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11.
어느 때부터인가,
고즈넉한 섬의 풍광을 즐기며 일출, 일몰도 보고 부드럽고 때론 칼날같이 파도치는 바다를
보며 호젓하게 섬 산행을 즐기고 싶었다.
내일부터 150mm 이상 호우예보가 나왔어도 가슴 설레는 '자월도'행 배를 탄다.
하얀 물보라를 뚫으며 갈매기들이 지치지도 않고 따라온다.
갈매기들은 이미 사람들이 주는 새우깡 등의 먹이에 익숙해져 있고,
이미 익숙해진 갈매기는 고기 잡는 법을 몰라 굶어죽는 놈도 있다 하니 먹이를 주는 일은
피하라고 환경론자들은 말한다.
한 시간 만에 '자월도'에 도착한다.
조선시대 자월도(紫月島)에 귀양 온 사람이 첫날밤 보름달을 보며 자신의 억울함을 한탄하니
갑자기 달이 붉어지고, 바람과 폭풍우가 일어 하늘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준다하여 자월도라
했다는데 섬 중앙에 있는 국사봉(國思峰 166m)을 비롯하여 완만한 구릉지이다.
백령도 같이 빼어난 해식애와 기암 등은 없으며, 대부분 간석지로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섬이다.
인구는 1,000여 명 정도이며, 해안선 길이 22km에 면적 7평방km 정도로 어업보다는 농업과
매년 2만여 명이 찾아오는 관광업이 주업이다.
숙소인 '은하펜션'으로 이동하는데 주인이 트럭을 타라고 한다.
이 섬의 주요 교통수단을 타며 갑자기 뒷골이 당긴다.
예비군 동원훈련 이후 몇 십 년 만에 타보는 트럭의 뒤 칸이라 차가 흔들릴 때마다 몸은
이리저리 구르고, 도시에 길들여진 모든 이들이 즐거워한다.
폭풍우가 오기 전에 훌치기를 해볼까.
50m 그물로 훌치기 네 번에 1kg이 넘는 광어 2마리, 게, 개숭어를 잡았다.
숙소로 돌아가는 트럭 뒤 칸에 탄 일행들의 모양이 볼만하다.
비가 오지 않으면 내일 올라갈 국사봉이 보인다.
자월도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 국사봉은 해발 196m로 왕복 2시간 거리이며, 나라에 국상이
생겼을 때, 왕도를 바라보며 국운을 기원하던 곳이며, 봉화를 올려 섬과 섬 간의 사고유무를
알리던 곳으로 '봉화재'라고도 한다.
그 옛날에도 국운을 걱정하던 충정어린 민초들이 많아 국사봉이라는 지명도 생겼건만,
오늘의 여의도 국회의원 놈들은 무엇을 하는 놈들인가 쌈 지랄만 하고, 그들만 생각하면
열이 뻗는다.
천하의 잡놈들 같으니라고!
하라는 국회는 안열고 비정규직은 매일매일 해고되고,
미디어 법을 장악한 민주당 놈들은 국회 문을 봉쇄하고, 다수를 점유한 한나라당 놈들은
천하에 무능한 놈들이고 이것들이 과연 사람일까?
한술 더 떠 부동산투기 의혹에 위장전입하고 해외에 골프나 다니던 놈을 검찰총수에 앉히려는
놈들 때문에 총체적인 난국이다.
무엇을 하는 것이 국민과 국가를 위하는 길인지 초등학생들도 아는데 말이다.
등산로 입구에 뱀 조심 경고문이 있어 별로 유쾌하지 않다.
자월도엔 실제로 뱀이 많다고 한다.
우리가 지나온 길에도 두 마리의 뱀이 로드 킬 되었다.
또한 이 섬엔 약초가 많은데, 관광객들이 너무 많이 채취해 경고의 뜻도 담았다 한다.
내려가는 길에 30여 년 넘은 아카시 한 그루가 서있다.
이지역의 특산물인 자연산 토종꿀을 생산하는데 기여가 크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하이얀 꽃 이파리~눈송이처럼~>
오빠생각과 함께 내가 사랑하는 동요이다.
