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3. 29. 08;40
이목대를 목표로 하여 전주 한옥마을에 들어섰으나 주차공간을 찾지 못해
한국 천주교회의 첫 순교 터인 전동성당에 들린다.
고산 윤선도의 6대 손인 윤지충은 정조 때 좌상인 체재공의 신망을 받아 장래가 촉망되는
선비였지만 모친의 유언과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유교식 조상제사를 폐지하고 외종형
권상연과 함께 지금의 전동 성당 자리에서 참수되어 한국 교회의 첫 순교자가 된다.
동학과 서학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절,
양반과 상놈의 구분이 엄격하고 조상에 대한 제례 등 유교사상이 엄격하던 시절,
폐제분주(廢際焚主) 즉 제사를 폐하고 신주를 불태우면 사형을 당하던 시절을 유추해석
해본다.
당시 천주교가 처음 들어와 포교를 할 때 우리나라의 종교 사상을 이해하고,
신분의 차이도 인정하고, 제례를 인정하며 서서히 포교를 하였으면 천주교 신자들이
대규모로 학살을 당했을까,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교리에 따라 사랑으로써 인정을 하고 서양문물을 전파하였으면
오히려 일본보다 더 강력한 근대국가가 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내가 종교에 대해 문외한이라서 일까.
완전한 격식을 갖춘 전동성당의 로마네스크 양식은 동서양의 융합된 모습으로 곡선미가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여 어머니의 품처럼 따스함을 느끼게 한다고 안내서에 쓰여있다.
1908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914년에 외형공사를 마쳤으니 100년 세월이 눌러앉은 성당의
첨탑은 하늘을 찌르는데 특히 12개의 창이 있는 종탑부와 8각형 창을 낸 좌우 계단의 돔은
성당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금산사로 향하는 길의 벚꽃터널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꽃망울이 펼쳐지지 않아 아쉽다.
가을이 되면 감나무 군락에 붉은 감이 주렁주렁 열리겠지.
금산사의 봄 경치를 제대로 보지 못하니 늦가을 금산사의 추경(秋景)을 감상할 기회가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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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인생의 몇 시간을 낯선 시간 위에 서보는 것도 좋기에 모악산을 대표하는 금산사를
찾는다.
백제 29대 법왕 원년(599년)에 왕의 복을 비는 자복(慈福)사찰로 창건되었으니 무려 1400년이
넘은 천년고찰로 후백제 때는 견훤이 큰아들인 신검에 의해 3개월 동안 갇혔던 역사를 지닌
금산사 경내에 들어선다.
벚꽃은 아직 이르지만 목련은 활짝 피었다.
금산사의 봄 경치(母岳春景)는 변산의 녹음(邊山夏景), 내장산의 가을단풍(內藏秋景),
백양사의 겨울설경(白陽雪景)과 더불어 호남의 4경 중 하나로 꼽는다.
우리나라 학문의 뿌리는 주자학과 성리학이다.
주자학은 보수의 뿌리이고 진보의 연원(淵源)은 미륵사상이다.
삼강오륜과 사회 안정에 필요한 위계질서는 주자학의 근본인 분(分)의 질서지만
미륵불은 용화세계(龍華世界)를 추구하며 양반과 상놈의 신분차별이 없는 평등사회를 추구했다.
우리나라에서 주자학이 가장 먼저 뿌리를 내린 곳은 양백지간(兩白之間)으로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인 안동, 봉화 지역으로 가장 안전하게 생명을 보전하며 자급자족 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로 여겼다.
반면에 미륵불의 본거지는 변산반도를 중심으로 이곳에까지 뻗쳤다.
이곳은 바다와 강물, 수백 개의 낮은 산봉우리들이 미로처럼 펼쳐진 복잡한 지형으로
노비와 도적들이 숨어 살기에 좋았다.
그들은 미륵불이 오기를 고대하였고, 미륵불이 노비 신분을 해방시켜 준다고 믿었기에
이곳의 미륵사상이 동학, 증산, 원불교 사상에 기름을 부었는지도 모르겠다.
