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70 무갑산<578m>

김흥만 2017. 3. 22. 11:39


2009.  7.  30.

도인은 도(道)를 얻기 위해 산을 찾고, 심마니는 산삼(山蔘)을 캐러 산를 찾지만,

몸이 아픈 사람은 산에 입원해서 자연이라는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글을 보며 깊은 감명을 받는다.

 

산은 말 그대로 종합병원이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살려낸다.

아프고 병든 다음에 찾아도 되지만, 아프기 전이나 병원에 가기 전에 산을 찾으면 병은

미리 달아난다.

또한 깊은 내면의 속살을 맑게 하고 영혼까지도 치유 해준다.

 

나는 산이 신앙이다.

일찌감치 산을 찾았기에 뇌종양과 척수공동증이라는 매우 드문 희귀병을 앓으면서도

쓰러지지 않았다.

뇌종양 등의 이유로 척수가 서서히 말라 전신이 마비되면서 사망에 이르게 되는 아주

무서운 병인데 말이다.

 

1982년 4월 과로와 음주 탓으로만 알았던 마비상태가 온 것이 바로 그 무서운 병이

진행되면서 부터인데, 2006년 5월 발견되었으니, 무려 24년이 진행되었는데도 전혀

몰랐다.

꾸준히 산을 찾은 것이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춰줬고 즉 생명을 연장해준 거다.

 

산은 힘들게 올라가는 것도 좋지만, 천천히 주변의 사물을 보며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어가며 올라가야 제격이다.


나는 힘들 땐 나무를 부드럽게 껴안는다.

그러면 나무는 맑은 기(氣)를 나에게 선물한다.

몸의 탁기를 밀어내고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거다.

 

재백이의 갑작스런 백혈병 소식에 당혹하였고, 다른 친구들도 망연자실한다.


지난 일주일 내내 편안치 못한 마음을 다스리고자 퇴촌의 '무갑산'을 찾는다. 

무갑산은 서울에서 불과 20여 분 거리에 있지만 별로 알려지지 않은 오지의 산이다.



무갑사 입구에 '털중나리'가 아주 예쁘게 피었다.

 

 

무갑산(武甲山)은 규모에 비해 이름이 묵직해 보인다.

임진왜란 때 항복을 거부한 무인들이 은둔하였었다는 전설도 있고, 산에서 갑옷도 출토되고,

또한 멀리서 보면 산이 갑옷을 두른 것 같다 해서 무갑산이라 한다는데 근거는 없다고 한다. 


무갑리는 예전에 '무래비'라고도 불리고, 수복리(水伏里)라고도 했다는데 물과 관련된

지명이니 옆의 경안천과 관련이 있을까?

경기 동부지역엔 무갑산, 갑산, 적갑산 등 갑(甲)자 들어간 산이 많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대쌍령리 고개'가 병자호란 당시 유명한 격전지였고,

도평리의 '낙화암'이 패전 후 마을 아녀자들이 자결한 장소로 지금도 그들의 넋을 기리는

제사를 마을에서 지낸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가까운 남한산성의 치욕과 관련되었으리.

 

난 이곳이 초행길이다.

무갑리는 원래 씨족 촌으로 2년에 한 번씩 산신제를 지내는 등 전통이 오래된 마을인데,

오늘 보니 공장이 많이 들어섰고, 간간히 별장들이 들어서 좀 삭막한 느낌이다.

 

다리를 건너 처음부터 깔닥이다.

경사가 심하며, 지난 비에 많이 파헤쳐지고 돌 뿌리들이 많아 맨발등산을 고집하는 봉길이

다칠까 염려된다.

 

'물양지꽃'이 활짝 피어있다.

식용으로 여러해살이풀인데 애기똥풀과 아주 비슷하다.

 

경사가 점점 심하다.

고정로프도 설치되어 있고, 당국에서 신경을 많이 썼다.


'전등싸리'가 피어있고,

이놈은 중국이 원산지로서 두해살이풀이다.

약용으로 쓴다는데 어디에 쓰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습도가 높아 온몸이 땀에 질퍽하게 젖는다.

어젠 맑고 시원했는데 정상의 조망이 걱정된다.

뿌연 연무 속에 조망이 제대로 될지.

 

'궁궁이'인줄 알고 찍었는데 확인해 보니 '갯기름나물'이다.

 

짐을 정리하며 장수막걸리가 5병이라고 한다.

한 병에 750g이니 막걸리 무게만도 4kg에 가깝다.

