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17.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남들은 꽃을 맞으러 남으로 내려가는데, 난 아직도 겨울 중인 '방태산'을 왜 찾을까.
가는 겨울이 아쉬워 방태산의 속살을 보고 싶어서일까?
산을 다시 가보면 다들 산이 변했다 한다.
산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을 뿐, 나의 변한 마음과 시선으로 보니 변했다 할 수 밖에.
약속시간 보다 10여 분 이상 일찍 온 일행을 태우고 인제 기린에 들어서니, 대골 코스와
사격장 코스는 입산금지이다.
입산금지만 아니라면 대골계곡으로 올려치는 또 다른 맛을 느낄 텐데,
지난 번 사냥꾼들과 같이 올라간 댓골코스는 산나물이 지천이며, 계류의 물이 무척이나 맑았다.
아쉽지만 휴양림 길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09;00
휴양관에 짐을 풀고 배낭을 가볍게 한다.
이곳 적가리골은 이쪽 지방에 유명한 3둔(월둔, 살둔, 달둔), 4가리(연가리, 아침가리, 결가리,
적가리) 중 하나인데, 약간 길쭉한 호박 형상으로 수많은 능선과 계곡이 하나의 초점으로 모아진
곳이다.
땅의 모양이 기묘해서일까?
이곳은 조선왕조가 망할 때 천재지변이 일어나는데, 그때 병화, 흉년, 전염병 등의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에 들어가 목숨을 보전하라는 정감록의 '십승지'와 이것
가지곤 부족하다고 격암 '남사고'가 보탠 20피장처 중의 하나이다.
정감록을 신봉하는 이들은 이곳에서 화전을 일구어 살다가, 울진삼척 공비침투사건 이후 정부의
소개정책에 따라 다른 곳으로 다들 이주했다고 하며,
방태산 너머의 '살둔'에도 비결파가 모여 큰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는데 지금은 다 떠났다고 한다.
'이폭'을 지나 들머리로 접어든다.
길은 완경사이고 부드러운 숲 속의 분위기이다.
지당골의 왼쪽 너래 반석으로 물살이 펴져 흐른다.
이정표엔 10.2km로 되어 있으나, 정상 밑 안부 삼거리에서 오르내리는 길을 계산하면 11km
가까이 된다.
오른쪽으로 나타나는 첫 지류에 통나무다리가 있다.
그 아래 계곡은 일부러 내려가서 볼 정도로 절경이다.
다리 건너 '매봉령'2km, '구룡덕봉' 3.5km, '방태산 주억봉' 5.3km 이정표가 서있다.
계류를 세 번 더 건너니 지능선 길이다.
길은 갑자기 된비알이고 숨은 가빠온다.
여긴 겨울의 끝자락이라 이제 풀이 나오기 시작하고, 이틀 전 눈이 와 정상에는 아직 녹지 않은
얼음과 눈이 있어 아이젠을 지참하라고 관리소에서 안내를 한다.
'괭이눈'꽃이 보인다.
연한 노란색으로 중북부 깊은 산그늘 습진 곳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관상용 꽃이다.
5~20cm정도 자라며 열매 속에 있는 종자 모양이 햇빛 아래에서 보는 고양이의 눈을 닮았다 해서
'괭이눈'이라 한다.
'괭이눈' 사이로 지난번 달마산에서 보았던 '댓잎연호색'도 보인다.
이 꽃은 연한 자주색으로 전국의 산과 들녘의 그늘지고 습한 곳에서 피고, 20cm정도 자라며
약용으로 쓰이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등산로가 매우 가파르고 흙길이라 안전로프는 없다.
참나무 위에 겨우살이가 지천이다.
이 꽃은 '너도바람꽃'인줄 알았는데 집에 와 꽃 도감을 보니 '꿩의바람꽃'이다.
흰색이며 중북부지방 깊은 산 그늘에 피는데 유독성으로 관상용 여러해살이풀이다.
'얼레지'도 보이고,
전국의 높은 산속 그늘진 비옥한 땅에서 잘 자라며 붉은 자주색으로 식용, 관상용, 약용인
여러해살이풀이다.
화촉(樺燭)에서 유래된 촉(燭)에 해당되는'거제수나무'가 일품이다.
모양이 저러하니 북유럽에선 하늘과 사람을 연결 해주는 신목(神木)으로 삼았겠지.
배도 고프고 좀 쉬어가자.
이 황벽나무는 수령이 얼마나 될까?
둘이 안아야 할 정도로 굵어 200년 이상 되지 않았을까.
나무의 수령에 대하여 화제가 시작된다.
어느 나무의 수령이 가장 오래 되었을까?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약 1,100년으로 추정되며, 안동 용계리의 '할배 은행나무'는 약 700년
정도라 한다.
태백산에 910년 된 주목이 있고, 정선 두위봉의 큰도사고개 북쪽에 약 1,800년 된 우리나라
최고령 주목나무가 있다.
부자와 이름을 떨친 소나무로는 정2품을 하사받은 '속리산 정이품송'과,
지금도 재산세를 내는 경북 예천 감천면 석평 마을의 '석송령'이 있다.
석평 마을에 사는 이수목 노인이 낮에 잠시 꾼 꿈에서 "걱정 말라 ! 걱정 말라!" 고 소나무가
외치는 소리에 선잠에서 깬 이 노인은 손이 귀해 후사를 두지 못했었는데, 양자를 들이기도
그렇고 해서, 며칠째 곰곰이 생각하다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논밭을 이 소나무에게
이전해줬다는데 토지 대장에 <석송령>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세금을 내고 있다 한다.
계속 된비알이다.
'복수초'가 눈에 들어온다.
