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346 완주 모악산(母岳山 793.5m)에서 구도(求道)의 길을 찾다.

김흥만 2018. 4. 3. 21:05



2018.  3.  28. 05;00

창밖이 시끄럽다.

아직은 시간의 경계가 넘어가지 않은 꼭두새벽인데 참새들 짹짹거리는 소리에

잠이 화들짝 달아난다.


집 앞의 작은 야산에도, 단지 내의 뜰에도 참세 떼들이 왁자하게 떠들면서 몰려다닌다.

베란다 난간 위에 땅콩을 담아둔 모이통이 어느새 비었다.

한 마리가 와서 물고 가더니 이번엔 떼를 지어 나타나 아우성을 친다.


그동안 동박새와 곤줄박이, 직박구리에 밀려 통 보이지 않던 참새들의 개체수가 많이

늘었다.

지독한 추위로 세상이 꽁꽁 얼은 한 겨울을 저렇게도 작은 몸뚱이로 살아남았으니

참 대견하다.


참새를 보며 점점 더 욕심이 생기는지 제비도 보일까 빈 하늘을 바라본다.

새벽기온은 아직 추운 날씨지만 곧 따사로운 햇살이 퍼지겠지.

참새들 덕분에 즐거운 하루가 시작된다.


09;00

논산의 넓은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는 논산무애(論山霧靄)로구나.

무서운 속도로 무한 질주하는 차량에 질려 박무(薄霧)가 양옆으로 사라지고

차창을 열면 금세라도 황소 울음소가 들릴 것만 같은 고즈넉한 들판을 지나

내가 기대하는 신천지가 나오겠지. 


10;50

자욱했던 안개는 서서히 걷히고 며칠간 기승을 부렸던 미세먼지 지수도 보통으로

회복되자 완주 모악산의 태양빛도 기운을 차린다.


유난히도 매서웠던 겨울의 기세를 봄기운이 사납게 무너뜨리자 연둣빛이 땅바닥부터

퍼지기 시작한다,


더러운 냄새가 진동하는 인간세상을 경멸이라도 하듯 세상의 색깔을 바꾸기 시작하는

개불알꽃을 만나니 웃음이 나온다.

고명한 식물학자들이 게으름을 피는 지 아직 이름이 바뀌지 않은 개불알꽃엔 해학(諧學)이

담겼다.

꽃이 와글거리며 소생의 기쁨으로 약동(躍動)하는 모습을 보며 며칠간 겪었던 우울증이

말끔히 사라지고 영혼마저 맑아진다.


4월 산행은 고르기가 힘들다.

봉화 옥돌봉(1242m), 의령 한우산도(764m)도 다 산불방지 입산통제에 해당되어

도립공원으로 관리되고 있는 모악산을 찾은 거다.


지난주엔 이곳에 폭설이 내렸는데 수도권엔 제법 굵은 작달비가 창문을 두드리며

봄을 재촉하였지.


    <         작달비


          일비가 메마른 대지를 두드리면

          농부의 작은 가슴이 설레려나.

   

          주룩주룩 밤새 내리던 주룩비

          겨울나무의 환호성에

          작달비로 얼굴을 바꾸더니

          사정없이 대지를 적신다.


          시린 목덜미에 고였던 겨울을

          밀어내는 봄비가

          산수유 꽃망울을 터뜨리게 하는 이른 아침.


          문설주에 달아 논 땅콩그릇에

          눌러앉았던 참새가 뽀르르

          숲속으로 사라지며 짹짹거린다.

         

          빗소리와 새소리가 어우러진 숲의 소리는

          자연의 오케스트라이다.                                 석천   >


오늘은 비 오는 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현호색'을 바라보며 지난주 비올 때 메모를

했던 작달비가 생각나 글을 옮겨본다.


산행코스는 대원사~수왕사~정상~천일암~주차장으로 원점회귀를 하기로 한다.

정상까지 3km 거리에 약 두 시간이 걸리겠지.


                   <          삼월의 아침


                   삼월의 아침은 시끄럽다.

                   참새들도 시끄럽게 와글거리고

                   학교 담장 밖으로 새나오는

                   아기들의 합창소리도 시끄럽더니

                   땅바닥의 흰 제비꽃도 새 생명이라고

                   아우성친다.


                   봄의 따뜻함을 시샘하는 꽃샘바람도

                   산허리에 걸리는 구름소리도 시끄럽고

                   만물이 약동하는 소리가 온통 시끄럽다.


