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348 안면도 봄 나들이

김흥만 2018. 4. 8. 20:38


2018.  4.  7. 06;00

어스름한 골목길에 떼로 핀 꽃들이 와글거린다.

하늘에선 먹구름이 으르렁대고 갑자기 영하까지 떨어진 기온은 온몸을 오싹하게 만든다.


유난히도 모질었던 겨울을 인내(忍耐)하고 겨우 꽃을 피운 나뭇가지들이 사시나무 떨듯

몸서리를 치고 애처롭게 매달린 꽃잎들이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꽃을 따라 위로 시선을 옮긴다.

카메라를 맨 체 잠시 뒷짐을 지고 꽃에 외경심을 갖는다.

직박구리 한 마리가 열심히 꽃을 쪼아 먹다가 한 잎을 흘려버렸고 그 꽃잎이 하필이면

내 얼굴에 떨어진다.


이 여린 꽃잎이 바람에 다 떨어지면 얼마나 아플까,

하늘을 보며 원망을 하지만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자연의 순리에 항의를 하지

말라고 한다.


나마 다행인 것은 이틀간 내린 비에도 벚꽃이 다 떨어지지 않고 내가 걷는 골목엔

꽃바람이 허공에 가득한 거다.

벚꽃 아래에서 심호흡을 하니 굳었던 얼굴근육이 부드럽게 펴진다.


2018.  4.  7.  07;00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 떼 뿅뿅뿅 봄나들이 갑니다.  ~~~♬♪"


유치원이 없던 시절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제일 먼저 배운 동요를 흥얼거리며

봄나들이 버스에 오른다.


이번 주엔 3일이나 비가 내려 산하(山河)에 봄을 당긴다.

비가 그치자마자 청명이란 절기에 맞게 하늘이 파랬다가 한식인 6일은 찬바람과 함께 

미세먼지가 공습을 해 세상의 사물을 점령하였다.

폰으로 수치를 확인하니 미세먼지 지수가 420이 넘어 나의 기억으론 가장 나쁜 대기질이다.


10;05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인가.

겨울복장을 하였어도 체감온도가 1도까지 떨어진 바닷가의 추위가 온몸에 부딪친다.

바닷바람에 노출된 귀가 시려 모자를 바꾼다.



여행을 떠나기 전 지도를 펼쳐놓거나, 산행이나 여행을 시작할 때 안내지도를 보면

기분이 매우 좋다.


지도는 내가 가야할 방향을 정해주고 그곳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게 해줘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해주며 또한 아는 만큼 더 많이 보게 해준다.



사진을 찍으며 가볍게 함성을 지른다.

졸업생동기 420명 중 42명이 모였으니 정확히 10%구나.


늙어서 행복한가,

아님 만나서 행복한 건지 얼굴에 미소가 흐른다.


어떤 동창은 졸업 후 교통사고로 요절을, 군대에서 자살, 수영장에서 익사 등 많은 사유로

청년시절에 일찍 갔고, 최근에는 암(癌) 등의 병을 선고받고 고통 속에 죽기도 하였으며

명단에서 지워진 인원이 41명이나 된다.


사진속의 친구들은 6.25전쟁 중에 태어나 처절한 IMF 외환위기를 넘기며 지금까지 무사하게

살아왔고, 또 살고 있으니 행운아이다.

어느 현인은 강한 자(者)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았기에 강한 자(者)라고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한다.



빡빡머리 소년시절 만나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더니 어느새 황혼이 되어 아름다운 동행을 한다.


'함께 하면 멀리 갈 수 있다'고 누군가 말을 했지.

같이 하면 아무리 멀고 힘들어도 갈 수 있기에 늘 같이 산행과 여행을 하며 느꼈던 삶의

이야기가 작된다. 


바람이 분다.

봄바람치곤 매우 강해 체감온도는 영상 1도까지 떨어졌다.


