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627 나(我)

김흥만 2021. 6. 8. 20:47

2021.  6.  8.  05;00

카메라 셔터에 손가락을 댄 채 누르지 않고 양귀비가 뜬 화면을 들여다본다.

수동식 카메라로 찍을 때에는 뷰 파인더를 드려다 보며 잠시 숨을 멈추고 셔터를

누르는데 디지털 카메라는 화면을 보며 촛점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숨을 멈추지 않아도 셔터를 반만 누른 채 조준선 정렬을 하듯 초점을 맞춰나가다

문득 사격장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조준선 정렬이라,

개인화기로 타깃(target)을 향해 사격을 할 때 제일 중요한 요소가 조준선 정렬이었지.

가늠구멍을 통해 가늠자에 목표를 겨냥하고 마음속으로 열십자(十)를 그어 조준선

정렬을 하고 처녀 젖가슴을 만지듯 부드럽게 방아쇠를 당기면 표적지에 탄착군이

형성 되었지.

 

사격엔 입사호 사격과 전진무의탁 사격, 자동화 사격이 있었는데,

사격자세에 따라 쪼그려 쏴~무릎 쏴~서서 쏴~엎드려 쏴~무릎 쏴~ 서서 쏴로

이어지는 전진무의탁 사격(전투사격)을 하고나선 거칠어진 호흡을 재빨리 정리해야

다음 사격에 대비할 수 있었다.

 

M1, CARBINE, M16 등 아군 화기는 가늠구멍이 눈앞에 있고 가늠자는 총구 끝에

있기에 사격을 할 때는 조준선 정렬이 필수였지만,

북한군의 화기인 AK47은 아군화기와 반대로 가늠자가 눈앞에 있고 가늠구멍이

총구끝에 있어 조준선 정렬에 관계없이 쉽게 사격을 할 수 있었음을 기억해낸다.

 

물가에 핀 양귀비를 향해 조준선 정렬을 하며 초점을 맞추지만 잘 맞지를 않고

이내 숨이 가빠온다.

 

05;30

예보시간보다 일찍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금세 멈췄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고요가 밀려왔다. 

 

다시 밀려오는 바람소리, 비구름소리,

이름 모를 풀벌레소리에 내 가슴 뛰는 소리가 스며든다.

 

나는 무엇일까,

나는 누구일까,

나는 지금 어디쯤 와있는 걸까,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가 거칠어진 나의 숨소리를 압도한다. 

 

바람소리가 사라졌다.

사라진 바람소리와 함께 내 청춘도 어느새 사라졌구나.

 

여울져 흐르는 작은 도랑에서 해조음(海潮音)이 나온다.

개여울 흐르는 물소리에 알파파(alpha波)가 섞였구나.

 

양귀비 앞으로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귀를 활짝 열고 물소리를 듣는다.

며칠 후면 종심(從心),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아직도 모르겠기에 이젠 나 자신으로 살고 싶다.

 

아버지의 아들에서 아들의 아버지, 아내의 배우자로 산지 어언 반백년,

양귀비가 반영(反影)되는 물가에서 알파음을 들으며 나 자신을 찾아본다. 

 

                                      2021.  6.  8.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