동심과 향수를 자극하는 이 노랫말에 나오는 '아카시아'라는 나무는 사실 우리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고, 아프리카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이며,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나무는 '아까시나무'가 맞다.
아까시나무는 가지에 상처를 입거나 몸을 다치면, 줄기에는 가시를, 뿌리에는 맹아를 급격히
만들어 온천지를 자신의 분신으로 만드는 대단히 번식력이 뛰어난 나무이다.
이처럼 놀라운 번식력, 뛰어난 자기 보호능력과, 사방과 녹화, 전쟁용 땔감을 목적으로
일제 시대에 도입되었다 하여, 오랫동안 국민으로 부터 미움을 받고 단 한 번도 사랑 받지 못한
이 나무는 생태적으로 상당히 뛰어난 갖가지 삶의 지혜를 감추고 있다.
꿀샘이 발달한 꽃을 엄청나게 만들어, 곤충과 사람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하며 중요한
에너지원의 역할을 한다.
또한 토질을 가리지 않고, 빨리 자라고 뿌리를 얕게 멀리까지 뻗치기에 토양표면을 덮어 토사
유출 방지를 하며, 뿌리혹박테리아라는 공생균을 만들어 질소를 고정하는 미생물과 공생하여
토질을 비옥하게 만들어주며, 잎이 부드러워 초식동물들이 좋아한다.
잎이 땅에 떨어지면 바로 부식되어 신속하게 자연으로 돌아가며 수명을 다하면, 스스로 넘어져
자신이 차지했던 공간을 햇살이 비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후손들을 위한 삶의 터까지 만들어
놓고 가는 나무이다.
또한 이 나무로 만든 펄프용재는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니 우리의 기술력이 대단하다.
강한 바람과 함께 비가 쏟아진다.
하늘이 뚫렸나 아님 찢어졌는지 쏟아지는 게 아니라 아예 쏟아 붓는다.
번쩍거리는 번개와 찢어지는 천둥소리에 고즈넉했던 이 섬의 평화는 깨졌다.
tv에선 200mm이상 온다고 하니, 내일 산행은커녕 배도 안뜰 테니 꼼짝없이 섬에서 고립이다.
포기하고 소주나 한잔하자.
쿨쿨!
모기향을 피웠는데도 많이 물렸고 섬의 모기라서 독한가 보다.
7. 12.
아침이 되니 비가 더 거세진다.
서울, 성남, 수원, 시흥 등이 물난리 났다고 방송을 하지만 여기도 만만치 않다.
문을 열 수가 없다.
강한 비바람에 앞에 보이는 바다는 파도가 아니라 아예 물꽃이 피며 바닷물이 소용돌이친다.
방에 꼼짝 못하고 갇혔다.
누워도 보고 노래도 불러 보고 소주도 마셔 보지만 시간이 정지되었다.
호우경보와 풍랑경보로 배는 결항이고
오늘 하루를 더 묵어야 하는데 다행히 먹을 건 충분하다.
부두에 전화하니 오전 배 결항, 오후 배도 결항 예정이고 내일이나 나갈 수 있으려나.
전화를 건 아들은 섬에 고립되었으니 아예 표류기를 쓰라고 놀린다.
오후 5시
겨우 비가 잠시 멈추고 산행도 못하기에 자월도 시내구경을 한다.
자월분교가 있어 잠시 들려본다.
문득 초등학교 시절 미군이 던져준 축구공과 구호물품인 강냉이가루, 우유가루, 초콜릿 등이
생각난다.
썰물 때라 물은 많이 빠졌지만 강풍에 바닷물이 소용돌이치며 물꽃이 핀다.
이 섬엔 동백나무는 안 보이고, 조릿대가 꽤나 큰 것이 인상적이다.
세찬 비바람에 감이 떨어지지 않고 잘 달려있다.
내가 살던 시골집 앞마당에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지.
아버지는 볏짚, 음식물 찌꺼기, 부엌에서 타고 남은 재 등 많은 양의 두엄을 감나무 밑둥치에
쌓는다.
감나무는 가지를 꺾어내면 이듬해 그 자리에 새순이 생겨 더 많은 감이 열린다.
따라서 어른들은 감 따는 전지가위로 감이 달린 잔가지를 잘라내어 새로운 꽃눈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지치고 약해져 해거리를 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감나무를 위한 보신용으로 두엄을 활용했던 거다.
