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342 철원 한탄강의 포성은 14번에서 멈췄다

김흥만 2018. 1. 26. 21:09


2018. 1.  18. 08;00

세상의 만물이 자욱한 안개와 미세먼지로 신음을 하는 아침이다.

차안으로 들어오는 매캐한 냄새로 창문을 열 수도 없어 그냥 앞만 보고 달린다.

주변의 작은 산은 안개 속으로 숨었고, 제법 높게 보이는 산은 안개가 겹으로 주름을 만들었다.


6·25 전쟁의 최대 격전지였고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철의 삼각지에서 중심의 철원,

백마고지, 수도고지, 저격병능선으로 유명한 철원평야를 달린다.

휴전으로 김화와 철원은 남한으로, 평강은 북한의 영토로 되었지.


09;16

두 시간으로는 어림도 없었고 세 시간 가까이 걸리던 철원,

새로 개통된 고속도로 덕분으로 불과 70분 만에 철원의 직탕폭포에 도착한다.


늘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던 직탕폭포가 바로 눈앞이구나.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직탕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요란하고, 우두둑하며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들린다.

완전 결빙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한탄강 얼음 트래킹을 하려던 계획은 처음부터 어긋난다.


이곳 직탕폭포에서 시작하여 승일교~고석정~순담계곡까지 7.7km 얼음 트래킹은

포기를 하고 한여울길 트래킹으로 긴급 변경을 한다.


늘 그리던 피안(彼岸)의 세계가 차안(此岸)의 세계로 되어 내 눈앞에 나타난다.

완전 결빙되었다던 한탄강물이 며칠간의 영상날씨에 녹아 삼도천(三途川)을 만들었구나.


돌다리 아래를 흐르는 강물은 수시로 소리를 지른다.


철원은 후고구려의 명분을 세운 궁예가 도읍을 정한 곳이기도 하지만,

6·25전쟁 때 평강, 철원, 김화를 연결하는 철의 삼각지를 비롯하여 백마고지, 단장의 능선,

김일성고지 등의 격전지가 있고,


제2땅굴, 38선 경계비, 승일교, 만세교, 김일성별장 등 전적기념물이 많은 곳인데

직탕폭포 바로 위에 있는 다리를 건넌다.


백마고지를 다녀온지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늘 궁금하던 직탕폭포 앞에 선다.


한탄강 물줄기를 독차지한 직탕폭포가 옆으로 길게 50~60m 펼쳐진다.

직탕폭포의 높이는 3m정도에 불과하고 규모는 작지만 장엄하고 아름다워 한국판 나이아가라

폭포라 불리며 철원 8경의 하나로 손꼽힌다.


철원 용암대지의 일부로서 추가령열곡을 따라 분출한 용암이 평평한 대지를 만들었고

현무암이 기둥모양으로 갈라져나간 주상절리의 절벽에서 물이 떨어진다.


번지점프대가 있는 태봉대교가 나타난다.

뛰어내릴 수 있는 용기가 나에게 남았을까.



용암대지의 울퉁불퉁한 대지를 걷는다.


아래로는 임진강의 지류인 한탄강이 용암대지를 침식하여 흐르고, 이 용암대지는 신생대 말에

해당하는 제4기라 하는데 오리산(454m)을 중심으로 열하 분출한 현무암이 구조선을 따라

분출하여 철원, 평강의 용암대지를 형성하였다고 안내서에서 설명을 한다.


포성이 들리기 시작한다.

매우 둔중한 포 소리는 13번이 들리고 다시 14번이 들리더니 이내 잠잠해진다.


155mm이상 대구경의 둔중한 포 소리가 멈추자 자작나무숲은 다시 침잠(沈潛)에 빠졌다.

저녁에 들어와 뉴스를 검색하다 포성이 중지된 이유를 알았다.


어느 부대에서 포 사격을 하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뉴스에서는 18일 K-9 사격 재개를

위한 시범사격을 실시하였는데,

당초 계획대로 2문은 6발씩 사격을 하고 나머지 1문은 2발 사격 후 탄약을 재어 넣는 약실

내부에 화약이 타고 남은 찌꺼기 즉 탄매(彈煤)가 식별되어 사격을 중지하였다는 거다.


작년 8월 격발 스위치를 누르지 않았음에도 일부 부품의 비정상적인 작동으로 화재가 발생하여

장병 3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친 사고가 있었기에 더욱 만전을 기하는 모양이다.


북한은 핵(核)을 가지고 수시로 위협을 하고, 일본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중국은 제주도 남방 우리 방공식별구역을 제집 드나들듯이 드나든다.


제주해군기지의 훼방꾼들에 대해 사면을 해주고 구상권을 포기하더니 급기야는 장병들의

복무기간을 21개월에서 18개월로 단축하고 병력도 50만 명 수준으로 축소한다고 발표를

하였다.


