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28. 09;00
하늘은 온통 잿빛으로 미세먼지 지수가 300이 넘었으니 매우 심각한 단계이다.
미세먼지까지 기승을 부리니 영하에 가까운 겨울날씨치곤 매우 고약하다.
고요와 평화를 상징하는 첫눈이 펑펑 내리던 며칠 전 하늘 한쪽에서는 천둥번개를
내뿜었지.
하긴 자연만 심술을 부리는 게 아니라 인간사회에서는 더많은 심술이 난무한다.
정권이 바뀌면서 벼락출세한 대법원장이 탄 차량이 화염병을 맞는 뉴스를 보며 속이
시원한 게 아니라 참담함이 더 컸고, 그 사람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90도 절을 하는
행자부장관과 경찰청장을 보며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유성기업 임원이 민노총조합원한테 두드려 맞아 피를 흘리는 현장에서 경찰은
제 역할을 했는지 아리송한데, 급기야는 검찰총장이 민노총시위대를 피하여 후문으로
퇴근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대통령은 외국에 나가 북한 제재완화를 요청하는 구걸외교를 하다가 거절을 당하는
외교참사로 할 말을 잊게 하고,
한미군사훈련은 줄줄이 취소가 되어 군대가 제대로 국방의 역할을 할지 점점 걱정이
되는 판에 그나마 있던 사격훈련장마저 폐쇄직전이라는 신문기사가 떴으니 자연의
심술보다 인간세상의 심술이 더 세다는 생각이 든다.
민노총, 전교조가 떼만 쓰면 통하는 인간세상에서 벗어나며 문득 감옥에 들어가있는
두 명의 전직 대통령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의 대통령도 임기가 끝나면 과연 무사할까,
연일 매스컴을 지저분하게 장식하는 대법원장과 경기지사도 무사할까,
국민을 우습게 알고 탈원전, 소득주도 성장, 탄력적 근로시간을 밀어붙이는 사람들,
신재생 에너지를 핑계 삼아 국민의 혈세를 파먹는 사람들의 안위는 어떻게 될까.
세상의 이치는 단순명료하다.
세상사와 인간만사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자리 값을 못하고 밥 값을 못하면 죄 값을
받아야 하겠지.
차창밖으로 텅 빈 들판은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계속 떠오르는 온갖 잡념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10;00
구불거리는 산길을 약 4km 올라 나온 영인산 들머리 풍경은 황량하다.
한계절의 끝은 소멸이 아니라 또 다른 계절의 시작이다.
가을이 떠나간 빈자리에 무엇이 들어왔을까.
6.25 전쟁 때 치열한 전투가 있었으며 미군이 37년 동안 주둔하면서 민간인 출입이
금지 되었던 영인산,
1980년 말 미군부대가 이전한 뒤 자연휴양림이 조성되면서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영인산 산자락을 걷는다.
이틀 후면 12월이 된다.
으레 상투적인 말로 12월은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근데 내 나이에 무엇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나, 인생을 적당히 내려놓으라고?
요즘 백두혈통이라고 자처를 하는 김정은이 대세라고 하니 백두산과 한라산이라는 분위기에
적당히 편승하면 될까.
상투봉을 거쳐 3.8km를 걸어야 정상인 신선봉에 오를 수 있다는 이정표가 삐딱하게 서서
우리를 맞는다.
이정표마저 왼쪽으로 삐딱하게 서서 맞으니 이 산도 좌파인지 조금 수상하다.
며칠 전 술비가 쏟아진 숲속에선 술비의 빗방울 숫자보다 더 많은 나뭇잎이 떨어져
땅바닥에 나뒹군다.
누가 지었는지 겨울비를 술비라 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입동(入冬)이 찾아오고, 비가 내리면 할일이 없어 술이나 마신다 해서
옛사람들은 겨울에 오는 비를 술비라 불렀다.
술비라는 이름을 떠올리며 옛사람들의 해학(諧謔)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온다.
