년고찰인데 설악산 화암사가 아니고 금강산 화암사로 명칭이 되어 있으니 무슨 연유가 있을까.


처음엔 화엄사라 하였다가 1912년 화암사로 이름을 고친 절의 종루에서 은은한 종소리가 들린다.

쌀의 전설을 품은 수암(穗岩)이 볏가리를 닮아 화암(禾岩)이라고도 불렸기에 금강산 화암사가

되었다는데 진표율사는 우리나라에 참회불교를 정착시킨 법상종의 개조(開祖)라고 한다.


그는 이 절에서 수많은 대중들에게 화엄경을 강의하였으며, 진표율사에게 화엄경을 배운 제자

100명 중 31명이 어느 날 하늘로 올라가고 나머지 69명은 무상대도(無上大道)을 얻었다고

하는데 천성산 정상에서 원효대사의 전설과 비슷하다.


안내판에 의하면 이곳 일주문부터 금강산이 시작되기에 금강산 화암사로 명칭이 되었다는데

지도를 아무리 확인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화암사 경내로 들어서지 않아 삼청각을 찍을 수는 없어도 그곳엔 금강산 천선대, 상팔담,

세전봉, 삼전대 등 금강산의 이채로운 풍경이 그려져 있으며, 그 그림이 화암사가 금강산

1만 2천봉 8만 9암자 중 남쪽에서 시작하는 첫 봉인 신선봉 첫 암자라는 것을 증명한다며

삼성각의 영험성과 수바위의 절경으로 화암사는 전국에서 제일가는 기도도량으로 알려졌다.


10;37

다리를 건너자 2km 거리의 신선대(성인대) 오름길이 시작된다.

수바위로 오르는 된비알을 피해 호젓한 숲길로 들어서자 수십 명이 넘는 산악회 인원이

몰려들고 조용한 산길은 북새통이 된다.


목청이 큰 여인들의 시끄러운 소리에 오도송을 읽을 겨를도 없이 나도 인파에 묻혀

산에 오르기 시작한다.


오도송(悟道頌)이란 고승들이 불도의 진리를 깨닫고 지은 시가(詩歌)를 말하는데

읽을 여유가 없으니 오늘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긴 글렀나 보다. 


숲길로 들어서자 꿀풀과의 꽃향유가 꿀 냄새를 풍기고 카메라를 대니 꿀을 빨던 벌이

허공으로 날아간다.


10;53

숲길을 걷는다.

설악산엔 김시습, 김창흡 등 은자(隱者)들이 세속을 등지고 살아 은자(隱者)의 산이라고도

한다.

김시습이 만수산에 들어가기 전 설악산에 머물렀다는데 그곳이 여기 화암사인가 기억을

더듬으니 화암사가 아니고 오세암이구나.


만수산으로 향하던 김시습은 만류하던 행자에게

"만수산은 험하고 외진 곳이기에 10년이 지나도 나를 귀찮게 할 관리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 시절에는 관리가 보기 싫으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면 되었지만, 요즘에는 아무리

깊은 산속으로 피신을 해도 와이파이가 터지면 매스컴에 나오는 관리를 피할 수가 없으니

스를 가급적 보지 않으려는 나의 심정을 그는 수백 년 전 미리 알았던 거다.


나 역시도 김시습과 같이 점점 권부(權府)의 독선에 대해 실망을 하고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선수들을 미워하는 아웃사이더가 되어간다.


단풍이 절정인 설악산의 한낮,

가을과 겨울사이의 길목이 되려면 아직도 먼데 성질 급한 나무의 앙상한 가지에 위태롭게

붙어있는 몇 잎의 나뭇잎이 안쓰럽게 한다.


남은 푸른 잎과 붉디붉은 고운 단풍들이 아우러진 고운 풍경이 내 눈과 가슴에

가득 남았는데 이유 없는 슬픔이 저미어 온다.

가던 길 우두커니 멈춰 서서 숨을 몰아쉬고 붉은 단풍잎을 바라본다.


산행을 하며 지난 세월을 반추하며 사색에 잠기면 더 고독해진다.

짙어지는 외로움을 달래줄 누군가를 애써 기다리지 않아도 가을은 사랑이 그리운

계절이기에 더 허전한지도 모르겠다.


산은 형형색색으로 온갖 치장을 부렸다.

