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374 북동행 열차<닭고기 트라우마>

김흥만 2018. 9. 8. 22:34


2018.  9.  7.  05;00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온도는 20도까지 떨어지고 요란한 풀벌레소리는 빗소리를 삼켰다.


폭염(暴炎)이라는 무서운 무기를 가졌던 여름이 겨우 자리 잡은 봄을 짓이겨놓더니

간다는 소식도 없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래서 현자(賢者)는 세상을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하는구나.


오늘은 기차 타고 춘천 가는 날,

서울에서 춘천 가는 열차는 히트곡인 남행열차가 아니고 북행열차겠다.

엄밀히 따지면 북행열차라기보다는 북동행(北東行) 열차가 맞겠지.


정권(政權)을 가진 권력자들은 북한으로 가는 북행열차를 타려 안간힘을 쓰지만,

초로(初老)의 백수는 노인네 흉내를 낸다는 잔소리를 들으며 춘천의 특화식품인 닭갈비를

찾아간다.


09;23 상봉역

기차가 스르르 들어와 수많은 사람들을 토해내고, 승강장에서 웅성대던 사람들을

삼키더니 멀리 사라지고 나 혼자만 덜렁 남았다.


아무도 없이 승강장 의자에 앉아 어디선가 날아온 비둘기에 시선을 준다.

돌아갈 먼데가 없는 텃새 비둘기는 나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먹이활동에만

전념한다.


09;47

다시 들어온 기차는 나를 삼킨다.

나는 기차를 타면 지금도 묘한 떨림이 온다.

내륙지방인 진천에서 자랐기에 교과서에서만 보던 기차를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에서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수학여행 숙소인 서울역 인근 동자동의 경향여관 앞을 기적소리를 내며 거칠게

달리는 기차, 그 다음날 영등포역의 거대함에 시골소년은 위압감을 느꼈지.


그로부터 먼 훗날 영등포역지점장으로 근무하는 인연이 되어 실컷 본 기차,

지금도 후배 지점장들은 나를 역장님이라고 부르는데 거부감이 전혀 없다.


문득 이등병 시절이 생각난다.

증평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군용열차에 몸과 군용백을 실은 지 서너 시간 만에

용산역에 도착한다.


함박눈이 펄펄 내리던 날 용산역에서 출발한 군용열차는 춘천 103보충대에 나의

육신을 내려주었고, 소양호에서 다시 상륙정(Landing craft)을 타고 양구로 이동했지.


당시 호송병과 헌병의 살벌한 눈초리는 예전 국무총리를 지내고 지금 여당대표인

이해찬의 독기(毒氣) 품은 눈초리와 닮았다.


호송병의 눈초리에 질려 속은 답답하고 머리로는 희망이 없어 암담했던 그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에 창밖의 북한강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직선화되어 모퉁이가 없는 철길을 열차는 기적소리도 내지 않고 달린다.

녹조 없이 햇살 먹은 북한강의 잔물결은 반짝이는 윤슬이다.


11;00

역을 빠져나와 김유정 기념관과 생가를 찾는다.

카메라가 아쉽다.


김유정 역에 대해 미리 예습을 하였더라면 카메라를 휴대하였을 텐데,

아쉬움에 폰 카로 찍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1930년대 한국 소설의 축복이라 불리던 김유정,

김유정은 1908. 2. 12일 출생하여 1937. 3. 29일 요절(夭折)하였다.

고작 30년도 살지 못한 김유정의 짧은 삶이 참으로 애석하다.


내가 사랑하던 가수 배호는 29살에 요절하였고,

하얀 나비를 부른 김정호도 33살에,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의 차중락도 27세의

젊은 나이에 낙엽 따라 저승으로 가버렸다.


또한 가수 김광석도 32살에 칠성신(七星神)에게 돌아갔으니 미인박명(美人薄命)이라는

말보다 가인박명(佳人薄命)이라는 말이 더 적합한지도 모르겠다.


재주 있는 사람들은 생전(生前)에 별로 대접을 받지 못하다가 사후(死後)에 더 이름을

날렸는데, 이들은 한결 같이 인기절정일 때 요절을 하였으니 더 아쉽다.


연희전문학교를 다니며 당대의 명창 박녹주를 사랑하다 학교에서 제적당한 김유정은

야학 등 농촌계몽활동을 하며 농촌과 도시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


집필 중 폐결핵과 치질이 악화되어 29살에 요절하지만, 짧은 삶을 살아가며

<산골나그네, 총각과 맹꽁이, 소낙비, 노다지, 따라지, 동백꽃> 등

탁월한 언어감각과 독특한 체취로 주옥같은 30여 편의 단편소설을 남겼다.


11;40

29살이라,

나는 그 나이에 '아버님 전상서'라는 6자를 쓰고 일주일 이상 더 문맥을 이어가지

못했는데, 기념관과 생가를 둘러보며 김유정의 천재성에 탄복을 한다.


춘천의 특화음식인 닭갈비집에 들린다.

나는 닭고기에 대해 오랫동안 트라우마(trauma)가 이어졌었지.

스트레스나 트라우마라는 말이 없었던 세상의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이다.


상산 초등학교의 빈 교실에서 공부를 하다 집에 오니,

집 뒷마당 포도나무 그늘아래에서 아버지와 동네 아저씨 여러분이 막걸리를 곁들여

맛나게 고기를 뜯는다. 

아저씨 한분이 나한테 닭고기라고 하며 고기와 국물을 권해 한 그릇을 다 먹었지.



근데 이상하다.

늘 목 빠지게 나를 기다리던 '메리'가 보이지 않는다.

대청마루 밑에도, 굴뚝 뒤에도, 온 동네를 다 뒤져도 없다.


해가 넘어가고 어둠이 밀려오자, 동네 어른들 추렴에 걸려 '메리'를 잡았다는

사촌누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고기와 국물을 나도 먹었기에 다 토했다.


그날이후 트라우마로 약 10년 정도 개고기와 닭고기를 먹지 못하다가 말표

세탁비누를 생산하던 천광유지에 입사하고 해결이 되었다.


당시엔 지금같이 주 5일 근무나 52시간 근무는 꿈도 꾸지 못했고,

야근을 하다 통행금지 시간이 되면 숙직실도 없으니 책상에서 쪽잠을 자는 건

늘 있는 일이었지.


야근하던 어느 날,

당시 대단한 미모를 지닌 미스송 누나가 맥주와 통닭을 사와서 먹으라고 권해

그날부터 트라우마가 사라졌다.


나보다 2년 연상인 여 선배는 나의 편견을 깨게 하고,

이듬해 부산본사 기획실로 이동했어도 부산까지 수시로 내려와 나를 챙겨주었지.


13;39

김유정 역은 오고 가는 이 없이 한적하고 하늘은 파랗다.


               <          김유정 역

                    

                      옥빛하늘

                      흰 구름 싸인

                      먼 산에서 내려온 소슬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한잔 술 넣어 풀어진 눈(眼) 담긴

                      고요한 역은

                      세파에 찌든 때를 벗겨주누나.


                      은일(隱逸)의 기쁨에 설레

                      하나의 풍경이 된 하루


                      어느 멋진 초가을 날의

                      내 발걸음

                      부족함이 없어라.                              석천   >


시 한수 읊었더니 또 하루가 가며 하루라는 세월이 사라진다.


집 뜰 메타쉐콰이어 베어낸 그루터기에 운지버섯이 구름처럼 핀다.


비록 나무는 죽었지만 남은 나이테를 보며, 

문득 세월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내안에 차곡차곡 쌓이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2018.  9.  7.  김유정역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