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6.
2009. 2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펴낸 '가슴 설레는 나라'란 책에
'2020년 우리의 삶'이란 내용이 있다.
< 노인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30인치 디스플레이에서 오늘의 건강상태를 체크한다.
컨디션 불량을 알리는 신호가 뜨면 디스플레이의 전국 헬스 케어 컨설턴트 명단에서
한 명을 골라 영상통화로 상담을 받으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자리가 보장된다.
내 집 마련과 자녀교육 고통이 사라지면서 노후자금이 두둑해지고, 정부가 지원하는
퇴직연금으로 누구나 풍요롭고 여유가 있는 노후를 즐긴다. >
2020년이면 우리나이 70여 세의 노인인데 과연 그럴까?
솔직히 의문투성이다.
한국인의 노후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이유를 몰라서일까?
허리가 휘는 집값, 사교육비 부담에 짓눌려서 모아놓은 재산도 없고,
자식들이 커서 겨우 한숨 돌리면, 명예퇴직 등 조기폐기 처분을 당한다.
한창 일할 나이인 40~50대에 일한 시간보다 일하지 못하는 시간이 더 길기에 매일 아침
산으로 출근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
기러기 아빠, 독수리 아빠 등 숱하게 신조어를 만드는 나라,
이젠 자식들에게 올인 하지말자.
어느 정도 교육을 시켰으면 혼자 스스로 독립하게 지원하지 말자.
해외연수, 조기유학 등도 자식들이 직접 벌어서 할 수 있도록 해야 되지 않을까.
죽음이 쳐들어 올 때까지 경제적인 능력을 가져야 한다.
즉 지갑을 전부 내주는 건 자살행위이기 때문이다.
새가 춤을 춰 즐겁다는 조무락골(鳥舞樂)의 '석룡산'을 등반하며 자식들에게 올인 후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고 '이덕규 동창'이 잠시 대화주제가 되었기 상념에 젖어본다.
사망 즉시 연락을 끊은 부인과 자식들의 사례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시원하게 뚫린 경춘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설악 IC에서 빠져, 연인산, 명지산, 화악산
중봉 입구를 지나, 도마치 3.8교에서 우회전하니 시원한 나무숲길인 조무락골이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은 별로 없고, 시원한 물소리가 귀를 때린다.
4.4km인 조무락골의 계곡으로 하산하기로 하고, 3. 3km인 북서릉으로 길을 잡아 들머리로
들어선다.
원래 이 조무락골에는 어른 서너 명이 팔을 벌려야 감쌀 수 있는 전나무와 노송들이 원시림을
이루고 있었는데, 일제시대에 벌목을 해 들머리에 큰 나무들은 없고 10여 분 올라가니
조림한 잣나무가 근사하게 자라있다.
익지 않은 잣송이가 여러 군데 떨어져 있고,
바람기가 약간 있어서인지 매미소리 없이 사위가 조용하다.
자주색 노루오줌이 개망초 사이에 활짝 피어 신비롭다.
하늘은 적당히 흐려 산행을 편하게 한다.
대모산에 그렇게 많던 관중(貫衆)이 드물게 있다.
양치류 고사리 과의 '관중'은 우리나라에 약 23종이 있다는데, 여러 개의 개체가 원을 이루는
모습이 소철과 비슷하다.
어린잎은 먹으며, 꿸 관(貫) 무리 중(衆)자를 쓰는 좀 색다른 이름이다.
지금 기온 27.4도
산의 기운이 시원하나 그래도 힘들다.
현재고도 780m.
아직도 400여m 를 더 올려야 하니 잠시 쉬자.
오늘같이 1천m 가 넘는 고산등반 시에는 스틱 2개를 쓰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다.
체중 30% 정도를 분산해 주니 10km가 넘는 장거리 산행에 매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임도를 벗어나 본격적인 등산로이다.
경사 30도를 넘는 급한 길이다.
등산로 옆에 살짝 숨어 있는 '노랑망태버섯'을 발견한다.
흰 망태버섯도 있는데 이 버섯은 담양의 대나무 숲에 많다고 하며 프랑스 등에서는
최고급 버섯요리의 재료로 친다.
아침 일찍 피었는지 벌써 삭기 시작한다.
