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17. 05;00
5월의 숲은 나무와 풀로 가득 차 녹색의 틈이 보이지 않는다.
바랭이, 쇠뜨기풀, 망초대, 이고들빼기, 쇠비름 사이에 큰 키로
'지칭개'가 우뚝 서서 흔들거린다.
늘 마주치는 사람들이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마스크를 내리고 복식호흡으로 숲이 주는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니 시원하다 못해 후련하다.
야외에서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된 지 일주일이 지났어도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할까 봐 나는 여전히 마스크를 끼니
내가 너무 소심한지도 모르겠다.
서풍이 분다.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그 바람을 하늬바람이라고 하지.
남한에서는 서쪽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하늬바람이라고
하는데,
북한에선 겨울에 부는 북서풍이나 매서운 북풍을 하늬바람이라고
하니 같은 민족이라도 표현이 전혀 다르다.
하늬바람에 '지칭개'가 마구 흔들려 카메라 초점이 맞지 않는다.
수십 장을 찍은 후에 간신히 한 장을 건지지만 아웃 포커스(out
of focus)가 되어 지칭개의 실물이 선명하지 않다.
온갖 풀이 무성한 숲에 우뚝 자라는 지칭개를 바라보며 손가락에
자라는 사마귀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농부들은 밭과 들판에서 마구 자라는 지칭개를 싫어한다.
번식력이 강해 뽑고 뽑아도 또 자라는 지칭개, 그래서 농부들은
폐암치료제를 추출하는 가막사리, 스치기만 해도 가시가 늘어 붙는
도꼬마리와 땅바닥을 기어 다니며 농부를 괴롭히는 쇠비름,
바랭이를 싫어했다.
충청도에서는 지칭개를 '지청구'라 한다.
지청구라는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까닭 없이 남을 탓하고 원망하는
짓'이라고 하는데, 보통 어머니나 동네 어른이 아이들을 야단칠 때
지청구를 한다는 말을 많이 썼다.
마을의 산과 들 여기저기에 지천으로 많다고 하여 지청구로 불리던
풀이 어느 날부터 지칭개로 불렀다는데,
며느리밑씻개, 소경불알, 개불알꽃, 노루오줌, 쥐오줌 등과 같이
이름이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수백수천 종의 이름 없는
풀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 지칭개 >
코로나 백신과 약품이 제대로 없는 북한이 코로나 팬더믹(pandemic)이
시작하자, 버드나무 잎과 금은화를 더운물에 우려서 먹으라는 자가
치료방법을 북한주민들에게 제시하였다는 기사가 떴다.
진통해열제 아스피린의 성분인 살리실산은 버드나무에서 추출하다가
구토 등 부작용이 있어 요즘은 조팝나무에서 추출한다.
또한 꽃이 흰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하기에 금은화(金銀花)로도 불리는
인동초(忍冬草)를 다려 먹으라는 기사가 매우 흥미롭게 만든다.
우리나라의 자연에서 자라는 식물은 사람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준다.
이순신 장군이 과거시험을 볼 때 말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치자
버드나무 껍질을 벗겨 다리를 싸매고 시험을 끝까지 치렀으니 버드나무는
일찌감치 진통제로 인정 받은 거다.
또한 마취제를 만드는 때죽나무와 여뀌,
위장을 달래줘 변비를 완화시켜주는 소루쟁이,
인삼보다 사포닌(saponin) 함량이 더 많아 태자삼(太子蔘)으로 불리는
개별꽃,
소가 속이 답답할 때 뜯어먹고 설사를 하는 쇠뜨기풀,
이질, 장염을 고치는 이질풀, 대장염이나 설사를 고치는 마타리,
위장병과 자궁암에 좋다는 옻, 허약체질엔 메꽃, 생리통에 좋은 익모초,
위장에 잔대와 삽주, 화상엔 오이풀,
알코올 중독엔 들판에 무성하게 자라는 가시투성이 도꼬마리,
간질환에 벌나무와 헛개나무, 협심증에 두메부추와 산국화,
당뇨에 바디나물과 돼지감자,
신경계 치료약을 만들며 봉황삼(鳳凰蔘)으로 불리기도 하는 백선(白癬),
사약(死藥)을 만드는 천남성(天南星), 부자(附子), 초오(草烏)
농약(農藥)의 원료로 쓰이는 여로와 박새,
지쳐 쓰러지는 말에게 한 움큼만 먹이면 원기를 회복하여 벌떡
일어서기에 차전초(車前草)로 불리는 질경이 등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특히 남자에게 양기를 듬뿍 주는 비수리(야관문 夜貫門)가 있는데,
지금 내가 찍고 있는 지칭개도 남자의 성기능을 향상해주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5월 중순인 이맘때 활짝 피기 전 꽃봉오리를 채취하여 술에 담가 1년
정도 숙성 후 마시면 간 기능 보호, 항암, 소염, 청혈, 이뇨에 효능이
있으며 남성의 성 기능 개선에도 많이 도움이 된다니 남자들은
눈여겨볼만하다.
< 수레국화 >
지칭개 군락지에서 수레국화 한 송이가 피기 시작하는 아침,
청설모가 앞에서 얼쩡대다가 숲 속으로 사라진다.
2022. 5. 17.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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