오늘 날씨는 혹한(酷寒)이 아니라도 햇볕이 없어 을씨년스럽다.
예년보다 한 달 앞서 어제 휴대폰과 책상서랍, 서가(書架)를 정리했다.
항상 12월에 회향(廻向)을 생각하며 주변을 정리하였는데 이번엔 한 달 빠르게 작업을 한 거다.
전화번호 목록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을 지우고, 명함첩에서 오래된 명함을 빼서
가위로 자른다.
전국을 돌며 모아둔 각종 관광안내서와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자료, 그리고 서가에서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책을 빼내고 배낭을 꾸렸지.
10;06
이름 없는 봉우리에 올라서자 영인산의 정상인 신선봉과 연화봉의 두개 탑이 아스라이
보인다.
상투봉이 저 앞에 우뚝 솟아있다.
옛사람들은 결혼을 하거나 관례를 올릴 때 상투를 하는데,
이는 머리카락을 올려 빗어 정수리 위에서 틀어 감아 삐죽하게 매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동곳을 꽂아 고정시키고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망건을 썼는데,
진천 문백 어룡리의 외할아버지께서 늘 상투를 틀고 삼베적삼 차림에 왕골로 돗자리를
짜시던 광경이 지금도 내 뇌리 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한 달 후면 2019년,
퇴직한지 10년 세월 내내 밝은 척을 했지만 퇴직은 내 인생에서 가장 어둡고 힘든 시간이었다.
불안, 막막함, 두려움, 좌절감에 떨어야 했기에 주저앉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지.
무기력하고 존재감 없이 지내기엔 그동안 보낸 내 인생이 너무나 아깝기에 이전에 누렸던
지위와 명예는 다 잊고 죽을힘을 다해 산(山)에 다니고 사람답게 살려고 발버둥을 쳤다.
머리 수술이라는 콤플렉스(complex)와 트라우마(trauma)를 어떻게 감당하여야 하나,
조금이라도 두통이 오래 지속되면 혹시 악화되었을까 불안감이 시시때때로 엄습을 했지만,
제일 큰 문제는 지금부터 내 삶의 좌표를 어디에 맞춰야 하는지가 가장 큰 고민거리기에
상투봉을 바라보며 괜히 우울해진다.
10;14
곱게 물들어 숲속을 빛나게 하던 단풍잎도 다 떨어지고, 산벚나무도 잎사귀를 다 떨군
나목(裸木)이 되었다.
만추(晩秋)에 발가벗은 나목을 바라보며 곱게 나이 먹는 일을 생각한다.
< 슬픈 시간
닥쳐올 추운 겨울을 기다리며
낙목한천(落木寒天)을 두려워하는
나목은 손에 쥐었던 거를 다 내려놓았다.
소설(小雪)이 지나기 무섭게
차가운 바람에 고왔던 잎새들 다 떠나고,
빛바랜 몇 잎의 마른 잎들이
찬바람 맞으며 오들오들 떤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은 나무에 매달려
텅 빈 가지와 함께 침묵을 지키고,
남은 억새꽃 사이로 가을의 슬픈 시간이 지나간다. 석천 >
겨우 찾아왔던 가을은 그 냄새를 다 맡기도 전에 앙상한 가지만 남기고 슬쩍 사라졌다.
무성했던 초록 잎들, 불타듯이 붉은 빛을 한없이 내뿜던 단풍이 아직도 가슴속에 그대로
남았는데 나목을 마구 흔들어대는 겨울바람은 무심하다.
상투봉 오르던 길 잠시 걸음을 멈추고 '꽃댕강나무'의 마지막 꽃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댕강나무꽃은 작은 종(鐘)의 모습이라 이 깊은 산속에서 금세라도 종소리가 들릴 거만 같다.
다시 바람이 불자 사시나무 떨듯이 꽃이 흔들리며 종소리가 들리는 환청(幻聽)이 시작된다.
종(鐘)은 스스로 울지 못하기에 바람이 때려줘야 운다.
