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681 어느 여인의 배꼽

김흥만 2022. 5. 13. 10:03

2022.  5.  13.  10;55

전철의 좌석은 7명이 앉게 되어있다.

내 옆에도, 앞 좌석에도 앉은 사람 전원이 휴대폰으로 무엇인가

검색을 하고 드려다 보는데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목이 굽어지는 스몸비(smombie) 자세가 싫어 똑바로 앉아 폰을

보지만 금세 눈이 피곤해져 5분을 버티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향긋한 냄새에 끌려 눈을 뜨자 묘한 풍경이

펼쳐진다.

내 눈앞에서 불과 50cm가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있는 여인의

배꼽이 보이는 거다.

 

참 민망하다.

시선을 어디에 둘지 곤란해 옆으로 눈동자를 돌리자 이번엔 노출이

더 심한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하의는 레깅스 복장인데 몸의 윤곽은 물론 한 손을 올려 손잡이를 잡자

블라우스가 위로 올라가고 배꼽에는 이상한 문양의 피어싱(piercing)을

하였다.

 

레깅스를 착용해 음부의 곡선도 뚜렷하고 하얀 뱃살 가운데 피어싱을 한

둥근 배꼽을 보고 있자니 묘한 생각이 든다. 

 

배꼽 피어싱으로 데칼코마니(decalcomanie) 기법을 사용하였으니

이 여인은 아마도 초현실주의자인 모양이다.


5월부터는 본격적인 노출의 계절이라 전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야한 복장의 여인을 많이 만나게 된다.


시선처리가 곤란할 때는 선글라스를 낀 복장이 참 편하다는 생각을

하며 내친김에 그냥 배꼽 정면을 바라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나에게 관음증(觀淫症) 증세가 있는 건 아니다.

 

황반변성을 앓고 있어 바깥으로 나오면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게

습관이 되었기에 상대편이나 주변 사람들은 내가 어디를 쳐다보고

있는 지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편해진다.

 

배꼽은 우리 몸의 정중앙에 있다.

사람들은 어머니 뱃속에서 탯줄로 영양분을 공급받아 자라다가 대략

285~300일이 되어 바깥세상으로 나오는데, 이때 달고 나온 탯줄을

바로 자르면 그 자리가 배꼽이 된다.

 

단전(丹田)의 위치도 노출이 되었다.

이 여인은 배꼽 아래 약 4cm, 즉 한 치 다섯 푼 되는 곳에 위치한 단전에

지금 힘을 모았을까.

 

어쩌면 자기가 배꼽을 노출하였다는 사실을 아주 잊어서 무시해 버리는

몰각(沒却)의 경지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다.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상, 중, 하의 세 단전은 뇌(腦), 심장, 지금 나의

시선이 머무르는 배꼽 아래의 단전을 말하는데,

도인(道人)들은 배꼽 아래의 단전에 힘을 모으면 건강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탯줄을 신성시하였기에

내 고향 진천에는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김유신 장군의 태를 묻은

태실(胎室)과 태실을 품은 태령산(胎靈山)이 있다.

 

또한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입혔던 배냇저고리도 태가 닿은 옷이라

어머니들은 아기가 어른으로 성장할 때까지 소중하게 간직을 하였으며,

 

아기 때 입었던 배냇저고리를 몸에 지니고 가면 합격한다는 속설이

있어 시험장에 지니고 가는 수험생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글을 쓰며 움푹 파인 한쪽에 흉터가 있는 내 배꼽을 바라본다.

오래전 맹장수술을 할 때 배꼽에 구멍을 뚫어 내시경을 넣었던 흉터가

수십 년이 흘렀어도 사라지지 않았구나. 

 

                                   2022.  5.  13.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