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27. 새벽 3시!
호우주의보인데 빗줄기가 조금씩 가늘어진다.
중미산은 위험구간이 별로 없는 전형적인 육산이니 이 정도의 비라면 등산하기에
별로 지장이 없을 거 같아 친구들에게 예정대로 출발하자고 문자를 발송하고 창가에 내내
붙어 앉는다.
08;00
혹시나 폭우가 쏟아질까,
오락가락하는 비를 바라보며 양평 신내해장국으로 요기를 한다
당초엔 중미산으로 약속하였지만 중미산엔 등산로 주변에 물이 있는 계곡이 드물어 농다치고개를
넘어 '어비산'으로 향한다.
농다치 고개라?
치(峙)란 산 우뚝할 치자인데 고개를 말한다.
재, 嶺 등 여러 명칭은 다같이 고개란 뜻이며 령(嶺)은 대관령, 추풍령 등 큰 고개를 의미하는데
이곳 농다치도 대관령, 한계령보다 규모는 작지만 고도 600여m나 되는 당당한 고개이다.
어비계곡으로 들어서니 간밤에 150mm이상 장대비가 쏟아져 물이 매우 혼탁하며 기세가 당당하다.
물고기가 날아다닐 정도로 무진장 많다는 어비산((漁飛山).
등산을 시작하려 하니 제법 굵은 장대비가 쏟아진다.
계곡에 물이 불어 위험을 느끼고,
다들 산행에 욕심이 없는 듯 기념촬영 후 안전한 유명산으로 향한다.
어비산 등산이 무산되어 아쉽지만 다행히 비가 멎어 유명산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산 길가에 '닭의장풀'이 예쁘게 피어있다.
우리네 주변에 가장 흔하게 피는 꽃인데도 반갑다.
유난히 닭장 주변에 많이 피어 '닭의장풀'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는데,
너무 잘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져 농부들은 공공의 적 1호라고 한다.
새벽 동트기 전에 피어 청아한 청색꽃잎과 하얀 속살의 알몸을 보여주는 닭의장풀은
어렸을 적 보릿고개로 배가 많이 고플 때 여린 잎과 줄기는 촌사람들의 구황식물로 삶의 동반자였다.
나물로 해먹고, 말린 것은 삶아 이뇨, 당뇨, 종기 등을 치료하는 다양한 약재로 쓰이기도 하고,
쌈을 먹을 때 몇 잎 넣어 먹으면 독이 없고, 찬 성질이 있어 열이 많은 사람에게 좋다고 하며
말린 것을 차대용으로 마시면, 동맥경화, 고혈압, 심장 등에 좋다고 하니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비가 많이 와 등산로가 망가졌다.
유명산은 나무의 보물창고이다.
참나무, 소나무는 물론 층층나무, 황벽나무, 잎깔나무, 벗나무, 생강나무, 쥐똥나무, 마가목 등
온갖 나무가 지천이다.
다른 산에 비해 물푸레나무 등 서어나무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등산로가 너무 안 좋아 기존의 가파른 등산로로 이동하여 오르는데 처음부터 경사도가 심하다.
'며느리밥풀꽃'이 애처롭게 피어있다.
밥이 뜸 들었나 확인하려고 밥풀 몇 알갱이 입에 물었다가 시어머니의 구박 속에 죽은
며느리의 묘에서 났다는 전설 속의 꽃이라서인지 정말 밥풀이 묻은 모습이다.
현재 고도 600m.
안개가 심하다.
아래에서는 구름 속으로 보이겠지 .
뒤쳐져 혼자 천천히 고도를 높인다.
멸종되었다던 '집게벌레가 나무에 붙어있다.
시골 초등학교 시절 등교길에 잡아다가 교실 책상 위에서 다른 친구들이 잡아온 것들과
싸움도 붙이고 했는데 아스라이 옛 추억이 떠오른다.
고급 가구재로 쓰이는 황벽나무이다.
굴참나무와 껍질이 비슷하지만 코르크 두께가 얇다.
단체가 올라오는지 뒤가 시끄럽다.
두 시간여 만에 정상이다.
지난 2월에 오르고 여섯 달 만인가?
구름 속이라 용문산, 어비산, 소구니산, 중미산 등 전혀 조망이 되지 않는다.
날 잡아 산에만 오면 비가 오니 죄를 많이 지은 인생인 모양이다.
빗줄기가 조금 더 굵어진다.
정상주로는 역시 '서울 장수막걸리'다
붙어 앉아 소근 대며 담배 피는 모습이 처량하다.
서둘러 하산하다 잠시 쉰다.
막걸리 한잔을 한 얼굴이라 홍조를 띤다.
유명계곡길이 1km로 표기되어 있어 방향을 바꾼다.
다시 오르려니 힘이 든다.
'박주가리'를 만난다.
다년생 덩쿨식물로 줄기를 자르면 하얀 유액이 나오는데, 유독성이며 강장, 백납, 백선 등에
쓰인다.
열매는 익으면 박처럼 쪼개지며 흰털이 달린 씨가 나와 바람에 날려 퍼진다.
농부들이 쟁기질하고 힘들어 논가에서 휴식을 취하며 땀을 식힐 때 박주가리의 여린 순을
입에 베어 물면, 힘든 것을 잠시 물리칠 수 있었다고 하는데, 독성이 있어 동물들의 심장은 순간
마비시키나 사람은 먹어도 괜찮다.
그 독성분에 항암, 항균작용이 들어있다고 한다.
옛사람들은 '박주가리와 구기자, 오미자, 측백, 대추, 지황 등을 넣어 가루내 하루 세 번씩 먹으면
능히 천리를 걸을 수 있다'라고 하는데 바로 이것이 현재 전해 내려오는 '박주가리산'이라 하는
것이다.
또한 술에 담가 공복에 아침저녁 한잔씩 마시면 원기가 회복되어 정력보강에도 한 몫 한다고 한다.
헉헉!
온몸이 다 젖어 계곡물로 뛰어들어 세족식을 한다.
오락가락하는 빗속에 동동주와 막국수로 점심을 끝내고 나니 앞이 안보일 정도로 대책 없이
마구 쏟아진다.
다음 산행에도 비가 또 올까?
2009. 8. 27.
유명산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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