좀 더 일찍 올라왔으면 피면서 삭기까지의 과정을 찍을 수 있었는데 아쉽다.
'꿩의다리'도 보이며,
기묘한 자세의 이름 모를 버섯을 보며,
희천이 "요즘 버섯은 섹스를 즐기는가보다"라고 하는 한 마디에 다들 웃음꽃이 핀다.
정상이 2.2km 남았다.
여기에서 두 시간이 더 걸리겠지?
이름 모를 버섯이 지천이며 까치수염, 양지꽃 등이 널려있다.
이제 1.3km 남았고 온몸이 다 젖었다.
벌깨덩굴과 비슷한 '며느리 밥풀꽃'이다.
1년생으로 시어머니 학대에 못 이겨 입에 밥알을 물고 죽어간 며느리의 무덤에서 났다고 해
'며느리밥풀꽃'이라 하는데, 예전부터 고부간의 갈등은 우리나라의 역사였던 모양이다.
900고지가 넘어서니 '동자꽃'이 지천이다.
다년생으로 깊은 산속 초원에서 자라며 줄기에 긴털이 있다.
현재고도 해발 995m.
봉길이 빨리 올라와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바위 위에 우아한 자태로 '바위채송화'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다년생풀로 산지 바위틈에서 자라는데 너무나 예쁘다.
식물 전체가 채송화 모양이기 때문에 '바위채송화'라고 하는데, 주로 고산지대에 있으며
민간에서 강장, 선혈, 종창 등에 쓰인다.
이 꽃을 찍으며 너무 기분이 좋아 오늘 밥은 내가 산다고 큰소리친다.
이제 정상까지 800m 남았다.
야생화에 빠져 이 꽃, 저 꽃 찍다 보니 선두와 많이 벌어젔다.
화악산 정상이 가깝게 조망된다.
해발 1,469m로 경기도 제1봉인데 중봉과 정상의 레이더 기지가 선명하게 조망된다.
빛날 화(華), 큰산 악(岳)자를 쓰는 화악산은 소백산의 큰 덩치처럼 웅장하고 장엄하여
주위를 압도한다.
'둥근이질풀'이다.
매우 재미있는 꽃으로 한방에서 변비, 통경, 위장병, 대하증, 방광염, 피부병, 종창 등에 쓰이는데
일본사람들이 매우 좋아하는 약초이다.
일본인들은 짜고 매운 것을 먹지 않아서 장이 몹시 약하다.
따라서 이질이나 급성장염에 걸리면 쉽게 죽는다.
매운 고추를 더 매운 고추장에 찍어 먹는 우리들은 이질 같은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말이다.
얼마 전엔 이 이질풀을 채취하여 일본으로 수출도 하였다 한다.
장염치료엔 말린 것을 20~50g 달여 먹고, 농축액을 만들어 먹어도 좋다고 하며,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출혈을 멎게 하며,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하고, 소변을 잘나오게 하며,
손발의 마비나 경련을 치료하고 신경통이나 재생성빈혈에도 좋다고 한다.
아마도 이 바위 때문에 석룡산(石龍山)이라 하는 모양인데, 바위와 거창한 산 이름이 조화되지
않는 것 같다.
용의 모습을 닮은 거 같은데 차라리 정상 바로 밑의 이 바위가 더 어울릴 것 같다
두근거리며 금강초롱인줄 알고 찍었으나 '도라지 모싯대'이다.
아내에게 금강초롱을 찍었다고 전화로 자랑하니 석룡산이나 화악산엔 금강초롱이 없고
아마도 '모싯대'일 것이라고 하는데 확인 해보니 모싯대가 맞다
사진을 찍으며 너무 늑장을 피우느라 무려 세 시간이나 걸려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석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1,147.2m로 되어 있고, 또 하나는 1,150m로 되어 있으며,
지도에는 1,155m로 되어 있으니 어느 것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희천이 선사한 고도계는 1,160m을 가리키는데 이 고도계는 5m단위이니 제일 정확한 것 같다.
지나온 1,100봉에선 명지산, 개이빨산, 국망봉, 신로봉이 멋진 하늘 금을 이루고,
복주산과 두류산이 어우러져 일렁이는 파도처럼 굼실댔는데 정상의 조망은 별로다.
