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76 가을에 걷고 싶은 미사리 뚝방길

김흥만 2017. 3. 24. 20:25


2009.  9.  7.  04;30

기온이 섭씨 19도라 약간은 썰렁하다.

희미한 달빛아래 피어오르는 물안개 사이로 한강물이 반짝인다.

 

어제 새벽의 너무나 밝고 맑았던 하늘에 반해 카메라를 들고 나왔지만 예상 외로 안개가 심하다.

북극성, 북두칠성, 금성이 쏟아지는 걸 오늘은 볼 수 없으니 서운하지만 귀뚜라미와 풀벌레들의

요란한 합창소리로 위안을 받는다.

 

가로등은 5시에 들어오니 익숙한 뚝방으로 스트레칭을 하며 걷는다.

3km 지점에 하이브리드 조명으로 나무를 비추는데, 5초 간격으로 색이 계속 변해 제법 볼거리를

준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4.6km 지점으로 뚝방 끝에 도착한다.

어둠속에 춘천고속도로 기점인 미사대교가 조명과 안개 속에 잠겨있다.

 

05;30 

예봉산 자락으로 아침 붉은 노을이 시작되니 오늘 얼마나 쏟아지려나?

일기예보엔 그냥 흐리다고만 했는데 여명이 밝아오며 주위 사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개개비'가 지저귀며 요란을 떠니 내가 가까이 있어서 경계하는 모양이다.

 

천연 비아그라인 '비수리'가 보인다.

 

비수리, 지공대 등 하잘 것 없는 이름으로 빗자루나 불쏘시개 등으로 쓰였는데,

지금은 야관문(夜關門)이라 하여 어두운 밤에 굳게 닫힌 문빗장을 열게 한다는

'천연 비아그라'이다.

 

세계의 남성들이 기웃거리는 우리 토종 들꽃인 비수리는 바로 '천연  발기부전치료제'이다.

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우리 주변에 지천으로 있는데 독이 없고 맛은 쓰며 약간

매운맛도 있다.

 

지금과 같이 하얀 꽃이 핀 가을에 35도 이상 되는 소주로 담그는데 항아리에 3분의 2정도

비수리를 넣고, 소주를 듬뿍 담은 후 밀봉하였다가 100일이 지난 후 자기전에 한잔씩 하면

몸이 가벼워지며 양기가 올라 발기부전이 없어진다고 한다.

 

발기부전치료제는 일순간의 효과만 낸다는데 비수리는 간과 폐와 신장의 기운을 북돋아

초부터 튼튼히 해줘 오랜 시간 사랑을 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 준다고 최진규 선생은 말한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강 건너 덕소도 뿌옇게 보이며 중앙선 기차의 긴 꼬리가 보인다.

 

빨간 '물봉선'도 잠에서 깨어난다.

 

같은 봉선화과로 봉선화는 인도에서 귀화한 식물인데 우리네 담장 밑에 터를 잡았으나,

우리 토종인 물봉선은 잘들 모르고 낯설어한다.

마치 도톰한 여인네의 잎술 같이 생겨 요염한 꽃을 따서 씹어 보면 부드럽고 달콤한 액체가

나오는데 부드러운 꿀맛과 꽃 살의 촉촉한 촉감이 혀와 입술에 오래간다. 

 

'괴불주머니'도 보이고,

 

근친교배를 허용하지 않는 토종 '흰민들레'의 포자가 날아갈 준비를 마쳤다.

 

"일편단심 민들레"라

추억과 사연이 많은 민들레가 내 곁에 아주 가까이 있어 더욱 친근감을 느낀다.

서양 민들레인 노란 민들레가 온통 우리 들판을 수놓고 있는데, 강정강장제나 간질환에

쓰이는 토종 흰 민들레를 보니 다. 

 

예전에는 나라에서 예쁜 처녀들을 뽑아갔다.

민들레라는 소녀가 뽑혀 포졸들이 끌어낼 때 칼을 뽑아 자결을 함으로써 연인과의 사랑을

지켜낸 슬픔과 비통함으로 이듬 해 죽은 그 곳에서 넋이 핀 흰 민들레꽃!

그래서 일편단심이라고 했던가?

 

쭉 뻗은 흙길이다.

길이는 4,87km로 왕복 10여 km 되는 거리이다.

밑의 강가 쪽에는 자전거도로, 인라인도로 등이 잘 설치되어 있어 운동하기엔 최고이다.

