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1. 27. 03;00 인천공항
영하 6도의 날씨는 상하(常夏)의 나라를 찾아가는 나의 복장선택을 애매하게 하지만
무릇 여행의 매력이란 '일상과는 다른 것'을 찾는데 있기에 추위를 참고 공항에 도착한다.
반복되는 백수의 지겨운 일상에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지.
목적지는 가급적 멀어야 하고 일상과 전혀 다른 곳을 찾다가 베트남으로 길을 떠난다.
빠른 생각은 자동차의 속도와 같은 영역이 아니다.
여행이란 깊이와 방향성의 영역이기에 천천히 생각하고 확실하게 행동을 해야겠지.
고은 선생은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을 내려올 때 보았다"는 시(詩)를 썼고,
혜민 스님은 저서에서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며 생각의 폭주를 멈추라고 했다.
한참 잘 나갈 때 주변을 둘러보라는 경고도 포함되겠지만, 나는 다행히도 산에서 내려갈
때보다도 오를 때 아주 작은 꽃이 잘 보이기에 베트남 여행에서 숨겨진 보석을 찾을 수도 있겠다.
06;00
가슴이 설레야 떠나는 여행,
가슴이 떨려야 떠나는 여행,
아직 다리가 떨리지 않으니 버킷리스트의 한 줄을 지우기 위해 떠나는 여행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 할까.
평생을 빠른 속도로 일을 하고, 은퇴 후에도 항상 빨라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기에
이번만은 느림의 생각으로 여행을 하리라고 마음을 먹으며 비행기에 오른다.
설렘보다는 한숨도 잠을 못자 체력에 부담이 되었는지, 네 시쯤 마신 맥주 두 잔에 몸이
가라앉는다.
동료들은 햄버거로 요기를 하지만 이럴 때는 속을 비우는 게 좋기에 물 한잔으로 속을 다스린다.
06;25
웅성거리던 여행객들은 밤새 잠을 자지 못해 지쳤는지 잠이 들고 비행기는 이륙을 위해
서서히 활주로로 이동을 한다.
이륙하기 위해 얼마나 빨리 달려야 양력을 받아 창공으로 뜰 수 있을까.
비행기가 뜨려면 공기역학적인 원리에 의해 생기는 양력,
항공기의 무게인 중력, 엔진에서 뿜어 나오는 추력, 공기의 저항인 항력이 복합적으로 작용이
되어야 한다.
공항은 잠에서 서서히 깨어나고 비행기는 아침노을 속에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오른다.
베트남 국적기엔 베트남 사람보다는 한국 관광객으로 빈 좌석이 없이 만석이다.
수평선 위로 태양이 붉은 띠를 만들며 떠오르고, 바다 위는 눈이 내리듯 송이구름으로
허공의 빈틈을 메꾼다.
비행기는 태평양 상공을 거침없이 나른다.
지금 고도는 삼만 피트가 넘겠지.
비행기 아래로 새털구름과 조각구름이 넘실대고 왼쪽에선 태양이 강렬하게 빛을 뿜는다.
하늘에서 보는 세상은 천상의 세계이다.
비좁은 좌석에서 답답해도 난기류가 없이 순항을 하니 여행날짜는 잘 선택한 모양이다.
09;11
비행기는 인천공항을 떠난 지 4시간 반 만에 랜딩기어의 덜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착륙을 위해
베트남 상공을 선회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험준한 산은 밀림이라는 정글일까.
먼 옛날 내가 해병대에 합격하였더라면 월남전쟁에 참전을 하여 저곳을 누볐을까,
잠시 상념에 젖는다.
저가항공의 빈틈없이 좁은 좌석에서 네 시간 넘게 곤혹을 치룬 몸이 자유를 얻어 바깥바람을
쐬니 정신이 퍼뜩 난다.
대부분의 입국장이 그렇듯이 베트남도 자국인(自國人) 우선이다.
검색대의 아세안 줄에 서면서 베트남의 짧은 줄을 바라본다.
한국인 여대생 두 명이 6주간의 긴 여행을 하기위해 왔다며 활짝 웃는다.
200만 원의 예산으로 베트남에서 태국을 경유하는 여행을 한다는데 젊음이 좋다.
나도 저런 용기가 남았을까 싱싱한 청춘을 보며 나의 자화상을 슬쩍 그려본다.