                   세상의 시끄러움이 아름답게 들리는

                   3월의 아침

                   봄의 소리를 아름답게 만든

                   마법의 햇살이 빗살 되어

                   흰 제비꽃의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석천       >


잿빛으로 칙칙하던 산길에 별빛처럼 하얀 제비꽃에 눈이 환해지며 산이라는 세상이 밝아진다.


발아래가 파릇파릇해지고 나무에 고였던 겨울이 사라졌다.

누가 심지 않았는데도 때가 되니 나무들은 눈을 뜨기 시작하고 사방에 풀들이 파랗게 산의

속살을 감추기 시작한다.


최근에 꽃씨 하나를 심어 보지 않았고, 나무 한 그루 심어 보지 않았어도 생명의 외경과

소중함을 알게 되었지.

북풍한설을 이겨내고 새 생명을 내보내는 자연의 위대함에 잠시 경의를 표한다.


생강나무의 노란 꽃은 노랑 병아리의 솜털을 닮았고 진달래의 꽃망울도 터졌다


산괴불주머니의 노란꽃이 어디에 피었을까 두리번거린다.

두해살이풀이라 이런 산속에서 많이 피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금년에도 검단산을 가지 못해 처녀치마, 청노루귀, 복수초를 만나지 못했는데 이곳에서

만날 수 있을까.

꿩의 바람꽃과 개별꽃이 군무를 추는 축제를 볼 수 있을까.


무리를 지어 하얗게 핀 개별꽃의 진한 사포닌(saponin)의 향기는 내몸이 속세에서 묻어온

속진(俗塵)의 냄새를 말끔히 지워버릴 텐데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폭포의 높이는 고작 2m도 되지 않는데 '선녀폭포와 사랑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보름달이 뜨면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였다는 폭포의 물깊이가 발목에 겨우 닿을 정도이다.


선녀들은 저 위에 있는 수왕사 약수를 마시고 신선대에서 신선들과 즐겼는데

우연히 나무꾼이 이 폭포를 지나다 아리따운 선녀에 반한다.


두 남녀는 대원사 백자골 숲에서 입을 맞추는데 난데없이 뇌성벽력이 울리며 돌이 되었다며

여기에 치성을 드리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다소 진부한 전설을 읽고 산행을 위한

준비운동을 한다. 


등산은 많은 체력이 필요한데 오늘같이 산 이름에 '악'자가 붙은 산을 오르면 엄청난 체력을

소모하게 된다.

준비운동 없이 산에 오르면 근육과 관절에 무리가 오고, 심장과 혈관이 압박을 받아 빨리

지치게 된다.


따라서 가벼운 체조와 스트레칭으로 어느 정도 체온을 올린 다음 천천히 걸어 서서히

심장박동이 빨라지게 하면 좋다.


봄을 재촉하는비가 자주 내리더니 지난주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겨울이 가고 또 찾아든 봄이면 난 겨울앓이를 심하게 한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봄이 가면 봄이 간다고 봄앓이를 하는데 나는 거꾸로 겨울앓이를

심하게 한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만난 봄바람이 몸을 덥게 만들어 티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게 한다.


봄은 이른 봄, 늦봄, 상춘(常春), 고춘(古春), 만춘(晩春), 모춘(暮春)으로,

여름은 초여름, 한여름, 늦여름 등 이름이 많지만 이름이 많지 않은 겨울은 외롭다.


더위를 유달리 많이 타서 겨울이 사라질 때면 유난히 겨울앓이를 하는 가 보다. 

겨울앓이건 봄앓이건 앓이를 치유하려면 숲으로 가야 하겠기에 먼 길을 달려와 모악산

품에 안긴다.


아직 연둣빛에 서투른 숲이지만 겨울 숲과 달리 봄 숲은 냄새부터 다르다.

내가 왜 저렇게 칙칙한 색을 좋아했던가,

변덕이 심하니 이제부터 연둣빛과 녹색을 좋아해야겠지.


다양한 수종의 활엽수 숲에 백매화가 암향(暗香)을 뿌린다.

매화(梅花)는 매년 새로 피어나는 걸까, 아님 잠시 쉬었다가 제자리로 다시 돌아온 걸까.

매향을 맡으며 영원한 재귀(再歸)의 시간이 쌓인다는 생각이 드니 나도 많이 늙었구나.


            <        매화

                          

              쭈비쭈비 허공에서 노래 부르던

              동박새 날아 백 매화 가지에 앉았네.


              매화 향 진한 가지에 눌러앉은 동박새

              꿀 냄새 그윽한 매화가지에 둥지를 틀면

              매향에 취한 동박새나 한잔 술에 취한

              나와 무엇이 다르랴,


              만발한 매화꽃에 동박새는 꿀을 따먹고

              나는 매향에 듬뿍 취하리.                           석천    >


매화는 초봄이 되면 가장 빨리 피는 꽃이지.