최근 수도권의 '걷고 싶은 길'로도 선정이 되었다.

 

 

밤의 여인인 '달맞이꽃'이 절정이다.

 

달과 더불어 있어 월견초(月見草)라고도 하는데,

고향은 칠레이고, 해방 후 우리나라에 귀화해 어느덧 우리생활에 밀접한 꽃이 되었다.

뿌리는 감기, 씨앗은 고지혈증에 좋다고 하며, 기름도 짜며 달맞이꽃술도 일품이다.

 

아주 예쁜 꽃이 보이는데 무슨 꽃인지 알 수가 없다.

줄기나 잎을 보면 콩이 분명한데 외래종일까?

 

줄기는 흔하지만 꽃은 매우 보기 어려운 '며느리배꼽'도 만난다.

 

줄기엔 가시도 많고 열매는 눈에 잘 띄지만, 열매가 익기 전에 잠시 피는 둥 마는 둥 한

연녹색의 꽃은 작기도 하지만 열매의 색은 신비롭다.

 

며느리배꼽과 나란히 '며느리밑씻게'도 보인다.

 

우리나라의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사이는 고부간의 갈등 역사의 그 자체이다. 

며느리에 관련된 꽃들 이름은 며느리발풀꽃, 며느리배꼽, 며느리밑씻게, 며느리주머니 등

엄청 많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밭에서 일하다 며느리가 뒤가 마려워 급히 일을 본 후 미쳐 밑씻개를 챙기지

못했기에 시어머니에게 부탁하니 오죽이나 미웠던 며느리인지라 칡잎은 세 장 따고 사마귀 머리

같이 생기고 잎사귀 뒷면에 가시가 촘촘히 박힌 것을 사이사이 넣어 며느리에게 주었으니,

그 것으로 뒤를 닦은 며느리는 얼마니 아팠을까?

 

시어머니의 짖궂음보다 옛 며느리들의 슬픈 삶이 저민다.

귀머거리 삼년, 장님 삼년, 벙어리 삼년에 거의 십여 년 세월을 며느리에 대한 구박에 이름 모를

들꽃에 자기의 한을 담아 토해내고, 스스로를 달래가면서 살았던 슬픈 전설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돈다.

 

안개 속에 예봉산, 검단산, 팔당댐과 숲이 우거진 당정섬이 희미하게 조망된다.



'박주가리'도 보인다.

 

열매가 익으면 박처럼 쪼개지며, 흰 털이 달린 씨가 바람에 날려 퍼지는데,

농민들이 논가에 앉아 잠시 쉬며 박주가리 잎사귀를 입에 물고 드시면 힘이 생긴다.

 

곤충들이 무심코 박주가리 잎이나 줄기를 먹으면 치명적으로 혼이 나서 다시는 그 근처에 잘

가지 않는데 사람들은 그 독에 항균과 항암작용이 들어있다는 것을 밝혀 이용한다.

 

술을 담가 먹어도 좋고, 박주가리와 구기자, 오미자, 측백, 대추, 지황 등을 가루 내 하루 세 번씩

먹으면 능히 천리를 걸을 수 있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 전해 내려오는 '박주가리산'이다.

 

수만 평 넓은 대지 위에 코스모스와 개량형 금계국이 절정을 이루며 환상적인 꽃길을 연출한다.

 

 

모감주나무의 열매가 탐스러운 걸 보니 어느새 가을은 성큼 내 곁에 다가왔나 보다.

허긴 오늘이 백로구나.

 

인공으로 조성한 습지와 새들의 산란장이다.

지난번 둥지와 알을 봤는데 잘 부화되어 지금은 제법 어미 새가 되었으리라.

 

7월에 피기 시작한 '자귀나무'의 꽃이 가는 여름이 아쉬웠나 한 송이 또 피기 시작한다.

다른 꽃들은 이미 지었건만 한 송이 꽃이 공작새의 깃털처럼 너무나 화려하다. 


왕복 약 10여km의 거리로 한 시간 반 정도 걷는 산책로엔 나무 ,꽃, 풀 ,새 등 귀한 생태자원이

무궁무진하다.

지난번엔 맹꽁이도 보았고 수달도 간혹 보이며 꿩, 백로, 해오라기 등 개채수가 엄청 많다.

 

 

                                2009.   9.  7  아침  미사리 뚝길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