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1. 29. 07;00 여행 3일차
젊어서 찾지 못했던 하롱베이,
1997년 IMF 외환위기로 나라가 어려울 때니 주택은행 영등포역지점장으로 근무할 때구나.
어느 날 조선일보에 하롱베이에 관한 기사가 떴다.
난 조직의 장으로 쉽게 여행을 떠날 수 없는 몸이기에 전국제지 사장으로 계신 아저씨에게
권유를 하고, 아저씨는 다녀와서 바다의 천국이라고 했던 이야기를 지금까지 기억을 하고
있었지.
07;34
배에 올라 구명조끼를 확인하고 베트남 고유의 모자인 넝(No'n)을 쓴다.
하롱베이로 오는 동안 전쟁세대는 전멸하였는지 노인을 보지 못했다.
베트남의 고엽제 환자는 약 200만 명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현재 일만여 명이 고통을 받고 있다.
한국인 근로자 등이 만든 한국인의 2세인 라이따이한이 베트남에 약 3만 명이나 된다는데,
이들에게 한국국적을 부여한다면 저출산에 따른 인구감소에 많은 도움이 될 텐데라는 아쉬움을
갖는다.
통킹만의 북서부에 있는 하롱베이(Halong Bay),
중공(中共)에서 파급된 공산주의가 북베트남에 전파되고 이어 남베트남을 경유하여
동남아 전체에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것을 걱정한 미국은 통킹만에 전함 두 척을 배치하는데
이에 반발한 북베트남은 포격을 하여 그중 한척이 피해를 당하지 이를 빌미로 미국과 북베트남이
전쟁을 벌인다.
1964년 8월 2일 미국 제7함대 소속 구축함 매덕스호와 터너조이호가 북베트남군의 어뢰정에게
공격을 당했다는 보고를 받은 미국의 존슨 대통령은 북베트남을 보복 폭격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미국의회는 거의 만장일치로 결의안을 채택하여 전쟁은 시작된다.
07;40
해무 속에 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맑게 갠 하늘아래에서 반짝이는 보석과 같은 섬을 보기는 틀렸기에 서운한 마음을 다스리려
심호흡을 한다.
언젠가 광고에서 보았던 풍경,
물안개가 낮게 깔린 신비스런 섬들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수십 척의 유람선은 관광객을 태운 채 선유(仙遊)를 하고, 고기잡이배들은 이들에게 맛난
생선을 주려고 그믈질을 한다.
신비스런 풍경을 보며 베트남 전쟁이 생각난다.
베트남 전쟁은 1973년 종결이 되는데,
우리나라는 1964년 9월 의무반과 태권도 교관단 140명의 파견을 시작으로,
1965년 3월에는 공병, 수송 등의 임무를 가진 비전투요원 2,000여 명의 비둘기 부대를 추가로
보냈다.
그해 10월에는 채명신 장군을 사령관으로 해병대인 청룡부대, 육군 맹호부대의 2만여 명을
전투 병력으로 보내며 참전 기간 동안 약 5만 명의 전투 병력을 상주시켰으며 1973년
철수할 때까지 연인원 32만 명 정도를 참전 시켰다.
전쟁에서 한국군이 5,099명의 전사자와 11,232명의 부상자가 나왔는데 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국 경제는 많은 이득을 보았고, 팬텀기의 도입과 M16 소총공장을 만드는 등 자주국방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일본이 6.25전쟁에서 큰 이득을 보았듯이 한국은 베트남과의 무역에서 2억 8,300만 달러의
흑자를 올렸으며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사업 수익은 7억 5,000만 달러에 달했다고
통계에 잡혔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은 베트남에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베트남 참전에 대한
간접 사과를 하였으며,
"베트남과 한국은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이자 친구가 되었다"고 전했는데,
예전에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마음의 빚이 있다고 하였지만 기왕에 사과를 하려면
더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독일의 역대 대통령과 수상들이 폴란드에 갈 때마다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는 모습과
많은 대비가 된다.
답답한 배 안에서 밖으로 나와 눈길을 붙잡는 자연경관을 감상한다.
해무(海霧)로 가렸어도 웅장하고 화려한 풍경이 나타난다.