지난주 며칠간은 수은주가 24도까지 올라가 반팔 옷을 입게 하더니 어느 순간 폭설도

내리고 강한바람까지 부니 변덕스런 꽃샘추위는 봄바람 난 여인의 변심(變心)과는 다른

심술(心術)이다.


태안국립공원은 남북으로 약 230km의 해안선에 27개의 해변이 펼쳐지며 전체면적은

377.019㎢이다.


예로부터 자연재해가 없고 온화한 기후와 풍부한 먹거리로 삶이 고단하지 않은 곳이라

지명을 태안(泰安)이라고 했다.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갯벌이 펼쳐지고, 사구(沙邱)가 잘 발달 되었으며, 기암괴석과

크고 작은 섬들이 특유의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 한다.


다양한 해안생태계가 공존하는 국내 유일의 해안형 국립공원으로 보전가치가 매우

크다고 안내서에서 설명을 하는데,

5코스의 시작점부터 울울창창한 곰솔(해송)은 하늘을 가렸고 솔향이 숲에서 난무한다.


느리게 걷고 느리게 생각하는 길인 해송 숲길은 겨울잠에서 깨어났고, 선글라스를 썼어도

바람을 정면으로 맞는 눈에서 눈물이 계속 난다.


눈이 점점 나빠진다.

황반변성을 앓는 이유도 있겠지만 노안(老眼)이 다가오는지 컴퓨터를 30분 이상

보기가 힘들다.

책장을 넘겨도 10분을 버티지 못하고 겹쳐져 보이기 시작하면 눈을 지긋이 감는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보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살아가려나.


서재는 나 혼자만의 사유(思惟) 공간이다.

아무 간섭도 받지 않고 쫓기지도 않고 멍하니 책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제 눈이 쉽게 피로하니 보다말고 책에 갈피지를 꽂아 논 책이 여러 권이다.


나는 책을 참 곱게 본다.

중요한 대목에 밑줄을 긋지 않고, 책장을 접지 않으려 조그만 종이를 책갈피에 살짝

끼운다.


식구들이 모두 잠든 뒤 혼자 깨던지 불면의 밤이 되면 서재에서 밤을 새우기 일쑤라

창문으로 교교한 달빛이 스며들면 불을 끄고 한참동안 바깥을 내다본다.


달빛을 받은 고양이가 숲속으로 사라지기도 하고, 연인으로 보이는 커플이 낮은 산 앞에서

키스를 하는 장면도 자주 목격된다.


노인성 안과 질병인 황반변성은 현대의학으로선 불치병(不治病)에 해당 된다.

처음엔 날파리가 날아다니는 비문증(飛蚊症 Floater)과 비슷하지만, 책을 읽을 때

중간 중간에 글자가 지워져 보이면 거의 황반변성이다.


그동안 아비스탄, 아이리쉬 등 300만 원이나 드는 시술비가 13번까지는 보험적용이 되었고,

14번째부터는 300만 원 이상 드는 시술비에 은근히 마음을 졸였는데, 다행히 문 케어가

시작되면 계속 보험적용이 된다니 나로서는 매우 다행이다. 


맑은 공기로 씻긴 눈이 편안해진다.

좌우로 빼곡히 들어선 안면송(安眠松)이 하늘을 찌르고,

강한 바람이 불어도 소나무가 방풍림(防風林)으로 제자리를 지키는 숲속은 안온하다.


햇살이 비껴든 숲은 맑고 깊다. 

어쩌면 숲의 시간은 느슨하고 게으름의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다소 헐겁고 느슨한 숲의 시간 속에서 한겨울은 지났지만 세한삼우(歲寒三友)를 생각한다.


모교 교정의 구불구불한 반송(盤松)도 아니고, 경주 남산 삼릉의 제멋대로 뻗친 소나무도

아니고, 사릉의 자질구레 굽은 소나무도,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쭉쭉 뻗은 울진의

미인송도, 봉화의 금강송도 아닌 안면송은 지금 나에게 세한삼우로 다가온다.