오색이 아니라 칠채색으로 변하는 단풍은 몽환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설산(雪山), 설봉산(雪峰山), 설화산(雪華山), 설뫼(雪嶽)라고도 불리던 설악산에

오늘은 단풍이 물결을 이뤄 파도치니 금강산보다도 멋진 풍악산(楓嶽山)이구나.


한가위부터 쌓이기 시작한 눈이 하지(夏至)에 이르러 비로소 녹는다는 설악의 설(雪)은

우리 고어(古語)로 신성, 숭고, 고결, 생명을 뜻한다고 한다.


어느 책이었지?

고려 말 강원도 도지사였던 안축(安軸)이 '모운반권산여화(暮雲半捲山如畵)'라고 시를

읊었는데,

"저문 날 구름이 반쯤 걷히니 산은 한 폭의 그람처럼 아름답구나."라는 뜻이다.


10월도 하순에 들어서니 완연한 가을빛을 담은 산도 붉고 단풍빛을 받은 사람조차 붉다.

숲에서는 귀뚜라미가 울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을 타고 가을이 내려온 모양이다.


새색시 연지곤지 찍듯이 구석구석 내려앉은 단풍을 보며 세상 걱정근심 잊었는데

갑자기 구수한 믹스커피가 생각나는 건 무슨 뜻일까.


아~풍경은 빛만 나는 게 아니라 구수한 향기까지 뿜어내는구나.

이 나이 되도록 풍경의 향기를 몰랐으니 인생을 헛살은 모양이다.


역시 설악의 가을은 대단하고 사람이라면 천하절색 미인이다.

천불동에 주저앉아 술 한잔을 하며 풍경에 홀렸을 때도,

주전골 홀림골에 홀딱 홀려 중국 장가계보다 더 멋진 풍경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었을 때,

설악은 나의 눈을 멀게하고 마음을 사로잡아 돌아갈 수 없게 만들었기에 다시 설악을 찾았지.


만경대 경치가 뛰어나다고 해 거침없이 올랐건만 전날 내린 작은 비에도 소심해진 당국에

욕은커녕 먼발치에서 만경대를 바라보며 감탄만 하다 씁쓸하게 발걸음을 되돌리게 한 설악이

무엇이 좋아 오늘 또 찾아왔을까.



단풍터널을 지나자 숲은 소나무에서 참나무로 천이과정을 밟는 모습을 보여준다.

산객들의 마르지 않고 끝없이 이야기가 이어지는 숲속의 짙었던 단풍은 다시 연두색으로

변하고 산그늘은 옅어진다.


11;30

솜다리를 찾다가 누리장나무 열매를 만난다.

봄에 한창 꽃을 피웠다가 때가 되니 누리장나무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다.


씨앗에서 싹이 트고, 잎이 나오고, 꽃이 피고 가을이 되어 열매를 맺었으니

이럴 때는 유위(有爲)의 자연라고 하여야 하나, 아님 무위(無爲)의 자연이라고 하는지

어느 게 맞는지 모르겠다.


열매를 맺지 못하면 쭉정이로 그칠 텐데, 다행히 열매가 씨앗이 되었으니

다시 세월을 뛰어넘어 새로운 나무를 탄생시키겠지.


자연에선 많은 것이 결실을 맺었고, 늦은 것은 마지막 몸부림을 치며 결실을 맺으려

이렇게 안간힘을 쓰는구나.



대화를 하다 폰의 달력을 보니 올해도 두 장만 남았다.

인생이란 저물어 가는 게 아니라 여물어 가는 거라고 애써 자위를 한다.


완만한 오르막이 이어지다 숲이 끝나는 지점에서 하늘이 툭 터진다.

여기가 신선대로구나.


11;42

제법 멋진 바위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 신선대(성인대 653m) 정상에 선다.

해발고도는 고작 645m(Gps상 653m)에 불과해 설악의 이름난 봉우리나 미시령보다도

낮지만 조망은 탁월하다.


설악에서 산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단풍뿐이 아니다.

여기 신선대는 바위가 흰 꽃을 피웠으니 바위가 꽃이로구나.


아주 먼 옛날 천상의 신선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신선대 성인바위가 하늘을 찌른다. 


천성산 정상부에도 창녕 조씨의 전설이 있는데 여기도 조씨 성(性)을 가진 전설이 있다.