발효열로 겨울을 따스하게 보내고, 지친 뿌리를 회복시켜 해거리를 막아주는 놀라운 지혜였던 거다.
이름도 명태와 같이 다양하다.
파랗게 덜 익어 아주 떫은맛이 고통스런 땡감,
나무에 달린 채 빨갛게 익은 홍시,
덜익은 것을 따서 익힌 연시,
껍질은 벗겨내고, 쫀득쫀득하게 말려 호랑이도 무서워하는 건시인 곶감.
버리자니 아깝고 깨지거나 모양이 연시를 만들기도 힘든 것을 잘 씻어 얇게 썰어 햇볕에 말렸다가
추운겨울에 그대로 또는 떡에 넣어 먹는 편시,
미지근한 물에 땡감을 넣어 단감처럼 삭혀먹는 침시 등 아주 다양하다.
잘 익은 감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쪼갠 후 다시 포개면 그 갈라진 흔적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 잘 들어맞아 '감쪽같다'라는 말까지도 만들어 준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가
나의 어렸을 적 고향의 집을 떠오르게 한다.
오후 8시에 풍랑주의보는 해제되었지만 일몰이라 배는 안 뜬다.
꼼짝없이 자월도에 갇혔다.
내일은 배가 뜰지 부두에 전화하니 항만청 공무원의 승인을 받아 아침 열시에 확정이
된다고 한다.
2009. 7. 13. 09;00
TV에서'비극의 산'으로 불리는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높은 '낭가파르밧(8,126m)'에서
故'고미영 대장'이 등정에 성공하고 하산 길에 실족하였다는 뉴스가 방영된다.
여성 산악인으로서 대단한 분이라 평소에도 오은선 대장과 함께 많이 존경했는데,
한 시즌에 8천고지의 고봉을 세 개씩이나 연속 등정하고, 14좌 목표의 바로 앞인 11좌에서
끝내며, 그녀가 좋아하는 산에서 일생을 마감했으니 너무나 아쉽고 삼가 명복을 빈다.
낭가파르밧을 등정했던 '헤르만 불'이란 29세 청년산악인도 하산 길 40여 시간 동안 식량과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영하 20도에 산소결핍증으로 사경을 헤매다 80세 노인의 얼굴로
변해 간신히 생환해 올 정도로 힘든 비극의 산에서 사고 소식은 너무나 안타깝게 만든다.
"산은 정복하는 게 아니라 산의 품에 안겨야 한다."라고 했던 그녀의 강인했던 도전정신은
우리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고미영 대장은 5월부터 6월 8일까지 8천미터 이상 고봉을 연속 3좌를 하고, 이번에 4좌를
등반 후 사고가 났다.
왜 연속등반을 할까?
해발 수천 미터의 고지대에 오르기 위해서 필요한 고소 적응기간은 보통 2~3달 정도라고 한다.
해발고도가 높아질수록 산소는 희박해지고, 사람의 체내 산소량이 부족해져 피로를 일으키는
혈중 젖산농도가 짙어지는데, 이런 점을 극복하려면 인체가 고지대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연속등반이 쉬었다가 하는 것보다 적응기간을 줄일 수 있는 잇점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4~3~3이 좋다.
1000m 내외의 산을 즐기며 올라갈 때 4할의 힘을 쓰고, 내려올 때 3할을 쓰며, 3할은 남겨두었다가
다음날 생업 및 생활에 써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천천히 올라가고 천천히 내려와야겠지.
10;00
비는 그쳤고 혼자 터덜터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간다.
들머리에 '백도라지 꽃과 더덕'이 어울려져 보기가 좋다.
계곡의 흐르는 물소리에 세상 소음을 잊고 마바위 방향으로 길을 잡으니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이 나를 반긴다.
조선의 송정(松政), 즉 소나무정책은 벌목을 철저하게 금하는 이른바 송금(松禁)법을 근간으로
펼쳐졌는데, 소나무는 바로 우리 조상의 생(生)의 동반자였다.