눈 속에서 피면 설중매(雪中梅)요, 겨울에 피면 동매(冬梅)라고도 하지만,

꽃술의 색깔에 따라 흑매(黑梅), 하야면 백매(白梅), 붉으면 홍매(紅梅), 푸른색깔이 보이면

녹매(綠梅)라고도 불리는데 매화나무 아래에 서니 그윽한 향기가 스멀스멀 들어온다.


해마다 고불매(古佛梅)를 찾아 헤매다가 금년은 춥다는 핑계로 제대로 탐매(探梅)를 하지

못하였으니 이 매화가 나를 좋아할까.

다산 정약용은 홍매보다 백매, 겹매화보다 홑매화를 좋아하였고, 백매 중에서도 녹매를

최상이라고 평했다지만 나는 매화꽃 모두를 사랑한다.


꽃과 나무의 덕을 칭송한 우리 선조는 사군자 중에서도 매란국죽(梅蘭菊竹)이라며

매화를 제일 앞에 줄을 세웠는데,


고려 말 하즙이 심은 지리산의 원정매(元正梅), 조선시대 강희안이 신은 정당매(政堂梅),

조식이 심은 남명매(南冥梅), 화엄사 길상암의 화엄매,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古佛梅),

순천 선암사 무우전 담길의 20여 그루의 고매(古梅), 순천 금둔사의 납월매(臘月梅),

안동 도산서원의 도산매,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 통도사의 자장매가 유명하다.


나는 무우전의 고매 , 백양사의 고불매, 연화산의 고매, 경복궁의 고매까지 심매(尋梅)를

하였지만 원정매, 정당매, 화엄매, 납월매는 보지 못하였으니 내년엔 탐매를 해야겠다. 


고작 1분도 같이 있지 못하면서 매화타령을 하는 나에게 매화는 내 마음을 움직이고 사랑과

감사를 전하는 최고의 봄 선물이다. 


나뭇잎은 겨우 기지개를 펴지만 땅바닥의 풀은 태양을 향해 거침없는 행보를 한다.

딱따구리가 숲의 정적을 깨더니 다시 고요가 찾아온다.

많은 민초들이 구도(求道)를 하기위해 찾았던 모악산에 내 몸도 깊이 들어섰구나.


내 숨소리만 들리는 숲은 숲 자체로 구도처(求道處)요, 수도처(修道處)이다.

한가하고 고요하고 말다툼이 없고 시끄러운 도시에서 떨어져있으니

적정처(寂靜處)요, 무쟁처(無爭處)요, 원리처(遠離處)라고 말하던 현인(賢人)이 생각난다.


악산(岳山)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기암괴석과 협곡 등의 절경은 보이지 않지만

어디 한 군데 모난 구석 없는 유순한 산의 숲속에 안기는 즐거움을 무엇으로 말하랴.


나는 마음의 평온을 얻고자 산으로 드는데, 나와 반대로 아래세상으로 나서는 계류의

물소리가 하도 낭랑하기에 가던 길 멈추고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잠시 바라본다.

내 마음 속에 묵직하게 담겨있던 시름을 물소리에 흘려보내고 다시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돌린다.

나에겐 염치가 없는 걸까, 염치도 없이 물소리를 밟고 하늘을 쳐다보니 말이다.


참나무와 단풍나무 가지에 움이 튼다.

햇볕을 신나게 받고 있는 진달래의 꽃망울이 금세라도 펴질 것 같고 층층나무, 물푸레나무도

꽃을 피우려 안간힘을 쓴다.

서어나무는 하얀 배를 감추려 몸부림을 치고 그 몸통을 타고 오르던 담쟁이 여린 잎도

꿈틀거린다.


양지바른 곳에 생강나무 꽃이 피었다.

노란꽃은 가장 연약하면서도 가장 강인하다.

삭풍한파(朔風寒波)를 처절하게 이겨낸 노란 꽃은 자연의 위대함을 나에게 보여준다.



11;25

동학혁명이 실패한 다음 증산교를 창시한 강증산이 천지대도(天地大道)를 깨달았다는

대원사에 도착한다.

나는 오늘 절에 가기 위해 산에 드는 게 아니라 산으로 가기 위해 절에 드는 것이라도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지 않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매화향 머금은 눈이 지난주에도 내렸는데 어느새 다 녹았구나.

겨울내내 눌러 앉았던 얼음이 풀린 산골짝에 물이 흐른다.