10;55
입국 수속을 마치고 규모가 큰 강을 건넌다.
베트남의 젓줄인 홍강이 하노이시를 관통을 하며 흐른다.
경제성장속도가 우리나라의 70~80년대와 같이 빠르다는 베트남에서 한강의 기적과 같이
홍강의 기적도 일어나겠지.
옆을 스치는 버스의 승객과 눈이 마주쳐 손을 흔드니 미소로 답을 한다.
구김살 없는 순박한 웃음은 베트남 사람을 처음 대하는 나에게 정감을 준다.
중국여행을 할 때 만나는 중국 사람들은 어딘가 모르게 거리감이 있고 정이 가지 않았는데
여기서 첫 대면에 정이 가니 이번 여행은 값진 여행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11;33
베트남 현지식인 쌀국수가 나온다.
향신료를 넣지 않은 부드러운 쌀국수는 아침식사를 걸러 허기진 뱃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12;40
11세기에 세워졌다는 베트남 최초의 대학인 문묘에 도착한다.
베트남 최초의 대학은 무려 천년세월을 안고 있다.
우리나라의 성균관은 고려시대 최고 교육기관인 국자감(1298년)의 명칭을 이어 받았으니
비슷한 연륜인가.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입은 여인들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졸업앨범을 찍는다는데 얼굴이 화사하고 공부에 찌든 흔적이 없이 젊음을 구사한다.
아오자이를 입고 멋진 자태를 자랑하는 여대생에게 접근을 하여 사진을 원한다고 토막영어로
말하니 망설임 없이 포즈를 취해준다.
하노이의 상징이라는 규문각에 들어선다.
지붕에는 용(龍)과 함께 잉어조각이 있으니 베트남도 잉어는 등용문의 상징인가 보다.
거꾸로나무라는 별칭이 있는 거대한 반얀나무는 뿌리가 위에서 내려와 신기한 모습을
보여준다.
원조(沅朝)시대에 만든 이 규문각에는 82개의 비석이 있는데 이들 비석은 서로 다른 얼굴을 한
거북 위에 세워졌다.
15~18세기의 300년 동안 2년에 한 번씩 행한 과거시험의 합격자 이름이 비석에 새겨져 있는데
유독 이 비석은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 거북의 머리가 반질거린다.
마당 한가운데에 있는 청동조각상의 용이 금방이라도 하늘로 비상할 태세이고,
용의 비늘도 섬세하게 만들어 꿈틀거린다.
터원형으로 만든 붉은 기와지붕 위의 두 마리 용(龍)이 건물의 멋을 더하지만
우리나라 개심사의 맞배지붕과 같이 간결한 구성을 하였다.
기둥은 우리나라의 배흘림기둥처럼 가운데 직경을 크게 하지 않고 그냥 밋밋한 민흘림의
기법을 썼다.
전각 안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
문득 불국사에서 사진을 못 찍게 하던 늙은 노파가 생각난다.
수령이 700년이나 된다는 거대한 나무에게 경외감을 느낀다.
예쁜 여대생이 입은 아오자이는 긴 상의가 무릎 아래까지 길게 내려온다.
허리에서부터 양쪽이 터져 있어 바람이 불거나 몸을 움직이면 속살이 훤히 드러나 섹시하게
보일 텐데 유감스럽게도 이 학생들은 속에 검은 바지를 입어 나의 웅큼한 생각을 접게 한다.
한때 노동에 불편하고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정부가 착용을 금지시키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예복, 여고교복으로, 안내원, 승무원 등이 즐겨 입으며 여기 학생들은 졸업 앨범용
사진을 찍는 거라고 설명을 해준다.
13;27
베트남이 독립선언을 했던 바딘광장으로 들어선다.
근무를 하는 경찰은 사진을 고사하며 근엄한 표정을 짓지만 사람들은 자유롭게 통행을 한다.
1945년 호치민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바딘광장,
베트남의 독립과 통일이라는 두 가지 위대한 업적을 남긴 호치민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호치민은 생전에 사후 묘지를 남기지 말라고 하였지만 그를 경배하는 국민들은 그를
방부 처리하여 미이라로 안치를 하고 수시로 참배를 하는데 하필이면 오늘은 문을 열지 않아
참배의 기회를 놓친다.
