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2. 21.
살다보면 누구나 복권당첨에 대한 꿈이 있다.
로또복권으로 가슴 떨리던 그날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난 1월 6일 추첨된 로또복권의 당첨번호가 눈에 많이 익은 숫자다.
서둘러 지갑에서 꺼내 확인하니 한 자리가 틀려 1등 14억 원을 놓치고, 3등 134만 원짜리에
당첨되었다.
행운인가 아님 불운일까.
02와 03이란 숫자 하나에 14억 원은 날아갔으니 1/1,000의 행운에 만족을 해야 하나.
비켜간 행운에 가슴이 벌렁거리고 잠이 오질 않는다.
영등포역 지점장 시절 돌아가신 큰아버지가 꿈에 돼지를 안기기에 복권을 사려고 편의점에
들른다.
새벽 5시 58분이라 2분 후에 발매가 된다고 하여 기다리니 밖에서 다른 친구가 빨리 산에
가자고 자동차 경적을 울린다.
동네사람 깰까봐 산에 다녀와서 사기로 하고 지나쳤는데, 그날 나 다음 편의점에 들어온
소방관이 6시 정각에 산 복권이 1등에 당첨되어 18억 원을 탔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일손이 잡히지 않았는데 이날도 영락없이 그날의 심정이 된 거다.
은퇴 후 변변한 돈벌이도 없었는데 134만 원도 행운이겠지.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고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하지만 814만5000분의 1 확률이라 벼락에 맞아
죽는 것보다 두 배나 힘들다는 로또복권의 비켜간 행운에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이틀 후 발표한 연금복권에서도 두 자리가 틀려 1등을 또 놓친다.
나의 행운은 여기에서 그치려나.
꿈은 인간만이 꿀 수가 있기에 행운을 바라는 나의 마음은 호접몽(胡蝶夢)으로 끝날 수도
있겠다.
행운이란 무엇일까.
은퇴 후 산에 다니며 건강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사는 것도 행운이 아닌가.
복권을 계속 사겠지만 이젠 행운을 기대하지 말고 그냥 일주일의 행복으로 즐기리라.
10;06
겨울 산의 서정(抒情)은 무엇일까.
나는 사계절 중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보다 겨울이 더 좋기도 하지만 겨울 산이 매력적인 것은
산의 속살을 가감 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깨끗함과 더러움을 솔직하게 다 보여주는 겨울 산.
산의 속살이 보고 싶어 예당호 물길의 긴 여정이 시작하는 봉수산에 오른다.
임존성이라는 천연요새를 가진 봉수산에서 지식보다는 백제의 뼈아픈 역사를 알아가는 게
더 보람이겠지.
시린바람이 목덜미에 스며든다.
기상청에선 영상온도라고 예보를 하였지만 겨울바람은 아직 떠나지 않고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
예당저수지에서 알파음이 들려온다.
관음보살이 큰 귀를 열고 해조음(海潮音)을 들어야 할 자리에 들어선 휴양림은 침묵에 잠겼다.
불교의 능엄경에서는 이근원통(耳根圓通)이라며 사람이 잠을 자면서도 해조음에 집중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오늘밤 휴양림 숙소에서 잠을 잘 때 귀로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 은근히 기대가
된다.
봉수산 안내도를 보며 1코스로 올랐다가 5코스로 내려오기로 결정을 한다.
산행을 결정할 때 봉수산을 확인하니 아산시 송악면에 536m짜리 봉수산이 나온다.
자연휴양림 숙소가 있는 봉수산은 483m인데 이상하여 다시 확인하니 지금 내가 딛고 있는 곳은
예산 대흥면의 봉수산이다.
인근에 똑같은 이름의 봉수산이 있어 혼동이 된 거다.
아산시에 봉수산 입산금지여부를 문의 하였을 때 산불방지기간에 해당되어 등산이 금지라는
답변이 나왔기에 봉수산 휴양림에 재차 문의한 결과 휴양림에선 봉수산 등산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답을 한다.
이상하다.
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 소속 휴양림의 손발이 맞지 않는 걸까.
인접지역에 봉수산이 두 군데나 있는 것을 세 번째 지도판독에서 발견했으니 내가 착각을
한 거다.
10;20
계단을 오르며 남은 생을 살아가는 동안 나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생각해본다.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머릿속에서 생각을 하지만 요즘은 사면초가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가 있다.