산수유도 피어 진달래꽃을 기다리고 연둣빛이 서서히 산허리를 두른다.

이대로 봄비가 몇번 더 내리고 봄바람이 산허리를 두드리면 금세 녹색의

향연이 펼쳐지겠지.

 

완주 모악산은 계룡산과 함께 민간 종교의 메카라 불린다.

동학, 증산교, 원불교 등의 영지(靈地)인 모악산은 예로부터 난(亂)을 피할 수 있는 피란처로

각종 무속신앙의 본거지로 알려졌다.


모악산을 오르며 메시아를 기다리는 미륵신앙,

동학, 정역, 원불교, 증산교의 시간적인 대망사상인 후천개벽과

정감록의 사상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된다.


후천개벽(後天開闢)이라,

후천개벽은 우주적 시간을 선천과 후천으로 나누고 현재 이전의 시대를 선천의 시대로, 

이후의 시대를 후천의 시대로 구분하여 우주 및 인간사에 대변혁이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서구적인 종말론과는 다른 영겁(永劫)의 회귀라는 동양 역(易)의 논리에 기초한 시간관이니

나는 지금 선천과 후천이라는 시간의 경계에 서있는 거다.


세상이 뒤숭숭하니 개벽이라도 되어 세상이 새롭게 형성되었으면 좋겠다.

하늘과 땅이 조화롭게 맞붙어 기존의 삼라만상을 갈아 없애고 새로운 질서 속에서

새 출발하는 꿈을 상상해본다.


후천개벽사상은 조선시대 유교적 정통사상에 비하여 반사회적 혁명적인 성격을 띤

민중 지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와 불교 등 기성 종교에서는 내세적인 천국을 지향하지만 이 사상은 현세적인 천국을

지향한다.


현세에 도래하는 이상적인 도원경인 극락선경(極樂仙境), 용화세계(龍華世界), 춘원선경

(春園仙境) 등의 공간적인 관념이 현실적인 이상세계와 결합하여 민중의 염원에 큰 호소력을

보인 민중 신앙을 생각해본다.


후천개벽사상은 미륵신앙과 도참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혁세(革世) 또는 진인(眞人)의

출현을 대망하며 오랫동안 전승해 내려오다 참위적 성격의 운세사상과 결합이 된다.


오랫동안 불안과 고뇌 속에 살아야만 했던 민중에게 희망의 청사진이 되고

사회 변혁사상으로 자리 잡으며,

동학 교주 최제우의 지상선경(地上仙境),

증산교 교주 강일순의 후천선경(後天仙境),

일부(一夫) 김항(金恒)에 의해 역학(易學)의 논리로 체계화 시킨 정역(正易),

원불교 교주 소태산(少太山)의 이상적 불국토(佛國土)라는 이념의 바탕이 되었다.


신명개벽(神明開闢)이 인간사회의 정신세계에 대해 전면적인 변혁에 중점을 두었다면,

일월개벽(日月開闢)은 우주의 운행질서 자체의 변화를 말한다.


떠나기를 주저했던 겨울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엊그제까지 썰렁했던 찬 기운이 따뜻한 봄기운으로 바뀌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천지운행이 되고 있으며 특히 일월운행이 가장 눈에 띄는 계절이니

무위(無爲)라는 도가(道家)의 사상과 일맥상통 하는지도 모르겠다.


각종 무속사상과 후천개벽 사상 등을 모태로 하여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혁명가와 신흥 종교

시자들에게 미륵 사상을 발현하여 혁명의 젖줄 역할을 한 금산사를 품은 모악산.


미륵 사상을 발현한 금산사를 품은 모악산에도 산악신앙이 있을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악신앙은 단군이다.

산에서 제사를 지내며 나라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고 통치권자의 정당성을 부여받기도

했던 산악신앙을 여기에서 찾아본다.


민속학자들은 산악신앙과 관련하여 산에 급(級)을 매긴다.

최고의 산을 영산(靈山)이라 하여 북한의 백두산과 남한의 작은 백두산이라는 의미를 가진

소백산을 꼽으며 이를 통칭 단군신화가 시작된 태백산(太白山)이라는 거다.


영산 다음으로는 명산(名山), 마지막으로 주산(主山 또는 진산, 진호산)이라고 하며,

주산 이하의 산을 낮은 급으로 매기는데 모악산은 민간신앙을 대표적으로 발현한 산이니

산악신앙을 떠나 나는 모악산을 영산(靈山)의 반열에 매기고 싶다.


대웅전과 4마리 사자가 떠받친 5층 석탑, 범종각을 뒤로 하고 수왕사 방면으로 오른다.


