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67 축령산<886m>의 천둥과 번개

김흥만 2017. 3. 22. 11:29


2009.  7.  2. 05;00

꽈르르르~꽝! 번쩍번쩍!

천둥소리에 잠을 깨 밖을 보니 하늘이 하얗게 금이 가며 찢어진다.

기상청에선 오후 늦게 소나기가 올 수 있다고 예보했는데 새벽부터 쏟아진다.

요즘 예보가 자주 틀리니 기상청은 기상 예보청이 아니고 중계청이라는 말을 듣는다.

 

오늘은 축령산~서리산 코스를 종주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데

비가 많이 오면 춘천으로 바람이나 쐬자고 친구들에게 안심시키고 축령산 입구에 들어선다.


어깨가 너무 아퍼 지난주 응봉산 산행도 실행을 못했는데

어제 침을 맞은 덕분에 다행히 어깨도 좀 올라가고 스틱을 쓸 만한 컨디션이다.

 

08;00

잠깐 하늘이 개이며 오늘 종주할 서리산 화채봉(649m)이 조망된다.

 

백두대간 한남정맥상의 중간에 있는 886m의 축령산은 우뚝 솟아있는 바위가 아름다운 명산이다.

서리산(832m)과 쌍봉을 이루고 있으며 약 150ha에 달하는 잣나무 단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잣나무단지는 옛부터 축령백림(祝靈伯林)이라 하여 잣 생산지로는 전국에서 제일로 꼽는

곳이다.

 

고려말 '이성계'가 유독 이곳에서만 짐승이 잘 잡히지 않아,

산세를 보니 웅장하고 신비스러워 산신령에게 산신제를 지낸 후 한꺼번에 멧돼지 5마리를

잡았기에 오득산(五得山) 또는 축령산(祝靈山)으로 불리었다.

 

들머리로 들어서며 꿍꽝 거리며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가 난다.

5분이 지나며 억수같이 쏟아지는 게 아니라 쏟아붇는다.


다행히 텐트의 주인이 잠시 비를 피하라고 선심을 쓰기에 오늘 산행은 틀린듯 싶어 배낭에서

막걸리를 꺼내 한잔한다.

 

09;10

한 시간이 지난 9시10분경 하늘이 개어  70년 이상 된 잣나무 숲속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시작부터 로프를 잡아야 하는 된비알이다.

 

길은 울퉁불퉁하고 힘이 든다.

어렵기 때문에 더 조심하고 더 천천히 즐기면서 간다.

천천히 가기에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되고, 보이는 모든 것들이 더 고맙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법정 스님은 "자연을 멀리하면 병원이 가까워진다."라고 했다

젊은이들은 매년이 지날 때마다 나이를 먹지만, 우리네는 매년이 지날 때마다 1년이 줄어든다.

살아있는 동안 모든 것과 자연에 감사하고 순응하면 마음이 편해지겠지.

 

30여분 오르니 삼거리 휴식장소이다.

약 0.75km 왔으니 정상까지 2 km 남았고, 남이바위까지는 1.27km 남았다.

 

지난번 가리왕산의 이정표는 전부가 엉터리여서 고생을 많이 하였는데 축령산의 이정표는

정확히 잘 되어있다. 


밧줄을 두 번 타고 40여분 정도 서릉을 타니 수리바위와 멋진 반송이 나온다.

높이 약30m에 천장바위를 이룬 수리바위는 독수리가 하늘로 비상하려는 자태이다.


산이 깊고 험하여 다양한 야생동물이 서식하는데 그중에서도 독수리가 많았다고 하며, 실제로

얼마 전까지 이 바위틈에 독수리 부부가 둥지를 틀어 살았다고 한다.

 

빗방울이 얼굴을 계속 때린다.

비구름이 잠시 살짝 걷히며 축령산 정상이 조망된다.

 

산안개와 구름이 우리를 감싼다.

친구가 산안개는 상서로운 기(氣) 즉 서기(瑞氣)라고 한다.

무릇 물이 하늘에게 다가서는 의식이 물안개라면 산은 산안개를 통해 하늘에 다가서는구나.

 

태영이 황소개구리라고 스틱을 달래기에 가까이 보니 생태 보호동물인 두꺼비이다.

이놈은 독이 많아 얼마 전 개구리로 알고 튀겨먹은 사람이 죽기도 하였지.

 

남이바위 쪽으로 접근하니 양지꽃이 빗물을 머금어 예쁜 자태를 발한다.

보통 4~5월에 피는 다년생 식용관상용인데 이제 피니 여기가 높긴 높은 모양이다.

 

이 꽃은 동의나물, 뱀무와 비슷한데  동의나물의 잎사귀는 둥글둥글하며, 뱀무는 꽃 가운데의

모양이 뱀딸기와 비슷하기에 이제 구분이 좀 된다.

 

조선 초 명장 '남이장군'이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국난에 대비하기 위해 동북방 조망이 좋은 이곳

축령산에 자주 올라 지형을 익혔다는 전설의 '남이바위'이다.

 

앉는 자리가 마치 팔걸이의자와 흡사하다.

 

        <장검을 빼어 들고 백두산에 올라 보니

          대명천지에 성진이 잠겼어라

          언제나 남북풍진을 헤쳐 볼까 하노라.>

하며 호연지기를 길렀던 <남이장군>은

18세에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북방의 여진족을 물리쳐 27세에 '병조판서' 즉 오늘의 국방장관에

올라 이름을 떨쳤으나, 유자광의 모함으로 형장의 아침 이슬처럼 사라지고 지금 남이섬에 그의 묘가 있다.