지금 여기에서 세한삼우는 안면송과 친구, 그리고 하늬바람이다.


친구의 등에 매달린 배낭 속에는 술 한 병이 들어있겠지만 금주(禁酒)가 시행된 국립공원에서

술은 친구가 아니다.



10;22

바다에서 굉음을 내며 달려드는 바람은 광풍(狂風)이다.

가을은 산꼭대기에서 내려오고 봄은 바다 건너에서 온다고 했는데 오늘은 사나운 바람을 보내

봄이 오는 길목을 차단하려는 모양이다.


서풍은 하늬바람, 또는 갈바람이라고 하는데 오늘은 지나칠 정도로 강해 살을 에는 듯

매섭게 부니 고추바람이라 부르고 싶다.


바닷가 쪽으로는 방풍림이 없어 바람이 바로 몸에 와 닿는다.

어느 친구가 우울하다고 말한다.

슬프냐고 물었더니 슬프고 우울하다고 답을 한다.


슬픔과 우울증은 같은 걸까.

시간이 지나면 슬픈 감정은 사라지지만 우울증은 쉽게 극복하지 못한다.


1989년 천호대교에서 우울증으로 투신자살한 1년 선배가 생각난다.

투신자살하기 전날 밤 둘이서 취하도록 술을 마셨는데 나는 그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허긴 전문의사도 아닌 평범한 은행원이 알리가 없지.

나중에 들리는 이야기로는 아무 문제없는 게 진짜 문제였다고 한다.

고통을 겪지 않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 그는 기쁜 일에도 즐거움을

얻지 못했다. 


술에 취했던 아니던 호쾌하게 웃던 모습에서 우울증의 기미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였으니

인생의 깊이를 몰랐던 30대 후반 시절을 생각한다.


전문가는 슬픈 감정은 짧게 끝나지만 우울증에서 슬픈 감정은 2주 이상 지속되며,

또한 우울증에는 이유가 없고, 음식에도 흥미가 없어 불규칙적으로 음식을 먹으며,

체중이 일정하게 지속되지 않고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슬픔을 치료하는 약은 없지만 우울증은 약으로 어느 정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운동이나 사회적 활동이 기분을 향상시킨다니 좋아하는 친구들과 오늘과 같이 여행하는 게

매우 도움이 되겠지.


10;25

모래가 참 곱다.

굵은 모래가 전혀 없어 바람에 모래가 흩날린다.

바닷가에는 사구(沙邱)가 망가질까 말뚝을 박아 바람을 막는다.


친구의 폰에서 음악소리가 들린다.


즐거운 나의 집, 행진곡으로 운동회 때 많이 나오던 콰이강의 다리와 스와니 강,

캔터키 옛집이 나오고, 김상두 선생님이 열창을 하던 금발의 제니도 나오기에 잠시 교복을

입었던 학창시절로 돌아가 행복했던 추억을 즐긴다.


나는 동요를 좋아한다.

초등학교 시절 배웠던 웬만한 동요를 지금도 이절까지 다 부른다.

중학교 때 하영자 선생님이 가르쳐 준 음악,


고등학교 때 성악가인 김상두 선생님이 열창을 하며 가르쳐 준 음악이 다 생각나는데

그중에서도 동요나 포크송은 심신이 지쳤을 때 안식을 준다.

잠시 내 인생의 음악을 생각하며 잊고 있었던 소중한 추억을 꺼낸다.



살아온 날이 많은지 살아갈 날이 많은지 잠시 이야기를 한다.

오늘은 인생의 한 순간을 추억으로 만드는 날이지만 남은 생애에서 가장 젊은 날이기도 하다.


지금껏 살아온 삶이 세월이라고 하지

살며 참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잊어버렸는데 튀어나오는 추억에 가슴 시리고

코끝이 찡해진다.


솔잎이 떨어지며 문득 밀려오는 후회와 반성을 하며 나 스스로에게 연민을 느낀다.


자식을 위해 항상 양보만 했던 우리에게 꿈이 남아있다면 무엇일까.

