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71 40년의 한 우이령

김흥만 2017. 3. 22. 11:41


68년 2월 1일

겨울방학을 끝내고, 학교에 등교하니 교실은 책걸상이 뒤집혀지고 엉망이 되었다.

1.21사태 때 무장 간첩 김신조 일행 일부가 우리 학교로 해서 도망을 가고,

학교 옆 북악산 아랫길인 세검정 고갯길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고 한다.

 

이후 봉쇄된 북악산~우이령길 중 북악산의 일부는 몇년 전 개방이 되었고,

이번에 우이령길이 개방되었다 하니 많이 궁금하다.

 

41년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모습은 어떨까?

150mm이상 호우주의보가 내렸지만,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하는 우중산행도 재미있다.

 

우이령길 입구의 안내도를 보니,

입산은 9~14시까지, 하산은 16시까지이다.

7월 26일부터 우이동 390명, 송추 390명~780명이 사전 인터넷 예약을 해야 트래킹이 된다고

하는데,

 

오늘 와 보니 큰 의미가 없이 괜히 통제만 하는 것 같다.

자신 있게 개방했으면 관리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닌가. 

 

780명이던 3,000명이던 국민이 원하는 대로하며, 철저하게 관리하면 큰 문제는 없을 텐데

국민을 우습게 보는 공무원의 의식수준이 문제일까,

질서를 지키지 않는 국민의 의식수준이 문제일까? 

 

출발지인 우이치안센터 뒤의 계곡물이 무척이나 맑다.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무려 200mm의 장대비가 왔는데도 맑기만 하니

가히 명경지수(明鏡之水)로다.

 

장길을 피해 흙길인 육모정길로 30여 분 올라가니 경찰이 지키고 있기에 연유를 물으니

개방 첫날 2만여 명이 올라와 놀래서 막았다 한다.

 

이길 저길 헤매다 주 탐방로로 들어서니 이미 온 몸이 다 젖었고 습도가 높아 목이 마르다

잠시 나타난 비구름 속 '영봉'의 빼어난 자태가 신비스럽다.

 

'홍혜걸 기자'는 산으로 가는 길에는 두가지 길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땀 흘리며 운동하고 사색하는 등산(登山)이라면,

또 하나는 삶의 궁지에 몰려 어렵고 힘들고 지쳤을 때 해답을 모색하고 구원을 갈구하는

입산(入山)이다.

'통즉등산(通則登山)이요, 궁즉입산(窮則入山)인' 것이다.

 

오늘 우리가 건강하게 등산을 하는 것은 처절하게 생존에 시달렸음에도 우리나라에 산이 많고,

1000m 내외의 산들이 서울과 같은 대도시 주변뿐만 아니라 전국에 산재해 있으며, 등산하기에는

최적이기 때문이다.

 

산림청 통계에 의하면 전국에 약 4,440개의 산이 있다고 하며,

그 산들은 나무와 약초 등 온갖 야생화가 있고 계곡물이 흐르는 산들이다.

전문가들은 3,000 m를 넘어가는 산은 춥기만 해 '죽은 산'이라고 한다.

즉, 사람이 놀 수 있는 산이 아니라고 하는 거다.

 

전국토의 70%이상이 '살아있는 산'이니 우리나라는 등산 천국의 지리를 가져 천혜의 축복을

받았다.

국회의원들이 개지랄을 하건, 전직 대통령이 자살을 하건, 아무리 지지고 볶더라도

우리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산에서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다.

 

지난 번 어버이 날 자식들이 사줬다는 등산화를 아끼느라 목에 걸고 맨발로 걷는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천연가죽 발바닥이 등산화라나?

 

안내도를 보니 벌써2.7km 이상 걸었다.

산과 들에 가장 흔한 옻나무가 보인다,

 

옻나무는 우리나라 기후 풍토에 적합하여 함경북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자라며,

참옻나무, 개옻나무, 덩쿨옻나무, 검양옻나무, 가을에 가장 빨리 붉게 물드는 붉나무 등 6가지가

있다.

수액을 옻이라 하는데, 칠공예및 산업용의 천연도료로 이용되고 있으며,

한방에서는 구증, 복통, 통경, 변비, 어혈, 생리통에 쓰이는데 특히 항암제로 뛰어나다고 한다.

 

의정부 쪽에는 거의 없어진 '대전차방어진지'가 우이령 정상에 있다.