홍천 공작산 수타사의 대적광전은 용마루에 얹어진 청기와 두 장이 흐린 날에는 눈에
잘 안 띄다가도 햇빛이 비치면 다른 기왓장 속에서 반짝거리는 거로 유명하기에
여기도 그럴까 대적광전 용마루와 기왓장을 유심히 봐도 그냥 평범하다.
대웅전을 찾아도 눈에 띄지 않는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대적광전이 대웅전 역할을 한다.
대웅전, 대광명전, 극락전, 약사전 등의 통합 전각인 대적광전의 겹처마 팔작지붕은 완벽한
균형미를 보여준다.
대장전(大藏殿)은 단조롭고 소규모지만 엄연한 보물 제827호이고 앞에 석등도 보물 제828호이다.
석등은 법당 앞을 밝히는 등불로 인등(引燈), 장명등(長明燈)이라고도 하는데, 화강암으로 만든
고려시대의 작품이다.
보물 제22호인 노주(露柱)가 절간의 한구석에 외롭게 서있다.
자료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고려 초기 석조물이라 노주(露柱)라고 부른다는데,
어디에 이슬을 받는 걸까.
앙련(仰蓮), 복련(伏蓮)이 화려하게 조각된 연화대에 받는 건지 궁금하다.
금산사와는 다른 성격이지만 나의 어머니는 성덕도(聖德道) 신도였다.
여기저기에 흔하게 있는 개신교나 성당 등 가톨릭도 아니고, 또한 불교 신도도 아니며
개신교에서 이야기하는 이단인지 암튼 사이비 같은 신흥종교에 푹 빠지셨다.
1990년대 초로 기억이 되니 30년이 다되어긴다.
성덕도에 심취해 매일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며'를 주문처럼 웅얼거리며 한자(漢字)
공부를 하시던 기억이 난다.
또한 대전교구에서 기치료(氣治療)를 배우셨다며 땀을 흘리며 나의 아픈 어깨에 기(氣)를
넣어주신다고 애를 쓰고, 동네에서 아픈 사람만 생기면 기치료 봉사를 하였다.
성덕도는 1952년 5월 김옥재가 대구에서 창시한 신흥 민족 종교이다.
인간의 천성을 회복하여 도덕사회(道德社會)를 건설하려는 목적으로 창시 하였으며,
인간의 천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자성 반성'을 실천 방법으로 제시를 하였다.
또한 한국의 전통사상인 유·불·선(儒佛仙)을 독립된 별개의 사상이 아니라 이를 하나로
묶어 정진함을 교리의 근본으로 삼아 자성반성, 문맹퇴치, 미신타파, 도덕정신의 함양 등을
4대 강령으로 삼았다.
도생(道生)들은 기운법(氣運法)을 통해 몸이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마음을 치료하였는데
어머니가 그 기운법을 배운 거다.
형제들은 신흥종교라 사이비로 간주하여 반대를 하였지만 어머니의 고집을 꺾지 못하였지.
1993년 어머니의 무릎에 퇴행성관절염이 심해 서울대병원에서 수술하기로 입원날짜까지
잡았지만 입원전날 어머니가 행방불명이 되셨다.
수소문을 하니 성덕도 대전도관에 가셔서 한동안 집에 오시질 않는다.
두 달 후 어머니를 만난 형제들은 깜짝 놀란다.
세상에 기적은 먼데 있는 게 아니라 내 가까운데서 일어난 거다.
수술하는 게 겁이 나 성덕도 도관에 머물렀던 어머니의 무릎이 깜쪽같이 완쾌가 되는 기적을
보여 준 거다.
나는 종교를 싫어하지만 종교는 종교 나름대로 순기능이 있다.
정상으로 회복된 어머니의 무릎을 확인 후 신흥종교라고 무시했던 마음에 죄스러움이 생겼다.
민초(民草)들의 염원이 서린 금산사에서 그리운 어머니 생각에 잠시 가슴이 메인다.
