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352 진악산 보석사의 은행나무

김흥만 2018. 5. 3. 21:37


2018.  4.  26.  06;00

고양이 울음소리에 잠이 깨 카메라를 들고 남이자연휴양림 숙소를 나선다.

선야산(758m) 선녀탕 폭포의 물소리는 많은 걸 이야기 한다.


아주 먼 옛날 아름다운 선녀가 하늘에서 정해준 시간에만 내려와서 목욕을 하던 곳으로

사람이 다가서면 자욱한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는 전설의 선녀탕과 폭포는 아이러니하게도

6.25 전쟁당시 냇가 건너편엔 빨치산 훈련장으로, 선녀탕은 훈련장 지휘본부로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 



봄비가 이틀간 무지하게 쏟아지자 남이 휴양림의 계곡은 점점 야무져가고 산 중턱에서

만난 '괴불주머니'가 묘한 색을 연출한다.


괴불주머니는 어린이들이 주머니 끈 끝에 차는 노리개인데 노리개치고는 괴불주머니가

너무 아름답다.



새벽 산책에 숨은 보물을 찾아낸다.

풀숲에 숨은 '나래완두'도 보이는데 태백산 검룡소에서 찍은 나비나물의 색깔보다는

연한 분홍색이다.


나래완두는 장미목 콩과의 나비나물속으로 분류하는데, 일본이름에서 특색을 잘못

선택하였다니 이참에 분홍나비로 이름을 바꿨으면 좋겠다.


고마리도 기지개를 켠다.

물을 정화시켜주는 작용을 하는 고마리는 축산농가 주변에 심어 폐수를 정화시키기도

하는데 충청도에서는 돼지가 잘 먹어 돼지풀로도 불린다.


길이 110m의 하늘다리에 올라 흔들어도 워낙 견고하게 설치되어 흔들리지 않는다.

수십m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박무(薄霧)가 걷히며 하늘은 파랗다.

         

        <           하늘은 파랗다.


                  짙은 황사

                  뿌연 미세먼지

                  노란 송홧가루에 신음하던 하늘이

                  시름시름 앓더니

                  약비 맞아 금세 생기를 찾았구나.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포기한 왕바랭이

                  따뜻한 봄 햇살 내린

                  땅바닥을 기며 미소를 짓는다.


                  삼라만상이 아우성대는 산속에

                  하늘이 찬란한 봄 햇살을 뿌리는 아침

                  나는 파란 하늘에 경배를 드린다.                  석천   >


다리 아래 하얗게 핀 흰병꽃나무의 배웅을 받으며 선야산을 떠난다.


08;21

시간 많은 백수생활을 하며 이리저리 휩쓸려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몸과 마음에 작은 생채기도

생겼고 세월이 흘러도 조금은 남아있게마련이다.


치료는 병을 낫게 하는 행위라지만 여행 중 버드나무의 물속 반영(反影)을 잠시라도 보게 되면

보는 것만으로도 상처가 치유된다.


진악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던 작은 호수인지 모르지만 삶의 무게를 잠시라도 온전히 내려놓고

나를 바라보기에 가장 적절한 장소를 스쳐 지나간다.  


08;43

큰 산은 그 산을 대표하는 절을 품는다.

완주 모악산은 금산사를 품었고, 금산 진악산은 보석사를 품었는데,

문화재관람료를 받는 매표소가 없어 마음 편한 사찰이 천년고찰 보석사(寶石寺)다.


연두색과 적요(寂寥)를 함께 이고 있는 진악산 보석사(寶石寺) 일주문 앞에 선다.

두개의 기둥으로 맛배지붕 하나를 떠받친 일주문에 잠깐 멈췄다.


어느 사찰이던지 일주문은 이렇게 잠깐 멈췄다가 들어가는 문(門)이다.

일주문(一柱門)을 직역하면 기둥이 하나인데 왜 이주문(二柱門)이라 하지 않는 걸까.


일주문이란 기둥의 숫자와 관계없이 한 줄로 되어 있다는 뜻으로 한마음(一心)을 의미

하며 이곳에서부터 부처의 영토가 시작되기에 세속의 마음을 씻고 진리의 세계로

들어선다는 거다.


영규 대사의 충혼을 기리는 위병승장비에 목례를 드리고 전나무 숲길로 향한다.


        <          소실점(消失点)


              선(線)이 사라진다

              평행선이 소실점 너머로 사라지니

              무한 원점도 사라졌다.


              꽃비 내리던 평행선이

              무애(霧靄)속으로 스며들어

              인생의 소실점과 함께 사라진다.


              소실점은 원점으로 사라지며

              다시는 찾지 말라하는데

              삶의 욕심에 미련 버리지 못하는

              나는 오늘도 숙명의 쌍곡선이라는 늪에서

              허우적거리는구나.                               석천   >


마음이 온유해지는 전나무 숲길의 소실점이 사라지고 동박새 노래 소리가 들린다.

잠시 머물렀어도 마음의 번뇌에서 벗어나며 억겁의 죄가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천년고찰이 V자 계곡에 자리 잡았다.

진악산 깊은 계곡에 터를 잡았는데 뒤로는 산봉우리가 보이고 앞으로는 유장한 능선이

부드럽게 고찰을 껴안았다.


양지바른 곳에 산양이라도 튀어나올 분위기인데 지나는 스님 한 사람 보이지 않아

고적(孤寂)한 마당을 외롭고 쓸쓸하게 걷는다.