머리 수술이라는 콤플렉스에 빠져 변변한 재테크도 하지 못했고, 제2의 직업도 가지지 못했으니
가족에게 미안함을 입으로 말을 하지 못하고 가슴속에만 담아두려니 답답하다.
앞으로 100세 인생이 대세라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흘러가는데 나의 느릿한 걸음으로 어떻게 풀어야 할까.
현자(賢者)들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나 자신'이기에 자기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라고
하는데 자꾸만 뒤쳐지는 거 같은 생각이 드니 우울증의 시초인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산이라는 세상으로 들어선다.
부는 바람 차가워질수록 그리운 겨울 산, 미처 떨어지지 않은 나뭇잎이 바람에 운다.
가랑잎도 낙엽도 다 바스러지는 계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가을이다.
겨울은 백색의 향연을 펼치지만 황량한 2월의 산은 봄을 향한 자연의 꿈틀거림을 담았다.
10;25
신년 모임에서 깜짝 놀란다.
옆과 앞에 앉은 두 친구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더니 귀에서 보청기를 꺼낸다.
말로만 듣던 보청기 실물을 처음 보는 순간 두 친구의 얼굴이 갑자기 낯설어진다.
오호라 벌써 몸이 망가질 정도로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벌써 난청이 온 거다.
유달리 목소리가 크기에 천성이 그런가보다 했는데 어느새 가는귀가 먹어 보청기 신세를 지는
친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시끄러운 세상이라 때로는 안 듣고 잊으며 사는 것도 좋다고 애써 말하지만 가슴속으로
쓸쓸함이 밀려온다.
두 번째 명함을 만들 사이도 없이 상실의 시대에 접어들었구나.
엇박자를 내며 서로 잘 낫다고 주장하고, 먼저 사람이 한 것은 온통 적폐라며 몰아 부치는
세상이라 되는 일이 없으니 쌍미양상(雙美兩傷)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나는 세상이다.
합치면 쌍미요 떨어지면 양상이라 서로 윈-윈(win-win)하지 않고 이전투구를 하며 이전
사람을 다치게 한다.
지금 공격하는 자에게도 5년 후엔 똑같은 보복이 돌아가겠지.
권력의 치졸한 싸움을 구경을 해야 하는 국민들 신세만 처량하니 차라리 안보고 안 듣는 것도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라고 말을 하면서도 황혼의 노추(老醜)가 시작되는 걸 직접 확인하니
마음이 착잡하다.
토르(Tor)와 애추(崖錐)가 공존하지 않는 평범한 산에서 제법 큰 바위를 만난다,
바위에 살며시 손을 대고 황혼의 내 꿈과 희망은 무엇일까 생각을 해본다.
청춘일 때와 황혼일 때의 꿈은 색깔이 다르겠지.
어진 사람은 산을 택한다는데 오히려 산이 어진 사람을 만들어주는 게 아닌가.
자연의 시간도 속세의 시간과 같이 흐르겠지만 이곳에서의 시간은 질이 다르다.
눈의 시선과 마음이 함께 머무르니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곳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원하지 않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최근에 특별한 사정이 생겼는지 갑자기 연락을 끊은 지인이 생겼다.
회자정리(會者定離)인가.
용서를 받기 위해서 기독교에서는 회개(悔改)라 하고 불교에서는 참회(懺悔)라고 한다.
참(懺)은 용서를 청하는 것이며 회(悔)는 뉘우침을 말 하는 것이라, 즉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다른 이에게 용서를 청하는데 기독교는 숭배의 대상인 하느님과 예수에 대해 회개를 하기에
형식이 조금은 다르다.
내가 비록 천수경은 몰라도 십악참회(十惡懺悔)라는 의미를 아니 조용히 사색을 하며
음미를 한다.
몸으로 산 생명을 죽인 살생(殺生), 남의 것을 훔친 투도(偸盜), 음행을 지은 사음(邪淫),
입으로 거짓말을 한 망어(妄語), 꾸밈말의 기어(寄語), 이간질한 양설(兩舌), 나쁜 말인
악구(惡口), 마음으로 지은 죄로 탐욕을 말하는 탐애(貪愛), 성낸 죄인 진에(瞋恚), 어리석음의
치암(痴暗)을 물리칠 수 있을까.