소리를 내지 못하는 댕강나무꽃의 떨림엔 가을을 먼저 보낸 슬픔이 섞였다.
7월부터 12월 찬바람이 불기 전까지 계속 피는 댕강나무는 아주 잘 자라는 인동과 나무로
가지를 꺾으면 "댕강"하는 소리가 나서 '댕강나무'라 하는데 나무가 아파할까봐 차마 꺾지를
못하겠다.
식물학자들은 너무 유식해 탈이다.
그냥 '댕강나무꽃'이라하면 간단한데, 댕강나무를 개량한 원예종은 '꽃댕강나무'라
이름을 붙이고, 그냥 자연에서 자라 꽃이 피면 '댕강나무꽃'이라 한다.
'꽃'이라는 글자가 앞에 붙던 뒤에 붙던 일반인은 아무 관심도 없는데 굳이 이름으로
구분하려 든다.
휴! 계단이 몇 개나 될까.
한 계단씩 오르다보면 상투봉 정상이 나오겠지.
이렇게 거친 숨을 쉬며 산에 오른다는 것은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하기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살아있는 나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맑은 물소리도 들을 수 없는 평범한 산에서 새 계절의 산수화를 생각하는 것은
사치겠지.
오색(五色)은 사라졌고 산은 누런 단채색(單彩色)이다.
사람들은 겨울이 계절의 끝이라고 하지만 겨울은 끝이 아니다.
겨울은 또 다른 시작의 기다림이기 때문이다.
상투봉 정상에서 닫자봉으로 오르는 956개의 계단이 아스라이 보이고, 신성봉 정상에
남북으로 펼쳐진 백제 초기의 석성인 영인산성이 희미하게 보이는데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사용했겠다.
지난달에는 적상산성(赤裳山城)에 올랐는데 오늘은 영인산성에 오르게 되니 두 달 연속
산성에 오르는 기록을 가지게 된다.
영인산 기슭에 어금니 형상의 어금니바위(부처바위)가 있어 아산(牙山)의 어금니
아(牙)자가 이 바위에서 유래되었다는데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10;32
상투봉은 해발 299m라 1m가 부족해 제대로 산 대접을 받지 못하는 모양이다.
상투봉에 오르기 전 첫 번째 봉우리에서 볼 때는 분명히 독립된 산의 모습이었는데,
산(山)이 아니고 봉(峰)으로 영인산에 속한 봉우리가 되었다.
산림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토의 65.2%가 산인데, 기준은 지표로부터 높이가 100m를
넘어야 산(山)으로 본다는 건설교통부의 기준에 따른 것이다.
산의 기준은 나라마다 다르고 영국은 표고 1,000피트(305m), 미국은 2,000피트(610m)가
넘어야 대략 산으로 간주한다.
즉 마운틴(mountain)과 언덕(hill)의 기준을 세웠는데 우리나라는 산(山), 봉(峰)과
대(臺)로 명칭을 붙였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산이 남한에만 4,440개라는 보도가 나왔으며,
이후 국토지리정보원이 추진하고 있는 전국 산 높이 정비 사업에 따르면 산의 개수를
11,859개로 집계 정비하고 있으며 이중 200m 이하의 산이 4,714개나 된다고 발표를 했다.
일본은 국토의 가장 낮은 산을 공표하였는데 가장 낮은 산은 오사카의 덴포잔(天保山)으로
표고가 4.5m이며, 두 번째로 낮은 산은 6.1m의 벤텐야마(幷天山)이다.
우리나라의 낮은 산으로는 군산시의 18.9m인 소뫼산이 가장 낮고, 이밖에도 김제의 성덕산
27m, 화초산 30m, 사직산 31m가 있으며 100m 이하의 산이 엄청 많다.
어디를 가든 지평선은 볼 수 없고, 눈만 뜨면 산이 보이는 우리나라,
우리에게 산은 무슨 존재일까,
태어나면서부터 산을 보고 자랐고, 죽으면 산에 묻히고,
앞에는 앞산, 뒤에는 뒷동산, 햇볕이 쏟아지는 남쪽엔 남산, 해가 지면 서산,
죽어 묻히는 산소(山所)를 북망산이라 했다.
