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26. 06;00
며칠간 포근했던 날씨는 어제 오후부터 기온이 급강하하더니 지금은 영하 5도
아래로 떨어져 종아리가 썰렁하다.
가로등아래 매화나무가 따뜻했던 겨울날씨에 봄이 온줄 착각하고 꽃망울이
부풀기 시작했는데 다시 찾아온 한파(寒波)에 휘둘려 얼어버리면 어떻게 하나,
자연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위대한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기에 나의 걱정은
쓸데없는 기우(杞愚)로 끝나겠지.
12월 산행은 영월의 마대산(1,052m)으로 결정을 하고 진행을 하던 중 영월군청
직원에게 마대산 초행(初行)을 이야기 했더니 눈이 많아 위험한 코스가 여러군데가
있어 눈 녹은 봄이나 여름에 찾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세월 쌓인 몸이라 무리한 산행보다는 안전한 산행으로 방향을 틀기로 했다.
전문 산악인들은 등정주의와 등로주의를 따지지만 우리같이 나이 먹은 아마추어
등산인은 산행이 끝날 때까지 안전 제일주의로 산행을 해야 민폐(民弊)를 줄일 수 있다.
09;20
진천의 텅빈 들판을 지나 증평으로 들어섰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지나가는 행인도 보이지 않고, 37사단 소속 훈련병이나 병사들도
보이지 않는다.
괴산 좌구산 들머리에 도착한다.
해발 364m인 천문대 입구에도 인적이 끊겨 적막한 세상이 되었다.
09;43
어제와 달리 꽁꽁 얼어붙은 날씨의 한기가 몸을 오싹하게 만든다.
인간세상의 소리는 끊겼고 자연의 소리만 들리는 적막한 산,
좌구산 들머리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바람만이 나의 혼탁한 귀를 씻어주려는 듯 내 몸을
붙들고 마구 흔들어댄다.
산의 모양이 거북이가 앉아 남쪽을 바라보는 형상이라 하여 좌구산(坐龜山)이라 한다는데,
다른 책자에서는 좌귀산이라고도 표기하였다.
조선 광해군 때 이곳에 은거해 인조반정을 모의하던 김치(金緻)가 이 산에서 개가 세번
크게 짖어대는 소리에 깨어 몸을 피함으로써 훗날 인조반정을 성공시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좌구산(坐狗山)으로 불리기도 한다.
꽃 피어 찬란하던 봄, 초록의 향연을 누리던 여름, 가을의 단풍과 꽃마져 사라진 숲속에
낙엽이 떨어져 나신(裸身)이 된 나무들이 겨울에 섭섭해 할까.
겨울 산이 소멸(消滅)만은 아니다.
모진 시간이 지나 대지에 따뜻한 기운(氣運)이 퍼지면 지난해와 같은 꽃을 몸 바꿔 피우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바쁘기 때문이다.
돌무더기(cairn)가 산중의 고요를 지키고 있다.
바람이 돌 틈 사이를 스치며 차가운 음악소리를 낸다.
나 아직 귀 밝으니 귀를 기울여 돌무덤 속에서 웅얼대는 숨은 이야기를 듣는다.
수많은 생명이 모진 추위를 피해 숨어있을 돌무더기야말로 미물(微物)들의 겨울 안식처이다.
10;03
요즘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
부동산, 북핵, 좌파들의 선동, 미국 대통령의 위협, 일본과의 갈등, 세월호, 비정규직의 죽음,
카풀택시, 유치원, 최저임금, 휴일수당, 탈원전 등 뭐 하나 제대로 풀리는 게 없다.
미친 세상에도 법칙이 있고 미친 사람에게도 논리가 있는 법인데 도대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뉴스나 신문을 보며 나라가 망할 것 같은 생각이 듦은 나 혼자뿐일까.
정민 한양대 교수는 세설신어(世說新語)에서 작관십의(作官十宜)라는 글을 썼다.
요즘 세상을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표현한 정교수의 글을 읽으며 탄복을 한다.