국경선도 아닌 경계선을 밟았다.
일반인이나 관광객은 내가 지금 밟고 있는 선(線)을 넘으면 안 된다고 경고를 한다.
국회의사당인지 설명이 없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방문 시 다리가 불편한 점을
고려하여 회의 및 접견장소를 1층으로 바꿨다는 유연함도 가진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인데
요즘 '부패와의 전쟁'에 박차를 기하면서 공직사회에 사정 한풍이 몰아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정치국원 겸 호치민시 당 서기장이 체포되고, 다낭시 당 서기장도 윤리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해임되는 등 공직사회의 뿌리 깊은 단속에 탄력이 붙었다.
13;50
기둥이 하나라서 일주사(一柱寺)라 불리는 이 사찰은 1049년에 세워져 베트남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베트남 국보 제1호라 우리나라 국보 1호인 숭례문과 비교가 된다.
옆으로 돌아가 일주사를 정면에서 바라본다.
이름에 걸맞게 물 위로 기둥 하나가 사찰을 받쳤는데 네 귀퉁이에는 연꽃이 새겨졌다.
사원을 두 바퀴 돌고 관음보살에게 기도를 하면 아이를 점지해준다는 전설을 간직한
사찰은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11. 28. 08;00 여행 2일차
호텔에서 나와 수십 수백 대의 오토바이가 몰려다니는 이국의 풍경 속에 잠시 스며든다.
5분도 되지 않아 내 눈은 쓰리고 아프다.
지독한 매연은 서울과 달리 눈에 스며들어 아픔을 주는데 사진 모델로 흔쾌히 응하는 경찰관의
밝은 얼굴이 내 눈을 달래준다.
불과 수십 년 전에 총부리를 겨누며 죽이고 죽던 사람들,
저들의 순박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영애의 대장금부터 시작해 절정에 이른 한류열풍과,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베트남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였기에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엔 적개심이 감춰졌는지 표면상으로는 나타나지 않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나는 베트남에 대한 편견을 가졌었다.
나의 선입견은 중대한 오류를 범했던 거다.
베트남의 북쪽에 있어도 하노이는 밀림으로 둘러싸인 월맹의 수도에 불과한 걸로 알았는데
밀림은커녕 산도 별로 보이지 않는 거대한 평야지대이다.
공산주의자가 아닌 사회주의로, 민족주의가 강한 저 사람들에게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더해져 융단폭격을 받은 사람들,
전쟁의 상흔은 표면적으로 사라져가지만 저들의 마음속에도 사라진 걸까.
폴란드 사람들은 독일에게 "용서는 하되 잊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했다.
우리가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아직도 있듯이 베트남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속에도 똑같은
응어리가 있겠지.
09;06
수없이 지나가는 오토바이 사이로 결혼식이 진행되기에 셔터를 누르지만 이미 늦어
실루엣으로만 보인다.
09;30
호치민 박물관 앞에 선다.
1990년 5월 19일 호치민 탄생 100년이 되는 날 개관한 호치민 박물관,
역사와 전쟁 물품 등이 전시되었을까.
먼 옛날 내가 해병대에 합격하였더라면 월남 전쟁에 참전을 하였겠지.
부산에서 올라온 1970년 해병대에 지원을 하였으나 시력이 좋지 않아 보기좋게 낙방을 한다.
이후 청주까지 내려가 다시 지원을 하였으나 또 떨어진다.
당시엔 안경을 쓰거나 시력이 양쪽 다 1.0이 되지 않으면 거의 불합격인데,
요즘 황반변성으로 매월 안과를 다니는 덕분에 시력검사표를 한번만 훑어도 그냥 외워진다.
그 때 시력표를 외우는 요령을 부렸으면 합격이 되었겠지.
이후 육군으로 징집명령서를 받아 입대한 후 한 번 정도 파병될 기회가 있었지만
인연이 없었는지, 천수를 누리라는 하늘의 계시가 있었는지 끝내 베트남 가는 배를 타지 못했다.
호치민 생가의 모형, 애용품, 편지, 혁명 등과 같은 것이 전시되었으며,
무기와 밀림의 함정에 설치하였던 죽창도 보이고, 무기와 식량 등 보급품을 날랐던 특이한
수레도 보인다.