학생들의 시끄러운 소리를 귓전으로 흘리며 보물 제27호 육각다층석탑(六覺多層石塔)앞에 선다.
높이 2.18m 11층 탑으로 우리나라의 탑이 대부분 화강암으로 만든 방형탑(方形塔)인데
이 탑은 특이하게 점판암(粘板岩)으로 만든 다층탑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찰인 불국사, 통도사, 법주사, 신흥사, 해인사, 부석사, 선암사, 백양사,
운문사 등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탑의 섬세한 아름다움에 쉽게 눈을 돌리지 못한다.
퇴적암 종류의 점판암으로 층리면을 따라 쪼개지 않고 벽개면으로 쪼갰는지는 모르지만
전문가가 아닌 방랑자의 눈에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데 미륵전 앞의 학생들은
미륵전안에 모신 거대한 불상에만 감탄을 하며 이런 멋진 작품에는 눈길을 주지 않으니
고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석련대는 보물 제23호다.
연화대의 형식으로 조각한 불상의 좌대로 높이가 1.52m, 둘레가 10m에 이르니 아마도
이 석련대에 앉았을 불상은 거대하겠다.
3층 높이의 미륵전이 당당하다.
동국대학교 고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 사이로 미륵전 안을 들여다보니 높이 11.82m의
미륵불상과 8.79m인 부처불을 모셨다.
내가 처음 보는 거대한 불상은 만인을 압도한다.
사진을 찍으려니 학생들이 촬영금지라고 제지를 한다.
보물 제62호인 미륵전은 겉으로 3층이지만 내부는 통층으로 되어있는 특이한 건물이고
대자보전(大慈寶殿)이라는 글씨는 송나라 명필 김돈희의 작품이라고 한다.
설법이나 법회 중임을 표시하기 위한 금산사의 당간지주가 외롭다.
보물 제28인 금산사 당간지주는 3.5m의 높이로 기단석과 건대를 구비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당간지주로 한국 당간지주 가운데 가장 완벽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한다.
나는 영주 부석사의 당간지주(보물 제255호 4.28m)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였는데,
기단부가 완존하지 않아 전문가들은 금산사 당간지주의 형식을 더 높이 사는 모양이다.
삶의 목적은 행복이다.
미륵사상도 용화사상도 신흥종교의 사상도 다 삶의 행복에 목적을 두었을 것이다.
맹자는 항산(恒産)에 항심(恒心)이 있다며 등 따시고 배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공자도 오래 살고(壽), 부유하고(富), 심신이 건강하고(康寧), 덕이 있고(收好德)
천수를 누림(考終命)의 다섯 가지 행복을 말 한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아프지 않고 민초들이 짧은 삶의 무게를 구도(求道)를 위해 시간의
무게를 이겨낸 현장을 걸으니 행복하다.
요즘은 신문이나 TV보기가 겁이 난다.
불공정한 사회, 분노, 범죄, 기업의 탐욕, 정부의 무능, 국회의 당파싸움, 공직자의 부패,
미~투 운동, 병역비리 등 온갖 공정하지 못한 일들이 매일 발생하기에 수시로 가치관의
혼란에 빠진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현상(現象)세계는 이전투구로 조용한 날이 없다.
공군 용어로 전투기끼리 근접공중전(空中戰)이 벌어지면 개싸움(dog fight)이라고 하는데,
정치권의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공중전, 지상전, 해전을 망라한 싸움은 목불인견
(目不忍見)이다.
따라서 세계는 괴롭고 무상(無常)하고 실체가 없다.
나만 정견(正見)으로 보지 못하는 걸까.
편견 없이 세상을 바르게 보아야 하는데 내가 가진 가치관에 혼란이 생기니
사물이나 현상의 바라보는 나의 견해(見解)에 문제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젠 모악산과 금산사의 정기를 받았으니 정견(正見)의 눈으로 세상을 바로 보며 흔들리지
않으련다.
2018. 3. 29. 금산사 경내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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