따라서 산의 기준점을 찾기란 명확하지 않지만, 지금 내가 오른 상투봉은 멀리서 볼 때
독립된 산의 형태로 보이기 때문에 봉(峰)보다는 상투산이 더 어울리는 거 같다는
개인의견을 말하고 싶다.
정상 데크 바로 옆에 팥배나무 열매가 빨갛게 익어 새들을 유혹한다.
새들의 도시락인 팥배나무는 귀한 밀원(蜜源)식물로 열매는 팥을 닮았고 꽃은 배꽃을 닮아
팥배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용비어천가에서 "꽃 좋고 열매 많으니"라는 구절도 나온다.
열매만 봐서는 딱총나무 열매나 덜꿩나무 열매와 구분하기 어렵지만 나무의 수피(樹皮)가
매끄러우면 팥배나무가 맞다.
곧 찾아올 혹한(酷寒)에 새들의 구황식품(求荒食品)이 될 열매를 하나 따서 입에 넣으니
시큼한 맛 뒤에 단맛도 살짝 따라온다.
상투봉에서 긴 골짜기로 내려가다가 이정표가 불확실하여 다시 올랐다가
경사진 골짜기로 코스를 변경한다.
닫자봉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이 무려 956개나 되어 상당히 거친 등산로로 알려졌는데
이를 피해 우회를 하는 거다.
이 산에도 꿀밤나무가 지천이다.
참나뭇과에 속하는 상수리 열매와 도토리 열매를 꿀밤이라고 부르기에 경북지방에서는
꿀밤나무라고도 부르는데, 금년에 도토리가 대풍년이니 내년에 가뭄과 흉년이 들 수도
있겠다.
흉년에 대비할 수 있는 구황(求荒)식품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도토리가 지천에 널렸으니
이곳 다람쥐와 어치는 게으름을 피우는 모양이다.
또 나오는 계단을 오른다.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니 행복해진다.
어떤 선인(仙人)은 하루의 산행이 한 수레의 책보다 낫다고 했지.
오늘 산행은 악을 쓰며 아등바등 오르는 게 아니다.
거친 산행을 피해 그냥 설렁설렁 올랐으니 영혼과 육체에 행복을 느끼는 거다.
당초 계획으로는 이곳에서 약 45초 동안 620m의 집라인(Zipline)을 타기로 하였으나
유감스럽게 어제 시즌 종료가 되어 스릴을 만끽할 수가 없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외줄을 보며 문득 양구 동면저수지 유격장의 하강코스가 생각난다.
3년 군 생활 중 단 한번이라도 유격훈련을 받았으면 제대로 할 수가 있을 텐데,
여느 산이든 밧줄을 타는 코스가 나오면 나는 쩔쩔맨다.
나중에 육군소장으로 12사단장과 정보사령관을 역임(歷任)했던 상관이 유격훈련을
못 받게 했다.
군수참모로 내 직속상관이던 그분은 나를 늘 곁에 두어야 마음이 편하다며 휴가 때를
제외하곤 아무데도 보내지 않아 유격훈련을 받지 못하였기에 아쉬운 부분이 많다.
당시에는 힘든 훈련을 받지 않아 다른 동료들의 많은 질시(嫉視)를 받으면서도 좋기는
하였으나 지금은 아쉬우니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가 맞다.
며칠 전부터 멋진 하강(下降)을 꿈꾸며 사진 촬영방법을 공부했는데 허사가 되었다.
11;36
2마리 학(鶴)의 형상을 딴 두 개의 탑이 우뚝 서있다.
높이 30m, 둘레 26m나 되는 "민족의 시련과 영광의 탑"이라는 다소 긴 이름을 가진
탑 앞에 선다.