부드러운 작은 산길이 열리고 솔향이 스멀스멀 콧구멍으로 들어온다.
평범한 숲에 쌓인 시간이 어느새 겨울 판타지를 끝으로 내몰았다.
도시와 멀어지면 자연과 더 가까워지는 법이다.
곧은 소나무의 푸른 기세는 또 다른 세상을 만들었고,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는 소나무를
보며 문득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바위가 막아선듯하다가 길을 열어준다.
땅의 살갗이 쓸려 내려가 드러난 나무뿌리를 피해 서서히 오르다 옆으로 시선을 돌리니
거대한 예당저수지가 시야를 압도한다.
1929년에 착공되어 해방 후 1964년에 완공된 예당저수지는 남북길이 10 km, 동서길이 70km,
저수량 4,607만t, 관개면적 91.89㎢로 단일저수지로는 국내에서 가장 크다.
농업관개용, 생활용수공급과 홍수조절기능을 하며 각종 담수어가 풍부하여 낚시터로도 유명하고
1986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어디선가 물소리 들린다.
저 아래 예당호에서 바람을 타고 물소리가 날아왔구나.
자연의 소리는 귀를 거쳐 온몸에 힐링을 해준다.
토백은 흙속에 사는 괴물로 땅속 제후(諸侯)들의 우두머리이다.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흙더미에서 흙의 신인 토백(土伯)이 튀어 나오려나.
먼저 올라간 친구가 별유천지(別有天地)라며 손을 흔든다.
산도 나무도 모두 평화롭기에 편안해진 마음으로 자연의 거대한 서사시를 읽어야겠다.
숲속으로 하늘빛이 스며들더니 빛은 내가 머물러 있는 시간과 공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그냥 평범해 보이는 장소지만 사선(斜線)으로 빗겨드는 태양빛은 장엄하고 신비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나에게 치유를 해주는 자연과 원시의 빛을 따라 산등성이로 올라선다.
산을 오르며 잠시 침묵을 유지한다.
머릿속에 생각이 계속 떠오르며 누가 묵언(默言)을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말문을 닫았다.
침잠(沈潛)인가, 아님 침정(沈靜)일까.
정답은 없지만 숲이 바람소리도 내지 않고 고요하니 침잠이고,
나 또한 입 다물고 침묵하며 한가롭고 참된 고요함을 느끼니 침정(沈靜) 아니겠는가.
산꼭대기에서 보는 거대한 호수는 진경 별유천지이다.
10;50
며칠 전 선운사에 출사(出寫)를 다녀오던 아내가 교통사고로 전치 5주라는 중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을 하는 소동이 벌어졌으니 호사다마(好事多磨)인가 연초부터 복권 등 행운에
들떴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희로애락과 경조사가 생기는 것도 삶의 일부분이라 놀란 가슴을 슬며시 쓸어내며 뒤처리를
한다.
모든 걸 허공에 내려놓으면 일상이 편안해질까.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反)이라,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고,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며 간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고 했다.
사람들은 이별(離別)이라는 말이 무서워 별리(別離)라는 말을 만들었고,
만나면 헤어지는 고통의 애별리고(愛別離苦), 인사를 나누는 작별(作別), 죽어 헤어지는
사별(死別),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애별(愛別) 등 많은 말을 파생시켰다.
각별하게 정 들었던 짐승, 태어나 자랐던 고향산천과의 헤어짐도 이별이겠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의 헤어짐이다.
생리사별(生離死別), 전별(餞別), 송별(送別), 몌별(袂別)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살아가면서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것을 삶의 일부분이라고 하지만 이별이라는 말은 정(情)과
한(恨)이 깃든 미움과 노여움이 공존한 사랑이다.
이번 겨울엔 유난히도 추위가 극성을 부렸지만 며칠간 불었던 온풍으로 산자락에 남았던
잔설이 거의 다 녹았다.
잔설을 밟는 소리가 들린다.
서걱서걱 대는 소리가 바람에 실려 오는 까마귀 울음과 제법 잘 어울린다.
눈 내린 산을 오르는 것도 좋지만 나는 눈 내리는 산에 오르는 것을 더 좋아한다.
충주 계명산과 완주의 안수산에서 함박눈을 맞으며 산행을 한 후 거의 일년 정도는 눈을
맞으며 산행을 하지 못했는데 오늘도 눈은커녕 하늘은 점점 파래진다.