조씨 성을 가진 나그네가 모닥불을 피우고 쉬고 있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났기에 모닥불에

굽고 있던 조약돌을 호랑이 입에 집어넣었고, 호랑이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죽을 때 뱉어낸 돌의

흔적 일부가 아직까지 남았다고 하며, 그 호랑이는 훗날 토성면의 성황신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정상부의 거북이를 닮은 머리 부분이 미시령을 향해 기어가는 모습이라는데 그런 느낌은

들지 않고, 오히려 하늘을 향해 서있는 입석(立石)의 모습이 성인(聖人)과 같은 모습이라

성인대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성인대 아래로 보이는 장엄한 풍경은 하나하나가 꽃이니 여기가 바로 화엄(華嚴)의 세계로구나.

가을이 가면 나무도 새도 구름도 바람도 모든 게 티끌처럼 가볍게 사라지려니 또한 무량(無量)의

세계이기도 하다.


고성과 속초의 넓은 들판 위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하고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소금기를 잔뜩 머금었고 산꼭대기에서 동해의 만경창파를 보는 것만으로도 온갖 시름이

사라진다.


황철봉, 상봉(1,244m)과 신선봉(1,214m)에 소나기구름이 덮었다.

얼마나 쏟아지려나.


산자락이 붉게 노랗게 물들었다.

겨울로 가는 길목이 멀었는데 써늘한 바람에 고운 단풍이 바르르 떨고, 성질 급한 나뭇잎은

허공을 날다 멀찌감치 내려앉는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 중 남쪽에서 시작된다는 첫 봉 신선봉은 비구름에 쌓여 몸부림을 친다.

지도를 보니 아직도 입산통제구역으로 되어있는데 오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박무(薄霧)로 동해바다는 보이지 않고 금강산의 남쪽 제1봉인 신선봉의 당당하고 장쾌한

파노라마도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능선 아래로 미시령 옛길이 구절양장처럼 구불구불 내려오고 터널로 쉴새없이 차들이

드나든다.


11;50

울산바위가 지척이다.

전국의 바위들이 금강산에 모이는데, 울산에서 뒤늦게 도착한 울산바위가 금강산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설악산 저곳에 걸쳐 앉았다는 진부한 전설이 이야기 하는 곳을 바라본다.


사람들 대부분은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최고로 치고 설악산은 금강산의 아류(亞流)로 치는데,

오래전이지만 금강산을 다녀온 나는 금강산보다 설악산이 더 아름답다고 여겨진다.

물론 금강산도 아름답지만 어딘지 모르게 느끼한 기분이 드는데, 바라만 봐도 섬세함을 겸비한

장쾌한 설악산은 여느 산이 따라오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그랬더라, 기억을 더듬는다.

"금강수이불웅(金剛秀而不雄), 지리웅이불수(智異雄異不秀), 설악이수웅(雪嶽異秀雄)이라,

금강산은 수려하나 웅장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웅장하기는 하나 수려하지 못하며,

설악산은 수려한데다 웅장하기도 하다."고 평을 했는데, 겨우 5차례 오르고 평을 하기가

우습지만 나도 이 평에 대해 동감을 한다.


통일신라시대에 신라는 전국의 명산대천을 대사·중사·소사로 나누었는데 그중 설악(雪岳)이

상악(霜岳 금강산)과 더불어 소사의 24곳에 포함된다.


풍성하던 은행잎도 벚나무 잎사귀도 바짝 마른 낙엽이 되어간다.

늦도록 머물렀던 더위가 가을비 한방에 무너져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찬바람이 메꾼다.


거리의 풍경도, 산의 풍경도 건조해지고 왠지 모르게 우울감이 커져간다.

아직 저녁 6시까지는 태양이 있으니 일조량 부족으로 호르몬 균형이 깨진 거도 아닌데

시끄럽던 봄과 여름이 사라지고 가을에 들어섰다는 허무감과 아쉬움 때문인가.


요즘 들어 부쩍 우울감이 깊어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내 삶속에 '나'는 없고 '타인'만 존재하는 거도 아닌데 왜 그러지?

그냥 맹목적으로 나 스스로를 사랑하면 되는 단순함이 부족한 모양이다.


마음 무너질 일이 많은 삶이지만 나 자신을 스스로 믿고 살아가야 하는데, 금년 가을은

유난히 더 쓸쓸함을 탄다.


쓸쓸함을 타기에 이 가을은 유난히 더 예민하고 우울한지도 모르겠다.