 

그가 지은 시구절의 '남아이십말미평(平)국을 남아이십말 미득(得)국'으로 교묘히 고쳐 역적으로 

모함

        <백두산 평정비의 북정가

          白頭山石  磨刀盡  백두산석 마도진  ~백두의 돌 칼 같이 다하고

          豆滿江水  飮馬無  두만강수 음마수  ~두만강의 물 말 먹여 없애리.

          男兒二十  未平國  남아이십 미평국  ~사나이 스물에 나라 평정치 못하면

          後世護稱  大丈夫  후세호칭 대장부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칭하리오.     >

을 한 유자광은 권모술수의 천재로 자신의 출세와 부귀를 위하여 계속 남을 모함하다가 귀양 가서

소경이 되었고, 말년을 불행하게 살다 갔으니 인과응보일까?

역사의 사필귀정이겠지.

 

에구! 배고프다.

정상이 아직도 0.72km 남았으니 여기서 쉬었다 가자.

 

암릉이 이어진다.

오른쪽이 수십 길 절벽이라 추락방지를 위한 밧줄을 잡으며 오르내린다.

 

까치수염이 하얗게 피어있다.

6~8월에 피는 다년생 식용관상용인데 개꼬리풀이라고도 한다.

 

난 참 운이 좋다.

축령산에서 땅나리가 활짝 핀 것을 발견 하였으니 정말 행복하다.


개나리, 참나리, 말나리, 땅을 보면 땅나리, 하늘을 보면 하늘나리, 중간을 보면 중나리,

털중나리 등 나리 종류도 엄청 많지.

 

비를 맞아 너무나 초연한 모습은 새침 띠기 새댁의 모습이다.

 

빗방울이 떨어지고 축령산 정상(886m)에 올랐다.

 

오늘은 비구름에 갇혀 정상의 조망이 별로이다.

가리왕산에 이어 계속 막힘없는 조망을 보지 못하니 이내 서운하다.


북으로 운악산, 청계산, 국망봉, 그리고 명지산이 희미하게 보이는데,

연인산, 화악산, 석룡산은 아예 구름과 연무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정상에는 항상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다.

6.25 때 전사한 이곳 내, 외방리 반공희생자 24명을 기리기 위한 게양대라는데

펄럭이는 태극기가 외롭다.

 

정상에서 서리산 정상까지는 2.87km로 약 한 시간 정도 걸리리다.

천둥소리가 또 가까워진다.

벼락 맞기 전에 하산을 서둘러야겠지.

자연사는 세월이 지나면 잊어지나 벼락을 맞아 죽으면 3대가 욕먹으려니 서리산으로

이동 한다.

 

절고개 삼거리가 눈에 보이며 그대로 미끄러진다.

빗길에 그렇게도 조심했건 만 어깨와 이두, 삼두박근이 찢어지듯 아파 숨을 못쉬겠다.


어제 건면이 친구가 놔준 침 덕분에 겨우 스틱과 밧줄을 잡으며 오르내렸는데,

문성이도 넘어지며 아예 레키스틱이 두 동강 나버렸다.

 

넘어진 와중에도 노루오줌이 보여 한장 찍는다.

'홍승마'라고도 하며 눈개승마, 삼백초와도 닮았는데, 식용 관상용으로 뿌리는 해독,

소염제 등에 쓰인다 한다.

 

절 고개 삼거리이다.

여기서 서리산 정상까지는 2.19km로 약 50여분 거리인데,

빗줄기가 굵어지며 천둥번개가 심해 서리산 종주는 포기하고 하산 길로 접어든다.

 

비를 맞은 패랭이가 너무나 애처롭다.

 

잣나무와 단풍나무가 시원하게 어우러져 있다.

단풍나무 씨앗이 헬리콥터 날개처럼 생긴 껍질에 들어 있는데

이 씨앗은 실제로 소용돌이를 이용해 공중으로 뜨는 힘을 이용한 초소형 헬리콥터라고 한다.

 

3km를 왔으나 아직도 주차장까지는 1.5km 남았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  6~8월에 피는 물레나물을 발견한다

한방에서 연주창, 지혈, 외상 등에 쓰이는 식용관상용 약용이다.

 

하늘바라기 폭포가 계곡 위로 희미하게 보여 줌으로 당겼으나 찍히지 않는다.

하늘바라기? 해바라기? 불바라기?

바라기란 무슨 뜻일까?


소리 없이 내리는 비를 몸으로 담은 산수국이 너무나 탐스럽고 예쁘다.

거의 사라지고 한라산이나 지리산에서 볼 수 있다는 산수국인데,

꽃이 너무 작아 나비나 곤충들의 눈에 잘 띄지 않을까봐 헛꽃이란 무성화를 만들어

곤충을 유혹을 한다.

뿌리, 잎, 꽃 모두 약재료로 쓰이며 심장을 강하게 하고 해열제로 쓰인다.

 

색상이 여러 차레 변한다.

처음엔 연한 베이지색~새하얀백색~붉은색~자주색 등으로 변하는데 화초가 아니라 나무

관목이다.

 

천둥과 번개 속에서  비를 맞으며 약 5시간의 산행에 머리와 폐 등 오장육부가 시원해지고

기가 보충된 탓인지 몸은 날아갈듯이 가볍다.

민주지산, 석룡산, 무갑산 등 갈 곳은 많은데 천천히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자.

 

살아있는 곳이 바로 천국이다.

산다는 것은 스스로의  고마움이기에 내 인생은 나 자신만이 찾아낼 수 있는 나만의 과정이다.

 

                      2009.  7 .  2.     서리산까지 종주 못함을 아쉬워하며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