스펙터클, 그렇다.
이곳이 품고 있는 자연 풍경이야말로 지구상에서 보기 드믄 스펙터클한 풍경이다.
자연의 순환과 흐름 속에서 내 삶의 법칙은 무엇인가.
무릇 여행을 한다면 자연도 가슴으로 만나야 하는데 오늘은 눈과 가슴으로 만나며
호강을 한다.
스펙터클한 풍경을 감상의 대상으로만 여기는게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멋진 풍경 속에서는 무념(無念)으로 경관에 함부로 한눈을 팔지 않아야 하는데 풍경에 빠진
내 가슴은 두근거린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여행기간 내내 매일 비소식이 있지만 워낙 맞지 않는 예보라 여기서 기상예보는 믿지
않는다고 한다.
빗방울이 떨어지기에 서둘러 방수재킷과 모자를 쓴다.
바다는 호수보다 잔잔하고 배는 유리알 같은 바다를 미끄러진다.
베트남 여행에 뜻을 가졌을 때 주변사람들은 공산권 국가에 왜 가며,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그들은 이런 점을 간과한 모양이다.
사실 공산주의의 반대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이다.
민주주의의 반대는 독재인데 이를 착각해 공산주의라고 하면 팩트(Fact)가 틀린 거다.
굳이 따진다면 베트남의 호치민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사회주의자이며 민족주의가 맞다.
3천여 개의 섬들이 점점이 떠있는 하롱베이,
배도 아닌 수천 개의 섬이 바다에서 춤춘다.
하롱베이 바다는 3무(三無)가 특징이라고 한다.
파도가 없고, 갈매기가 없고, 염도가 약해 바다비린내가 없다는데,
실제로 파도와 갈매기를 보지 못하고 물비린내도 약하니 속설(俗說)이 맞긴 맞는 모양이다.
섬을 실루엣으로 촬영을 하니 마치 명품 조각품들이 살아 꿈틀거리는 모습이다.
박무(薄霧)가 천천히 춤추는 바다와 섬,
태양의 위치에 따라 경관이 변하겠지만 지금 해무 속의 경관은 또 다른 정취를 보여준다.
학자들은 중국 측 계림으로부터 남쪽 난빈 지역까지 광대한 석회암 지대이고 풍화작용으로
깎여나가 지금의 위대한 자연유산이 되었다고 말한다.
07;50
대한항공 광고의 주인공인 낙타봉을 스친다.
베트남 여성 사진사가 동행을 하여 기념사진을 찍는다.
우리나라의 국제결혼 대상자 1위는 중국이었으나 요즘은 베트남 신부가 단연 1위로
도시 아가씨는 오지 않고 대부분 시골에서 오는데 비용은 약 삼천 삼백만 원 정도 들며
요즘은 부작용이 많아 베트남 정부에서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라고 설명을 한다.
중국 국경 근처에 위치한 하롱베이는 약 1,500㎢의 넓이로 바다의 구이린이라고 불리며
베트남 제1의 경승지로 알려졌는데, 구이린은 중국 장족의 자치구로 카르스트 지형으로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여 아름다운 곳이다.
1962년 베트남의 역사, 문화, 과학의 보존지로 지정되었고, 199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석회암 구릉대지가 오랜 기간 침식되어 생간 3,000여 개의 섬과 기암이 바다위로 솟아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날카로운 바위와 단애(斷崖)를 이루는 절벽을 보며 감탄을 하고 한숨을 내쉬며
드론으로 촬영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내 생애 이런 절경을 볼 줄이야,
금강산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유럽의 알프스, 캐나다 밴프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감흥을
여기에서 느끼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하롱베이의 하롱은 아래 하(下), 용룡(龍), 베이는 물굽이 만(灣)으로 하롱만이다.
하늘에서 용이 바다에 하강한 곳이라는 전설을 가졌는데 베트남 곳곳이 전설속의
동물인 용(龍)과 밀접한 관계에 있어 우리의 문화와 비슷하다.