송나라 진록(陳錄)이 엮은 선유문(善誘文)에서
첫째는 백성의안(白姓宜安)으로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라,
위정자는 백성의 삶을 안정시키는데 최우선 가치를 두어야 다른 생각 없이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데, 기업을 범죄 집단으로 여겨 사사건건 시비나 걸고, 시장원리를 외면한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해괴한 이론을 실천하여 힘없는 사람들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다.
둘째는 형벌의생(刑罰宜省)이라,
법집행의 엄정함을 보여주되 형벌은 백상의 편에 서서 덜어줄 것을 생각해야 하는데,
민노총과 전교조의 방자한 범죄행위는 애써 외면을 한다.
셋째는 세렴의박(稅斂宜薄)이다.
세금은 과도하게 거두지 않아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데,
앞으로 공시지가를 올려 엄청난 세금을 거둬들인다는 거다.
넷째는 원억의찰(寃抑宜察)이라,
혹여 백성이 억울하고 원통한 경우를 당하지 않는지 꼼꼼히 살펴 세상과 정치에 대해
분노를 품지 않도록 배려한다는 말인데,
과연 지금 그럴까,
전직 대통령 두 명을 감옥살이 시켜가며, 드루킹 여론조작사건 관련 재판에서 특검이
김경수 지사에게 5년형을 구형하니 억울하다고 항변을 하는 세상이라 지나가는 개도
웃겠다.
다섯째는 추호의간(追呼宜簡이다.
추호(追呼)는 아전이 들이닥쳐 세금을 독촉하고 윽박지르는 것을 말하며,
행정명령은 가급적 간소화 시키는 것이 좋다는 말인데 간소는커녕 오히려 규제는
엄청나게 늘어만 간다.
여섯째는 판결의심(判決宜審)이라,
송사판결은 공정한 잣대로 면밀히 살펴 양측이 모두 납득할 수 있는 판단을 내리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예전의 대법원 확정판결마저도 전 정권에서 내린 판결이기에 적폐청산의
대상이 된다며 뒤집는 세상이 되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궁지에 몰린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면,
일본인이 존경한 다나카 대법원장은
도덕은 법보다 더 높은 선(善)의 가치를 지향한다며 법보다 도덕의 가치를 강조했다.
여기에서 선(善)이란 무엇인가,
법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남이 하면 적폐고 내가 하면 정상적인 법집행이라고 하니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민간사찰, 댓글조작 등 전 정권보다 더한 사람들이 애초부터 그런 DNA가 없다고
항변을 하는 모습은 저질 코미디보다 못하고 불쌍해 보인다.
도덕적 가치와 규범은 권위를 가진 존엄성이다.
윤리와 도덕의 근거와 목표는 권위가 없으면 성립되지 못한다,
권위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인간 상호간의 존엄성에서 나오는 법인데,
위장전입, 병역의혹, 탈세, 논문의혹 등 지저분한 처신을 한 사람들이 권력을
갖고 국정을 농단하는 모습이 역겹다.
박근혜는 최순실 국정농단을 지라시 수준이라고 무시했다가 한 방에 날아갔다.
이 사람들은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감찰관을 진흙탕의 한 마리 미꾸라지라
했으니 말로가 눈에 불보 듯 뻔하다.
일곱째는 용도의절(用度宜節)이다.
모름지기 재정은 한 푼이라도 더 절약하고 절제하는 것이 마땅하거늘 전정권의 사대강
사업비 23조원은 범죄로 여기며, 정작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이상한 정책으로 자기들이
마구 퍼준 100조에 가까운 돈과 북한 철도에 퍼줄 돈은 입도 벙긋하지 않는다.
신재생 에너지를 지원한다며 태양광과 풍력에 마구 퍼준 돈도 엄청 날 텐데 도대체 이 정권
사람들은 얼마나 더 범죄를 저질러야야 끝날 것인가.
이 사람들의 권력이 끝나기 전에 나라가 망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드니 이 또한 기우(杞憂)일까.
여덟째는 흥작의근(興作宜謹)이라
기쁘고 좋은 일로 신이 나도 흥청대기보다 더욱더 조심하고 삼가야 하는 법,
북한 철도 현대화 착공식을 하며 기쁨에 벅찬 국토부 김현미 장관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데 얼마나 더 북한한테 뒤통수를 맞아야 정신 차릴지 한심하다.