모악산 천일암이 우리나라에서 기도발이 제일 잘 듣기에 최고의 명상처라고 했는데

여기도 보석사라는 이름이 붙었으니 기도발이 잘 받는 영험(靈驗)한 터인 모양이다.


동, 서, 중유럽과 발칸을 막론하고 기도발을 받을 만한 영험한 터에는 성당과 수도원,

교회가 다 자리 잡고 심지어는 성모(聖母)가 발현하였다고 하여 온갖 신도와 관광객을

끌어 모은다.

우리나라의 영지(靈地)는 불교가 거의 독점하고 이를 보려면 입장료를 내야하는데 여기 

보석사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신라 현강왕(885년)에 조구선사가 창건하였으니 보석사도 천년세월이 훌쩍 넘었다.

창건 당시 절 앞에서 캐낸 금으로 불상을 만들었기에 절 이름을 보석사(寶石寺)로 지었다고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 타 없어진 것을 조선 고종 때인 1882년에 명성황후가 다시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식 맛배지붕의 고풍스런 모습인 대웅전의 단청이 선명하여

고졸(古拙)하지는 않지만 우아한 모습은 조금도 잃지 않고 부드러운 지붕의 곡선은 뒤에 있는

진악산의 산 능선과 이어진다.


나는 종교의 본질은 건물의 위용(威容)이나 외관이 문제가 아니라 가르침이며,

위선을 떠나 신앙과 생활의 일치라고 생각하며 대웅전에 오른다.


영규대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의선각 옆 대웅전에 올라 삼존불을 바라본다.


중앙의 석가여래불과 좌우 협시보살은 목조(木造)로 17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 주는데,

석가여래불은 오른쪽 어깨를 살짝 덮은 편단우견의 법의를 입고 있으며 깨달음의 순간을

상징하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맺고 있다고 설명을 한다.


수령 1,000년이 넘고 40m 높이의 거대한 은행나무가 앞을 가로막는다.

나무의 끝가지가 어디에 있을까 고개를 잔뜩 올려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에는 소리 내어 울었다는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65호로 지정되어

관리를 한다.




얼마나 거대한 나무일까 옆에 서니 10.4m의 둘레가 실감 난다.

이 나무는 뿌리가 100여 평에 걸쳐 퍼져 있다는데 조구 대사가 창건(886년) 무렵

제자와 함께 심었다며 마을에 변고가 있거나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 울어 재난에 대비하도록

알려주는 마을의 수호신이라고 한다.


용문사 은행나무도, 진천의 농다리도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 소리를 내어 대비하도록

하였다니 우리나라 곳곳에는 사람보다 나은 자동경보기가 있는 셈이다.


세상이 통째로 치매를 앓는 것 같다.

전형적인 내로남불로 세상을 시끄럽게 한다.


세상일은 전수양흥(全遂兩興)이라,

모두 이루고 다 흥(興)하는 법이 없으니 조금 아쉽고 부족해도 받아들여야 한다.

불무구전(不務求全)이라 온존함을 추구하려 애쓸 것 없다며 옛 현인은 말 한다.


불가(佛家)에서 꽃은 고행의 세월을 견디고 피기에 온갖 수행(修行)과 만행을 상징한다.

보석사의 숲에서 만난 '광대수염'은 부처의 세계에서 태어난 탓인지 금대봉에서 만난

광대수염보다도 더 절제된 아름다움을 가졌다. 


09;06

나라를 걱정하는 거대한 은행나무, 의병장 영규 대사의 숨결이 그득한 보석사,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뻗은 전나무, 칠백의병의 충혼(忠魂)이 담긴 진악산에서 전설속의 은행나무를 뒤로

하고 떠나지만 거대한 전나무 숲의 풍경은 나의 발길을 조금이라도 더 느리게 한다.



내일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봄은 축복이자 여름을 준비하는 밑거름이다.

살아 있다는 기쁨과 살아가야 한다는 아픔이 있는 4월은 잔인한 계절이라 했다.


'있다'와 '없다'라는 말을 당구를 칠 때 자주 듣는다.

두 이야기는 모두 극단적이고 절대적인 생각이기에 불교에서 말하는 유무중도(有無中道)라는

말을 음미(吟味)한다.


한겨울에 사라졌던 새싹이 봄에 나오면 없던 것도 있게 되고,

가을에 단풍이 되어 겨울에 떨어지면 있던 것도 사라져 없게 된다.


모든 것을 역지사지(易之思之)로 생각하고 자타중도(自他中道)라는 말을 새기면서

세상일을 행하면 세상이 평화로워지겠지. 


은퇴한 지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작은 사연은 많았지만 큰 대과없이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다.

전쟁, 전염병, 기근이라는 3재(三災)가 없어지면서 앞으로는 100세 인생이라는데

나머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 아닌 고민이 요즘 내 머릿속을 지배한다.


은퇴한 후 집에 눌어앉아 시시콜콜 참견을 하고 삼시세끼를 먹는 삼식이 노릇을 하지

않았기에 아내가 부원병(夫源病)에 걸리지도 않았으니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툭하면 배낭을 꾸리는 내 뒷모습에 대고 거꾸로 잔소리를 한다.


"집에 좀 붙어 있어라"라는 잔소리를 들으며 임서기(林棲期)가 지나 방랑기(放浪期)에

접어든 내 모습을 스스로 반추(反芻)해본다.


                                          2018.  4.  26.  금산 보석사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