인생을 사는데 다양한 경험을 하면 재미가 있다.

모악산에서 후천개벽 사상에 대하여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


12;23

진묵대사가 석간수를 마시며 지리산 천왕봉을 보며 수도했다는 수왕사 갈림길 정자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조선 중기의 고승인 진묵대사(1562~1633)는 불경을 한번 읽으면 바로 암송을 하고

통달한 천재로 능엄경을 즐겨 읽었고, 선정의 높은 경지에 올라 유유자적하며

중생을 제도하였다는데 선(禪)의 경지에서는 당대의 서산대사와 버금갔다고 전해진다.



친구가 떠온 물 수(水)자를 쓰는 수왕사(水王寺)의 약수를 맛본다.

물왕이절 또는 무량(無量)이절이라고도 불렸던 수왕사는 신라시대인 서기 660년에

보덕화상이 창건하였으니 무려 1,400여 년이 다돼간다.


대한민국 전통식품 명인 제1호에 선정된 '송화백일주(松花百日酒)'는 수왕사의 벽암 스님이

빚었다는데 내려가면 맛을 볼 수 있으려나.


만약 이 산에 신이 있다면 누구일까.

예수도 부처도 단군도 아닌 평범한 민초일지도 모르겠다.


신(神)은 이별을 하더라도 사랑할 시간이 남아있다고 말을 하겠지.

남아있는 삶의 시간을 위하여 마음 한편에서 지울 수 없었던 고독과 먼 곳에 대한 그리움,

인연, 이별 등 인간의 본질적인 아픔과 영원한 물음에 대해 스스로 결론을 낸다.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잠시 시인묵객이 되어 글을 한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


가파른 길을 지나 장군봉 능선(620m)으로 올라서니 키 작은 관목 숲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빽빽한 나무를 뚫고 서서히 하늘이 열리고 산에서 음주를 금지하는 시행령이 시작되었으나

유예기간임을 아는 아낙네의 술 취한 목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12;37

시간과 공간의 개념마져 무디어지기에 두 팔 벌려 하늘을 호흡하고 두 손을 모아 숲을

움켜쥐려 한다.

정상까지 800m가 남았다.


12;50

백재시대부터 무우제(無雨際)와 기우제(祈雨際)를 지냈고 조선시대에도 멧돼지를 잡아

기우제를 지냈던 무제봉을 비껴 정상을 향한다.


과체중이 되어서인지 힘이 많이 든다.

지난겨울 혹한과 미세먼지 탓을 하며 제대로 운동을 하지 못한 관계로 체중이 3kg이나 늘었다.


친구들은 앞서 올라가고 뒤쳐져 천천히 오른다.

피로물질인 젖산이 체내에 급격하게 증가하는지 잠시 앉아 쉬고 싶다.


초기 족저근막염으로 발바닥이 아프기 시작하기에 발전체로 땅을 디디려고 애를 쓴다.

배낭이 무거운 탓도 있지만 상체를 앞으로 약간 굽히고 발끝과 무릎이 일자가 되게 걸으니

숨이 덜 가쁘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며 다리를 재촉한다.

마음과 달리 몸이 말을 듣지 않아 흐느적거리는 몸짓으로 무제봉을 우회한다.


무제봉의 건너편에 천하명당 장군봉이 있는데 힘이 드니 가기가 싫다.

장군봉에 묘를 쓰면 가뭄이 든다는 전설이 있어 지금도 장군봉 능선에는 암매장을 못하도록

주민들이 감시를 한다는데 실제로는 무덤이 있다고 어느 책에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정상이 고개를 슬쩍 내민다.

산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 무념무상이 된다.


정상의 거대한 바위덩어리를 보며 문득 신의 존재란 무엇일까,

내가 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을까,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도 신과 인간의 존재를 알 수가 없으니 어쩌면 나에겐 영원히 알 수

없는 존재이고 풀 수 없는 숙제이겠지.


계단 위에서 들려오는 간드러지고 흐드러진 웃음이 산속을 뒤흔든다.

대도시에서 한참 동안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푸는 건 좋지만 너무 큰소리로 천박하게

웃으니 나무와 꽃들이 스트레스를 받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요즘엔 산 정상에서 지르는 야호소리를 듣지 않는 거다.

그만큼 우리 등산인들이 성숙해졌다.


내려오는 사람의 복장으로는 고산등반을 해도 될 정도로 완벽한데 굳이 등산객, 등반객을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코오롱 등산학교 이용대 교장선생이 저술한 등산상식사전에 의하면

등산(登山)은 '걸어서 산을 오르는 행위'를 뜻하며,

등반(登攀)은 등산보다 좁은 개념으로 손을 쓰지 않고는 오를 수 없는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하는 암벽이나 암릉,  7,000m이상급 고봉을 오를 때

쓰는 용어라고 쉽게 정의를 하였다.