남은 인생 음악과 같이 살 수는 없지만 아직은 아름다운 꿈을 갖고 싶다.


바닷바람을 받아 꾸부정한 소나무가 서있다.

가던 길 멈추고 해송의 가지를 보니 바람이 와서 눌러 앉았구나.


모진 겨울 나느라 희미해진 초록을 봄바람이 와서 깨우고 새 초록이 나오라고 마구 흔들어댄다.


바닷물이 큰 소리를 내며 파도를 친다.

하얀 포말이 물방울이 되어 내 얼굴까지 날아온다.


지금 초속 30m이상 되니 바람의 속도로 봐서는 1등급 태풍에 해당되려나.

태풍의 강도는 중심 최대풍속을 기준으로 분류하는데 아마도 중간급에 해당되겠지.


나이가 많은 친구는 벌써 칠순이 되었다.

우리는 전쟁세대라 같은 동창이라도 서너 살의 나이 차이가 있다.


칠순(七旬)이라 함은 십년씩 일곱 번을 지낸 해를 말하며

다르게는 예로부터 드물다는 뜻을 가진 고희(告稀)라고도 한다.


또 다른 말로는 종심(從心)이라고 하는데 이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도(道)에 어그러지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얼마 전 같이 근무를 했던 직원의 부모님 칠순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혹시나 필요하면 사용하려고 축의금 봉투를 준비했는데 역시 입구에서 예식장 같은 분위기로

축의금을 접수받는 거다.

준비를 안했으면 많이 당황하였겠지.


먼 옛날 어머니 칠순잔치를 치르던 생각이 난다.

충청도에서는 칠순, 팔순잔치에 부조금(扶助金)을 받지 않는다.

그동안 부모님 곁을 잘 지켜주신 일가친척과 주변의 지인(知人)을 모셔놓고 감사의 잔치를

베푸는 것이다.


이제 서서히 칠순의 세대로 접어든다.

이 많은 친구들은 칠순잔치를 어떻게 할까.


물론 개중에는 잔치에 초대를 할 친구도 있을 거고, 가족끼리 여행을 즐기기도 하고,

정 쑥스러우면 슬그머니 지낼 수도 있겠지.


나는 막상 칠순이 되면 잔치는 진부해 싫으니 산속으로 들어갈 것은 분명하고

초대를 받으면 어떻게 할까.


가까울수록 초대에는 응하겠지만 부조는 하지 않으련다.

지금도 각종 경조사에 부담을 느끼는데 고희잔치까지 부조를 하기엔 벅차다.


10;40

안면도의 소나무는 조선 시대엔 의송지지(宜松之地)로 지정하여 주요 자원으로 중요하게

관리하였다. 


4대 금법(禁法)에 해당되는 송금법(松禁法)에 해당되었기에 궁궐이나 함선 등을 만드는데

필수적인 재목으로 썼다.

경복궁 재건 때는 물론이고 특히 임진왜란 때 거북선 등 주요 함선을 만들었다고 하며

소나무 군락 216만㎡의 43,200본에 대해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고시하였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은행생활의 대부분 시간에 영업활동을 하면서 나는 참 많은 사람을 만났지.


인상이 좋은 사람, 돈이 많은 사람, 교만한 사람, 겸손한 사람, 얼굴이 예쁜 사람,

몸이 불편한 사람, 미아지점과 영등역지점에 근무할 때 만난 사창가 여인, 고위관료,

백남봉 형님이나 이창명 등 방송인, 숱한 거래선을 만나기에 내 폰에 등록된 전화번호가

3,000명은 기본이었지.

이젠 만날 일이 없어 해가 거듭될수록 계속 삭제를 하다 보니 1,000명 이하로 줄었다.


서로 다른 느낌의 사람들이 주는 행복과 불편이 달랐지만,

내 주위에 남은 친구들과의 시간은 함께하면 할수록 시간 가는 게 안타깝게 느껴진다.