11;13
백제 부흥군의 역사가 깃든 임존성은 장쾌함보다는 아기자기한 풍경이다.
서기 660년 신라의 김유신 장군은 5만 명의 병력으로 백제 계백 장군이 거느린 5천 명의
결사대를 황산벌에서 전멸시킨다.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의 침략을 받은 사비성이 함락되고 의자왕 정권이 붕괴되자
백제는 순식간에 멸망한다.
복신과 도침은 주류성으로 '흑치상지' 장군은 이곳 임존성을 근거지로 거세게 백제 부흥운동을
펼치지만 부흥군(復興軍) 내부의 분열, 고구려와 왜(倭)의 지원 실패, 백제의 남부 평야지대를
신라군이 장악함에 따라 물자의 보급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 부흥운동은 실패하고 백제는
소멸이 된다.
흑치상지 장군의 자료를 찾아보니
7척이 넘는 키에 용감하고 지략이 뛰어났던 흑치상지 장군은 무리와 더불어 항복하였다가
소정방이 의자왕과 태자 효(孝)를 사로잡고 제멋대로 약탈을 하자 족장 10여 명과 반기를
들어 임존성을 근거지로 백제 부흥운동을 하였다.
부흥군은 한때 3만 명으로 늘어나 200여 성(城)을 되찾아 기세를 떨쳤지만 복신과 도침의
본거지였던 주류성이 함락되자 항복을 하고 그는 오히려 당군(唐軍)의 선봉에 서서 백제의
마지막 보루였던 임존성을 함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당나라로 가 벼슬을 받는다.
다시 백제로 돌아와 옹진도독부의 군장이 되었다가 신라의 공격을 받아 도독부가 소멸되자
당나라로 들어가 귀족의 직위 중 세 번째로 높은 국공(國公)이 되어 3,000호의 토지를
소유하게 되는데 훗날 측천무후의 통치 때 반란을 하였다는 무고를 받아 옥에 갇혔다가
자결을 하였다고 기록되었다.
흑치상지는 충신일까 아니면 간웅(奸雄)일까,
어쩌면 효웅(梟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판단을 할 수 없지만 흘러간 역사의 흔적을 보며 요즘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을 곰곰이 생각한다.
도심을 떠나 산이라는 자연속의 세상,
풍경 속에 시름을 덜어내며 숨을 헐떡인다.
산과 기(氣)싸움을 할 이유가 없기에 그냥 몸을 산에 맡기다가 빙판에 미끄러지며 내 두 다리는
하늘을 향해 버둥거린다.
메고 있던 배낭 덕분에 허리와 머리가 보호되었지만 잠깐 당황을 한다.
최근 수년간 산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신경을 썼는데 아이젠을 차지 않은 상태에서
순간의 방심으로 두 번씩이나 넘어진다.
여러 사람의 등산객이 반대쪽에서 올라와 스쳐 지나가고 이번엔 혼자 산행하는 사람이 온다.
눈 내린 겨울 산을 즐기다 보면 자기만의 혼자 산행을 즐기는 사람을 많이 본다.
나도 정기산행이나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서울 근교의 웬만한 산은 혼자 즐긴다.
번거로움 없이 조용히 사색을 하며 삶에 찌든 육체와 정신의 찌꺼기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활력을 얻고자 할 때는 혼자 산행을 하는 것이 좋다.
홀로 산행은 내적(內的)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하는 값진 시간이 될 수 있지만
기온이 급강하하고 눈이 많은 산에서는 위험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무방비 상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많은 등산객들이 북적대는 산에서는 홀로 산행을 즐기지만 이렇게 원거리 등반이나
초행인 산은 가급적 여럿이 한다.
당국에서 아무리 기상예보를 정밀하게 한다 해도 자연은 계절과 날씨의 변화에 따라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다가오기에 어떤 모습으로 재앙이 되어 찾아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산은 우리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위험 요인을 상당수 갖고 있다.
장수 장안산의 가파른 눈길에서 15m나 굴러 떨어지다가 나무 등걸에 배낭이 간신히 걸려
멈췄어도 대롱대롱 매달린 채 자력으로는 자세를 잡을 수 없어 동행한 친구가 구해준 일도
있었지만 멧돼지 등 야생동물의 위협도 예사로 보아선 안 된다.