현기증이 나도록 벼랑을 깎아지른 절벽 위 정상은 거대한 안테나가 점령을 하였다.

봉우리의 기상에서 나오는 독특한 아우라(aura)가 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상업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래도 호남 민초들의 독립된 정신세계요, 그들만의 고유한 영역에 들어선 거다.

내가 저 봉우리를 보고 있지만 저 봉우리가 나를 꿰뚫어 보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불어오는 바람이 훈훈한 남풍만은 아니다.

지금 목덜미를 싸늘하게 식혀주는 바람은 북풍이다.


3월 하순이면 당연히 봄인 줄 알았는데 산 정상부는 봄이 아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봄과 겨울이 정상에선 동거하고 있다.



바위가 두른 정상 풍경은 영락없이 갑옷을 입은 모습이다.


엄뫼, 큰뫼로 불려온 모악산의 정상 아래에 자리 잡은 저 바위가 쉰길바위인가 보다.

바위가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 형상과 같아서 모악산으로 이름지었다는데, 아래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도립공원관리사무소 여직원이 아이젠 휴대를 권유하는 바람에 눈 쌓인 풍경을 기대했던

나의 욕심은 바닥을 친다.

그래도 아직 겨울의 시간이 머무는 산은 봄을 향해 몸부림을 친다.


겨울의 마지막 선물인가 아님 초봄의 선물인지 시린 바람이 목덜미를 파고든다.

높은 산에서는 예측하기 어렵기에 변덕스런 기후에 항상 대비를 해야겠지.


구이저수지의 푸른 물을 보며 봉수산에서 내려다보던 예당저수지, 괴산 산막이길

등잔봉에서 내려다보던 괴산호의 푸른 물이 생각난다.


산 정상에서 푸른 물을 바라보면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진다.

저수지 뒤 경각산 너머로 지리산 줄기가 박무를 뚫고 아스라하다.



능선이 겹겹으로 두른 산은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유장한 능선은 꿈틀거림의 미학을 자랑한다.

평야지대로만 알았던 완주, 전주, 김제의 너른 들판에 솟은 산이 박무 속에 서서히 미세한

변화가 시작된다.

며칠만 지나면 초록으로 찬란한 천변만화(千變萬化)의 세상이 되겠지.


미륵산, 계룡산, 대둔산, 종남산, 마이산, 운장산, 장안산이 지척이고 성수산, 만덕산, 덕유산,

지리산, 무등산, 회문산, 강천산, 내장산, 입암산, 방장산, 변산이 조망된다는데 초행이라

산을 구분할 수 없다.


그동안 계룡산, 대둔산, 마이산, 운장산, 장안산, 덕유산, 지리산, 무등산, 회문산, 강천산,

내장산, 입암산, 방장산, 변산에 올랐으니 지금 구분하지 못하여도 저 봉우리들을 다 섭렵을

하느라 고생을 해 다 닳은 등산화 밑창을 내려다본다.



13;09

내 삶의 이정표가 된 산행이지만 모악산 오름길은 호락호락한 길은 아니다.

거리에 비해 체력소모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코스를 택했다.


구도(求道)의 산인 모악산 정상(793.5m)에 올랐다.

민초들의 숱한 염원이 모인 정상에서 깊게 숨을 쉬고 삶의 무게를 견딘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한다.


예전에 정상은 송신탑과 군부대의 철조망에 막혀 오를 수 없었는데 열린 문과 가파른 계단을

통해 정상에 올랐으니 운이 좋다.



1971년 12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모악산 정상에서 기운찬 산세가 길게 뻗어 내린다.

묵묵히 산을 지켜온 정상석 앞에 서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본다.


산이라는 유현(幽玄)한 세상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오묘하다.

나는 산 정상에 서면 나의 존재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느낄 때가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위대한 자연은 경이롭다.

정상에서 신비롭고 가슴 떨리는 아름다움을 느끼니 비로소 산을 보는 진정한 맛을

느끼는가 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가슴 벅차게 떠오르던 이곳.

모험심하고는 관계가 없지만 미지에 대한 설렘이 있는 곳에서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느냐도 중요하다.


잠시 쉬었기에 다시 힘이 생기니 오늘은 내가 가장 젊은 날이다.



자연공원법 시행령이 개정되어 3월 13일부터 국립, 도립, 군립공원내 대피소와 탐방로,

산 정상부에서 음주 행위가 금지 되었다.