설상의 복수초가 눈이 없는 이 위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참 귀한 꽃인데, 난 야생화는 문외한이지만 집사람 어깨너머로 몇 가지를 배웠다.
다년생풀로 잎은 어긋나고, 깃털처럼 갈라지며 잎자루 밑에 녹색턱잎이 있는 게 보인다.
눈 속을 비집고 나오는 꽃인데, 오늘 나한테 발견 됐으니 난 운이 참 좋다.
복수초는 곡괭이질이 안 될 정도로 언 땅에서도 눈을 뚫고 피어오르는 강한 생명력의 야생초이다.
설날 무렵이면 이 꽃을 따서 어른들 장수하시라고 선물 했다던 꽃이다.
즉 , 복 복(福) 목숨 수(壽)자를 쓴 것도 이런 연유라 한다.
드디어 매봉령(1,215m) 정상이다.
이제 100m만 고도를 높이면 완만한 임도인데 조릿대 군락사이로 다들 힘차게 올라온다.
'구룡덕봉 정상(1,388m)에 오른다.
옆의 봉우리가 오늘의 목표지인 '방태산 주억봉(1,444m)'이다.
사방이 막힘없이 장쾌한 산군의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북쪽으로 설악산의 서북주릉인 장군봉, 귀때기청봉, 끝청, 대청봉, 점봉산이 하늘 금을 이루고,
동쪽으로 오대산, 계방산, 응복산, 가칠봉, 갈전곡봉이 웅장하게 버티며,
서쪽으로 주억봉, 깃대봉, 배달은석이 조망된다.
방태산 줄기와 적가리골 계곡이 펼쳐내는 산세가 볼수록 오묘하며, 점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굼틀거림이 신기하다.
개인산(1,341m)으로 이어진 굵은 산줄기와 깊게 파고든 개인동 계곡의 장엄함에 잠시 넋을 잃는다.
역시 산중의 산 '방태산'이다.
어찌 보면 이 구룡덕봉이 주억봉보다 조망이 더 좋다.
시원한 바람이 힘들게 낸 땀을 식혀주며, 세속의 찌든 때와 정신의 때까지 벗겨주기에
난 산이 참 좋다.
산은 나의 모든 것을 품어 주고 다독거려 주고, 세상의 근심, 걱정, 시름을 잊게 해준다.
저 장쾌한 능선을 보며 누가 시름에 젖을 수 있을까?
이제 정상까지 약 한 시간 정도의 거리인 1.8km가 남았다.
구룡덕봉의 멋진 조망을 뒤로 하고 주억봉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마지막 400m 남은 삼거리가 나온다.
이제부터 400m 급경사라 꽤나 힘이 든다.
작년 5월엔 노루오줌, 삼백초, 매발톱 등이 흐드러지게 피었었는데 금년은 아직 이르다.
아직 여긴 겨울이다.
감자난, 개회나무꽃, 산목련도 보였었는데 시기를 못 맞췄다.
그래도 가는 겨울의 방태산의 속살을 더 보고 싶어서 왔으니 아쉽지 않다.
드디어 정상이다.
지난겨울 혹독한 바람에 정상표지판 등이 엉망이다.
영락없이 경찰서에서 찍는 범인들 증명사진 꼴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정상주 한잔을 해야지.
오늘도 변함없는 서울 장수막걸리 5병과 육포와 골뱅이 무침으로 맛있게 요기를 한다.
하산은 지당골로 약 2시간 정도 예정이다.
급경사의 안전로프를 잡고 조심조심 내려오며 산죽의 어린잎을 채취한다.
이 조릿대 잎을 다려 차 마시듯 마시면 혈압과 당뇨에 좋다고 한다.
흐르는 계류에 발을 담그니 물이 너무 차 시리다 못해 아프다.
16;00
오늘 산행시간 약 7시간~현재시각 오후 네시
목삼겹살 안주로 소주 한잔하며 내일은 펀치볼로~을지전망대~평화의 댐~비수구미~화천~
춘천으로 방향을 정한다.
쏟아져 내리는 별도 못보고 밤은 깊어만 간다.
2009. 4. 18. 새벽 7시
방동약수 한잔 들이키고, 하늘을 보니 연무현상도 없고 너무 맑아 을지전망대에서
금강산의 조망을 기대한다.
멀리 간무봉과 무산 사이로 금강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돼지를 몰고 다니며 폼 잡던 곳의 북한군 막사는 안 보이고, 아군 초소는 적막만 흐른다.
가칠봉 203, 204 GP로 가는 철책선 오른쪽으로 북한군 스탈린고지, 김일성고지, 143, 144,
145 GP가 있는 곳이다.
여자 병사를 빨가벗겨 목욕 시키며 아군병사를 유혹하던 선녀탕도 보이고, 대체적으로 조망이
좋은 편이다.
왼쪽의 구조물 흔적은 대북방송용 스피커가 있던 곳이다.
'펀치볼'은 밀가루 반죽을 하는 화채그릇과 닮은 분지라서 미군이 별명을 지었다고 하며,
정식 명칭은 양구군 해안면으로 옛날에 뱀이 많아 돼지 해(亥)자를 쓰고 나서 뱀이 없어졌다는
유래가 있다.
뒤로 보이는 대암산은 표고 1,314m로서 정상부위에 '용늪'이 있는 생태계의 보물이다.
5월에 민간인 통제가 풀린다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그 옛날 산악 행군 시 추위와 굶주림에 빨간 사과가 달린 헛것을 본 곳인데,
물론 작전 종료 후 군기가 빠졌다고 기합을 받은 곳이라 추억을 되살리며 올라가야지.
'평화의 댐'을 거쳐 들린 '비수구미'는
우리나라 최후의 오지라고 소문 나서 찾았는데 예상보다 달라 실망을 한다.
2009. 4. 18.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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