아산엔 청나라가 주둔하였고, 평택엔 일본군이 주둔하여 조선을 먹겠다고 피 터지게
싸웠던 현장, 최근까지 미군부대가 주둔했던 역사의 아픔이 녹아든 영인산,
영인지맥의 산줄기를 파헤치며 꼭 저렇게 큰 탑을 세워야 했을까 지방자치단체장의
치적으로 내세우기에는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든다.
깃대봉이 나타난다.
영인산에는 5개의 봉이 있는데 상투봉, 닫자봉, 신선봉(364m), 깃대봉, 연화봉이 있다.
일본군의 탄약고와 대공포가 있었고, 청일전쟁에서 이긴 일본군이 봉우리에 일장기를
꽂았다는 깃대봉 상공의 한줄기 비행운이 무심하다.
< 구름
바람도 없는데
구름이 일엽편주(一葉片舟)되어
어디론가 흘러간다.
구름이 흘러가니
바람도 흘러가고
시간도 흘러간다.
내가 잡을 수 없는 무위(無爲)의 자연에서
생각도 흘러가고
마음도 흘러가고
세월도 흘러가고
계절도 사라진다.
세상사와 무위의 자연이
흐르지 않고 멈춰준다면
나는 그속에서 무엇이 될까.
잊어지고, 지워지고
멀어져가고,
그것이 인생이라는 걸 깨닫는데
참 많은 시간이 걸렸구나.
하늘가 흐르는 구름 올려다보며
세월 모른 인생 아깝다 생각 드니
이제야 철이 들어
바람과 함께 바람을 따라 가리라. 석천 >
영인산 수목원은 2000년 대형 산불로 황폐화되자 삼림을 복구하고 휴양림지구,
학습지구, 습지학습지구, 중심활동지구, 산림복원지구, 산림박물관을 만든 방대한
규모로 2011년 개장했다고 한다.
산꼭대기에 세워진 수목원과 각종 시설에 눈이 하얗게 내리면 동화 속 겨울왕국이 되겠다.
삽교천, 아산만 방조제와 아산 시가지가 미세먼지 사이로 아스라이 보이고
옛 군부대에서 깔았던 콘크리트 계단이 이어진다.
12;15
배의 형상과 닮은 정상 데크에서 드론을 날린다.
이전엔
제1차 산업혁명은 철도, 증기기관 발명 이후의 기계에 의한 생산(1760~1840년),
제2차 산업혁명은 전기와 생산 조립라인 등 대량 생산체계 구축(19세기말~20세기 초),
제3차 산업혁명은 반도체와 메인프레임 컴퓨팅(1960년대), PC(1970~1980년대),
인터넷(1990년대)의 발달을 통한 정보 기술세대로 정리된다.
요즘엔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을 많이 쓰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개념으로는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통해
인간과 인간, 사물과 사물, 인간과 사물이 상호 연결되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등으로
지능화된 사회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4차 산업혁명에서 10개의 선도 기술로는
무인운송수단, 3D프린팅, 첨단 로봇공학, 신소재,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공유경제,
유전공학, 합성생물학, 바이오프린팅 등이다.
우리보다 앞선 미국, 일본, 중국, 독일은 각종 규제를 없애고 활발하게 연구를 하고,
일부는 이미 성공단계에 있는데 규제 공화국인 우리나라에선 과연 성공할까.
기업과 돈 잘 버는 사람을 범죄인 취급하는 우리나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유럽상공회의소 등 주한 5개 외국상의는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독특한 '칼라파고스 규제 국가'라고 정의를 내렸다.
반기업, 친노동 규제, 민노총이 헌법 위에 군림하는 나라에서 총 5만 명을 고용하고
매출은 71조에 이르는 유럽상의가 한국정부의 각종 규제에 기업을 하기 어렵다고
작심 발언을 했다.
드론도 각종 규제에 묶여 제대로 날지 못한다.
중국은 이미 드론으로 택배를 시작했고, 다른 나라에서 활발하게 드론산업이 발전하자
겨우 생색만 낸 규제완화로 하늘을 날기 시작하는데 뒤늦게 얼마나 따라잡을지 걱정이 된다.