베트남은 걸출한 지도자였던 호치민이 있어 부러운 나라이자,
우리보다 국민소득은 낮지만 국민들로부터 절대 존경을 받는 지도자가 있어 부러운 나라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빨간 머리띠를 두르지 않아도 빠르게 발전을 하는 나라의 지도자였던 호치민의
동상 앞에 겸허한 자세로 선다.
베트남의 건국이념은 태양과 용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이념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라'는 뜻인데
태양과 용(龍)이라니 조금은 낯설다.
책상 위에 놓인 책은 정약용의 목민심서일까.
유독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심취해 읽고 또 읽었다는 호치민,
그의 얼굴에 독립을 염원하던 목민관의 모습이 보인다.
베트남의 국민 영웅이자 사회주의 및 민족주의자였던 호치민은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인생과 통치의 좌표로 삼았다.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했고, 남북으로 분단된 베트남에서 북베트남인 월맹의
초대 대통령을 지낸 그는 부정부패릏 하지 않는 목민관을 주창하며 심지어는 그가 생전에
즐겨읽던 목민심서를 무덤 속에 넣어달라고 유언까지 남겼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의 대통령 중 목민심서를 읽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면 행동하지 말고, 남이 듣지 못하게 하려거든 말하지 말라"라는
멋진 글귀를 알까.
최고 지도자이면서도 폐타이어로 만든 슬리퍼를 신던 호치민,
국민의 혈세를 단 한 푼이라도 절약하겠다는 지도자의 신발을 보며 헤진 구두를 신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각이 난다.
우리나라에도 호치민 같은 지도자가 있었을까?
영구 독재를 노리다가 4.19혁명으로 하야를 하고 망명을 한 이승만,
18년 집권을 하다가 부하직원의 총을 맞고 서거한 박정희,
뇌물을 많이 먹어 세 아들 모두 구속이 되는 진기한 기록을 가진 김대중,
요즘 최순실이 같이 국정을 농단하던 아들이 구속된 김영삼,
뇌물죄와 내란죄로 구속되어 감방생활을 한 전두환, 노태우.
600만 불 뇌물사건으로 조사를 받자 부엉이 바위에서 자살을 택한 노무현,
최순실과 함께 국정농단 죄로 탄핵을 받고 감옥에 수감된 박근혜 등
이 사람들을 생각 만해도 머리가 지근거린다.
호치민의 환한 미소를 보며 내가 존경하던 지도자를 떠올린다.
"생즉필사 사즉필생(生卽必死 死卽必生)이라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고,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산다"라고 하며 죽음을 각오하고 전투에 임하였던 이순신 장군은 나라를 살렸고,
"내 앞에서 불가능이란 말은 마시오."라며 소아마비 된 다리로 휠체어에서 힘들게 일어나던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며 강하게 경제 드라이브를 걸어 국민을 빈곤과 기아에서 벗어나게 한
박정희 대통령,
"내가 죽은 후 내 생가를 허무세요."라며 자기 집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 리콴유 싱가포르 대통령,
"내 무덤에 묘비를 남기지 말라"던 2차 세계대전의 영웅 드골 대통령이 내가 존경하는
지도자이지.
문득 '판도라'라는 만화영화만도 못한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더니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
공사를 중단시켜 1,385억 원이라는 손실을 끼친 문재인 대통령이 생각나 실소(失笑)를 흘린다.
앞으로 오년 후 십년 후 또한 백년 후의 국가와 국민이 먹고살 것을 걱정하는 미래지향적이
아니고 오로지 적폐청산이라는 미명으로 과거청산에만 매달리는 저 사람들의 5년 후 운명은
어떻게 될까.
물고 물리고, 감옥에 집어 놓었다가 사면을 반복하며 법치국가임을 포기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호치민의 환한 미소가 부럽다.
10;30
베트남의 위대한 지도자인 호치민의 역사를 본 후 마당에 나오니 아기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리며 나를 쳐다본다.
어느 곳, 어느 나라든지 아기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참 아름답다.
아기들을 바라보며 마음이 차분해지고 승민이와 승현이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국립박물관 앞마당의 나무가 신기하다.
'반얀나무'라는데 뿌리가 하늘에서도 내려오고 수십 가닥의 줄기는 거대한 덩치를 만들었다.
높이는 얼마나 될지 꼭대기가 보이지 않으니 유추가 되질 않는다.