겨울엔 제법 조망이 되어 오늘 이 곳을 다시 찾았건만, 잡목에 가려져 장쾌한 능선이
보이지 않는다.
산막을 지나 미끄러져 넘어졌을 때 추월했던 산꾼 두 명이 족발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며,
우릴 유혹해 새우젓을 찍어 몇 점 먹으니 힘이 솟아난다.
"힘들 땐 괴기가 최고여"! ~충청도에선 고기를 '괴기'라 한다.
정상석 바로 밑에 '말나리'가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다년생으로 깊은 산 초원에서 자라며, 하늘나리와 비슷하지만 꽃이 옆을 향해 핀다.
민간에서는 자양, 강장, 건위, 종독 등에 약으로 쓴다 .
단체가 수십 명 올라온다.
최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일행 만 호젓하게 즐겼지만 이젠 많이 알려진 모양이다.
화천으로 넘어가는 도마치 고개가 포장을 끝낸 지 몇 년 되지 않는 오지인데도 조무락골의 물과
바위가 워낙 좋으니 소문이 날 만하다.
도마치란 도로의 마지막에 있는 고개를 말한다.
현재고도 850m인데 계곡물이 엄청나다.
조금 늦게 내려오니 희천인 벌써 몸을 씻었고 봉길인 술상을 봐놨다.
작은 폭포와 함께 너무나 맑은 명경지수에 발을 담그니 3분을 버티기 힘들 정도로 시리다.
산은 화기(火氣)요, 물은 수기(水氣)라
화기가 약하면 에너지가 약하고, 수기가 약하면 지구력이 떨어지는데 산과 물이 어우러져
있으니 정말로 명산이로다.
물은 생태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머리를 물에 넣으니 열이 난 머리를 식혀준다.
사람은 물만 바라봐도 열이 내려간다.
열이 내려가야만 아이디어가 나오고 중정(中正)의 판단을 할 수 있다.
즉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은 물을 자주 접해야 한다.
'지자요수(智者樂水)요, 현자요산(賢者樂山)'이라 우린 두 개를 다 갖췄으니 바로
신선(神仙)이로다.
터덜터덜 내려오니 '물푸레나무'가 군락을 이룬다.
오리나무, 서어나무와 같이 서어나무 과에서 많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물푸레나무'가
참나무를 제압하고 극상림으로 서서히 세력을 넓혀가니 이 오지의 원시림도 머지않아
아열대식물로 바뀔 모양이다.
'전동싸리'도 보이고,
'단풍나무' 터널이다.
가을엔 계곡의 물과 어우러져 단풍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벌써부터 설렌다.
항암치료제를 추출하는 '운지버섯'이 잘 자라고 있다.
최근엔 막걸리가 항암효과가 더 크다고 여러 번 매스컴을 탔으니, 소주보다는 막걸리를 마시는 게
더 좋을 듯하다.
이제 500m 가 남았다.
계곡을 건너며 잠시 쉬자.
사위질빵이 활짝 피어있다.
덩굴성 낙엽목으로 3~5m정도 산지 숲 가장자리에서 자라며,
한방에서 요통, 천식, 풍질, 파상풍 ,각기 등의 약재로 쓰인다.
가평천의 발원지이기도 한 '석룡산'은 가평 북면 적목리에 있으며, 화천 사내와 경계를 이루며,
한북정맥상의 도마치봉에서 남서쪽으로 가지를 쳐 화악산(1,469m)으로 달아나는 산릉 가운데에
솟아 있는데,
작년에 소개했던 양평 단월면 '도일봉'에서 도망쳐 온 <백백교>의 심복들이 숨어들었던 곳이
바로 이 석룡산의 조무락골이다.
1928년 일제시대에 일어났던 백백교 집단살인사건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동학의 한 종파로 출발한 백백교 교주 전용해와 심복 문봉조 등 11명이 10년 동안 80여 차례에
걸쳐 350명의 신도를 집단 학살한 사건으로 기록 되어 있는 백백교 사건과 관련이 있는
석룡산은 세월이 무심한 듯 매미소리, 물소리, 새소리에 묻혀만 간다.
2009. 8. 6. 석룡산 종주를 끝내고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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