아기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이며 태어나면, 볏짚으로 꼬아낸 새끼줄에 이물질을 걸러내는 역할을
하는 숯과, 부모를 상징하는 두 장의 잎을 가진 소나무가지로 생명의 원천을 상징하였고,
아들은 이 금줄에 붉은 고추를 끼워 남아 선호사상도 반영하였다.
아들이 탄생하면 앞뜰에 소나무를 심었고, 딸이 태어나면 뒤뜰에 오동나무를 심었다고 하는데,
여러 가지로 쓰이는 소나무는 늘 사람들의 눈에 뜨이고, 세상을 떠나면 그 송판으로 관을 짰던
소나무가 최근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애리조나 재선충'으로 꽤나 많이 사라졌는데
이 섬의 소나무는 싱싱하다.
당뇨와 암치료를 할 수 있는 담쟁이넝쿨이 소나무를 칭칭 감고 있다.
천연기념물인 '사슴비단벌레'가 보여 한 장 찍는다.
'매미꽃'이다.
다년생으로 피나물에 비하여 꽃이 약간 작은 편으로 유독성이다.
하늘 건너 수평선 위엔 조각구름 하나 없고, 잔뜩 찌푸린 날씨가 금방이라도 우당탕 쏟아지겠다.
질경이 밑에 노란무늬 벌레가 있는데 워낙 빨라 촬영이 힘들다.
나무의 공주인 '모감주나무'이다.
낙엽소교목으로 사찰에서 열매로 염주를 만든다.
중국이 원산지라 하며, 안면도의 군락지는 천연기념물 제138호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요즘은 정원수로 많이 심으며, 미사리 제방에도 여러 그루가 있다.
노란색 고운 황금 조각을 뿌려둔 것 같으며,
전 세계적으로 매우 귀해 공주로 대접받는 나무이다.
자월도는 생태계의 보물이다.
귀한 모감주나무에 이어 공작꼬리 보다 더 화사한 털을 가진 '자귀나무'도 여러 그루
보이니 난 행운아다.
잎이 낮에는 펴지나 흐린 날이나 밤에는 접혀져 마치 잠을 자는 느낌을 주는데,
귀신같다는 의미가 내포된 '자귀나무'는 합환목(合歡木), 야합수(夜合樹)라고도 하며,
부부의 금실을 위해서 정원수로도 심었다.
약 3~5미터 정도 자라며 깃털 모양의 꽃들이 산형(傘形)으로 생겨 분홍색과 흰색으로 아우러진
꽃은 너무나 아름답다.
특히 소들이 좋아하여 '소밥나무', '소쌀나무'라고도 하는데 소에겐 보약이다.
한 시간 정도 오솔길을 따라 이 나무, 저 나무 등을 보며 걸으니 포인터 종 '화니'가 날 찾아왔다.
아마도 주인이 날 찾으라고 풀어놓은 모양이다.
이놈은 아주 영리하여 자기네 펜션의 손님들을 산으로 안내한다고 한다.
방향을 잡아 앞장서 가다가 기다리고, 사람들이 되돌아가면 방향을 바꿔서 안내하는 행동이
너무 예쁘다.
지난번 '칠보산'에서 만났던 검둥이 '뭉치가 생각난다.
정치하는 놈들이 이 개의 1%만 따라와도 칭찬 받을 텐데 말이다.
강아지 때문에 한바탕 웃고 따라가니 '궁궁이'가 보인다.
산골습지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인데 6~9월에 흰 꽃이 피며, 어린 순은 나물로 먹으며, 열매와
뿌리는 치질, 강장, 빈혈 ,구토, 이뇨, 치통등 에 쓰인다고 한다.
축령산에서 보았던 '물레나물'도 보이고,
축령산에서 찍은 땅나리와는 조금 다른 '털중나리'도 있다.
여러해살이풀이며 한국 특산식물이다.
50~100cm정도 자라며 전체에 잔털이 있다. 관상용으로 어린 순과 줄기는 식용으로 쓰고,
줄기는 강장, 종기 등에 약재로 쓰인다.
호우와 강풍으로 당초 예정했던 섬의 일주산행은 하지 못하였지만,
때 묻지 않은 자연 생태환경을 가슴 깊이 담을 수 있어 오히려 행복하다.
2009. 7. 13.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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