가을엔 남성 호르몬이 많이 분비 되면 더 즐거운 게 아닌가.


일조량이 줄어들고 왕성했던 초록이 기운을 잃으면서 기분을 좋게 해주는 호르몬 '세로토닌'

분비기 감소하면서 우울감이 커지는 모양이다.


전문가들은 남자가 양(陽)의 기운이라 가을로 변하는 시기에 더 예민해질 수 있다고 하는데,

한 해라는 기간을 설정하고 볼 때 남은 시간이 보낸 시간보다 훌쩍 짧아져서겠지.


그림 같은 울산바위는 점묘화로 그린 한 점(點)의 풍경이 되었다.


               <                   신선대


                      신선대 오르니 설악의 산자락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산의 파도 속에 울산암이 바람에 흔들리네.


                      풍경을 이어주는 누운 소나무 가지엔

                      차가운 바람이 눌러앉고

                      설악의 끝자락인 울산암과 금강의 첫 봉우리

                      신선봉이 자태를 겨누는구나.


                      겨울로 가는 길목이 아직 멀었건만

                      차가운 바람에 솔잎들이 바람에 스쳐 파르르 떨고

                      신선대를 오른 산객의 마음을 허허롭게 한다.            석천  >


성인대 평평한 곳이라면 아무데서나 거리낌 없이 삼삼오오 모여 환담을 한다.

여기에선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쉼 없이 오른 대가로 멋진 풍경을 내어주는 설악산에 홀려 멍하니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이젠 혼자 있어도 오히려 편하고 여유를 느낄 때도 많다.


나는 친구가 많다.

그중 컴퓨터와 책은 나에게 헤어질래야 헤어질 수 없는 친구다.

때로는 고독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지만 벗들과 정상주를 한잔하며 마음을 푼다.


울산암이 구름에 가려지기 전 한 장이라도 더 찍을까 다시 일어선다.

큰 산 아래를 멀리 비추던 햇살은 사라지고, 나무와 바위들은 색이 엷어지며 겹겹이

포개진다.


신선대에서 낙타바위 쪽으로 혼자 발걸음을 옮긴다.

풍경은 더욱 깊어지고 거대한 너럭바위를 딛고 서니 울산암이 코앞에서 웅장하게

펼쳐지고 공룡의 등줄기를 닮은 연봉들이 장쾌한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바위 끝자락에 사람들이 개미처럼 느릿하게 움직이고 하늘은 금세라도 비를 뿌릴 태세이다.


내가 지금 걷는 길은 은자(隱者)의 길이다.


툭하면 산불방지기간으로 설정해 입산금지를 시켰고,

눈이 오면 위험하다고 통행금지를 시켰던 산등성이를 걷는다.


수시로 통행금지를 시켰던 은자의 길이 작년 말에 완전해제가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내가 온다니 김시습과 김창흡의 반열에 나를 올려 논 모양이다.


김시습은 금강산을 거쳐 오세암에서 머물렀다가 만수산에 들어가서 생을 마치며 전설을 남겼고,

김창흡은 산유산기를 남기고 홍태유는 설악유람기를 남겼다.


나는 무엇이라 제목을 써 유산기(遊山記)를 남길까.

단풍 숲에서 어느 여자 산객이 설악산에 불이 났어요라고 통화하던 생각이 난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다라고 길재선생이 읊었던가,

기억을 더듬으며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다.


12;48

신선대에 다시 선다.

성인대라 불리는 신선대에서 설악의 소리를 들으며 하산을 해야겠지.


13;07

시루떡바위가 나온다.

누군가 정성을 들여 겹겹이 쌓아올린 바위는 시루떡의 모양과 닮았다고 하는데,

나는 기백산의 누룩담 책바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찬바람에 몸서리를 치는 단풍잎이 갈 길을 서두르는 나에게 서두르지 말라 한다.

서두르지 않으면 빛바랜 인연의 시간이 멈추려나,

어느새 비어가는 가지엔 침묵이 흐르고 나는 가쁜 숨을 토해낸다.


밑에서 장엄한 모습으로 보이던 수바위에 성큼 다가선다.

바위를 타고 정상에 오를까 욕심이 생기나 이내 포기를 한다.


균형이 깨진 몸으로 오르기엔 무리일 거도 같고, 오르자니 운악산에서 긴장하던 일이

생각나 몸이 움츠러든다.