1차 적발되면 5만 원, 2차 적발부터는 한 번에 10만 원씩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한다.


산에서 정상주도 이젠 안녕이구나.

바람직한 문화지만 한편으로 서운하기도 하다.


14;00

하산 길에 만난 계단을 넘어서면 천국이 나오려나.

속세의 때를 벗고 빈 지게를 지고 올라간다는 생각을 하니 한없이 겸손해진다.


계단을 다 오르고 나온 풍경에 실소(失笑)를 한다.

정상에서 이곳까지 불과 수십m에 불과한데 통문이 잠겼으니 수백m의 산길을 돌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 나타난 정상의 풍경을 보며 쓴웃음을 짓는다.


작은 바위 두 개가 서있다.

이곳 사람들은 신선대라 부른다.


두 바위가 구이저수지를 내려다보는 형상의 바위에 신선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신선대는

산 아래에 있는 선녀폭포와 전설을 공유한다.

선녀들이 선녀폭포의 맑은 물에 목욕하고 이곳 신선대에 올라 놀았다는데 옥황상제의

딸도 내려왔다고 한다.


이 바위는 맑고 신령한 기운이 있어 깊은 명상을 할 수 있다고 전해진다.



오름길보다 하산 길이 1km가 더 멀다.


겨울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으려는 듯 찬바람이 스치고 햇살이 부채꼴로 비켜든다.


14;38

현대 단학, 국학, 뇌 교육, 지구시민 운동의 창시자인 일지 이승헌 대선사가 대각(大覺)하였다는

천일암은 '하늘 아래 첫 번째 깨달음의 자리'라고 한다. 


맑고 강한 기운이 서려있어 올바른 깨달음을 지향하는 사람이 명상을 하면 쉽게 깨달을 수

있다는 세계적인 명상 수행처 천일암을 지난다.



뜻밖에도 천부경이 새겨진 바위를 만난다.

천지인을 뜻하는 천부경은 대종교의 기본성전이 되는 경전이다.


천신(天神)인 환인(桓因)의 뜻에 따라 환웅(桓雄)이 천부인(天符印)을 가지고 백두산

신단수(神檀樹) 아래 강림하여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의 대업을 시작한

지고(至高)의 천서(天書)로 평가되는 천부경이 새겨진 바위를 보니 묘한 생각이 든다.


1917년 단군교(檀君敎)에서 유포하기 시작한 천부경은 전문 81자로 난해한 숫자와 교리를

담았다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읽으려 해도 지워진 글자가 많아 내 실력으론 해독이 불가능하다.


천부경에 담긴 정신과 철학은 한민족의 문화의 핵심이며 정수(精髓)라고 한다.

'모든 것은 하나에서 시작하여 하나로 돌아가되 그 하나는 시작도 끝도 없으며,

사람 안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들어있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81자로 이루어진 짧은 글 안에 우주의 생성, 진화, 완성의 진리를 지니고 있다는데,

대립과 경쟁의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극복할 수 있는 천지인 삼 원의 조화와 상생의 철학이

담겨있다고 설명을 한다.



정상부의 바위절벽을 제외하고는 별로 바위가 없는 산이라서인지

이런 바위에도 천신바위라고 이름을 붙이고 누군가의 명조체 글씨로 '본성광명 천부경

(本性光明 天符經)'이라고 새겼다.


이 바위에 손을 대고 있으면 기(氣) 에너지를 받을 수 있다며,

'본성강명 천부경'이란 천부경의 이치로 사람 안에 있는 본래의 밝은 마음을 회복하는 것을

뜻한다고 안내판에 썼다.


산 중턱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겨울과 헤어짐을 앞두고 아쉬운 마음이 남는다.


구도(求道)를 위해 민초들이 다녔던 길을 따라 나 자신만의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나선 길.

아직 떠나지 못한 겨울이 구석구석에 남은 곳에서 추억을 남기려 애쓴다.


에돌던 구름이 정상을 가리고 내 그림자를 지운다.

바위 아래 조용히 핀 '현호색'을 바라본다.


꽃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아름답고 예쁜 꽃은 소리가 없는 모양이다.

그냥 소리 없이 피었다가 지려나, 차라리 유치원의 아기처럼 시끄럽게 와글대면 좋을 텐데,

슬그머니 렌즈를 대면서도 미안한 생각이 든다.


며칠 후면 저 꽃이 질 텐데, 산중에 두고 가야하나,

종달새를 닮은 현호색을 보며 문득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난다.