아홉째는 연회의계살(燕會宜戒殺)이다.
잔치모임에서는 살생을 경계하는 것이 마땅하다.
끝으로
열째는 사환의예방(思患宜豫防)이라 하며
우환이 걱정되면 미리 방비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 거다.
일이 닥쳐 허둥대면 이미 늦은 법,
아군의 각종 군사력을 미리 무장해제 시키고, 북한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TV를
점령하고, 친북매체 자주시보는 "예수가 꿈꾸던 세상은 북조선"이라는 기사를 올리는
나라가 되었다.
이 열 가지 마땅함을 지키면 다스림의 도리는 끝난다며 진록(陳錄)은 결론을 내는데,
우리는 지도자의 복이 없어 역대 대통령이 모두 불행으로 마감을 한다.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된 한해,
지금의 최고 권력자가 그릇의 크기에 비해 너무 많이 왔다는 생각이 산속에서도 드니
오늘도 마음이 깨끗해지긴 글렀다.
10;15
인터넷으로 산을 검색하다가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던 좌구산을 알게된다.
최근 천문대와 율리 휴양촌이 들어서면서 증평의 명산으로 우뚝 선 좌구산 산자락엔 우리의
거친 숨소리만 들린다.
야생 멧돼지가 이곳에 출몰하여 털을 마구 비빈 모양이다.
여기저기 멧돼지털이 떨어져있다.
사람들 대부분은 멧돼지가 야행성 동물이라 낮에는 안심을 해도 된다고 잘못 알려졌다.
그런데 멧돼지는 야행성(夜行性) 동물이 아니다.
주로 낮에 숲에서 활동하다가 해가 지면 잠자리로 이동하는데,
사람들이 숲이라는 공간을 점점 더 파고들자, 낮에는 인간을 피해 숲속에서 낮잠을 자고
밤에 먹이를 찾으려 다니는 신세가 된 거다.
멧돼지를 만나면 위험하기에 주변을 살펴본다.
멧돼지는 결코 우둔하지 않고 보기보다 날렵하다.
100m를 10초에 주파하고 한 시간에 45km를 뛸 만큼 지구력도 좋다고 하며 1m짜리 장애물도
쉽게 뛰어넘고, 방향전환도 능숙하다.
땅을 파는 힘도 대단해서 50~70kg짜리 돌도 움직이고 후각도 발달했다.
도토리를 주워 먹고, 땅속줄기와 뿌리를 캐 먹는다.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를 잡아먹는데 능숙하기에 흔적을 찾아보지만 털만 흘린 채 땅을
판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12;08
지금껏 오르면서 이 산에서 처음 나타나는 바위다.
충절바위라는데,
좌구산 아래 율리에 살았던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 선생의 이야기가 서린 바위다.
어릴 때부터 심약했던 김득신이 이 바위를 칼로 치며 마음을 다잡고,
조선 최고의 독서광으로 사기의 '백이전'을 11만3,00번이나 읽었다는 김득신.
그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은퇴할 나이인 늦깎이 59세에 중광시 병과에
급제하고 조선 중기 대문인으로 이름을 날렸다는 안내판이 서있다.
가파른 고갯길 좌우에 용틀임치는 소나무의 자연미는 숲의 분위기를 태곳적
신비로움으로 이끈다.
아주 늙은 소나무에는 일제강점기시대 송진을 채취당한 아픔이 그대로 남아있다.
심봤다!
귀농한 친구가 야생 도라지의 마른 꽃을 발견하고 도라지를 캐다가 허탕을 친다.
사포닌 성분이 산삼에 버금간다는 야생 도라지를 한 뿌리라도 캤으면 좀 더 행복한
산행이 될 텐데, 그래도 아쉬움은 남지 않는다.
아주 필요한 누군가가 발견해 쓰면 되는 게 아닌가.
두 번째 봉우리를 지나 다시 나온 산길은 포천 국망봉을 오르는 길처럼 경사가 심해
사뭇 가파르다.