나이테를 보여 주지 않으니 수명도 모르겠고 겨우 나무 이름만 알아내는데
8m이상 자랐으니 교목일까 아님 나무의 줄기가 여러 갈래로 자라는 관목(灌木)일까.
그것도 아니면 덩굴나무를 말하는 아관목(亞灌木)인가?
교목(喬木)은 땅에서부터 나오는 줄기가 하나로 시작되는 수목을 말하니 교목도 아니고,
관목은 작은 키 나무로 낮게 자라는 즉 나무의 키가 3m보다 작은 주 줄기가 분명하지 않으며
밑둥이나 땅속 부분에서부터 개나리처럼 줄기가 갈라져 나는 나무를 말하는데,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남의 나라에 와서, 그것도 온대지방이 아닌 열대지역에 와서 나무를 논하는 나의 모습이 우습다.
엔뜨로 가며 들판에서 일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이채롭고, 수시로 나타나는 물소들은
차가 지나가도 비켜주질 않는다.
힘든 농사일은 여인들이 도맡아하고 남자들은 카페나 정자에 모여 술을 마시며 노변정담을
즐긴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들판에서 여인을 찾기는 쉬워도 남자를 찾기는 어려우니
베트남 여성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14;56
베트남 북부지역 사원을 대표하는 옌터 자이완 사원에 오르고자 케이블카에 탑승을 한다.
밑에서부터 등반으로 정상에 오르려면 약 3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밀림에 겨우 길의 흔적만 있어 걸어 오르지 않고 케이블카에 올라 전경을 바라본다.
나는 오늘 괜히 먼 곳을 찾은 게 아니다.
단 며칠이지만 베트남을 이해하고 가장 베트남다운 것을 보려고 케이블카에 오른 거다.
아래 밀림에 길의 흔적이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몸으로, 자유여행이 아닌 패키지여행으로
단독행동을 할 수 없기에 보다 쉬운 방법으로 오르는 거다.
길은 모름지기 가까이에 있는 법이라 오색에서 끝청(1,480m)으로 오르는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에 대해 문화재청이 조건부로 허가를 한 사실을 기억해낸다.
거리는 여기보다 긴 3,492m로 내 걸음으로 기준하면 대청봉까지 약 4시간 정도 절약되겠지.
엔뜨에 오르며 아래세상을 내려다본다.
바로 밀림의 모습인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구분이 없는 상하(常夏)의 나라,
우기(雨期)와 건기(乾期)로만 구분되는 나라에서 지금은 건기라 덥지 않아 여행의 적기라는데
엷은 박무가 끼기 시작한다.
약 6분을 오르니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는 어디에 모셨는지 구분이 없고 베트남 고승들의
사리탑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리탑은 500개가 모셔있다는데 내 눈에는 대략 100여 개 이상이 보인다.
다시 계단을 올라야 한다.
26~24~27 세다가 잊어버려 세기를 포기하고 사원이 있는 곳으로 오른다.
15;17
엔뜨는 베트남 불교의 원조라는데, 슬리퍼, 민소매, 반바지 차림의 입장을 금하는 성스런 곳이다.
추녀끝은 하늘로 치솟아 우리의 건축양식과 전혀 다르며 용과 같은 형상의 조각품이 이채롭다.
해발 1,068m의 엔뜨산 정상까지 케이블카가 공사가 진행인지 중간에 멈춰 서있다.
동(銅)으로 지어져 동사(銅寺)라고도 하는데 ,
동사에서 향을 피우고 절 옆의 청동종이 3번 울리면 건강과 행복을 얻는다고 전해진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다는데 물어볼 수가 없이 확인을 못하고, 바다와 하롱베이도
보인다는데 박무로 조망이 되지 않는다.
베트남의 불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대승불교가 성행하였다.
불교는 여러 파가 있지만 크게는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로 나뉜다.
소승(小乘)불교는 자파 주장만이 옳다는 재래불교를 말하며,
대승(大乘)불교는 이타적(利他的)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활발하고 폭 넓은 활동을 전개하는데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제도(濟度)를 목표로 하며
종래 출가자(승려)만의 종교였던 불교를 널리 민중에게까지 개방한다.
