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 오후 7시.
인천 연안부두에서 거대한 크루즈선 '오하나마'호에 승선한다.
인천에서 제주까지 물류의 한 축을 감당하는 6,322톤 급의 거대한 크루즈선의 안으로 커다란
트럭 수십 대가 줄줄이 들어가고, 천 명이 넘는 인원을 아주 짧은 시간인 30여 분 만에 다 태운다.
출항과 동시에 찾아온 어둠 속으로 시속 23노트(약 40km)의 속력으로 미끄러지듯 바다로
빠져든다.
짙은 어둠 속에 신비로운 인천대교가 빛을 발하며 하룻밤 선상에서의 꿈나라로 인도한다.
인생이 꿈같음을 저 거대한 다리는 알까?
유람선을 타고 환상의 섬인 제주도 '한라산'을 찾아 떠나는 낭만적인 여행을 전부터 꿈꾸어 왔지.
13~14시간이 걸리는 긴 운항시간, 분명히 적지않은 시간이지만 오히려 매력적이다.
쫓기며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갑자기 던져진 여행.
사랑하는 벗들과 긴 시간의 여유 있는 여행은 분명히 <느림의 미학>의 진수이다.
지난 번 '백령도'여행 시엔 쾌속선을 이용해 시속 70~80km라는 빠른 속도로 다녀왔는데,
느릿느릿 움직이는 거대한 선박 속에서 오히려 마음의 위안을 찾는다.
바닥에 누우니 배의 잔잔한 떨림에 가볍게 안마를 받는 느낌이며 기관소리 아주 미세하다.
들뜬 마음에 소주 한잔 기우리며 정담을 나누는데, 변죽 좋은 익선인 어느새 옆 그룹 여인들과
고스톱 판을 벌렸고 그 모습을 보니 흥겹기 만하다.
밤10시,
안면도 앞바다를 지나며 선상 불꽃놀이가 들뜬 여행객들의 가슴을 흔들어 놓는다.
수십 발의 불꽃이 조용한 밤바다와 밤하늘에 화려한 수를 놓는다.
밤11시 20분.
소등 시까지 뭇 여인네들의 술에 취해 찢어지는 웃음소리, 술판소리, 코고는 소리, 박수치는
소리가 신경에 거슬리지만 이내 잠이 든다.
24일 새벽 3시
선실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보니 북두칠성등 온갖 별이 선명하게 보이며 은하수가 쏟아진다.
간간히 보이는 등대불과 고기잡이배들의 불빛에 이 유람선은 외롭지 않게 남으로 항해를 한다.
사위는 조용하고 뱃전에 부딪히는 물보라와 긴 항적의 흰 포말이 너무나 환상적이다.
새벽4시
코고는 소리에 잠이 깨어 주위를 둘러보니 쩍벌리고 자는 여인네들, 방귀뀌는 소리, 코고는 소리에
이내 잠을 포기한다.
다들 중년이 넘은 나이인데 너무도 품위가 없어 보이니 여행이라 들뜬 마음에 풀어진 모습일까?
새벽 5시
새벽잠이 없는 봉길이 샤워룸이 비었다고 샤워를 하자고 한다.
샤워를 마치고 개운한 마음으로 식사 후 갑판에서 가볍게 몸을 푼다.
선상에서 보는 일출은 첫 경험이다.
태양이 해무를 타고 장엄하게 솟아 오른다.
친구랑 여행이 이렇게도 좋을까?
8시 넘어 도착하였으나 신종풀루 덕분에 방역이 심하다.
구름이 끼어 '한라산 정상'은 보이지 않고, 하선이 예정보다 1시간 이상 지체된다.
성판악으로 올라가는 길에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들의 모습이 너무나 평화롭다.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10;15분
드디어 오늘 산행의 기점인 성판악이다.
비행기로 도착해 먼저 산행을 시작한 희천이와 만우의 도시락 걱정으로 봉길이 등 1그룹은
먼저 출발하고, 우린 천천히 출발한다.
진달래대피소까지 12;30분, 정상에 14;00까지 도착하라는데 어째 오늘 자신이 없다.
<과유불급>이라 !!