최근 9.19남북 군사 합의에 따라 군사분계선 10~40km이내에서 무인정찰기도 비행 금지
대상에 포함되었다.
군단급 사단급에 배치된 무인기뿐만 아니라 대대급에 배치되는 400대의 무인기마저도
날지 못하면 정보수집과 이동 표적 정보를 획득하지 못하는데 국가 방위에 차질은 없을까,
영인산 정상에서 이런 걱정까지 해야 하는 내가 참 우습다.
12;34
정상에 우물이 있어서 큰 가뭄이 있을 시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온다는 영험한 전설을
가진 영인산(靈仁山 364m) 정상에 섰다.
우물이 어디에 있을까 두리번거려도 쉽게 확인이 되지를 않는다.
며칠 전 50년이나 된 동네친구를 만나 소주잔을 기우린다.
일배 이배 삼배를 하다 보니 살짝 취기가 오른다.
세트메뉴에 칼국수가 나오는데 나는 칼국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먹지를 않고,
가깝게 지냈던 옛 친구들의 근황을 들으며 흘러간 추억에 사로잡힌다.
어떤 영화배우 친구는 간암으로 죽었고, 만돌린(mandoline)을 잘 치던 친구는 잘살고
있다고 한다.
'잘산다'라는 의미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
전쟁 후 보릿고개를 지낸 세대인 우리는 운동화를 신을 수 있고, 도시락을 제대로
싸올 수 있고, 하루 세끼를 다 먹을 수 있으면 잘산다고 했다.
즉 먹고살기 어려운 시절 잘산다는 것은 경제적인 풍요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지금의 잘산다는 의미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 세끼를 적정하지 않고, 구두 값보다 더 비싼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나는 금년 한해를 잘살았을까, 내년에도 잘살 수 있을까,
지금같이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숲속이 휑하게 텅비어갈 때는 한숨을 쉬는 버릇이
나도 모르게 생겼다.
이젠 물질적인 풍요로 말하던 낡은 시선에서 벗어나 삶의 질을 말하고 싶다.
이제 잘 산다는 행복의 핵심은 즐거움과 기쁨을 자주 경험하는 것이다.
정상에서 마신 폭탄주의 취기가 점점 오르며 언젠가 삶을 마무리할 때,
"인생 즐기며 참 잘살았다"는 말을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12;47
유치원 아기들이 손을 잡고 올라온다.
올망졸망한 아기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와 손을 흔든다.
험악한 세상이라 초상권 시비가 신경 쓰여 사진을 찍지 않지만 황량한 산속에서
아기들은 그 무엇과 비교하기 힘든 아름다운 꽃이다.
가끔은 홀로 걷고 싶을 때가 있어 뒤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산행하는 시간은 외롭거나 고독한 시간이 아니다.
산행에서 얻은 만족감은
홀로 있는 나에게 고요와 평화를 주고, 끊임없이 떠오르는 상념(想念)은 나 자신에 대한
성찰(省察)뿐만 아니라 내면 깊숙이 숨어있던 자신감을 찾아준다.
사유(思惟)의 숲을 혼자 거닐며 삭막한 세상에서 고갈되었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은 산속에서 받은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12;57
청나라와 일본 군대에 의해 상처를 입고, 미군이 37년이나 주둔하여 영험한 기(氣)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베풀지 못해 아픔을 가진 영인산 산행은 이렇게 끝나간다.
22;00
창밖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별이 떨어지는 소리일까.
귀로 들을 때는 무엇이든지 밝게, 총명한 지혜로 알아들어야 하는 청사총(聽思聰)을
하라는 옛 선비의 말이 떠오르는 밤이다.
가져온 책을 읽는다.
눈도 가물가물하고 집중이 되지 않는다.
마신 술 탓인지, 아님 겨울을 재촉하며 마구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소리 때문인지
암튼 눈은 책에 있는데 머리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책을 읽을 때에는 삼도(三到)가 있다고 했다.