내가 홀로 산행을 하다 굴렀으면 구조를 받을 수 있었을까.
산이란 위험을 즐길 만한 대상이 아니다
이런 산이라면 반드시 누군가와 동행을 하고 빨리 가서도 안 된다.
혼자 산행을 하는 사람을 보며 묘한 상념에 잠시 빠져들었다가 미끄러지며 넘어졌지만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다.
능선 길은 순백의 길이다.
임존산성의 기슭엔 눈이 얼어붙어 빙판길이 되었기에 자세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걷는다.
여기는 눈 내리는 산이 아니고 내린 눈이 얼어붙은 산이다.
눈길을 걷다가 미끄러졌으니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인가.
잠시 당황하였지만 긴장감이 사라지며 다시 산길과 일체감으로 젖어든다.
이 겨울이 지나면 또 다른 시작이다.
마지막 달력을 버리고 새해의 달력을 펼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어느새 둘째 장의 끝자락에
동그라미를 쳤다.
세찬 바람이 계곡을 타고 올라온다.
자연의 소리는 단연 바람소리다.
자연의 소리에서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나무 위에서 들리는 새소리,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 바람이 날아가다 나무에 걸리는 소리,
구름이 하늘가를 흐르는 소리 등 온갖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문을 연다.
예당호 박무(薄霧)의 농도는 점점 옅어진다.
산과 물과 신이라,
이 산에 신이 있다면 여신(女神)이겠지.
정상을 앞둔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니 드센 바람이 몰려온다.
이 산에선 바람도 외롭다.
바람이 외로운지 적막을 밀어내고 인간이 감히 상상하지 못한 자연의 시간은 흘러간다.
우뚝 선 봉우리의 형상이 불(火)의 형상이다.
모든 산이 매 계절 매력을 뽐내겠지만 지금 이 산은 편안한 능선 길을 뽐낸다.
걸음걸음마다 튀어나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정상을 향한다.
11;30
봉황새의 머리인 봉수산 정상(483m)은 슬그머니 다가왔다.
홍성군의 안산(案山)에 해당되어 대흥산(大興山)이라고도 불렸던 봉수산 정상에
넘쳐흐르는 햇살은 거친 바람에 얼었던 몸을 녹여준다.
여기에서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소박과 단순이다.
넓은 공간에 서있는 작고 소박한 정상석은 마법의 나라를 만들었다.
11;50
홍성과 대흥을 잇는 길목인 비티(飛峙)고개와 큰비티고개(大飛峙) 방향으로
하산을 한다.
성서에 의하면 조물주는 태초에 자연을 만들었고 그 다음에 인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서로가 뗄 수 없는 필요한 존재이다.
자연은 인간의 정복대상도 아니요, 이용의 객체도 아니다.
가쁜 숨을 내쉬며 보라색으로 변하는 생강나무의 꽃망울에서 산자수명(山紫水明)을 생각한다.
맞다 산자수명은 우리의 대표적인 자연관이지.
소나무는 작은 생명으로 태어나 긴긴 세월을 먹고 거대한 나무로 자랐다.
청춘을 지나 황혼의 나이가 된 어느 소나무의 등 굽은 모습이 어느새 나를 닮아가는구나.
12;17
숲으로 햇살이 비껴든다.
빛과 숲, 그리고 산길에 만들어진 내 그림자가 삼위일체를 이룬다.
잎사귀를 떠나보내는 비움을 실천하고 겨울을 난 나뭇가지에 꽃망울이 돋아난다.
바람이 지나가며 몇 잎 남지 않은 마른 잎을 흔들어대고 숲은 다시 슬그머니 침묵으로 들어간다.
산길과 계곡에 있는 나무는 봄의 환생(還生)을 향해 몸부림친다.
잎을 깨끗이 내려놓은 생강나무에 꽃망울이 부풀기 시작하니 봄은 어느새 지근까지 왔구나.
낙엽 속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나온다.
땅속에서 새 생명들이 꿈틀거리는 소리는 또 다른 깨우침을 준다.
새잎을 내려고 몸부림을 치지 않아도 무위(無爲)의 자연은 봄을 맞을 준비를 하는구나.