하늘에서 내려온 용이 바다에 둥지를 틀기 위해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하는 모습이
울뚝불뚝한 섬으로 변했다는 전설과,
산에 사는 용들이 해안을 향해 달리면서 꼬리를 휘저어 계곡과 협곡을 만들었고,
마침 용이 바다로 뛰어들자 꼬리로 파낸 지역이 바다로 되면서 높은 부분은 섬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서로 다른 섬을 찍다가 어안(魚眼)렌즈를 사용하여 찍으니 바닷물이 사방으로 벗어난다.
08;12
베트남의 200,000만 동짜리 화폐에 등장하는 단흐엉 바위에 다가간다.
소원바위라는 뜻인데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는 모습이다.
예전에 하롱베이는 석회암지대라 고기잡이가 금지되었기에 어부들이 먼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갈 때 이 바위에 소원을 빌고 가면 항상 만선(滿船)을 이루게 해주었다는 소원바위를 보며
나는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빈다.
연인들이 좋아하는 뽀뽀바위를 한 바퀴 돈다.
두 개의 바위가 있는데 이 방향에선 붙어있으나 옆으로 가면 서로 떨어졌다.
09;00
항루원으로 가기위해 모터보트로 옮겨 탄다.
09;26
무동력인 배를 사공이 노를 저어 해식동굴로 접근을 한다.
하롱베이 비경 중 하나인 항루원으로 들어가는 문은 작은 해식 동굴이다.
천정엔 석회암이 흘러내리고, 어느 구석에 박쥐가 붙어있을 만큼 음산한 분위기다.
항루원에 들어서지 원숭이들이 나를 반긴다.
안내자가 건네주는 바나나를 던지니 어린 원숭이들은 잡으려 애쓰지만 어른 원숭이는
태연하다.
건너편에서 우두머리 원숭이가 나타나자 새끼 원숭이들은 덩굴을 잡고 잽싸게 돌틈으로 사라지고
엄격한 위계질서를 자랑이라도 하듯 우두머리 원숭이가 바나나를 까먹는다.
원숭이들은 원래 이곳에 없었는데 인위적으로 풀어놓았다며 저희들이 잘먹고 잘 번식을
한다고 한다.
해식동굴을 통과하자 수상 원형경기장 같은 바다가 나온다.
다같이 함성을 지르니 반대편에서 금세 메아리가 되어 귀청을 때린다.
영화 인도차이나와 굿모닝 베트남의 배경이 되었던 항루원은 특이한 해상 분지의 모습이고,
출입을 할 수 있는 동굴은 유일하게 한곳뿐이다.
항루원을 한 바퀴 돈다.
중국의 원나라가 베트남을 침공하자 이곳 하롱베이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는데,
원나라 군사들을 급습할 때 매복하고 숨어있던 항루원에서 다시 함성을 질러본다.
우리는 일본과 중국, 몽고 등의 침략을 수없이 받았다.
베트남 또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1,000년 이상 외적의 침략이 끝이 없었다.
송, 명, 청, 원 등 중국뿐만 아니라 캄보디아 심지어는 태국에 이르기까지 끝이 없었고
몽고의 침략도 있었지.
프랑스에게 독립을 쟁취한 뒤 미국과 전쟁을 벌였고, 전쟁이 끝난 후 6년만에 중국과 전후(戰後)
처리문제로 대립하자 중국이 550대의 탱크를 앞세우고 20만 명의 병력으로 1979년 2월 17일
침공을 한다.
과거 역사상 오랫동안 베트남은 중국의 조공국(朝貢國)으로 있었고, 중국이 무력에 의한
통합도 여러 차례 시도를 했다.
친구가 묻는다.
베트남이 삼국지에 나오는 맹획이 왕으로 있던 남만(南蠻)이냐고,
베트남 북부지역은 남만이 아니고 손권이 지배한 오(吳)나라이다.
미국과 전쟁을 치룰 때 중국이 공병, 대공포, 미사일과 전투보급물자, 의료까지 지원을 하였으나
베트남은 중국에 대해 반감을 가진 만큼 지원을 억제하였다.
이후 베트남은 통일되자 잔류하던 화교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추방을 해 상당수의 보트피플이
생긴다.
국경분쟁에도 소련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캄란의 해군기지를 소련 극동해군에게 임대해주는 등
반중친소(反中親蘇) 노선으로 급격히 돌아선다.