일꾼들의 거친 숨소리에 봉분이 서서히 만들어지고,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기며, 뒤를 돌아보고 울음을 삼키며 사모(思母)의 정을 산중에 두고

내려와야만 했던 그날,

작은 꽃에서 어머니의 잔상이 묻어난다.


사랑바위의 전설을 읽으며 낭자바위를 지나 입지(立志)바위가 나온다.

영원히 변하지 않고 올바른 깨달음의 뜻을 세운다는 입지바위를 뒤로 하고 세심곡 천수암을

만난다.


마음을 닦는 세심곡(洗心谷)에서 하늘의 물이 내려온다는 바위 천수암(天水巖)의 물에

얼굴을 비추면 물에 마음이 비친다는 전설을 읽는다.



넘친 체중으로 정상을 통과해 너덜이 많은 지역으로 내려왔으니 몸 구석구석이 뻐근하다.

목과 어깨는 늘 통증에 시달리지만 오늘따라 족저근막염이 시작된 발을 편하게 쉬지 못하게

하였으니 미안할 따름이다.


나름대로 건강을 챙긴다고 전국을 열병 앓듯이 돌아다녔더니 강건하고 말 없던 발에 아픈

통증을 느끼며 무심하게 지나온 날에 대해 후회를 한다. 


아주 작은 폭포에도 '비룡폭포'라고 이름을 지었으니 모악산에 대한 호남민초들의

애정을 알겠다. 

만경평야를 품은 모악산의 물은 아래로 흘러 만경강과 동진강에 합류하여 서해로 흘러간다.


호남평야의 젖줄 역할을 톡톡히 하는 물소리를 들으며 남은 하산거리를 체크하니

주차장까지 900m가 남았다.


15;20

수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녔던 오솔길을 혼자 걸으며 잠시 침정(沈靜)에 잠긴다.

입을 다물고 침묵하니 마음이 한가로워지고 참된 고요함을 느낀다. 


고요함은 산속에만 있는 걸까,

내 마음속에도 고요함이 있으니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시간은 흐르고 지금도 금세 과거로 묻혀간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에서 하루를 보냈으니 나는 고단한 행운아이다.


김일성의 32대 선조로서 전주김씨 시조인 김태소 묘소의 이정표를 보니 기분이 묘하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일가는 백두혈통이라 했다.

엄연히 시조의 묘소가 전라도 완주 모악산에 있는데도 거짓말을 한다.

전주를 본관으로 하는 전주 김씨의 혈통이라는 걸 만천하가 다 아는 사실인데도 말이다.


북한이 전라도를 호남조선이라 친근하게 부르고, 전라도에 친북좌파성향의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 것도 우연만은 아닌 모양이다.



16;27

약 7km의 산행을 마치고 완주시내 막걸리 촌에서 산행의 피로를 푼다.

일 년에 약 2,000병 정도 생산된다는 송화백일주는 끝내 맛을 보지 못한다.


해발 700m에 있는수왕사의 주지가 약수로 송화가루를 숙성시켜 만든다는 송화백일주,

벽암스님 조영귀 명인의 사찰법주를 맛보지 못한 우리가 풋내기 술꾼이라는 생각이 드니

은근히 자존심이 상한다.  



모악산은 예로부터 3성7현(三星七賢 세 명의 성인과 7명의 현자)과 1만 2천의

도통군자(道通君子) 날 것으로 예언되어 온 신령스러운 영산(靈山)이다.


첫 번째 성인은 진묵대사이고 두 번째 성인은 강증산 선생이다.

마지막 성인이 출현하면 새로운 법이 이 세상에 알려지고 전 세계의 오색 인종이 다 모악산에

몰려들며 민족통일과 인류평화가 이루어진다는 모악산.


명상에 있어 세계적인 명산(名山)으로 알려진 모악산의 유장한 능선을 달리는 찻속에서

바라본다.


22;00

한동안 불면증에 시달렸지.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시계의 초침소리도, 다른 방에서 나는 작은 소리조차 고통스럽다.

내 작은 영혼은 견고한 사념(思念)의 벽을 넘고자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머리는 점점

맑아지고 잠은 백리 밖으로 달아나기에 슬그머니 일어나 방의 불을 켠다.


문을 닫은 방의 공간은 내 사유(思有)의 공간이다.

이제부터는 잠이 오지 않아도 메모를 하고 가져온 책을 보며 영혼을 정리할 시간이다.

시간과 공간과의 관계가 편해질수록 마음도 편해지지만 한잔 술에 취해 스르르 잠이 든다.


                                      2018.  3.  28. 모악산을 종주하고

                                                      고산 휴양림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