그냥 먼발치에서 진표율사와 이곳에서 도(道)를 추구하던 옛 고승들을 떠올린다.


단체로 온 산악회 회원들로 시끄러웠던 수바위 앞마당은 금세 조용해진다.


이 길 위에 영원히 머물었으면 좋겠다.


수암에 내려앉았던 햇볕도 쉬어가는구나.

산행도 함께 오르고 내려오며 늘어나는 추억을 반추해야겠다.


13;36

거대한 바위에 금강산 화엄사(華巖寺)라고 새겨진 글씨가 풍화작용에 의해 서서히 사라지는데

유려한 명조체로 쓴 글씨는 누가 썼는지 이름이 없다.


13;40

약 4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신선대 산행은 여기서 끝내고 동명항으로 이동을 한다.


하늘과 바다와 산이 어우러지는 동명항에서 파도소리 머금은 술잔을 기울이다

바닷가 방파제에 선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폐부 깊숙히 넣으니 금세 몸이 가벼워진다.




월호 스님은

행복은 소유를 분자(分子)로 욕망을 분모(分母)로 하는데, 분모인 욕망이 줄어들어야

행복이 커진다며,

욕심과 분노라는 분모를 줄이고, 복 짓기와 보시로 분자를 늘리라고 권유를 한다.


18;00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니 날은 점점 짧아져 오후 6시인데도 어두워진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본다.


22;00

밤이 되자 고요가 조용히 찾아오고 그믐달이 실낮처럼 아슬아슬하다.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 순정(純靜)한 고요를 설악산의 밤은 지니고 있구나.

오늘밤은 임자 없는 그믐달을 즐겨야겠다.


10.  20.  07;50

산속에서 잤으니 눈을 뜨면 산이 보이고 눈을 감으면 산의 소리가 들려야 하거늘

생각지도 않은 강아지가 찾아와 빵을 달라고 조른다.


요즘 한일관이라는 대형 음식점 여사장이 엘리베이터에서 개에 물려죽는 사건이

발생해 매스컴에서 시끄럽다.

개를 개답게 키워야 하는데 개를 사람답게 키우니 문제가 된 거다.


개를 사람답게 키우려면 예절도 사람답게 가르쳐야 하는데 목줄과 입마개 등 기본을 지키지

않았으니 대형사고가 난 거다.


나도 강이지를 좋아해 수십 년을 집안에서 길렀지.

하지만 밍키를 노환과 병으로 보내고, 토토를 사돈집으로 파양한 후 더 이상 기르지 않는다.


개는 자신보다 인간을 더 사랑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사람들은 개에 대해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


개의 서열개념과 복종훈련은 필요 없다.

반려견은 주인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 존재하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가 사람으로부터 가장 안정감을 느낄 때는 만져줄 때가 아니라 그냥 옆에 있어주는

거라고 전문가들은 말 한다.


개가 느끼는 불안과 슬픔이 스트레스가 되어 목줄이 없을 때 그냥 남을 공격하기에

그런 개의 특성을 모르는 사람들은 개를 키우면 안된다.

새끼를 나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믹스견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설악에 여러 번 올랐어도 운이 따라주지 않았는지 솜다리(에델바이스)를 만나지 못했는데

뜻밖에도 숙소 앞 화분대에서 왜솜다리를 만난다.


언젠가는 야생으로 핀 솜다리를 제대로 만나겠지.


08;50

설악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빛나고 아래 계곡엔 물이 흐른다.

멈춘 듯 보이는 계곡물은 결코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아래를 향해 묵직하고 거대한 흐름은 계곡물이 신선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09;40

우리를 태울 케이블카가 하늘에서 내려온다.

이곳에서 권금성까지 걸어 오르려면 1시간 30분이 넘게 걸린 텐데, 이 케이블카를 타면 불과

5분만에 권금성에 오른다.


케이블카에서 바라보는 울산암은 어제 신선대에서 본 모습과 다르다.

산은 보는 각도와 방향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신흥사 위로 보이는 울산암은 자연이 점묘화(點描畵)로 그린 듯 줄마저 선명하다.


울긋불긋 단풍으로 채색이 된 오름길에 중국인은 별로 보이지 않고 히잡(Hijab)을 쓴

동남 아시아권 관광객과 유럽계 사람들이 북적인다.



권금성에 올랐으나 성터의 흔적은 거의 사라졌다.