12;55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채우는 산길에서 어딘가에 숨어있을 노루귀와 복수초를 찾으려
눈과 귀에 집중하지만 만나지를 못하고 숙소에 도착한다.
14;00
이젠 내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오천항 바닷바람에 날려 보낼 때이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으니 그 자체가 인생의 훈장이 아닌가.
해풍을 타고 봄 냄새가 실려 온다.
나는 마음속으로 봄을 부르며 외치지만 바닷바람에 그 소리는 조용히 묻힌다.
먼 곳에 대한 그리움만 그리움인가.
잠시 바다 건너 피안(彼岸)의 세계를 그린다.
술잔을 든다.
어차피 오늘 집에는 안가니 대취해 불취무귀(不醉無歸)를 해야겠다.
술에 취하지 않은 사람은 집에 못 간다는 어명을 내린 정조임금의 해학이 생각난다.
21;00
잠시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바라본다.
우주는 과연 어떻게 생겼고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별에는 인간이 알지 못하는
어떤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
무심코 지나쳤던 밤하늘의 우주성운을 보면서 의문점이 끝없이 떠오르니 아직은 청춘인가 보다.
2018. 2. 22. 07;30
예당호 앞동산에 태양이 두둥실 떠오르고, 누구집의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시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꼭두가 지나간 봉수산의 정상이 태양빛을 받아 황홀하게 빛나고,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는 봉수산(鳳首山)의 유장한 능선이 꿈틀거린다.
08;40
지금 내가 밟고 있는 데크는 산위에서 보던 예당저수지의 수변이다.
결혼하기 전 1977년이면 41년 전이구나.
몇 년 전 부산에서 작고(作故)한 동창과 낚시를 하러 1977년 5월 예산에 내려왔지.
예산 시외버스 터미널에 마중을 나오기로 약속한 한XX 동창이 펑크를 냈으니 지리도
잘 모르는데 난감하다.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지나가던 트럭이 차를 세우고 사정을 묻더니 함곡리라는 저수지에
우리 둘을 내려놓고 어디론지 사라진다.
5월이라도 밤에는 춥지만 항공복으로 무장을 하였기에 밤낚시를 즐겼고 새벽녘에 그 트럭
운전사가 라면과 물을 가지고 나타난다.
너무나 고마워 친절을 베푸는 이유를 물었더니 함곡리 저수지에서 자살 등의 사유로
익사체(溺死體)가 자주 떠오르는데 우리를 데려다주고 밤새 걱정을 하였으며 우리를 보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담담히 말한다.
이름도 성도 전혀 모르는 그 사람은 예산에 사는 사람이 약속을 어겼다는 사실이 싫어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었다며 나타나지 않은 동창을 대신하여 사과를 한다.
요즘같이 매스컴이 잘 발달하고 지방자치가 잘되었더라면 예산군청에 미담을 알리고
사례를 하였을 텐데, 당시만 해도 임명직 군수의 수하 공무원들이 국민들 위에 군림할
때였으니 미담을 접수 시킬 생각을 못했지.
잔설이 희끗한 봉수산 아래 예당호 데크에서 아득히 먼 옛날 추억을 기억해낸다.
물고기가 많이 잡혀 초보낚시꾼의 사관학교로 유명했던 예당저수지 입구의 강아지
두 마리에게 간식을 주고 외암마을을 향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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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박물관인 외암 민속마을에 들어선다.
먼발치에서 보이던 초가집엔 세월이 쌓였고 정적만 흐른다.
겨울바람이 불어 썰렁한 분위기라 우리 일행만 마을에 들어선다.
마을 입구에서 지세(地勢)를 살펴보니 설화산이 안산(案山)으로 아늑하고 편안하다.
옛 사람들은 아무 곳에나 삶의 터를 정하지 않았다.
즉 바람과 물, 주변 환경과 지리와 사람들의 인심(人心)까지 두루 살펴 자리를 정했던 거다.
조선 선조 때부터 예안 이씨가 정착하면서 예안 이씨 집성촌이 되었고,
후손들이 번창하여 많은 인재를 배출하면서 양반촌이 되었다는 외암마을을 둘러본다.
성리학의 대학자인 외암(巍巖) 이간(李柬) 선생이 마을에 살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며
마을이름도 그의 호에서 따왔다고 전해진다.
성리학이란 무엇일까.