베트남과 중국의 관계가 악화되자 1978년 1월 중국~베트남 국경분쟁을 이유로 외교관계가
단절되고, 1979년 1월 강력해진 베트남 정부는 캄보디아 공격을 단행, 크메르 루주 정권을 멸망
시키고 친 베트남 정권을 수립한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자 중국의 등소평과 화국봉은 베트남에 대한 징벌행위를 하기 위해
캄보디아 해방 등을 명분 삼아 1979년 2월 17일 베트남 국경을 넘어오며 전쟁이 발발한다.
베트남군 주력은 1,000km가 넘는 캄보디아에 포진하고 있기에 중국은 베트남 북부가
공백상태로 하노이까지 쉽게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을 하였지만,
베트남군은 미군이 남기고 간 무기로 무장하여 질적으로 중국보다 나았다.
중국은 개전초기 6만 명으로 시작하여 20만 명 정도의 병력을 동원하였고, 100여 기의 비행기,
400여 대의 63식 경전차를 투입하였다.
반면에 베트남은 정규군도 아닌 소수의 국경수비대와 여자 민병을 포함한 18만 명을 동원하고
40여 대 미만의 항공기와 소수의 기갑차량으로 결사항전의 태세로 싸웠다.
정글지대를 돌파하기 위해 중국은 인해전술을 구사하고, 베트남군은 산 능선을 따라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한다.
베트남군은 미군에게 노획한 장갑차를 이용하여 보병을 빠르게 방어선에 투입하여
기동전술을 구사하며 개전초기에 중국의 전차 13대를 격파하고 15대의 항공기를 격추시킨다.
불리함을 느낀 중국은 10만 명의 병력을 추가로 동원하여 20만 명의 대부대로 공세를 취하자
베트남군의 방어선은 뚫리기 시작하고 일부를 점령하지만 2,000여 명의 병력을 손실했고
40여 대의 기갑장비가 파괴되었다.
이에 비해 베트남군은 840여 명의 병력 손실만 있었다고 기록이 되었다.
베트남군은 역공을 하여 2월 28일 점령당했던 지역을 탈환하고,
중국도 서서히 병력을 철수 시키는데, 쌍방 간에 상당한 피해를 입었으며 중국의 정규군을
상대로 베트남의 예비군 성격인 민병대가 선전을 하였기에 실질적으로 베트남이 이긴 전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후 베트남은 프랑스, 미국, 중국 등을 몰아낸 국가로서 동남아시아의 패자로 떠오른다.
09;46
산봉우리의 이름은 모르나 포천 산정호수의 망두봉과 많이 닮았다.
봉우리에 만월(滿月)이 걸리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선경(仙景)이다.
중국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 소리 지르고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우는 모습에 질려 서둘러
선착장에서 벗어난다.
하롱베이 바다에서 살아가는 수상족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겨 모든 제례의식을 치루고,
사람들이 죽으면 수장(水葬)을 한다는 큰 구멍은 하늘로 통하는 통천문(通天門)이라는데
관광객의 출입이 금지되었다는 동굴의 입구 나무다리 위에 강아지 두 마리가 엎드려
사람을 기다린다.
얼마나 외로울까, 연민의 정을 느낀다.
사자바위에 같이 붙은 코끼리 바위라는데, 울릉도와 백령도의 코끼리 바위보다는 모양이
떨어지고 운악산의 코끼리 바위 보다도 어림 없다.
10;28
90개의 계단을 올라 항 두 고(Hang du go) 동굴 입구에 도착한다.
입구에서부터 석회가 녹아 흐른 종류석이 장관이다.
거대한 규모의 석회암 동굴로 스며든다.
카르스트지형의 석회암이 풍화작용으로 깎여나가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는데
조명을 받아 영롱하게 빛난다.
한쪽 하늘이 보이는 구멍에서 습한 바람이 들어온다.
저 구멍을 통하여 들어온 빗물에 석회암이 수억년 동안 씻기고 모양이 변형되면서
신비의 풍경을 보여준다.
2km에 달하는 동굴을 보며 감탄을 한다.
문득 슬로베니아의 동굴과 장가계 동굴이 대비가 된다.