 

이끼가 잔뜩 끼었고 특이하게도 TNT를 끼우고 폭파시키는 구멍이 없다.

유사시 다른 방법으로 폭파시키려나?

내가 근무하던 동부전선의 대전차방어벽은 구멍을 많이 만들어 손쉽게 폭파할 수 있는데,

단순한 전시용인지 아리송하다.

 

우마차와 작전용 차량이 넘나들어 고갯길은 완만하고 넓직한데 너무 습도가 높아 조금 힘들다.

 

우이령의 안내표지가 나온다.

곳곳에 쉼터와 안내 표지판이 설치되었고, 관계당국이 고생한 흔적이 많다.

 

장수 막걸리를 한잔 해야지.

육포와 과일, 양갱, 떡 등 안주가 풍부하고, 막걸리 5병은 갈증을 푸는 꿀맛이다.

 

수백 명이 앉아 쉴 수 있는 넓은 공터이다.

 

하산 길에 '오봉'이 비구름 속에 조망된다.

빗줄기가 굵어진다.

이상하다 내가 산행만 하면 비가 오니 날을 잘못 잡는 걸까?

가리왕산, 설악산, 자월도 등 비를 안 맞은 적이 없으니 말이다.

 

신비로운 자태이다.

'오봉'은 한마을의 다섯 총각들이 원님의 예쁜 외동딸에게 장가들기 위해 지금 보고 있는 오봉과

마주한 뒤편의 상장능선 바위를 오봉에 던져 올리기 시합을 하여, 현재의 기묘한 모습의 봉우리가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도봉산 봉우리 중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명품이다.

다섯 개의 암봉이 각각 머리 위에 거대한 바위를 이고, 마치 생각에 잠겨있는 군상(群像)의

모습을 그린다.

 

저 봉우리에 올라가면 화강암에서 나오는 화기와 계곡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기가 어우러져

몸안의 탁기는 다 나가고, 싱싱한 생기가 충전될 텐데,

오늘은 트래킹만 하기로 하였으니 우이령길의 산기운과 흙기운 그리고 장수막걸리의 기만 받는다.

 

맑은 계곡물에 버들치, 꺽지 등이 있을까 궁금하다. 

 

오늘 트래킹 중 반가운 꽃 '꿩의다리'가 비를 맞고 처연하게 피어있다.

 

미나리아재비과의 다년생풀이며, 주로 산의 숲 속 그늘에서 자란다.

'각시원추리'가 너무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6~7월에 피며 서로 껴안는 듯 잎이 마주나며, 윗부분이 활처럼 휘어진다.

식용, 약용으로 여러해살이 풀이다.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애기똥풀'이 지천이다.

 

2년생으로 구릉지나 길가, 숲에서 잘 자라는데, 줄기를 꺾으면 누런 유액이 애기똥과 같이

나와서 애기똥풀, 젖풀이라고도 한다.

한방에서 위궤양, 간장, 장진경, 견통, 위암, 진해및 모든 암에 쓰이는데 유독성이다.

 

와! '밤'이 주렁주렁 열렸다.


참나무 과의 낙엽성교목인데 15m 정도 자라며, 참나무의 잎과 거의 같아 열매가 없으면

구분하기 어렵다.

재질이 단단해 세계 각국의 철도침목으로 쓰이며 가구, 건축재로 많이 쓰인다.

콩팥, 혈액순환, 지혈, 설사, 혈변, 구토 및 보양재로 쓰이며 제삿상의 필수이다.

 

지난번 15년간 사용하던 고도계를 잊어버렸다고 하니 희천이가 손목에 차고 있던

디지털 고도계를 쓰라고 얼른 벗어준다.

사려면 30만원이 넘을 텐데 받으면서 고마워 가슴이 뭉쿨해진다.

 

송추 냉면집에서 수육과 빈대떡, 꿩 육수의 냉면으로 하산주를 하며, 제주도의 올레길 트래킹과

지리산 트래킹에 대하여 상의를 한다.

 

우이령길!

한 번은 꼭 와봐야겠지만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두 번은 안갈 듯,

40년 넘은 세월에 원시림과 때 묻지 않은 산천을 기대했던 내가 바보일까?

 

도로포장만 일부 안 된 평범한 고갯길이 개방되니 많이 소란하다.

정치와 세상사에 시달린 시민들이 조금이라도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함이 너무 번거롭다.

 

                                                2009.  7 . 17.  우이령길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