 

선두 그룹은 먼저 올라가고,

난 문성이와 주변의 야생화를 더 찍는다.

 

꽃잎이 4개인 '매미꽃'도 보이고,

 

이 매미꽃은 독성이 있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뱀무'도 보이고, 꽃 안쪽의 모양이 뱀딸기와 비슷하다고 해서 뱀무라 하는데 노란색이

참 아름답다.

 

'누리장나무'도 보이고,

 

누리장나무는 천연 방향제이다.

구수한 원기소 냄새가 나며, 강원도 사람들은 냄새가 고약하다해서 '송장나무'라고도 한다.

허긴 모기나 곤충들도 싫어하는 냄새라니 알만하다.


논두렁, 밭두렁에 애기를 뉘어 놓고, 누리장나무 잎사귀를 몇 장 주위에 널어놓으면, 모기나

해충이 달려들지 않아 천연적인 모기약 노릇을 하는데, 우리네 조상님들의 지혜가 놀랍기만 하다.

 

어떤 이들은 이 '무갑산'이 산나물, 야생화, 버섯들의 천국이라 한다.

이름 모를 꽃과 풀, 나무들이 지천이다.

조개나물도 아니고, 괴불주머니도 아니고, 벌깨덩굴도 아니고,  이게 무엇일까?

한 시간이나 걸려 찾아내니 '염아자'라고 한다.

 

보랏빛이 신비롭다.

여마자, 목근초라고도 하는데, 어린 순은 먹으며 뿌리는 천식 등에 쓰인다.

 

출발한지 30여 분만에 삼거리 안부에 도착 목을 축인다.

 

얼굴에 땀들이 비오듯 흐르고, 나 같이 안경을 썼으면 한참 고전하겠다.

이제 부턴 경사가 약하다.

힘든 길은 어느 정도 지났고, 서서히 고도를 높여간다.


분명히 '표고버섯'인데 요즘 독버섯 경계령도 내렸고 겁이 나 채취를 못한다.

 

또다시 가파른 경사지만 다행히 안전로프가 설치되었다.

 

이젠 좀 쉬자.

 

휴우! 드디어 정상이다.

돌탑이 위태롭게 서있어 안정감이 떨어진다.

 

이 무갑산(578m)은 '관산'과 연결되어 있다.

천진암을 품고 있는 앵자봉과 연계해서 종주하면 도상거리만 20km 가까이 되는 뻐근한

산행거리이다.

10여 시간 걸린다 하는데 등산객이 아주 적어 호젓하게 걸을 수 있으니 시원한 날 도전해야겠다,

 

올라오며 걱정했던 그대로 뿌연 연무 속에 용문산(1157m), 관산(555m), 앵자봉(670m), 소리봉(612m)이 희미하게 조망된다.

 

친구들에게 항상 넉넉한 정을 베푸는 희천이 폼을 잡는다.

 

너무 덥고 땡볕이라 물이 있는 계곡으로 이동한다.

하산 길 희천이에게 옻나무에 대하여 설명해주니, 금년 가을엔 불타는 듯한 옻나무와 붉나무

단풍을 꼭 보여 달라고 한다.

 

'산초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다.

 

산초나무는 '초피나무'와 비슷한데,

초피는 5월에 피며, 가지 끝과 중간부분에 열매가 달리고, 꽃이 땅을 향하여 피는데,

산초는 7~8월에 피며, 가지의 끝부분에만 열매가 달리며 꽃은 하늘을 향한다.


기름을 짜서 먹는 다년생 관목으로 잎은 된장국과 전으로 먹으며, 꽃은 녹색으로 꿀이 많다.

검은색 열매는 치통, 타박상, 천식 등의 치료제로 쓰이는데, 해소나 천식이 심한 사람은

산초열매 기름을 매일 아침 공복에 한 숟가락씩 3개월 동안 복용하면 완치가 된다고 한다.

또한 생선 비린내를 없애주는 향신료로 쓰이며 경상도 사람들이 좋아 한다.

 

계곡길을 천천히 내려와 날머리로 들어서니, 어느덧 두 시가 가까워 온다.

차는 저위 무갑사에 있어 폭염에 엄청 힘들 텐데 봉길이 자청해 인영이하고 차를 가지러 간다.


모청은 지금 이 시간에도 항암제 투여 후 백혈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나만 이 산에서 대자연의 사치를 누리고 있으니 미안할 따름이다.

면회가 언제나 가능할지 조속한 쾌차만 바랄 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구나.

 

                                    2009.  7 .  30.   무갑산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