집권자들이 제 정신이 있는 건지 5년 후에 또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감당하려나.

탈원전(脫原電)도 그렇고, 국방계획도 그렇고, 평창올림픽이 평양올림픽으로 변질이 되어

매스컴을 멀리하는데도 자꾸 소식이 들어오니 이젠 짜증을 넘어 한숨만 나온다.


과거 가지고 싸우는 사람들에겐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엔 묘한 복지제도가 있다.


며칠 전 이중국적을 가진 친구와 심한 언쟁을 벌인다.

외국 시민권자가 65세 이상이 되면 이중국적을 취득할 수 있으며,

취득 후 3개월간 불과 2~30만 원 정도의 의료보험료를 내고 수천만 원짜리 수술을 받은 후

다시 해외로 나간 사람이 15,000명~35,000명이나 된다고 한다.


더 웃기는 건 그들이 다른 나라에 수백억 원의 재산이 있어도

우리나라에 재산이 없으면 기초연금 수혜자가 되어 25만원을 받는다.


이러한 엉터리 복지정책에도 화가 나지만 더 화가 나는 건 전쟁이 발발하면 나는 총을 들고

전선으로 가겠다고 하니 미국 국적을 가진 친구는 미국 국민이기에 오산 미군기지로 가서

탈출을 하겠다는 말에 기가 질려 화를 내고 만다.


10;05

세 갈래 여울진 강을 보며 삼도천(三途川)이 생각난다.

사람이 죽어서 첫 7일, 진광왕의 청(廳)으로 가는 길의 강에 빠르고 느린 세 여울이 있는데

생전에 지은 업(業)에 의하여 세 가지 갈래 중 하나로 건너간다.


진광대왕(秦廣大王)은 명부(冥府)의 시왕 중 첫 번째 왕이다.

지난번 '신(神)과 함께'라는 영화를 본 대목 중 첫 번째 삼도천이 생각나는 건 내가 기억력이

좋아서인가.


진광대왕과 헤어진 망자(亡者)들은 삼도천을 건너야하는데 삼도천은 저승여행에서 사출산과

더불어 저승코스의 2대 명물이라고 한다.


삼도(三途)란 건너는 곳이 세군데가 있음을 말하는데,

첫째가 산수탄(山水灘)이요, 둘째는 강심연(江心淵)으로 험난하고 깊은 물을 말하며,

마지막으로 셋째는 다리가 있다는 유교도(有橋渡)이고,

유교도는 살아생전 선행공덕을 많이 쌓은 사람만 건너갈 수 있다.


주성절리가 형성 된 바위기둥이 멀리서 봐도 경이롭다.

아래 물의 깊이는 30m 가 넘는다는데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안고

걸음을 재촉한다.


침식령이 작용하여 용암대지를 수직으로 계곡을 형성하며 깎아내려 한탄강에는 깊이 40m에

이르는 협곡이 형성되었고,

현무암이 기둥모양으로 갈라져나간 주상절리(柱狀節理)가 특이한 절경을 만들었다.


얼음장 밑으로 물소리 들린다.


오래전 화산 분출로 만들어진 독특한 지형을 바라보며 출렁다리를 건넌다.

골짜기를 메우며 흐른 용암이 긴 세월 강물에 침식되어 주상절리를 만들어냈고,

수직 벽으로 만들어진 협곡 속에 현무암이 속살을 드러낸다.


영하 30도 까지 떨어지며 유난히도 추웠던 이번 겨울 단 삼일의 영상 날씨에 군데군데

얼음이 녹아 얼음 트래킹을 하지 못하게 한 날씨를 원망을 한다.

미세먼지 속에 희미하게 드러난 주상절리를 먼데서 바라보다 발길을 돌린다.


북한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맑고 오염되지 않아 이곳에 서식하는 30여 종의 물고기들은

디스토마균이 없다 하여 매운탕 요리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드는데,


물고기는 버들치, 피라미, 갈겨니, 모래무지 등이 많으며, 금강모치와 천연기념물 제259호인

어름치가 있고, 희귀어종으로 특별한 보호를 받는 '가는돌고기'도 있다고 한다.


출렁다리를 건너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저승길은 사출산(死出山) 등반으로 시작되는데 사출산을 지나야만 무사히 저승길로

접어든다.


사출산의 길이는 8백리에 달하니 무려 4천km가 넘고 높이는 헤아릴 수 없으며 대단히 어둡다고

하는데, 저승의 명(冥)자는 어둠의 상징이요, 바다 명(溟)자도 어둠의 바다요, 눈감을 명(暝)자도

어둠의 초대장이다.



산길을 오르며 인생 자체가 허무와 고독의 여행길이라는 생각이 드니 '신과 함께'라는

영화는 나의 머릿속에 깊게 각인이 되었구나.


