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1. 08;00
상여금이 통장에 들어왔다.
이 돈으로 에어컨을 바꿀까, 아님 자동차를 바꿀까.
운전도 하기 싫은데 나이가 많이 먹었으면 면허증을 반납하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으니 에어컨이나 바꿔야겠다.
꿈에서 깬다.
아~오늘이 근로자의 날이지,
은행원 시절 근로자의 날 전날이면 꽤 많은 상여금이 통장에 입금되곤 했는데,
잠시나마 현역으로 돌아가 보너스를 받은 꿈을 꾼 거다.
특별하게 약속을 잡은 거도 없고, 오후엔 공항에 가야하니 객산이나 올라야겠다.
산길 좌우에 노랗게 핀 '아기똥풀'의 사열을 받는다.
산의 공기가 4월과는 사뭇 다르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 추웠다 더웠다 하는 날이 수시로 생겨 종잡을 수 없었지만,
5월은 계절의 여왕답게 신록이 숲을 지배하고, 꽃과 나무가 뱉어내는 향기는 4월과 질이
확연히 다르다.
신록이 내뿜는 알싸한 숲의 공기를 가슴을 열어 깊게 들여 마신다.
어제는 황산에서 황매와 민들레 갓털을 만났는데 오늘은 귀한 몸을 만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예전 '애기나리'가 군락을 이뤘던 곳에서 딱 한 송이만 피었다.
애기나리 수천송이가 피어 장관을 연출했던 군락지에 왕바랭이, 철쭉 등이 파고들면서
힘이 약한 애기나리는 사라지고 겨우 한 송이만 숨어서 피었으니, 이것 또한 자연의 제행무상
(諸行無常)에 해당되겠지.
아마도 내년엔 이곳에서 애기나리를 보지 못할 거 같은 생각이 들어 한참을 바라보다
발걸음을 옮긴다.
누군가의 무덤가에 꿀풀과의 '조개나물'이 한창이다.
조개나물 수십 송이가 피어 무릎을 꿇고 포커스를 맞추지만 찍는 실력이 여쭙지 않아
컴퓨터에서 재생을 해보니 사진이 영 마음이 들지 않는다.
꽃의 끝이 입술 모양이고,
꽃의 모습이 혀를 내밀고 있는 조개와 비슷해 '조개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독성이 있어 먹지를 않고, 잎과 줄기 및 뿌리는 약용으로
쓰인다.
꽃말이 '순결', '존엄'이라, 존엄이라는 말을 잘 쓰는 북한사람들이 좋아할 덴데,
유감스럽게 이북에서는 자라지 않고 경기도 이남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멧돼지가 나무뿌리를 파먹은 흔적을 따라 할미꽃을 찾던 중 '각시붓꽃'을 만난다.
황산에서 4월 17일 '금붓꽃'을 만났으니 금년은 붓꽃을 많이 만나는구나.
국내에 자생하는 붓꽃으론
각시붓꽃, 흰각시붓꽃, 솔붓꽃, 금붓꽃, 노랑붓꽃, 난장이붓꽃, 노랑무늬붓꽃, 타래붓꽃
제비붓꽃, 붓꽃, 꽃창포, 노랑꽃창포 등이 있지.
이름 앞에 꽃이 붙으면 대개는 원예종이다.
창포와는 다른 꽃창포는 원예종이 많고, 댕강나무꽃도 '꽃댕강나무'는 원예종이며
'꽃잔디'도 원예종이다.
꽃봉오리가 먹을 묻힌 붓과 같다해서 붓꽃이란 이름이 붙은 '각시붓꽃'은 색깔이
화려하다 못해 요염하다.
좋은 소식, 사랑의 메시지, 변덕스러움 등 꽃말도 많고,
서양에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무지개의 여신인 ' 아이리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해마다 이맘때쯤 나는 객산의 각시붓꽃과 사랑에 빠진다.
금년엔 각시붓꽃에 더해서 금붓꽃까지 만나는 행운을 누린다.
2011. 5. 18일 소백산 연화봉에서 만났던 '노랑무늬붓꽃'이 문득 생각난다.
2019. 4. 17. 황산에서 촬영
전 세계적으로 한국에만 분포하는 '노랑무늬붓꽃'은 멸종위기종이라는데,
언젠가 청도 운문산에서 집단자생지가 발견되었다는 자료를 읽은 기억이 난다.
2011. 5. 18. 소백산 연화봉에서 촬영
중턱에서 만난 '선밀나물'을 들여다보며 묘한 생각을 한다.
기묘한 형태의 꽃은 묘한 상상력을 주는데 NASA에서 우주 정거장을 만들 때 이 꽃을
참고 하였으려나,
어쩌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인체 비례도'를 그릴 때 참고하였는지도 모르겠다.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예술, 과학, 기술 등에 접근했던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인체 비례도와 비슷한 원의 각도를 나도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그는 화가로써 불후의 명작 '모나리자'를 그렸고, 근육과 뼈· 뇌에 관한 해부학 지식을
전파한 의학자요, 기하학과 수학적 형태의 변화를 연구한 수학자임과 동시에 태양과
별들의 이동 경로를 추적한 천문학자이기도 하다.
또한 그가 1487경에 쓰기 시작한 노트에는 요즘에 개발되어 배치하기 시작한 잠수함,
스텔스함, 대포 같은 군사무기를 스케치하였고,
나선 추진기를 이용한 영구기관과 유인 비행기를 설계한 군사학자겸 과학자라니,
위대한 건축가이기도 한 그의 천재성이 인류 문명에 끼친 지대한 공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다빈치라는 천재에 대한 업적을 생각하며 할미꽃을 찾다가 누군가의 무덤으로 내려선다.
무덤가에 선홍색으로 핀 '영산홍'은 연두와 초록색으로 뒤덮이기 시작하는 숲에서
다소 생뚱맞다는 생각이 든다.
소나무, 참나무 아래 빈 공간을 '일본목련나무'가 차지하기 시작한다.
이 산 아래에서 중턱까지 제법 많은 개체수가 증가하였으니 일본의 잔재를 지우겠다는
사람들의 생각이 여기까지는 미처 미치지 못한 모양이다.
이 어린 나무에 무슨 죄가 있을까,
숲의 생태계를 교란만 시키지 않는다면 자라나며 숲의 일원이 되는 걸 굳이 막을 필요는
없겠다.
'호제비꽃'도 공간을 차지했다.
태양빛이 온산에 스며드는 지금 아주 작은 호제비꽃을 바라본다.
< 보라 꽃
작은 보라 꽃잎 다섯 장에
묻은 이슬 윤슬이 되었구나.
오랑캐 쳐들어오면 피던 오랑캐꽃
민초의 슬픔 배어
이슬이 눈물 되었나.
제비꽃 피면 돌아온다던
강남 간 제비 소식 없고,
오랑캐꽃 누명 쓴 제비꽃 피니
오랑캐 대신 핵무장한
북한 무리들이 으르렁거리는구나.
작아서 보이지 않아
오름길에 볼 수 없었던 작은 제비꽃,
내림길에 만난 호제비는 민족의
슬픔을 저 혼자 껴안았다. 석천 >
혼자만의 산행을 혼행이라고 하던가,
뻐꾸기 노래하고 온갖 새들이 지저귄다.
어디선가 웩하며 호랑지빠귀도 질세라 비명을 지르는 봄날의 아침은 이렇게 지나간다.
멧돼지도 사라진 공간에서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헤매는 나는 무한의 자유를 느낀다.
사유(思惟)의 숲에서 소요(逍遙)를 하는 즐거움은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신의 은총이리라.
2019. 5. 1. 산속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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