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4. 30.
참 성급한 봄이다.
연일 27~28도를 웃돌던 봄 더위가 '일비' 조금 내렸다고 정신을 차렸는지
새벽엔 제법 썰렁하다.
봄비가 몇 번 내렸다.
봄바람도 몇 번 지나가더니 산벚꽃도 모퉁이에 있던 복사꽃도 다 떨어지고,
새봄은 그렇게 왔다 갔다.
봄날이 가면 무르익은 봄이라 해야 맞는 건가,
어쩌면 고춘(古春), 만춘(晩春), 또는 모춘(暮春)이라 해야 맞는지도 모르겠다.
숲은 봄보다 더 빨리 변하며 여름을 기다린다.
며칠 전까지 칙칙했던 갈색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연두색으로 변하더니,
이내 초록이 숲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와송(臥松)의 영접을 받으며 숲속으로 들어가자 알싸한 솔향기는 며칠간 문상(問喪)을
다니며 우울했던 마음을 씻어준다.
오늘이 4월말일이다.
세월은 참 쉽게도 가고 빨리도 간다.
나만의 little forest에서 오늘은 무슨 보물이 나를 기다릴까.
매일 변하는 숲속에서 숨었던 보물이 튀어나오려나.
민들레의 갓털이 우주를 유영(遊泳)할 채비를 끝냈다.
바람이 불어 무변장대(無邊長大)한 하늘가로 날려 보내면 좋으련만 바람이 없으니
촬영을 하고 입으로 훅 불어 숲의 빈 공간으로 날려준다.
아기들이 있으면 민들레 갓털은 신나는 장난감이 되어 뛰어 놀 텐데 아직 잠자리에서
꿈속을 헤매겠지.
가수 박미경이 '민들레 홀씨되어 강바람 타고 훨훨 네 곁으로~~" 라며 가슴을 에이며
밀려오는 그리움을 노래했는데,
민들레는 홀씨가 없다는 학자들의 공격을 받아 사과까지 한 민들레 갓털을 입으로 불어
멀리멀리 보내며 "달빛 부서지는 강둑에 앉아~♬"를 흥얼 거린다.
모퉁이를 돌자 황매화가 숲에서 나타난다.
매화는 청매, 홍매, 흑월매, 수양매, 납매, 화엄매, 월영매, 정당매 등 많은 종류가
있는데 뜻밖에도 여기에서 황매화를 만난다.
여느 매화 같이 동지섣달 모진 시련을 겪은 황매의 노란꽃은 색다른 묘미를 안겨준다.
옛 선비들은 매난국죽(梅蘭菊竹)의 사군자 중 매화를 으뜸으로 여겼으며,
조선 세조 때 강희안은 양화소록에서 화목 9등품가운데 매화를 1품으로 쳤다.
신록속에 숨었던 둥굴레도 튀어나온다.
종모양의 꽃이 피면 바람에 부딪혀 댕그렁 소리를 내려나,
깊은 산속에 있어야 제격인데, 높이가 고작 100여m밖에 되지 않은 작은 산의 숲속에
있으려니 조금 답답하겠다.
생각난 김에 은방울꽃도 찾아봐야겠다.
둥굴레가 있으면 은방울꽃도 주변에 있을 거 같아 여기저기 두리번거린다.
한달 가까이 꽃이 피고지던 미선나무도 무성해졌다.
옆으로 퍼지기 시작하고 10여m 떨어진 곳에도 미선나무가 자라고 있으니
넓게 퍼져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는 꿈을 꿔본다.
철쭉꽃이 참 요염하다.
'수로부인'이 지나가지도 않는데 요염하게 피었으니 나를 유혹하는가 보다.
어느 노인이 절벽에 피어 있는 철쭉꽃을 꺾어 수로부인에게 주고 헌화가(獻花歌)를 지어
바쳤다고 하는 전설을 음미하며 가파른 길을 올라 포커스를 맞춘다.
썩은 참나무 가지에서 딱다구리의 구멍파는 소리가 들린다.
초당 10~20번, 초속 6~7m의 속도로 머리가 움직이는데 머리가 나무에 부딪치는 충격은
중력가속도의 1000배라고 하니 쉽게 상상이 가질 않는다.
며칠 전부터 딱딱대는 소리를 추적해 오늘은 '쇠딱다구리'가 구멍을 파는 현장을 잡았다.
Zoom으로 당겼으나 망원렌즈가 아닌 카메라의 한계로 선명하게 잡을 수가 없다.
지구상에는 약 200여종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11종류가 있다는데,
내가 지금껏 만난 딱다구리는 오색딱다구리, 까막딱다구리, 쇠딱다구리, 청딱다구리 등
4종밖에 되지 않으니 또 만날 수 있으려나,
안타깝게도 광릉크낙새는 거의 멸종되었다니 더 아쉽다.
동박새, 휘파람새소리도 청량하고, 늙은 까마귀의 능청맞은 소리를 들으며 숲을 벗어난다.
길가에 지칭개도 활짝 필 준비를 마쳤고,
성질 급하게 핀 양귀비 한 송이는 누군가 꺾어 버렸는지 꽃잎 한 장이 땅바닥에 나뒹군다.
벌써 한여름 더위가 찾아왔으니 이번 여름을 어떻게 버텨야할까,
지레 걱정이 드는 아침이다.
2019. 4. 30.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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