한라산 등반을 의식해 매일 10km이상 운동을 하였더니 드디어 무릎에 탈이 났다.
무릎보호대가 익숙하지 않아 아예 지참을 하지 않았으니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고통의
연속이다.
에어파스로 스프레이를 하니 조금 부드러워졌고, 일행에 민폐를 끼치지 않고자 태영이와
진달래대피소까지 목표를 정하고 느릿느릿 운행을 한다.
산의 오름과 내림은 삶의 애환과 기쁨의 과정을 상징한다.
어쩌면 산을 오르는 것은 나의 존재성을 되찾는 행위이기도 하다.
투명한 햇살이 짙게 우거진 나무 잎사귀 사이로 스며든다.
예상보다 온도가 높아 몹시 덥다.
현재 고도 850m.
비교적 완만한 오름길이라 크게 힘은 들지 않는데, 처음 출발 시 너무 빨리 걸어 호흡이
망가져버렸다.
잘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간다.
등산로 주변의 나무가 육지의 나무와 전혀 다르다.
후박나무, 삼나무, 굴거리나무, 녹나무 등이 보이며 '조릿대'가 등산로 주변에 군락을 이룬다.
계방산, 달마산 등의 조릿대는 잎사귀가 가늘고 긴데, 이곳 한라산의 조릿대는 좀 넓으며 둥근
형태이다.
대나무 중에서 가장 작은 <조릿대>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만 자라는데,
일본산은 약효가 신통치 않아 우리나라 조릿대를 채취해 건강식품과 항암제등을 만들어 인기가
좋다고 하며 인삼을 능가하는 약효로 당뇨, 혈압, 위염, 간염, 암등에 폭넓게 쓰이며 이를 다려
마시면 난치병이 완치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단, 성질이 차기에 저혈압이 있는 경우는 좋지 않다고 한다.
조금 이르다 생각했었는데 단풍이 절정이다.
계곡의 물은 건천이라 말랐고,
삼홍(三紅)이라, 만산홍엽은 산과 나무와 사람을 붉게 만들어 색의 향연을 치른다.
단풍나무는 은단풍, 설탕단풍, 섬단풍, 산겨릅, 복자기, 고로쇠나무 등이 있는데,
색깔에 따라 당단풍, 청단풍, 노랑단풍, 애기단풍 등으로 말하기도 한다.
단풍나무는 잎이 7갈래이고, 고로쇠는 노랑단풍잎이 5갈래이며, 복자기는 3갈래로 구분한다.
운행한지 한 시간 반이 넘어서고, 선두는 진달래대피소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우리랑 약 30분 정도 간격이 벌어졌다.
1,000고지를 넘어서니 떨어지는 낙엽으로 가을도 하산 중이다.
태영이 <삼나무>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삼나무'는 측백나무 과로서 원산이 일본인 상록교목이다.
약 40m이상 자라며, 껍질은 적갈색이며 재질이 좋고 특유의 향기가 있어 가구재, 건축재, 장식재로 많이 쓰인다.
한국 사람들이 소나무를 좋아하듯, 일본사람들은 이 삼나무를 매우 좋아한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 배는 이 삼나무로 만들었고, 우리의 판옥선은 소나무로 만들어 조금 더 단단한
우리 배에 의해 당파가 되곤 하였다.
12;30분
진달래 대피소에 도착하니 구름이 걷히며 정상이 조망된다.
지친자식 보듬는 어머니의 품이다.
한라산(漢拏山)은 백두산, 금강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영산으로 꼽힌다.
'한라'라는 이름은 하늘의 은하수를 당길 만큼 높다하여 붙여졌는데, 해발 1,950m로 남한에선
최고봉이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며, 하루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 계절을 보이기도 하는 신비로운
산이다.
산마루에는 분화구였던 <백록담>이 있으며, 고산식물의 보고로 약 1,800여 종이나 되는 울창한
자연림과 초원이 장관을 이룬다.
백록담을 둘러싼 화구벽, 왕관능의 위엄,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의 전설이 깃든 영실 등 명소들이
많다.
겨울의 눈이 아름다우며, 특히 고사목에 피어난 설화와 눈 속에 잠긴 설경 등은 장관이다.
