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587 무서리 내린 날 길동 생태공원의 항룡유회(亢龍有悔)

김흥만 2020. 12. 2. 17:32

2020. 12. 1. 10;00

영하 4도까지 떨어졌다.

태양빛이 닿자 하얗게 내린 무서리는 윤슬이 되어 반짝거린다.

 

마지막 남은 붉은 단풍잎이 떨어지지 않으려 바동거리는 아침,

길동생태공원에 들어서자 바람이 잦아들어 안경에 콧김이 올라와 김이 서린다.

 

큰길에서 불과 1분도 떨어지지 않은 생태공원의 고요한 숲길,

며칠 후면 침묵을 지키는 산수유 빨간 열매에도 된서리가 내리고 그위에

서설(瑞雪)이 내리겠지.

 

요즘 들어 나의 사유(思惟)가 점점 깊어진다.

마음을 다스리는 사유가 되면 좋으련만 남을 싫어하는 생각이 깊어지니 이것도

중병인 모양이다.

 

일자산 상공으로 솔개라는 애칭을 가진 공격헬기 500MD가 요란스럽게 날아간다.

난 헬기나 전투기가 날아가면 마음속으로 가끔 조준을 해본다.

어디쯤 쏘면 맞을까.

수십 년 전 군복무시절 이현강 중위가 대공사격의 요령을 교육한 기억이 난다.

 

그는 소총으로 비행기를 공격하려면 '화망구성'이 중요하며, 저공비행을 할 때

마하2 속도의 소총탄이 명중하려면 마하 1.5이상의 속도로 날아가는

비행기의 앞쪽에 합동으로 화망구성을 하여 사격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했다.

 

저 비행기는 소총에 맞지 않더라도 미사일이나 대공무기에 의해 떨어질 수가

있다.

여느 무협소설이나 자주 나오는 검법 중 항룡유회(亢龍有悔)라는 검식이

자주 나온다.

 

황룡유회라는 말은 하늘 끝까지 올라가서 내려올 줄 모르는 용(龍)은 후회하게

된다.

극히 존귀한 지위에 올라간 자가 교만(驕慢)함을 경계하지 않으면 실패하여

후회하게 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꽤 오랫동안 광우병의 갈등과 세월호의 망령에 시달린 국민,

메르스와 사스를 호되게 겪고, 또다시 찾아온 코로나 바이러스로 신음하는

국민에게 선출직이 아닌 임명직으로 최고위까지 오른 추 법무장관과

윤 검찰총장의 싸움이 가관(可觀)이다.

 

승자의 오만(傲慢), 공격과 수비, 제3자인 법원과 검찰위원회의 개입으로

반전의 반전이 나오고 그들의 진흙탕 싸움을 보는 구경이 쏠쏠하다.

 

나이를 먹으면, 최고의 공직에 오르면 남의 존경을 받지 못할지언정 욕은 먹지

않아야 한다.

오죽하면 시인 소동파는 '기러기가 눈밭에 남기는 선명한 발자국'이라는

설니홍조(雪泥鴻爪)라고 표현을 했을까.

 

저들의 싸움을 보며 국가의 안위를 생각해본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장군으로 사마병법을 저술한 '사마양저'는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忘戰必危)라 했다.

 

'세상이 아무리 편안해도 전쟁을 잊고 지내면 반드시 위태로워진다.'라는

뜻으로 아무리 평화로워도 언제나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됨을 이르는 말이다.

 

지도자의 의무는 평화를 누리는 국민들이 전쟁을 잊지 않도록 긴장시키는

일도 중요하고, 국민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행복을 누리는 거도 중요한데

마치 남의 일처럼 먼 산만 바라보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무릇 무욕즉강(無慾卽剛)이라 즉 욕심을 버리면 굳세어진다고 했으며,

고위 공직자는 지기추상 대인춘풍(持己秋霜 待人春風)이라,

자신에게는 가을서리처럼 엄하게, 다른 이에겐 봄바람처럼 대하라고 했는데

저들의 권력욕으로 가득 찬 매서운 눈초리를 보면 가슴이 섬뜩해진다.