때 묻지 않은 달력에서 1월 1일이 엊그제였는데 그새 18일이나 지났다.

세월 참 쉽게 가고 인생도 그렇게 오고가는구나.

죽음과 같은 낙조(落照)앞에서 삶은 유한(有限)하기만 한데 세월이 빨리 지나간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당혹감을 느낀다.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해발 238m봉과  223m봉까지 서너 번 오르내리는 둘레길은 둘레둘레

가는 쉬운 길이 아니다.

높지 않은 야산이지만 몇 번의 오르내림으로 목이 마른다.


저곳을 오르면 강바닥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오겠지.

숨을 가다듬고 내 나름대로의 명상 수행을 한다.


때로는 은퇴 출가(出家)를 생각도 해봤지만 백수의 삶이란 생각보다 녹녹치 않다.

세상을 떠나 수행 생활을 할 처지가 아니기에 나름대로 동적명상(動的冥想)을 하는 거다.

잠시 바람소리를 들으며 명상에 잠겼더니 머리가 맑아지고 호흡이 정리가 된다.


11;08

바닥으로 내려선다.

한탄강은 강원도 평강군 장암산에서 발원하여 김화를 거쳐 철원에 흘러들었다.


포천과 연천을 지나 임진강으로 합류하는 한탄강물 흐르는 소리가 귓가에 스며든다.


한반도 중서부 화산지대를 관류하는 한탄강의 길이는 134.5km라고 사전에 나와 있는데

이름이 묘하다.


6·25전쟁 중 다리가 끊겨 후퇴하지 못한 사람들이 '한탄하며 죽었다'고 해서 불려졌다고도

하는데 '크다, 넓다, 높다'는 뜻의 한(漢)과 '여울, 강, 개'의 뜻이 탄(灘)이 어울린 순수한

우리말로 한문으로 음차한 이름이라고 안내서에서 설명을 한다.


                    세월의 강

            

                     조용히 흐르고 싶다.

                     조용히 흘러가는 강물이 되고 싶다.

                     막히면 막히는 대로 뚫리면 뚫리는 대로

                     세월의 강이 되어 흐르고 싶다.


                     아픔이 내린 삶의 흔적이

                     흐르는 강물에 씻어질까.

                     어깨에 내린 삶의 찌꺼기를

                     흐르는 강물이 씻어줄까.                   


                     산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살면서 지나간다는 것.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버리지 못하는 초로의 삶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니기에

                     내 몸의 흉터처럼 껴안고 가야겠지.


                     지울 수 없는 기억들을

                     치매라는 울타리로 가둘 수 없다면

                     껴안고 가야하는 게 숙명(宿命)이겠지.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강물소리는

                     세월이라는 낡은 강가에 선 나를 떨리게 하더니

                     그리움과 사랑으로 아파하던 세월의 강이

                     나에겐 길고도 깊은 강인데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한다.


                     어쩌면 살아가는 인생 자체가 상처투성이기에

                     나그네는 조용히 흐르고 흐르는 강가에 서서

                     흐르는 인생의 강을 서글퍼하는구나.                                 석천>


강 건너편에는 이틀 후 열릴 한탄강 얼음트래킹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과 기계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물을 뿌려 인공으로 만든 고드름 터널을 지난다.

행복은 무엇인가를 해야만 얻는 건가.


이런 고드름 터널에선 아무 생각 없이 의미를 찾지 않아도 좋다.

행복을 느끼기 위해선 맥락이 없어도 좋고 무위(無爲)라면 더 좋을 수도 있기에

천정의 고드름을 그냥 멍하게 바라본다.


강을 건너 눈 쌓인 별유천지(別有天地)에 들어서니 마음은 저절로 한가로워진다.


높이가 얼마나 될까.

이틀 후면 저 얼음 빙폭에 사람들이 새까맣게 달라붙어 오르겠지.


도화유수(桃花流水)가 아닌 백빙폭포(白氷瀑布)를 만든 사람들의 의지가 대견스럽다.


승일교에 도착한다.

6·25전쟁 전후 남북이 밀고 밀리면서 번갈아 공사해 완공된 교량이 특이한 모습이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공사를 진행한 탓에 아치형과 사각형의 구조물이 뒤섞인 형태가

되었다는데 묘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11;54

고석정과 순담계곡까지는 약 한 시간이 더 걸린다.


이정표도 분명하지 않고 트래킹 예정시간이 다돼가기에 승일교 아래 큰 너럭바위를 끝으로

한탄강 상류 트래킹을 마치고 강에서 탈출을 한다.


빙판을 걸으며 한탄강의 신비를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귀경을 서두른다.


오늘이 가면 내일이 오고 내일이 바람처럼 사라지면 또 다음날이 오겠지.

인생과 여행이란 어차피 미완성 아닌가.


                                                  2018.  1.  18.  한탄강 상류 트래킹을 하고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