성리학이란 사람의 성품과 의기, 우주의 원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공자와 맹자의 유교사상을 성리(性理), 의리(義理), 이기(理氣) 등의 형이상학 체계로
해석을 하고 이를 성리학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리학자로는 정도전과
우암 송시열 선생을 꼽는다.
당시의 유학자(儒學者)들은 불교의 가르침은 공허하고, 도교의 은둔(隱遁)과 불교의 세속을
떠난 출가(出家)를 가정과 사회의 윤리기강을 무너뜨리는 요인이라며 매우 부정을 했다.
따라서 성리학은 사회적 인간관계와 개인의 수양,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혈연공동체와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 공동체의 윤리 규범을 제시하여 사회의 중심 사상으로 발전하였는데,
오늘날에 와서 극락과 지옥이라는 내세(來世)를 주장하는 불교는 종교로 대접을 받지만
성리학의 근간이 되는 유교는 종교대접을 받지 못하고 학문으로서만 대접을 받는다.
이와 달리 주자학은 불교와 도교를 비판하지만 이들의 발달된 이론체계를 받아들여
유교에서 결여된 형이상학적 체계를 수립하였다.
인간의 심(心) 작용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또한 우주만물의 존재와 변화를 이(理)와 기(氣)를 통하여 설명을 하며,
모든 사물과 인간이 동일하다며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도덕 수양과 경세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인성물성동론(人性物性同論)자였던 외암 이간 선생의 묘소에 도착한다.
그는 '사람의 생명과 동물의 생명은 같은 것이라는 생명존중사상'을 주장했다.
또한 '선비와 노비의 생명 또한 다 같이 존귀하다'며 서로의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인간평등사상을 주장 하는데 그의 학문은 죽은 후 200여 년간 후학들이 치열한 논쟁을 거쳐
실학사상으로 발전하며 성리학을 완성하는 학문이 되었다.
성리학을 주창한 주자(朱子)의 학문과 높이가 같다는 이간 선생의 학문,
조선 성리학의 최고봉인 우암 송시열의 학문과 깊이가 같다는 이간 선생의 학문에 대해
후세 사람들은 '산고무이(山高武夷) 동심화양(同心華陽)'
즉 '산은 높아 무이와 같고 골은 깊어 화양과 같다'라는 말을 바위에 새겨 칭송을 했다.
50세의 짧은 생을 살았지만 생명존중사상과 인간평등사상을 주장하며 조선시대 최고의
학문을 정립한 대유학자의 묘소 앞에서 겸허한 자세로 정리되지 않은 복장을 여민다.
광덕산에서 뻗어 나온 설화산이 빛난다.
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예안 이씨의 집성촌인 외암마을은 마을 전체가 국가 중요 민속자료
제236호로 지정되었다.
초가집 50여 채와 기와집 65채가 뒤섞여 다양한 계층이 살았던 전통의 마을이며, 지금도 55가구
135명의 주민이 실제 거주한다고 안내서에서 설명을 한다.
참판댁, 감찰댁, 풍덕댁, 교수댁, 참봉댁, 조온댁, 송화댁, 건재고택, 신창댁을 거쳐
자연석으로 쌓은 돌담장 길을 걷는다.
마을을 벗어나기 전 거대한 느티나무가 앞을 가로막는다.
안내판에는 수령 600년, 높이 21m, 둘레 5.5m라고 적혀있는데, 마을에서는 장승제와 함께
매년 음력 1월 14일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목신제(木神祭)를 지낸다고 한다.
저곳에 살던 수많은 사람들은 이승을 하직했지.
생태의 순리처럼 자연은 돌고 돈다.
또한 사람도 때가 되면 세상과 하직을 하고 새 생명이 태어난다.
모두가 한때인 것을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젠 가속도가 붙은 시간의 관성 속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든 나이가 되었다.
뒤로 사라지는 것들은 그리움을 남기기에 사라지기 전 마음껏 보고 그리워하리라.
10;06
12월엔 회향(廻向)을 하였으니 설날과 정월 대보름날이 낀 2월엔 참회(懺悔)를 하는 달로
설정해야겠다.
참(懺)으로 용서를 청하고 회(悔)로 잘못을 뉘우치며,
나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며 사는 2월이 되리라.
또한 나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을 살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는다.
2018. 2. 21~22. 예산 봉수산과 외암마을을 다녀와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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