법상종(法相宗), 화엄종(華嚴宗), 천태종(天台宗), 선종(禪宗), 율종(律宗) 등이 대승불교에
해당되는데, 우리나라는 중국을 경유하여 전해졌기에 대승불교의 색채가 강하다.
이밖에도 남방불교와 북방불교로 분류를 할 때는 남방불교를 소승불교라고도 하는데
혼자 해탈하기 위해 수행하는 것은 소승이고, 여럿이 함께 해탈하기 위해 수행하는 것을
대승이라 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둘레 20m 가 넘는 '플로메리아' 나무의 위용에 몸이 위축 된다.
프랑스 향수 사넬 NO 5의 원료가 된다는 나무의 꼭대기는 하늘로 솟아 볼 수가 없고 수령은
700년이라는 안내팻말이 서있다.
베트남 정신문화와 불교의 성지인 엔뜨산 사원에 山慶秉劍~이라 쓰고 모신 장군은 누구인지,
베트남 사람들은 "백 년 동안 좋은 일을 하고 도를 닦았더라도 엔뜨산 정상에 올라 가보지
않는다면 정과(正果)가 아니다," 라며 이곳을 성스러운 곳으로 모신다.
상산(象山), 운산(云山), 영산(靈山)과 더불어 베트남의 4대 성스러운 장소인 엔뜨산에서
인간세상으로 하강을 시작한다.
15;50
내연기관이 없는 전기차를 타고 내려온다.
조금 전 올랐던 엔뜨산이 박무 속에 실루엣을 그리고 나는 조용히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한다.
17;20
두 시간을 달려 하롱베이에 도착한 일행은 수상 인형극 공연 전에 과일을 파는 시장으로
들어간다.
사모작과 삼모작을 하는 쌀과 커피의 생산량이 세계에서 2위를 차지하며,
고무는 4위, 그밖에도 석탄, 천연가스 등 풍부한 부존자원이 많아 부러운 나라,
매년 7% 이상의 경제성장을 하며 1억 명이나 되는 인구 중 25세 미만의 우수한 노동력과
풍부한 자원을 가진 나라의 과일 맛은 어떨까 궁금해 하며 재래시장에 들어가니 이름 모를
과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였고 그중 친숙한 과일인 망고를 산다.
베트남 사람들의 장점으로는 손재주가 좋고 근면하며 친근감이 많다.
따라서 자수문화가 번성하고 머리가 좋아 금세 배운다고 하는데
전쟁에 진적이 없어 자존심이 강하고 신용이 좋아 우리나라 사람과 많이 닮았다고 한다.
18;10
약 30여 분간 진행되는 수상 인형극은 봐도 모르겠다.
옆에 앉은 가수들이 악사들의 반주에 맞춰 오페라를 하듯 노래를 부르고 수시로 용 모양의
인형 등이 나타나 물 위에서 춤을 추는데,
이 수상 인형극은 기원을 10세기 델타의 홍강(Red river)에 둔 독특한 예술로 우리나라
Tv에도 소개되었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수상 예술형태라고 하기에 그냥 베트남 문화로 받아들인다.
18;13
이번 여행은 자유여행이 아닌 패키지여행이다.
여행이란 서둘러 가면 별 볼일 없고 천천히 둘러봐야 볼만한 것이 많은 법이다.
그런데 유독 이번 여행의 스케줄은 촘촘히 짜이질 않아 시간여유가 많다.
공연장에서 나와 수변을 천천히 걸으며 생각의 속도를 늦춘다.
휴대폰도 껐으니 천천히 걸으며 느리게 생각해야겠다.
인생이란 한 곳에서 빨리 사진을 찍고 다른 곳으로 서둘러 이동해서 기념사진을 찍는
패키지여행이 아니기에 인터넷 보지 않기, 폰 보지 않기 등 디지털기기와 떨어지는
3무(三無)를 실천해야겠다.
바쁠수록 놓치지 말아야 할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21;00
시장에서 산 망고를 먹으니 예상보다 당도가 약하고 맛이 없다.
안내자가 눌러서 살짝 들어가고 노란빛이 나는 거를 고르라고 했는데, 한국에 와서
확인하니 거꾸로 가르쳐준 거다.
망고는 눌러서 딱딱하고 푸른빛이 돌아야 재대로 맛이 난다는 것을 다들 몰랐던 거다.
2017. 11. 28. 베트남 2일차 밤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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