 

덕불고필유인(德不孤必有隣),

덕을 베풀면 외롭지 않아 반드시 이웃이 생기는 법, 덕과 진실을 행하면

반드시 동지가 생기고,

 

강산이개 본성난개(江山易改 本性難改)라,

강산을 바꾸기는 쉽지만 본성은 고치기 힘든 법이라, 저 추한 싸움은 언제

끝나려나 고사성어가 생각난다.

 

10;20

수십 년을 옆으로 지나다녔어도 한 번도 들르지 못한 생태공원,

아주 먼 옛날 논바닥으로 남아 아이들 썰매장이였던 곳이 생태공원으로 변해

늘 궁금했던 곳을 걷는다.

 

면적이 80,683㎡니 약 2만4천평 정도 되는 생태공원은 산림지구, 습지지구,

초지지구, 저수지지구, 광장지구로 되어있으며 공사하는 곳이 많이 숲의

고요가 깨졌다.

 

작은 다랑이논이 얼어붙었다.

수년 전 앞에 보이는 산에 올랐다가 엄청난 원시림에 놀랐고, 일본강점기에

설치한 표지석을 발견한 기억이 난다.

 

잠자리, 개구리, 애반딧불이가 살던 습지,

천이(遷移)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던 나무의 잎사귀는 낙엽이 되어 떨어졌고,

호랑나비, 왜가리도 사라진 황량한 숲속은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려

애쓰는 중이다.

 

또 다른 헬기편대가 감일동 항공부대 방향으로 날아가고 산새들이 후드득

날아오른다.

 

상일동지점 부지점장 때 독도법을 가르쳐주던 헬기조종사들은 지금 다

무탈할까,

무난히 진급하였다면 지금쯤 장군이 되었을 나이인데 잠시 옛 추억에 잠긴다.

 

10;30

이한우 선생은 간신열전에서

"장차 그릇된 짓을 하려는 사람은 그 말에 부끄러움(참 慙)이 있고,

마음에 확신이 없는 사람은 그 말이 갈라지고(지 枝),

선한 이를 무고하는 사람은 그 말이 둥둥 떠다닌다(유 遊)."라고 썼다.

 

부끄러움, 갈라짐, 마음이 둥둥 떠다니는 간사한 소인배가 들끓는 세상,

명군(明君)아래 간신 없고, 암군(暗君)은 간신의 온상이다.

 

지금의 대통령을 세종임금과 영조임금을 합친 위대한 명군이라고 말하는

누군가의 입을 김홍신 작가의 말을 빌려 공업용 미싱으로 꿰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법조문을 춤추게 해 교묘하게 일국의 검찰총장을 무력화 시키는 무문교저

(舞文巧箸)로 무장하고 예의염치(禮義廉恥) 없는 권력으로 국민을 피곤하게

하는 추미애,

충간(忠奸)을 가리지 못하는 암군(暗君)의 광란은 언제 끝날 것인가.

 

백성을 위해 뜻있는 일을 하면서 성실하게 통치하고,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한 점 없이 권력을 행사하는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필부의 인생이 덧없이 지워지는 여로(旅路)인 반면,

공직자의 인생은 역사에 길이 남아 사라지지 않음을 생각하면 될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권력의 정점에 오르던지 산의 정상에 오르면 내려오게

되어있다.

다만 내려오는 방법이 지옥으로 떨어지느냐 또는 부드럽게 연착륙

(軟着陸)을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날아가는 헬기를 숲속에서 바라보며 인과응보((因果應報), 결자해지(結者解之),

사필귀정(事必歸正), 권불십년(權不十年)이 생각나는 추운 날이다.

 

                                  2020. 12. 1.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