설경도 낙엽도 없는 앙상한 계절,
산은 오히려 홀딱 벗고 허심탄회(虛心坦懷)한 속내를 보여준다.
10;57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 정상인줄 알았더니 640m봉이다. 정상은 저만치에 있어 V자형의 안부를 내려서고 다시 올라야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휴! 정상이 코앞이다. 11;08 일 년 전 2017년 12월 14일 올랐던 두타산에서 바라보면 거북이가 앉아있는 듯한 모습이라 하여 좌구산(坐龜山)이라 이름 붙여진 곳 정상에 올랐다. 임진왜란 당시 이 산에서 개가 요란하게 짖어 사람들이 피난을 떠났기에 주민들이 모두 목숨을 구해 좌구산(座狗山)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거북이든 개든 산의 모습이 동물과 비슷하다면 산세가 아름답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으니 이 또한 전설로 흘러들으면 되겠다. 수많은 산악회가 좌구산 정상에 리본으로 만든 명함을 디밀었다. 자기사업을 하는 친구 외 현직에 남아있는 친구는 주변에 거의 없다. 아무리 날고뛰고 유능했어도 내놓을 명함이 없으면 한순간에 멍청해진다. 지금은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지만 사내들의 상호작용은 처음 만날 때 꺼내 명함을 주고받는 것부터 시작된다. 일단 명함을 주고받으면 굳었던 두 사람의 표정이 완전히 달라지는데, 대부분 윗사람은 표정이 근엄하고, 아랫사람이라고 생각 드는 사람은 반드시 웃는다. 명함이야말로 한국식 상호작용의 원칙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출발점이다. 어쩌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내놓을 명함이 없으면 불편할 때가 많다. 명함이 없는 백수라고 소개하기도 민망해 그냥 너털웃음으로 때울 때가 많은데 은행에서 퇴직하고 한국4H본부에서 재정담당 고문의 명함을 잠시 받은 적이 있다. 그 명함을 한 번도 써먹을 기회가 없었지만, 백수 10년차가 되니 나름대로 백수의 삶을 규정하고 전제들을 성찰하며 이젠 명함이 없어도 당황하지 않는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가까운 친구가 친구들의 모임에 잘 나오지 않는다. 어느 친구는 우리 친구들이 권위 있는 명함이 없기에 권력지향적인 그 친구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꼬집는데 그렇지 않다고 강변을 하면서도 내심 서운하다. 산 정상에 무수히 걸린 산악회의 명함인 리본이 바람에 흔들리고, 디밀 명함이 없는 백수의 가슴에는 찬바람만 들어온다. 박무(薄霧)로 살짝 지워진 피안(彼岸)의 능선과 봉우리는 어느 산일까. 속리산 천황봉에서 안성 칠장산으로 이어지는 한남금북정맥에서 제일 높다는 좌구산에서 아스라이 일렁이는 능선을 바라본다. 11;44 조금 전 올랐던 세 번째 봉우리 옆 사면(斜面)으로 하산을 한다. 낙엽 쌓인 길의 경사가 심해 실수로 미끄러지면 40~50m이상 떨어질 것 같아 잠시 긴장을 한다. 화제가 웰다잉(Well-dying)쪽으로 흐르니 자연스럽게 접근이 되는 시기가 온 모양이다. 지나온 인생을 정리하고 남은 노후를 어떻게 보낼지 미리 엔딩노트(ending note)를 써보는 것도 괜찮겠다. 예전에 장기 및 시신기증서약을 했지만 그래도 부족한 게 많다. 이젠 아파서 누워있을 때 치료를 받을 수준 등을 생각하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쓰고, 생전 장례식도 생각해봐야겠다. 웰다잉은 스스로 품격 있는 삶의 마무리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볼거리도 없는 산, 그러니 산세가 힘차고 바위가 없는 육산으로 숲이 울창해 산길 분위기는 편안하다. 산골짜기에 사람사는 세상이 보이고, 이쯤되면 개짖는 소리라도 들려야 座狗山이라는 이름값을 할 텐데 들리지 않는다. 