애써 잊으려 해도 쉽게 잊어지지 않을 듯, 산은 변함이 없고 다만 색만 바뀔뿐인데도
산을 보는 사람의 마음은 천 번 변화를 한다.
지난번 등반 시엔 눈이 많아 고생을 하면서도 무난히 정상에 올랐지만 오늘 컨디션은 엉망이다.
조심하느라 간밤 선상에서 술도 자제하였건만 무릎 상태가 엉망이다.
더 높은 곳에 욕심을 갖지 말자.
더 높은 곳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 오르면 된다.
13;07분
도시락으로 점심을 하고 왔던 곳으로 되돌아 가야할 시간이다.
허리를 낮추고, 고개를 숙이며, 몸을 낮추고 내려가다 머리를 들어 올려다보니 산은 높고
하늘은 푸르다.
네 시까지는 성판악에 도착해야 버스를 탈 수 있다.
국내유일의 광활한 아고산대 초원에 '털진달래'와 '산철쭉'이 군락을 이룬다.
세계 유일의 구상나무 숲이라 하는데 과장이 좀 된 듯하고, 덕유산 구상나무도 만만치 않다.
소나무과에 속하는 구상나무는 상록교목으로,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의 한라산, 지리산 노고단,
임걸령, 덕유산 등에서 자란다.
키는 18~20m 정도 자라며 열매는 원통처럼 생겨 위로 곧추선다.
건축재, 가구재로 사용하며 한라산에서는 이곳 1,500m부터 군락을 이룬다.
선두는 정상에서 관음사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했고,
우린 성판악으로 빨리 내려가야 막걸리를 한잔 할 수 있다.
목마른 등산객의 갈증을 채워주는 시원한 석간수가 괄괄 쏫아진다.
시원한 물 한 모금에 산행의 피로가 싹 풀린다.
터덜터덜 내려오니 어느새 오후 3시다.
여유시간은 별로 없고 까마귀 울음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이곳 한라산 까마귀는 유난히 검고 몸이 큰 것 같은데, 사부에게 한참 더 배워야겠다,
육지에 없는 솔비나무가 있어 한 장 찍는다.
콩과의 낙엽 활목으로 8~10m정도 자라며, 다릅나무와 비슷하지만 더 작고 가구재로 쓰이며
껍질은 물감으로 쓴다.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한라산에만 분포한다.
15;30분
성판악에 도착하니 약 25분 정도 여유가 있다.
80% 쌀에 20% 밀가루가 섞인 제주산 '참'막걸리로 갈증을 푼다.
야채전을 1만 원씩이나 받는데도, 종업원의 접객태도는 엉망이다.
제주도가 관광지인데~그것도 대표적인 관광지인 성판악 휴게소의 서비스는 맘에 안 든다.
16;27분
선발대인 봉길이 관음사에 도착하고 중간그룹이 잠시 후에 도착한다.
저물어가는 석양아래 항구에 도착하여 지나온 길 뒤돌아보며 기약 없는 여행길에
잘 살아있음을 노래한다.
19;00시
급하게 샤워 후 소주잔을 기울이는 벗들의 모습이 참으로 평화스럽고 정답게 느껴진다.
어느 선술집에서 본 글귀 한 구절이 생각난다.
"행복은 애인과 같이 하지만, 행복과 불행은 친구와 같이 하는 거라고~~"
한잔씩 더해가며 취기는 올라가고 어느새 잠이 들었나보다.
25일 08;00시
인천대교를 지나 서서히 인천항으로 들어서며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던져주는 새우깡을
받아 먹는다.
이놈들은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에 익숙해져 고기 잡는 법을 잊었는지 굶어죽는 놈들도
있다고 한다.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
14시간의 느린 배 여행 결코 지루하지 않다.
색다른 여행에 다들 만족한 모습이다.
다음엔 민통선 안에 있는 양구 '대암산(1,304m)'이 람사르 협약 제1호인<용늪>을 제외하고,
추곡약수터에서부터 1,250봉까지 등산로가 개방되었다고 하니 서둘러 올라가리라.
옛날 육군 현역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는 산행이 되겠지.
2009. 10. 25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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