2014년 다녀온 슬로베니아의 포스토이나 동굴이 생각난다.
20km길이 중 5.2km만 개방되고 수로엔 배도 떠다니던 카르스트 동굴이었지.
2.5km 길이에 2,500개 계단과 800m의 뱃길이 있는 중국 장가계의 황룡동굴도 생각나고,
강원도 삼척의 대금굴과 8km에 달하는 환선굴,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제주도의 만장동굴과 태백의 용연동굴 등 예전에 본 동굴을 떠올린다.
동굴 속 광장에는 약 1개 사단의 병력이 주둔하였으며 이를 알게 된 미군이 폭격을 하려다가
아름다운 풍경이 훼손될까 명령불복종을 하고 처벌을 받은 일도 있다는 설명을 듣지만
베트남전에 관한 영화에서도 본 기억이 없고 관련 자료를 찾아도 없으니 그냥 설(說)로만 이해를
해야겠다.
송솟동굴(Sung sot)에서 나와 펼쳐지는 선계에 감탄을 한다.
신기한 기암괴석들과 그 사이로 유유히 떠다니는 배들은 또 하나의 멋진 풍경이다.
선착장에 매우 익숙한 개가 보인다.
호피 진도개와 비슷한데 견종(犬種)은 모르겠다.
티톱섬에 오른다.
소련 사람으로 세계 최초 우주 비행사인 유리 가가린과 함께 훈련을 했던 티톱의 동상 앞에 선다.
11;40
가파른 계단 425개를 올라 천상의 세계에 선다.
티톱은 호치민 대통령과 하롱베이를 여행하다가 이곳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이 섬을 자기에게 달라고 요청을 한다.
목민심서에 심취한 호치민이 섬을 줄 리가 없지.
호치민은 이 섬의 주인은 베트남 국민이기에 마음대로 섬을 줄 수는 없고, 대신 섬의 이름을
티톱으로 해줬다는 설(說)은 진실에 가깝다.
다시 중국인들이 떼로 몰려와 북새통이 되어 정신이 없다.
담배를 꼬나문 어글리 중국인들이 지상의 세계와 천상의 세계를 점령하였으니 빨리
벗어나는 게 상수다.
신(神)의 영역을 우매한 인간들이 침범해 신들의 휴식을 방해하는구나.
엷은 해무 속에 점점이 떠있는 섬들을 보며 감탄사를 말하기도 전에 이곳을 떠난다.
하롱베이는 석회암지대라 모래가 없기에 외부에서 모래를 가져다가 인위적으로 만든
백사장도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 되었다.
12;01
30$ 옵션이 걸린 선상 씨푸드는 진수성찬이다.
도미찜, 삶은 굴, 갑오징어, 새우, 게, 튀김음식과 더불어 김치, 고추장까지 나온 매우 훌륭한
식사라 포식을 한다.
중국이나 다른나라 여행을 다닐 때에는 향신료가 강해 굶기가 일쑤였지만 베트남 여행에서는
매끼마다 포식을 하게 된다.
떠나기 전 간신히 80kg까지 뺐는데 아마도 3kg 이상 체중이 불어서 갈 거 같은 예감이 든다.
옛날 하롱베이가 외적의 침입을 받아 위태로울 때 하늘을 지나던 용이 하롱베이를 구하기 위해
보석을 외적들에게 뿜어 냈고, 그 때 용이 뱉어낸 보석들이 바다에 박혀 지금의 하롱베이가
되었다는 전설을 읽으며 하롱베이의 관광을 서서히 마감한다.
3천여 개의 섬이 제각각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는 하롱베이 바다에서 문득 우리나라 신안군의
1,004개의 섬을 떠올린다.
다도해의 수많은 섬, 침식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아름다운 리아스식 해안을 떠올리며
세계적인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게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17;45
케이블카를 타고 홍가이섬으로 들어와 플라이스를 탄다.
고공 몇 미터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꼭대기로 올라오니 아찔하고, 하롱베이의 야경을 감상한다.
여러 곳의 공사로 어수선하지만 훌륭한 숙박시설, 위락시설과 섬의 풍경은 여행 마지막날 밤에
또 다른 감동을 준다.
11. 29. 하롱베이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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