둘레 약 3,500m의 설악산성은 대청봉에서 화채능선 정상부와 북쪽 산 끝을 에워싼 천연의

암벽요새라고 한다.


권(權)과 김(金)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고려 말 몽고가 침입했을 때 이곳에서 난리를 피했다고

해서 권금성이라 하는데,

성의 대부분은 자연암벽을 이용하고 일부는 할석으로 쌓았다.


인근의 토왕성(土王城)과 규모가 비슷하다며 좌우로 계곡을 이루어 물이 흐르기에

입보농성(入保籠城)에 알맞다는 산성에 올랐지만 물소리는 들리지 않고 바람소리만 휑하다.


참 멋진 풍경이다.

내가 여기서 무엇이라 평을 할까.

설악은 아름답다?

설악의 장대한 풍경을 바라보며 내가 설악에 대해 평을 하는 순간 설악의 풍경은 축소되는

거라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숨이 가빠도 말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으니 투정을 부리지 않고 말없이 바라본다.


왼쪽은 대청봉으로 오르는 화채능선 길이다.

집선봉 길은 아직도 자연휴식년제로 막혔고, 망군대 봉우리와 소만물상은 침묵을 지킨다.


저 너머가 비선대와 천불동 계곡인데 그곳에 가 단풍에 묻히고 싶다.



수많은 관광객이 감탄사를 내며 사진촬영에 열중이고,

히잡을 쓴 여인은 원더풀이라며 나에게 폰카 촬영을 부탁 한다.


묵묵히 견디어냈던 세월,

여기에서 바위와 가을의 소리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까.


비록 중국어는 들리지 않더라도 수많은 관광객이 붐비는 권금성에서 나는 또다른 행복을 맛본다.

1987년 15인승 케이블타를 타고 오른 후 무려 30년 만에 50인승 케이블카를 타고 이곳에 올랐다.


양양군에서 추진하는 오색에서 끝청으로 이어지는 케이블카 사업이 문화재위원회에서 또 부결이

되었다.

남설악 오색에서 끝청(1,480m)사이 3.5km의 케이블을 설치하는 사업인데 천연기념물 217호인

산양이 56마리 서식하는 것을 명분으로 환경단체들은 환경 적폐로 지목하고 설치 반대운동을

펴왔는데 환경단체가 워낙 무섭고 높은 존재로 부각되어 공무원들은 꿈쩍을 못한다.


게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애 오른 수많은 관광객들의 행복한 미소를 보며

기왕 하려면 오색에서 끝청 보다는 아예 중청이나 대청봉으로 하여 스위스의 융프라우 같이

관광 명소가 되어 산을 좋아하지만 장애인 등 오르지 못하는 사람, 관광객을 고려하였으면

좋겠다.


한걸음씩 정상에 수많은 산객이 올라 훼손시키는 거보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 밟는 면적이

적어 훼손이 덜되지 않을까.


10;30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한다.

공론화위원회는 공사재개로 올바른 선택을 했다.

역시 국민은 현명했다.

상당한 차이로 원전 5,6호기를 공사재개로 결정을 한 거다.


영화 한 편으로 혹세무민(惑世誣民)을 하며 탈원전을 부르짖고, 국가의 백년대계를

그르치는 자는 개관사정(蓋棺事定)이라 관(棺) 뚜껑을 덮은 후에도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신고리 5, 6호기의 공사 관련 시민참여단의 선택은 엄중했고,

고작 참여단의 471명도 설득하지 못한 허술하고 선동적인 탈원전 공약으로 더 이상 국력을

낭비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를 대통령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무의미한 논란으로 국민의 아까운 혈세 1,000억 원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니 앞으로 또 얼마나 낭비를 하려는지 아무도 모른다.


문득 내가 불교인은 아니지만 부처님의 팔정도(八正道) 중 정견(正見)이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정견이란 '편견 없이 바르게 보라'는 뜻이다.

정견에 따라서 개개인은 사물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데 모름지기 권력을 잡은 자는

국민들에게 가치관의 혼란을 주어서는 안 된다.


견해가 잘못되면 수단과 목적을 혼돈하게 된다.

따라서 정견(正見)의 눈으로 세상을 마주보며 흔들림 없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때

의연하게 대처하고 중심을 지킬 수 있는 거다.


                                                        2017.  10.  19~20 설악산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