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3. 28. 05;00
창밖이 시끄럽다.
아직은 시간의 경계가 넘어가지 않은 꼭두새벽인데 참새들 짹짹거리는 소리에
잠이 화들짝 달아난다.
집 앞의 작은 야산에도, 단지 내의 뜰에도 참세 떼들이 왁자하게 떠들면서 몰려다닌다.
베란다 난간 위에 땅콩을 담아둔 모이통이 어느새 비었다.
한 마리가 와서 물고 가더니 이번엔 떼를 지어 나타나 아우성을 친다.
그동안 동박새와 곤줄박이, 직박구리에 밀려 통 보이지 않던 참새들의 개체수가 많이
늘었다.
지독한 추위로 세상이 꽁꽁 얼은 한 겨울을 저렇게도 작은 몸뚱이로 살아남았으니
참 대견하다.
참새를 보며 점점 더 욕심이 생기는지 제비도 보일까 빈 하늘을 바라본다.
새벽기온은 아직 추운 날씨지만 곧 따사로운 햇살이 퍼지겠지.
참새들 덕분에 즐거운 하루가 시작된다.
09;00
논산의 넓은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는 논산무애(論山霧靄)로구나.
무서운 속도로 무한 질주하는 차량에 질려 박무(薄霧)가 양옆으로 사라지고
차창을 열면 금세라도 황소 울음소가 들릴 것만 같은 고즈넉한 들판을 지나
내가 기대하는 신천지가 나오겠지.
10;50
자욱했던 안개는 서서히 걷히고 며칠간 기승을 부렸던 미세먼지 지수도 보통으로
회복되자 완주 모악산의 태양빛도 기운을 차린다.
유난히도 매서웠던 겨울의 기세를 봄기운이 사납게 무너뜨리자 연둣빛이 땅바닥부터
퍼지기 시작한다,
더러운 냄새가 진동하는 인간세상을 경멸이라도 하듯 세상의 색깔을 바꾸기 시작하는
개불알꽃을 만나니 웃음이 나온다.
고명한 식물학자들이 게으름을 피는 지 아직 이름이 바뀌지 않은 개불알꽃엔 해학(諧學)이
담겼다.
꽃이 와글거리며 소생의 기쁨으로 약동(躍動)하는 모습을 보며 며칠간 겪었던 우울증이
말끔히 사라지고 영혼마저 맑아진다.
4월 산행은 고르기가 힘들다.
봉화 옥돌봉(1242m), 의령 한우산도(764m)도 다 산불방지 입산통제에 해당되어
도립공원으로 관리되고 있는 모악산을 찾은 거다.
지난주엔 이곳에 폭설이 내렸는데 수도권엔 제법 굵은 작달비가 창문을 두드리며
봄을 재촉하였지.
< 작달비
일비가 메마른 대지를 두드리면
농부의 작은 가슴이 설레려나.
주룩주룩 밤새 내리던 주룩비
겨울나무의 환호성에
작달비로 얼굴을 바꾸더니
사정없이 대지를 적신다.
시린 목덜미에 고였던 겨울을
밀어내는 봄비가
산수유 꽃망울을 터뜨리게 하는 이른 아침.
문설주에 달아 논 땅콩그릇에
눌러앉았던 참새가 뽀르르
숲속으로 사라지며 짹짹거린다.
빗소리와 새소리가 어우러진 숲의 소리는
자연의 오케스트라이다. 석천 >
오늘은 비 오는 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현호색'을 바라보며 지난주 비올 때 메모를
했던 작달비가 생각나 글을 옮겨본다.
산행코스는 대원사~수왕사~정상~천일암~주차장으로 원점회귀를 하기로 한다.
정상까지 3km 거리에 약 두 시간이 걸리겠지.
< 삼월의 아침
삼월의 아침은 시끄럽다.
참새들도 시끄럽게 와글거리고
학교 담장 밖으로 새나오는
아기들의 합창소리도 시끄럽더니
땅바닥의 흰 제비꽃도 새 생명이라고
아우성친다.
봄의 따뜻함을 시샘하는 꽃샘바람도
산허리에 걸리는 구름소리도 시끄럽고
만물이 약동하는 소리가 온통 시끄럽다.
세상의 시끄러움이 아름답게 들리는
3월의 아침
봄의 소리를 아름답게 만든
마법의 햇살이 빗살 되어
흰 제비꽃의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석천 >
잿빛으로 칙칙하던 산길에 별빛처럼 하얀 제비꽃에 눈이 환해지며 산이라는 세상이 밝아진다.
발아래가 파릇파릇해지고 나무에 고였던 겨울이 사라졌다.
누가 심지 않았는데도 때가 되니 나무들은 눈을 뜨기 시작하고 사방에 풀들이 파랗게 산의
속살을 감추기 시작한다.
최근에 꽃씨 하나를 심어 보지 않았고, 나무 한 그루 심어 보지 않았어도 생명의 외경과
소중함을 알게 되었지.
북풍한설을 이겨내고 새 생명을 내보내는 자연의 위대함에 잠시 경의를 표한다.
생강나무의 노란 꽃은 노랑 병아리의 솜털을 닮았고 진달래의 꽃망울도 터졌다
산괴불주머니의 노란꽃이 어디에 피었을까 두리번거린다.
두해살이풀이라 이런 산속에서 많이 피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금년에도 검단산을 가지 못해 처녀치마, 청노루귀, 복수초를 만나지 못했는데 이곳에서
만날 수 있을까.
꿩의 바람꽃과 개별꽃이 군무를 추는 축제를 볼 수 있을까.
무리를 지어 하얗게 핀 개별꽃의 진한 사포닌(saponin)의 향기는 내몸이 속세에서 묻어온
속진(俗塵)의 냄새를 말끔히 지워버릴 텐데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폭포의 높이는 고작 2m도 되지 않는데 '선녀폭포와 사랑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보름달이 뜨면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였다는 폭포의 물깊이가 발목에 겨우 닿을 정도이다.
선녀들은 저 위에 있는 수왕사 약수를 마시고 신선대에서 신선들과 즐겼는데
우연히 나무꾼이 이 폭포를 지나다 아리따운 선녀에 반한다.
두 남녀는 대원사 백자골 숲에서 입을 맞추는데 난데없이 뇌성벽력이 울리며 돌이 되었다며
여기에 치성을 드리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다소 진부한 전설을 읽고 산행을 위한
준비운동을 한다.
등산은 많은 체력이 필요한데 오늘같이 산 이름에 '악'자가 붙은 산을 오르면 엄청난 체력을
소모하게 된다.
준비운동 없이 산에 오르면 근육과 관절에 무리가 오고, 심장과 혈관이 압박을 받아 빨리
지치게 된다.
따라서 가벼운 체조와 스트레칭으로 어느 정도 체온을 올린 다음 천천히 걸어 서서히
심장박동이 빨라지게 하면 좋다.
봄을 재촉하는비가 자주 내리더니 지난주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겨울이 가고 또 찾아든 봄이면 난 겨울앓이를 심하게 한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봄이 가면 봄이 간다고 봄앓이를 하는데 나는 거꾸로 겨울앓이를
심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