무심코 지났던 일상의 조각들, 나도 몰랐던 나만의 모습을 찾으려 그동안 얼마나 헤맸던가. 인생과 아픔은 어차피 혼자인 걸, 왠지 가슴이 터질 것만 같더니 산행이 끝날 쯤 진정이 된다. 12;36 지름 350mm의 굴절망원경으로 별자리를 감상할 수 있는 천문대를 끝으로 왕복 5.4km의 좌구산 산행을 마무리한다. 22;00 보름이 며칠 지났는데도 하늘엔 덜 찌그러진 반달이 유영을 하고, 금성이 바로 뒤를 따른다. 교교한 달빛이 창안으로 스며들고, 내 머릿속 사유(思惟)의 공간은 서서히 열린다. 모진 바람은 사정없이 창문을 두드리고, 아스라한 그리움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잠은 오지 않고 가져온 책이 없어 인터넷을 열어 논어의 한구절을 읽는다.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卽殆)'라 생각만 있고 배우지 않으면 위험하다라는 말인데, 나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연초부터 관심을 갖고 궁리하였지만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고 무위도식(無爲徒食)하였으니 금년 한해는 궁리(窮理)로만 끝나가는구나. 2018. 12. 27. 09;45 영하 12도까지 떨어진 추위가 바람과 함께 목덜미를 스친다. 10;00 새해가 며칠 남지 않았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또 무미건조한 새해를 보내야 하는지 모르겠다. 4일만 지나면 정월 초하루다. 해(年)와 달(月)과 날(日)이 새로 시작하는 삼시(三始), 삼조(三朝), 삼원(三元)의 날이다. 새 마음으로 한해를 보내고 맞이해야겠지. 230m 길이의 좌구산 명상구름다리 위에 선다. 한기는 사정없이 몸을 후벼 파고 카메라 조작을 위해 장갑을 벗으니 금세 꽁꽁 언다. 요즘 각지방마다 구름다리를 설치하느라 몸살을 앓고, 설치가 되면 관광객이 많이 몰린다. 최근에 소금산 출렁다리를 다녀왔고, 이밖에도 감악산, 강천산, 월출산, 대둔산, 청량산에도 설치되었는데 월출산, 소금산, 청량산, 대둔산 출렁다리를 건넌 기억이 난다. 영하 12도까지 떨어진 추위로 삼기저수지 둘레길 트래킹을 포기한다. 좌구산에서 발원한 삼기천을 막아 조성되었으며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이다. 1959년부터 4년에 걸쳐 축조되었다는 삼기저수지는 최근4대강 사업으로 둑 높이 공사를 실시하여 저수량이 대폭 늘어났다고 한다. 좌구산에서 발원한 삼기천은 원래 증자천(曾子川)이라 불렀다. 조선시대 이 하천을 따라 효자와 효부가 많이 탄생하고 학문이 높은 충절의 고장이라 하여 공자의 제자 중 효행이 지극하고 학문이 뛰어난 증자(曾子)의 이름을 따라 증자천으로 불리다가 일제강점기에 삼기천으로 바뀌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아직 얼지 않은 호수에 청둥오리와 기러기가 떼 지어 유영을 하고, 강한 고추바람을 뚫고 겨울 햇살이 호수에 스며들어 반짝이는 윤슬이 된다. 며칠 후면 금년이 다가고, 2019년 기해년 새해가 밝는다. 돼지의 해이며 그중에서도 황금돼지의 해이니 백수의 신분이라도 재물이 많이 따르고 큰 복이 오려나. 재물과 복에 대해 과한 욕심을 버리고 베푸는 향기로운 마음의 주인이 되고 싶다. 또한 섬김을 받기보다는 섬기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삼기호수에 던진다. 호수를 벗어나며 문득 법화경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말고,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 괴롭다.> 한편으론 싱겁기도 한 말이지만 깊이 생각을 해보니 아주 오묘한 말이다. 암튼 괴로움에서 벗어나면 해탈이고 열반이 되겠지. 2018. 12. 26~27. 괴산 좌구산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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