오늘 만난 친구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친구들을 만나고 때로는 기다려진다는 거다.

사랑하며 살아도 너무 짧은 황혼의 인생만 남았으니 마음의 문을 더 활짝 열어야겠지.


11;00

동행엔 기쁨과 위로가 있기에 강풍을 안고 여기까지 왔다.


고단하고 험난한 인생길을 걸어와 이제 남은 길은 황혼길이다.

서로의 동행에 감사하면서 손잡고 가야겠지.


나무꼭대기에 새로 나온 솔잎은 파랗고 청순하다.

겨울의 모진 바람을 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새잎을 내보냈기에 가지는 날아서 하늘로 오르고

곧고 푸르다.


흡족하게 물을 마신 나무의 그림자에 물의 영혼이 어룽댄다.

바람과 함께 춤을 추는 나무를 보며 생각에 잠긴다.


2010년 태풍 곤파스에 의해 많은 피해를 입자, 당국에서는 어린 소나무 58,500그루,

동백 3,000그루, 붉가시나무 2,700그루, 종가시나무 2,400그루, 굴거리나무 900그루를

심었다는데 굴거리나무는 보이지 않고 종가시나무만 보인다. 



11;20

강풍으로 일정을 단축하고 집합을 한다.


세월이 유수(流水)와 같지.

일 갑자를 지나 고희(告稀)를 향해 흘러가는 얼굴들이 모여 지난날을 뒤돌아보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붙잡을 수 없는 세월 속에 겨우 인생을 알만한데 이마엔 주름살이 내려앉았구나.

우리에게도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 마음 편하고 몸 편한 세월이 얼마나 남았을까. 

그냥 얼굴 보는 게 좋아 모인 친구들과 한잔 술을 마시며 덕담을 건넨다. 


주인 없는 빈 배가 외롭다.

빈 배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싶다.

바다라는 공간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외로운 배가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세찬 바람에 모자를 배낭에 수납하고 다리 위에 선다.

아침부터 불던 바람이 약해질 기미가 없다.


살 속으로 스며드는 차갑고 매서운 바람은 소소리, 회오리바람이라고 했다. 




14;05

버스가 만드는 바람에 벚꽃이 우수수 떨어지고 진달래가 사정없이 흔들린다.

벚꽃이 떨어지는걸 보며 벚꽃이 지고, 진달래 꽃잎이 시들어 떨어지는 장면을 떠올린다.

지금은 활짝 피어 봄을 노래하지만 며칠 후면 속절없이 사라지겠지.


때가 되면 모든 봄꽃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도,너무 빠르게 사라져도 그 아름다움은 내내

내 마음속에 남겨지리라.


곧 사라져 버릴 존재에 대해 잠시 상념에 젖는다.

벚꽃처럼 나 역시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 걸 알면서도 폰을 꺼내 메모를 한다.


에필로그)

오랜만에 메모를 하려고 서랍에서 만년필을 꺼낸다.

스마트폰의 메모기능이 워낙 뛰어나 만년필을 오랫동안 쓰지 않았다.

펜촉부분을 물로 씻고 튜브에 잉크를 채운다.


오른팔과 손이 마비되어 정상기능을 찾지 못하니 명필소리를 듣던 내가 어느새 악필이

되었다.

동사무소나 은행창구에서 볼펜으로 자필서명을 할 때 글씨를 못 써 창피할 때가 많다.

그럴 때 만년필을 쓰면 글씨가 조금 나아진다.


은행에서 결재를 할 때도 만년필을 쓰는 버릇으로 수십 개에 달했던 만년필을 스마트폰으로 

메모를 하면서 한동안 잊었지.

꺼내서 녹슬고 튜브가 삭은 만년필은 아깝지만 미련 없이 휴지통으로 버린다.

버릴 걸 버려야 하고, 아까워도 버려야 클린 룸(clean room)이 된다는 걸 아니까.


                                      2018.  4.  7.  안면도 둘레길을 다녀와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