심도(心到), 안도(眼到), 구도(口到) 이렇게 세 가지를 말하는데 마음과 눈이 한곳에
집중되지 않아 책을 슬며시 덮고 눈을 감는다.
원래부터 소리를 내서 읽는 성독(聲讀)은 좋아하지 않았고 눈으로 읽는 목독(目讀)도
되지 않으니 괜히 심란하다.
정자세로 아픈 눈에 인공눈물약 세 방울을 넣고 다시 책을 편다.
바람소리 잦아드니 정독(精讀)이 되며 마음으로 새겨 읽으니 심도(心到)가 된다.
잠시 눈을 감고 사색에 들어간다.
방구석에서 움직일 필요가 없으니 자동으로 정적명상이 된다.
젊어서는 나름대로 독서량이 많다고 자부를 하였는데 황반변성으로 오래 책을
읽을 수가 없다.
30분만 지나면 눈이 가물거리고 책장의 글자가 군데군데 뭉텅이 채 사라지며
심지어는 글자가 구부러지고 찌그러지기도 한다.
그동안 이것저것 잡서(雜書)까지 다독(多讀)과 남독(濫讀)을 하며 나름대로 자기만족을
가졌지만 이제는 심도에 의한 정독으로 정력을 낭비하지 말아야겠다.
2018. 11. 29. 09;20
시국이 참 어수선하다.
나라 돌아가는 꼴이 하 수상하기에 이 충무공의 유허(遺墟)인 현충사에 들려 참배로
마음을 다스리려 한다.
서간첩, 무과급제교지, 선무공신교서, 충무공증시교지를 본 후 보물 제326로 지정된
충무공의 장검을 대하니 가슴이 떨린다.
1594년 4월 충무공이 한산도에 머물고 있을 때 장인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어 바친 칼인데,
길이가 무려 197.5cm에 달하고 무게는 4kg이 넘기 때문에 실제 전투에 쓴 것이 아니라
곁에 두고 마음을 가다듬는데 사용했다는 설명이 붙었다.
두 칼날의 한 면에 왜적을 물리치고자 하는 기상이 담긴 충무공의 친필 글씨가 새겨져 있다.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삼척서천 산하동색 일휘소탕 혈염산하)라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
얼마나 웅혼한 글인가,
글을 읽으며 영면에 들어간 이 충무공의 혼(魂)이 금세라도 현신하여 "종북으로 오염된
이 나라를 정화 시켜 주소서"라는 소원을 빈다.
참배객이 우리밖에 없는 현충사의 경내는 고요하고 '동고비' 수십 마리가 무리지어
날아다닌다.
계속 대립을 할 수는 없겠지만 요즘 평양과 김정은이 성큼성큼 서울로 들어오고 있어
백두수호대 등이 결성되어 김정은 찬양에 나서고 있다.
김정은이 환영 초대형 현수막이 시청에 걸리고, '백두칭송위원회, 꽃물결대학생실천단,
위인맞이환영단 등이 결성되어 김정은 찬양에 나서고 있고 백두수호대라는 사람들이 태영호
전 영국주재 공사의 칼럼을 제지하고 위협을 하는 단계까지 왔다.
나라의 근간이 위에는 이미 썩었는데 이러다 아래까지 썩어 무너지지는 않을 런지,
이순신 장군의 영정에 거수경례를 하며 마음속으로 나라의 장래를 빈다.
10;00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
그것도 수도의 심장이라 불리는 광화문에서 김정은 답방 환영을 하는 단체가 벌건 대낮에
집회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는 나라,
이 나라는 어디까지 망가져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망가져도 엄청 망가져간다.
이순신 장군을 모신 현충사의 뜰을 걸으며,
좌파나 민노총, 전교조가 없는 세상에서 원전이 생산하는 싼 전깃불을 쓰며 마음 편히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듦은 나만의 사치일까.
2018. 11. 28~29. 영인산과 현충사를 다녀와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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